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이 킬러 본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관념은 하비 쿠싱이 수행한 뇌 연구의 논리적 확장이었다. 만약 쿠싱이 증명한 대로 호르몬 분비 이상이 여성의 턱수염을 자라게 하거나 소년을 거인으로 만든다면, 그런 내분비물이 어린 영재들을 폭력범으로 만들 수도 있지않을까? 일리 있는 말이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쿠싱이 사람들에게 "서커스단의 기인들을 동정하라" 고 촉구한 것은 그들이 ‘괴상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인자에게도 그런 동정심을 발휘해야 할까? 즉, 파괴된 분비샘이 ‘선량한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흉악한 범죄로 내몬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킬러를 피살자와 동등한 희생자로 간주해야 할까? 《뉴욕타임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가인의 내분비기관이 부적절하게 기능했다면, 그도 아벨과 마찬가지로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호르몬범죄 이론hormone crime theory의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호르몬범죄 이론은 과학적 장점을 가질 수 있을진 몰라도 도덕적 딜레마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그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킬러 호르몬이 오작동했다는 이유로 관용을 베풀까?
- P102

2013년 스위스와 독일의 연구자들이 다음과 같이 발표한 것은 전혀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사에게 ‘성급히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들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성전환수술을 늦추거나 회피할 가능성이높다. 그러나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한 부모들이 자녀의 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즉시 성전환수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셰릴 체이스를 비롯한 활동가들과 많은 온라인 및오프라인 활동 그룹 덕분에, 어린이와 부모들은 더 이상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다. (간성인의 권익옹호단제를 처음으로 조직한 사람이 체이스는 아니지만, 그 이전의 사람들은 체이스와 달리 암암리에 활동했다.)
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브라이언 / 보니 / 셰릴 체이스는 이제 보 로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는 보니를 의미하며, ‘로랑‘은 19세기의 로랑 클레르라는 학생을 의미한다. 클레르는 청각장애인이 종종 정신장애인으로 취급받는 것에 격분해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싸웠다. (보 로랑의 외조부모는 모두 청각장애인이어서, 어머니가 맨 처음 사용한 언어는 수화였다.) "나는 간성인들을 위해 클레르처럼 싸우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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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에마」의 주인공 에마를 글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꽤 다른 경험입니다. 소설로 읽을 때는 내 멋대로 상상하던 인물이 영화에서는 배우의 얼굴로 고정됩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공간 역시 미술감독의 뜻에 따라 재현되고 그 안으로 제한됩니다. 이런 특성을 폴 오스터는 이차원과 삼차원의 경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평면에 투사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원래 이름은 활동사진이었고 영어에는 아직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영어로 영화는 모션픽처 motion pictures, 즉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 아닙니까? 반면소설은 평면이 아닌 삼자원적 공간, 상상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지금, 여기‘ 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상‘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곳은 19세기 러시아의 궁정일 수도 있고, 뉴질랜드 근처의 무인도일 수도있고, 플로리다의 어촌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일 뿐입니다.
- P529

 아울러 소설은 실패가 때로는 성공보다 더 위험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뼈만 끌고 포구로 돌아왔지만 소설을 읽은 우리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 물고기와 싸웠고, 그 물고기가 숨을 거둔 후에는 그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으려는 상어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의 실패에는 위엄이 있습니다. 소설들은 그런 패배로 가득합니다. 늙은 돈키호테는 평생 읽어온 기사도 소설의 세계를 동경해 길을 떠나지만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조차도 우리는 미소를 띠며 읽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환상을 좇아 일상을 탈출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돈기호테는 그걸 좀 과장되게 보여준 깃뿐입니다. 그를 보면서 위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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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어떤 평복 차림의 신입생과 큰 책상을 든 사환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졸고 있던 아이들이 깨어났고, 각자 정신없이 공부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 자습교사 쪽으로 돌아서서 「로제 씨」하고 나직이 말씀하셨다.
「여기 이 학생을 좀 부탁해요. 중등반 2학년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학업과 품행을 보아서 양호하면 제 나이에 맞는 상급반으로 올려주지요.」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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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월 16일, 스탈링과 베일리스는 지극히 간단한 실험을 수행했다. 갈색 테리어 한 마리를 마취한 후, 소화관 근처의 신경들을 모조리 절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될까? 만약그렇다면, 소화관에서 췌장으로 발송되는 메시지는 신경 말고 다른경로를 통해 배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되지 않는다면, 파블로교의 가설대로 소화관의 메시지가 신경을 통해 운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소화된 음식물을 모방하기 위해, 산성 곤죽한 덩어리를 개의 소장 속에 투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장과 연결된 신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되는 게 아닌가! 그들은 "췌장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신경이 아니라, 어떤 불가사의한 화학물질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P46

