제1장 A열차로 가자

도호쿠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눈(雪]의 고장‘ 을 연상한다.
그다음이 춥다‘는 것. 그래서 어쩐지 여름에도 시원할 거라는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도호쿠도 더운 곳은엄청 덥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고장은 매년 30도가 넘는 날이 아주 흔하다.
그런 도호쿠의 어느 읍내에서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야마카와 고등학교는 그 읍내의 한가운데쯤에 있다.
- P11

머릿속이 하얘졌다. 텔레비전 화면은 스튜디오로 바뀌어 있다. 아나운서가 계속했다.
"..… 오늘 한낮 기온이 33도를 넘는 한여름 날씨여서 도시락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으로 보입니다..
희미하게 들려온 그런 말로, 도모코의 마음에 작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 보존 상태....‘ 그래, 아무도 도시락을 운반한 여학생이 상하게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난 또, 누구 탓도 아닌 거야! 아아, 이거 참.
작은 꽃은 어느새 큰 해바라기 밭이 되어 도모코의 가슴속을 다 채워 버렸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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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는 좌우로 마구 방향을 바꾸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면 총탄을 피할 수 있다는 듯이 놈들은 날 못 잡아. 난 쿠키 영웅이니까.
그가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하퍼가 방아쇠를 당겼다. 엘우드의 양팔이 크게 벌어졌다. 손을 쭉 뻗은 채로, 마치 긴 복도의 양쪽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해보려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 복도를 달렸지만 끝이 어디인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휘청거리며 두걸음을 더 나아간 뒤 풀 속으로 쓰러졌다. 터너는 계속 뛰었다. 그는 엘우드가 소리를 질렀는지 아니, 애당초 소리를 내기는 했는지 나중에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달리는 중이었고, 그의 머릿속에는 정신없이 피가 도는 느낌뿐이었다.
- P251

"아무 데나 앉으시면 돼요."
이 식당을 운영하는 체인이 현대적인 호텔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꾸며놓았다. 얼룩을 쉽게 닦을 수 있는 초록색 플라스틱을 아주 많이 사용해서, 살짝 기울어진 텔레비전 세 대가 각각 다른 각도에서 똑같은 케이블 뉴스채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나불거리는 뉴스는언제나 그렇듯이 나쁜 소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피커에서는1980년대의 팝송이 빽빽 울려 나왔다. 신시사이저 소리가 크게 도드라지는 연주 버전이었다. 그는 메뉴판을 살펴본 뒤 버거를 선택했다. 식당 이름(블론디스!)이 메뉴판 맨 앞에 통통한 황금색 글자로 쏟아지듯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이곳의 역사가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과거 리치먼드 호텔이던 이곳은 탤러해시의 상징 중 하나였으며, 웅장한 과거의 분위기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이었다. 프런트 데스크 옆의 가게에서 엽서를 판다는 정보도 있었다.
조금만 덜 피곤했다면 그는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에 이곳의 이름이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곳 주방에서 모험소설을 줄겨 읽던 소년의 이야기.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배가 고팠고 이 식당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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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학교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학교를 나와도 벗어날 수 없었다. 거기서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구부려놓기 때문에 똑바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돼. 거길 나올 때쯤에는 사람이 아주 뒤틀려버린다고. 그래서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그는 얼마나 구부러졌을까?
- P208

 "이건 장애물 경주가 아니야. 장애물을 피해서 돌아갈 수가 없다고, 반드시 장애물을 통과해서 가야 돼.
놈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걸어가야 돼."
- P218

