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월 16일, 스탈링과 베일리스는 지극히 간단한 실험을 수행했다. 갈색 테리어 한 마리를 마취한 후, 소화관 근처의 신경들을 모조리 절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될까? 만약그렇다면, 소화관에서 췌장으로 발송되는 메시지는 신경 말고 다른경로를 통해 배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되지 않는다면, 파블로교의 가설대로 소화관의 메시지가 신경을 통해 운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소화된 음식물을 모방하기 위해, 산성 곤죽한 덩어리를 개의 소장 속에 투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장과 연결된 신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췌장에서 소화액이 분비되는 게 아닌가! 그들은 "췌장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신경이 아니라, 어떤 불가사의한 화학물질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P46
1905년 6월 20일 저녁에 행한 첫 번째 강연에서, 스탈링은 세계 최초로 호르몬이라는 용어를 이용해 분비샘에 관한 연구를 요약했다. "나는 이 화학 전령‘을 호르몬이라고 부를 것이다. 호르몬이란 ‘흥분시키다‘ 또는 자극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호르마오에서유래한다. 호르몬이라는 명칭은 부연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이후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스탈링은 호르몬이라는 화학물질과 인체의 다른 분비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 분비액은 혈류를 통해 자신이 생성되는 기관‘에서자신에게 영향을 받는 기관‘으로 운반된다. 그리고 이 분비액이 반복적으로 생성되어 체내를 순환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생명체의 생리적 수요가 지속적으로 다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호르몬에 대한 명쾌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즉, 호르몬은 원격기관을 겨냥하는 분비샘에서 분비되고, 혈액을 경유해 이동하고, 신체의 유지·관리에 매우 중요하며,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P58
이윽고 다른 과학자들이 부신 호르몬을 코르티솔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강력한 호르몬으로서 혈압, 대사, 면역계 등 많은 신체 기능들을 조절한다. 오늘날 의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분출되어 하루 종일 전신의 기능을 유지한다. 또한 코르티솔은 분만을 촉진하고, 태아의 폐를 코팅해 쉽게 팽창하고 수축하게 만든다. 그러나 쿠싱이 밝혀내기 시작한 것과 같이, 코르티솔이 너무 많으면 전신이 황폐화된다. 그의 환자에게서 발견된 많은 질병뿐만 아니라 코르티솔 수준이 높으면 우울증, 정신병, 불면증, 심계항진 heart palpitation, 골취약증 brittle bone 이 초래될 수 있다. 코르티솔 수준 상승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쿠싱이 다분비샘증후군이라고 기술한 질병은 그의이름을 따서 쿠싱증후군 Cushing‘s syndrome과 쿠싱병 Cushings disease 이라고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질병과 증후군의 차이는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 기관‘에 달려 있다. 뇌하수체 종양은 쿠싱병으로 귀결되고, 부신에서 생긴 문제는 쿠싱증후군이 된다. 그러나 원인이 어떻든(뇌하수체가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해 부신을 자극하는 부신에 결함이 생겨 스스로 흥분하든),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너무 많이 분비되는 것은 똑같다. - P79
그로부터 몇 년 후, 다분비샘증후군에 대한 순회 강연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던 쿠싱은 《타임》 매거진의 편집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는 그 편지에서 《타임》 매거진에 실린 "못난이들"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기사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못난이 콘테스트를 다뤘는데, 기자는 ‘오디션을 볼 필요도 없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을 다루며 그녀의 동의도 받지 않고 사진을 첨부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참가자 명단에는 "사마귀 난 생선장수, "단독eyrsipelas에 걸린 이탈리아계 유대인", "얼굴에 구멍이 숭숭 난 택시기사", "못생긴 벨기에 수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회의 의도는 미인대회를 조롱하거나, 기자의 말을 빌리면 "유럽 대륙을 오염시킨 미인대회의 악취를 상쇄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쿠싱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천박성을 사회에서 제거해봤자 또 하나의 천박성이 고개를 들뿐이었다. ‘못난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지, 멍청한 구경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 P80
2006년, 영국의 홀마크 사社는 불쌍한 베번 여사의 사진이 인쇄된 풍자적 생일 카드를다시 한 번 발매했다. 홀마크 사는 그 카드에 <실라 블랙의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영국드라마에 관한 조크를 곁들여 영국에서 판매했다. 카드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선택이 끝난 후 데이트 상대의 얼굴이 공개될 때, 그는 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3번을 선택할 걸 그랬어요. 실라." 네덜란드의 내분비학자 바우터 데 헤르더 박사는 영국에 휴가 차 방문했다가 그 카드를 보고, (구심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홀마크 사에전화를 걸어 "그 카드를 당장 시장에서 회수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어떤 블로거는 한뇌하수체 종양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올렸다. "쿠싱이 그 질병에 대해 많은것을 발견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환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편 홀마크 시는 그 카드를 회수하고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여성이 단지 못난이가 아니라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카드를 즉시 회수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놀린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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