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에마」의 주인공 에마를 글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꽤 다른 경험입니다. 소설로 읽을 때는 내 멋대로 상상하던 인물이 영화에서는 배우의 얼굴로 고정됩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공간 역시 미술감독의 뜻에 따라 재현되고 그 안으로 제한됩니다. 이런 특성을 폴 오스터는 이차원과 삼차원의 경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평면에 투사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원래 이름은 활동사진이었고 영어에는 아직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영어로 영화는 모션픽처 motion pictures, 즉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 아닙니까? 반면소설은 평면이 아닌 삼자원적 공간, 상상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지금, 여기‘ 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상‘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곳은 19세기 러시아의 궁정일 수도 있고, 뉴질랜드 근처의 무인도일 수도있고, 플로리다의 어촌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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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러 소설은 실패가 때로는 성공보다 더 위험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뼈만 끌고 포구로 돌아왔지만 소설을 읽은 우리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 물고기와 싸웠고, 그 물고기가 숨을 거둔 후에는 그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으려는 상어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의 실패에는 위엄이 있습니다. 소설들은 그런 패배로 가득합니다. 늙은 돈키호테는 평생 읽어온 기사도 소설의 세계를 동경해 길을 떠나지만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조차도 우리는 미소를 띠며 읽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환상을 좇아 일상을 탈출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돈기호테는 그걸 좀 과장되게 보여준 깃뿐입니다. 그를 보면서 위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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