그들은 그에게 채찍을 들어 아주 심하게 때릴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부가 알게 되기만 한다면, 그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주방위군이 암녹색 승합차 여러 대에 나눠 타고 니클의 정문을 통과하는 상상을 했다. 군인들이 곧 차에서 뛰어내려 대형을 갖췄다. 어쩌면 그들은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옳은 일보다 과거의 질서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그들은 이 나라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틀록에서도 그들은 흑인 어린이 아홉 명이 센트럴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간 벽이 되어 성난 백인들을 막아주었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벽이었다. 포버스 주지사도 손을 쓰지 못했다. 낙후되고 사악한 아칸소만의 일이 아니라 미국 전체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정의의 메커니즘이 움직이게 된 것은 버스에서 앉으면 안 되는자리에 앉은 여자, 금지된 식당에 들어가 호밀빵에 햄을 얹은 샌드위치를 주문한 남자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증거를 담은 편지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매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에게 이런 긍지가 없다면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 P226

터너는 저녁 식사 전에 그를 자신의 창고로 데려갔다. 그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엘우드는 아니었다. 그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냈다. 이미 그 편지도 쓴 마당에, 허락 없이 그 창고에 들어갈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했다. 터너의 다락방은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작았다. 니클이라는 동굴 안에 터너가 상자들로 벽을 쌓아 만들어낸 좁은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더러운 군용 담요가 깔렸고, 휴게실에서 가져온 쿠션도 하나 있었다. 기민한 공작원의 은신처라기보다 꽉조이는 목줄을 찬 채 도망치다가 비를 피해 들이온 사람이 만든 빈약한 피난처에 가까웠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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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와 기술이 많은 특정 유형의 인간 노동을 대체해왔지만, 그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학기술은 대체로 노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보완성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특정 노동에 대한 보완 수단으로 시작된 기술이나중에는 노동을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말은 그의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기는 마차와 쟁기로 보완되었다. 그후, 말은 자동차와 트랙터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로 말 노동의 수요가 줄었고, 이는 말 개체 수의 붕과를 초래했다. 비슷한 운명이 인간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왜 우리 주변에서 아직 말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할 테니 위의 말 이야기를좀더 해보도록 하자. 한 가지 이유는 아직 말이 기능적으로 유리한 틈새시장(예를 들면, 경찰업무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쩌다 보니 여가활동으로서의 승마와 경마 등 말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사람들이 기이한 선호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호도를 인간이 미래에 느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품과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에 견줄 수 있다.  - P293

전이 후 맬서스 상태에서의 생물학적 인간의 삶이 인간의 역사적 모습(원시수렵인, 농부, 사무노동자 등)과 같을 이유는 없다. 대신에 이 시나리오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예금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아가는 게으른 불로소득자일것이다. 그들은 굉장히 빈곤하지만 예금 수익이 있거나 국가보조금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극도의 기술 발전을 이룬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초지능뿐만 아니라 안티에이징 의술, 가상현실, 다양한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향경신청 물질 등을 이용할 형편은 되지 못할 것이다. 능력을 향상시키는 약품을 사용하는 대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성장을 방해하고 신진대사를저하시키는 약을 복용할 것이다(대사가 빠른 사람은 점차 감소하는 최저생계소득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평균 소득이 더더욱 감소할수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신체구조로 퇴화할지도모른다. 최소한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기계에 의존하여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는 병 속의 뇌(brain in vat)가 되어, 로봇 기술자가 복제인간을 만드는방법으로 재창조되기 위해서 서서히 돈을 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업로딩(uploading)을 이용해서 좀더 돈을 절약할 수도 있다. 진보된 초지능을 갖춘, 물리적으로 최적화된 연산장치가 생물학적 뇌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뮬레이션된 개체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되거나, 연금이나 면세 예금계좌를 이용하지 못하는 비시민으로 취급된다면 디지털 왕국으로의 전이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엄청난 수의 에뮬레이션된 개체나 인공지능들 대신에 생물학적 인간이 필요한 틈새시장이 생길것이다.
- P302

 인간에게 행복이 만연한 이유는 (어떤 한계가 있던 간에) 진화적 적응 환경에서 쾌활한 감정이 신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번영의 상태(건강, 좋은 교우관계, 지속적인 행운에 대한 자신)에 있다는 인상을 사회집단 구성원들에게 줌으로써 본인의 인기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쾌활함에대한 편향은 선택된 것일 수도 있다. 그 결과, 간단한 물질주의적인 기준에 따라 최대의 효율성을 보이는 쪽이 아니라,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택하는 인간의 신경화학적 편향이 나타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삶의 환희(joie de vivre)의 미래는 전이 - 후 세계에서도 사회적 신호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즐거움에 달려 있다. 
- P309