1905년 6월 20일 저녁에 행한 첫 번째 강연에서, 스탈링은 세계 최초로 호르몬이라는 용어를 이용해 분비샘에 관한 연구를 요약했다.
"나는 이 화학 전령‘을 호르몬이라고 부를 것이다. 호르몬이란 ‘흥분시키다‘ 또는 자극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호르마오에서유래한다. 호르몬이라는 명칭은 부연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이후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스탈링은 호르몬이라는 화학물질과 인체의 다른 분비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 분비액은 혈류를 통해 자신이 생성되는 기관‘에서자신에게 영향을 받는 기관‘으로 운반된다. 그리고 이 분비액이 반복적으로 생성되어 체내를 순환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생명체의 생리적 수요가 지속적으로 다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호르몬에 대한 명쾌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즉, 호르몬은 원격기관을 겨냥하는 분비샘에서 분비되고, 혈액을 경유해 이동하고, 신체의 유지·관리에 매우 중요하며,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P58

이윽고 다른 과학자들이 부신 호르몬을 코르티솔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강력한 호르몬으로서 혈압, 대사, 면역계 등 많은 신체 기능들을 조절한다. 오늘날 의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분출되어 하루 종일 전신의 기능을 유지한다. 또한 코르티솔은 분만을 촉진하고, 태아의 폐를 코팅해 쉽게 팽창하고 수축하게 만든다. 그러나 쿠싱이 밝혀내기 시작한 것과 같이, 코르티솔이 너무 많으면 전신이 황폐화된다. 그의 환자에게서 발견된 많은 질병뿐만 아니라 코르티솔 수준이 높으면 우울증, 정신병, 불면증, 심계항진 heart palpitation, 골취약증 brittle bone 이 초래될 수 있다. 코르티솔 수준 상승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쿠싱이 다분비샘증후군이라고 기술한 질병은 그의이름을 따서 쿠싱증후군 Cushing‘s syndrome과 쿠싱병 Cushings disease 이라고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질병과 증후군의 차이는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 기관‘에 달려 있다. 뇌하수체 종양은 쿠싱병으로 귀결되고, 부신에서 생긴 문제는 쿠싱증후군이 된다. 그러나 원인이 어떻든(뇌하수체가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해 부신을 자극하는 부신에 결함이 생겨 스스로 흥분하든),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너무 많이 분비되는 것은 똑같다.  - P79

그로부터 몇 년 후, 다분비샘증후군에 대한 순회 강연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던 쿠싱은 《타임》 매거진의 편집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는 그 편지에서 《타임》 매거진에 실린 "못난이들"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기사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못난이 콘테스트를 다뤘는데, 기자는 ‘오디션을 볼 필요도 없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을 다루며 그녀의 동의도 받지 않고 사진을 첨부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참가자 명단에는 "사마귀 난 생선장수, "단독eyrsipelas에 걸린 이탈리아계 유대인", "얼굴에 구멍이 숭숭 난 택시기사", "못생긴 벨기에 수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회의 의도는 미인대회를 조롱하거나, 기자의 말을 빌리면 "유럽 대륙을 오염시킨 미인대회의 악취를 상쇄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쿠싱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천박성을 사회에서 제거해봤자 또 하나의 천박성이 고개를 들뿐이었다. ‘못난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지, 멍청한 구경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 P80

2006년, 영국의 홀마크 사社는 불쌍한 베번 여사의 사진이 인쇄된 풍자적 생일 카드를다시 한 번 발매했다. 홀마크 사는 그 카드에 <실라 블랙의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영국드라마에 관한 조크를 곁들여 영국에서 판매했다. 카드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선택이 끝난 후 데이트 상대의 얼굴이 공개될 때, 그는 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3번을 선택할 걸 그랬어요. 실라." 네덜란드의 내분비학자 바우터 데 헤르더 박사는 영국에 휴가 차 방문했다가 그 카드를 보고, (구심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홀마크 사에전화를 걸어 "그 카드를 당장 시장에서 회수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어떤 블로거는 한뇌하수체 종양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올렸다. "쿠싱이 그 질병에 대해 많은것을 발견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환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편 홀마크 시는 그 카드를 회수하고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여성이 단지 못난이가 아니라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카드를 즉시 회수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놀린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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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었던 이유는 잘 쓰는 어떤 길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라고 묻듯이 구실이 중요한가요? 문장이 중요한가요? 이렇게 묻는데, 저는 그런 문제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예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해방감.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보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책상 서림에 숨거놓을 수 밖에 없는, 그런글을 쓰라. 부모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글에는필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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