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저쪽에서 가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가냘픈목청에 교태 섞인 하소연이 마치 제비나 꾀꼬리가 우짖는소리 같다.
‘아마 주인집 아가씨겠지. 필시 절세가인일 게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장난삼아 방 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쉰 살은 넘어 보이는 부인이 평상에 기대어 문 쪽을향해 앉아 있었다. 생김새가 볼썽사나운 데다 추하기 짝이없다. 나를 보더니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주인께서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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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이 돌만은 못하겠지요."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일세. 우리나라는 성을 쌓을 때 벽돌을 쓰지 않고 돌을 쓰는데, 이건 좋은 계책이 아니야.
일반적으로 벽돌이란 틀로 찍어 내기만 하면 똑같은 모양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깎고 다듬는 공력을 과외로 허비하지 않을 거야. 가마 하나만 불을 때면 만 개의 벽돌을 한자리에서 얻을 수 있으니, 일부러 사람을 모아서나르는 노고도 없을 걸세. 모든 벽돌이 고르고 반듯하여 힘은 적게 들고도 결과는 배나 많이 얻게 되지. 나르기 가볍고 쌓기 쉬운 것으로 벽돌만 한 게 없다네.
반면에 돌은 어떤가. 산에서 쪼개 낼 때부터 여러 명의 석수가 들어야 하지 않는가. 수레로 운반할 때에도 여러명의 인부를 써야 하고, 운반해 놓은 뒤에도 여러 명의 손이가야 깎고 다듬을 수 있지. 다듬어 내는 데에는 또 며칠을 허비해야 하지 않나. 쌓을 때도 돌 하나를 자리잡아 놓는일에 여러 명의 인부가 소용되네. 벼랑을 깎아내고 돌을 박으니, 이야말로 흙의 살에 돌옷을 입혀 놓은 꼴일세.
겉으로 보기에는 폼나고 정돈된 것 같지만 속은 정말 제멋대로지. 돌이 들쭉날쭉하여 고르지 못하니 작은 돌로큰 돌의 궁둥이와 발등을 받친다네. 언덕과 성 사이에는 자갈에 진흙을 섞어서 채우기 때문에 장마 한 번 지나가면속이 텅 비고 배가 불러지고 말지. 그런 상황에서 돌이 한개라도 빠지면 그 나머지는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질 거야.
뻔한 일 아닌가. 또 석회가 벽돌에는 잘 붙지만 돌에는 붙지 않는 성질이 있단 말이야. 내가 예전에 박제가와 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어떤 사람이 벽돌이 단단하다 한들 돌만 하겠어요?‘ 하자 박제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벽돌이 돌보다 낫다는 게 어찌 벽돌 하나에 돌 하나를 비교하는 것이겠소?" 하는 거야.
정말 맞는 말 아닌가? 대개 석회는 돌에 잘 붙지 않는단 말이지. 석회를 많이쓰면 쓸수록 더 터져 버린다네. 돌에서 떨어져 일어나기 때문에 돌은 항상 저혼자 남게 되어 겨우 흙에 붙어 있을 뿐이야. 허나 벽돌을 석회로 이어 놓아 보면 부레풀(말린 민어의 부레를 끓여 만든 풀로 주로 목기를 붙이는 데 사용함)로 나무를 딱 붙인 듯, 붕사鵬砂(봉산나트륨의 결정체로 연하고 가벼우며 몸에 잘 녹음. 방부제나 금속을 붙이는 데 사용함)로 쇠를 붙인 듯, 수많은 벽돌들이 하나로 응결되어 아교로 붙여 놓은 듯 성을 만드는거야. 벽돌 한 장의 단단함이야 돌만은 못하겠지만, 돌 한 개의 단단함이 벽돌 만개의 단단함에는 못 당하지. 그렇다면 벽돌과 돌 중 어느 편이 더 이롭고 편리한지 쉽게 구별할 수 있지 않은가?"
정진사는 한껏 몸이 꼬부라져서 말 등에서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미 잠든 지오래된 모양이다. 내가 부채로 그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잠만 자고 듣질 않는 건가!"
정진사가 웃으며 말한다.
"벌써 다 들었지요.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는 거 아닙니까?"
"예끼! 이 사람아!"
나는 화가 나서 때리는 시늉을 하고는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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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을 바라보니 흡사 돌로 만들어 놓은 듯 평지에 우뚝 솟아 있다.
손바닥에 손가락을 세운 듯, 연꽃이 반쯤 피어난 듯, 하늘 끝 여름 구름인 듯, 빼어난 산봉우리를 도끼로 깎아 놓은 듯 무어라 형용기 어렵다. 다만, 밝고윤택한 기운이 없는 것이 아쉽다.
나는 우리 서울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때문인가. 금강산은 그 골짜기가 이른바 1만 2천 봉이나 된다.
기이하면서도 험준하고 웅장하면서도 깊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모습이 마치짐승이 끄는 듯 날짐승들이 날아오르는 듯 신선은 솟구쳐 오르고 부처는가부좌를 튼 듯하다. 어둑하면서도 빽빽하며 아득하면서도 아스라한 것이귀신의 굴로 들어가는 듯하다. 나는 예전에 신원발(申元發신광온을 말함)과 함께 단발령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깊고 푸른 가을, 하늘에 석양이 비낄 무렵이었다. 하지만 하늘에 닿을 듯한 빼어난 빛과 몸에서 솟아나는 윤기나는 자태가 없었다.
하여, 금강산을 위하여 긴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62