초개체(또는 부분적으로 선택된 동기를 가진 다른 디지털 에이전트가우월함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은 강압 통치이다. 국가는 동기 선택방탭들을통해서 경찰, 군대, 기밀기관, 민정기관이 균일하게 충성을 유지하도록 할것이다. 이에 대해서 술먼은 이렇게 말한다.

[잘 준비되고 확인된, 충직한 에뮬레이션된 개체들로 이루어진 ] 저장된(saved) 상태는 이념적으로 획일화된 병력, 정부, 경찰력을 충원하기 위해서수억 번씩 복제될 수 있다. 짧은 기간의 노동 후에, 각 복제품은 같은 저장된 상태의 새 복제품으로 대체되어, 이념의 표류를 막을 수 있다. 이 능력은 주어진 관할구역 내에서 굉장히 세세한 관찰과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모든 구성원 각각에 이런 복제품을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 대량살상 무기의 개발을 막고, 전뇌 에뮬레이션 실험이나 복제에 대한 규제를집행할 수 있고, 자유민주적 헌법을 시행하거나 끔찍한 영구적 전체주의를ㅍ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능력의 1차 효과로 권력이 강화되고, 소수에게 힘이 집중될 것이다.
- P324

인간과 유사한 지성체들의 집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육수용 고형분은 알고리즘이라는 수프에 녹아들게 될 것이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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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애들 중에 가족이 있는 녀석이 얼마나 되겠어? 아니, 애한테 신경 쓰는 가족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모두 너 같지 않아, 엘우드." 엘우드의 할머니가 주전부리들을 들고 면회를 오는 것이 터너는 부러웠다. 그래서 때로 질투심이 튀어나왔다. 지금처럼. 엘우드는 곁눈 가리개를 쓴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법이 있으니 시위를 하며 팻말을 흔드는 것은 가능했다. 많은 백인들을 설득한다면 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탬파에 있을 때 터너는 좋은 셔츠에 넥타이를 맨 대학생들이 울워스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일을 해야만살 수 있는데, 그들은 거기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 시위가 성공해서 식당이 흑인에게도 음식을 팔기 시작했지만 터너는 어차피 돈이없어서 그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 니클의 인종차별은 지독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 절반은 주말에 십중팔구 KKK처럼 옷을 차려입을 것이다. 그러나 터너가 보기에 사악함의 뿌리는 단순히 피부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스펜서였다. 스펜서와 그리프였다. 아이들이 이런 곳에 오게 만든 그 모든 부모들, 사람들이 문제였다.
- P137

그는 기숙사 전체가 죽은 듯 잠잠해지는 자정 이후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속의 소리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 문턱에서 들리는 발소리, 천장을 후려치는 가죽 채찍 소리.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 번 깨어나면 몇 시간씩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위태로운 생각을 하며 불안해하거나 기운이 빠져서 약해졌다. 그를 망가뜨린 것은 스펜서가 아니었다. 2호실에서 잠들어 있는 새로운 적이나 감독관도 아니었다. 그가 싸움을 그만두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소등 시간까지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개를 수그리고 조심스레 행동하면서 그는 자신이 이겼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자신이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니클에 한 방 먹인 셈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킹 목사가 옥중 편지에서 말한 검둥이들처럼 변해버렸다. 오랫동안 억압당한 끝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멍해져서 그 현실을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대로 여기고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검둥이.
- P196

"내가 미안하다. 엘." 할머니가 말했다.
"난 괜찮아요. 얼마 전에 탐험가가 됐어요." 그가 계속 고개를 숙인보상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그림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네 가지였다. 그날 한밤중에 또 잠을 이루지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엘우드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니클을 없애는 것.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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