사행갈 때는 정관(正官 정식 관리에게 팔포를 내리는 것)이 관례다. 정관은 비장과 역관을 합쳐서 모두 30명이다. 예부터 나라에서 정관 한 명당 인삼 몇 근을 지급했는데 이것을 팔포라고 한다. 지금은 나라에서 지급하지 않고 제각기은을 준비하도록 하되, 포의 숫자만을 제한할 뿐이다.
당상관의 포는 은 3,000냥이고, 당하관은 2,000냥이다.
이것을 가지고 연경으로 들어가서 여러 물화를 바꿔오도록
한다. 가난해서 은을 갖고 갈 처지가 아니면 그 포의 권리를팔기도 한다. 송도·평양·안주 등의 장사꾼들이 그것을사서 대신 은을 넣어 간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 연경에 들어가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 포의 권리를다시 의주 장사꾼들에게 넘겨주어 물건으로 바꾸어 오게한다. 한이나 임 같은 장사꾼들은 해마다 연경을 제집드나들 듯 하며, 저쪽 장사꾼들과 협잡하여 물건 값을 손아귀에 넣고 마구 주무른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물건의값이 날로 오르는 것은 실로 이 무리들 때문이다. 그런데도온 나라가 도무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역관만나무란다. 역관들도 이들 장사꾼에게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 P66

"에라이 한심한 놈아! 행장 간수는 제대로 않고 늘상한눈만 팔더니, 겨우 책문에 와서 벌써 이런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을 하루도 못 가서 늘어진다더니, 2천리를더가 연경에 도착할 때쯤이면 네놈 창자도 남아나질않겠구나. 구요동舊遙東과 동악묘東岳廟엔 원래 좀도둑이 많다는데, 네놈이 또 한눈을 팔다가는 뭘 잃어버릴지모르겠다. 쯧쯧."
장복은 민망하여 머리를 긁적인다.
"쇤네, 정신 똑바로 차리겠습니다. 그 두 곳을 구경할 적엔아예 두 손으로 눈깔을 꼭 붙들고 있을랍니다. 그러면 대체어떤 놈이 뽑아 가겠습니까요?"
"자알 한다!"
매사가 다 이런 식이다. 장복이는 나이도 어리고 초행길인데다 도무지 융통성이라곤 없는 놈이다. 동행하는 마두들이 장난으로 농지거리를 하면 곧이곧대로 다 믿어 버린다. 저런 놈을 믿고 먼 길을 갈 생각을 하니 참,
답답하기 짝이 없다. - P68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밝은 눈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장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가 만일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
"중국은 되놈 나라잖아요. 소인은 싫습니다요."
"맙소사!" - P69

주변의 진열 상태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리되어있다. 한 가지도 구차스럽게 대충 해놓은 법이 없고,
물건 하나도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이 없다. 심지어 소외양간이나 돼지 우리까지 모두 법도 있게 깔끔하다. 땔감쌓아 놓은 것이나 두엄 더미까지도 그림처럼 곱다. 아!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이용利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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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손 글씨는 의사소통만 돕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혜택도준다.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의 신경과학자 카린 제임스는 글을 모르는 소그룹의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학습 스타일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타이핑, 덧쓰기, 손 글씨로 글자와 도형을 가르친 연구진은 훈련 전후에 MRI 스캔을 했다. 그결과, 뇌의 "읽기 회로가 글자 인식에 동원된 것은 손 글씨를 이용했을 때뿐"이었다.
제임스는 "발달 초기인 아이의 경우 손 글씨가 읽기의 기초가 되는 뇌 영역의 문자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짓고 "손글씨는 아이의 읽기 능력 습득을 촉진한다"고 덧붙였다. 글자를 덧쓰거나 타이핑하는 것과는 달리 손 글씨는 읽기 학습을 위해 뇌를 준비시키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98

뮬러와 오펜하이머는 노트북 사용이 학습 과정에 어떤 영향을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필기에만 노트북을 사용하더라도인지 처리 과정의 깊이가 얕아지기 때문에 학습 능력이 손상될 수있었다. 그들은 세 가지 다른 실험을 통해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이 손으로 필기하는 학생에 비해 개념적 질문에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트북으로 필기하는 사람은 정보를 처리하고 자신의 말로 재구성하기보다 강의를 그대로 받아쓰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학습에 불리하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손으로 적을 때 정보를 더 잘 유지한다. 손으로 기록할 때는 키보드를 이용할 때보다 속도가 훨씬 느려서 요약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100

 키보드를 두드려서 단어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추상적이고 분리된 방식이며, 이는 "교육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망엔은생각한다. 종의 감소와 마찬가지로 기량도 점차 약화된다. 우리는보통 비효율적인 낡은 도구(손글씨)를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안(키보드 입력)으로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면 상호작용의 감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효율성의 대가로 학습 방식에서 치명적인 손실(특히 어린이의 경우)을 입었음을 깨닫지 못한다. 키보드는 마스터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이름조차 쓰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절대 진보의 본보기라 할 수 없다. - P101

손 글씨나 그림 그리기 같은 습관이 사라진다고 해도 대수롭지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습관은 혜택을 개인적으로만 경험할 수있고, 수익화하기가 쉽지 않으며(드물게 전문 캘리그라피스트인 경우를제외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단할 것이 없는 기술이다.
그러나 손 글씨가 우리 삶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상황은 특정 경힘들이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보여준다. 경험은 상의하달식의 명령이나 하의상달식의 대중 운동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약화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상실이라기보다는 진보와 개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합리화한다. 기량이 약화되는 것과 동시에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경험도 사라진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은 흔적을 남긴다. 4만 년 전에 그려진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같은 것, 즉 인간의 손이 그려져 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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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려준 득룡은 가산 사람이다. 열네 살부터 북경에 드나들어 이번 북경행이 서른번째나 된다. 중국어에 능통한 데다 크건 작건 간에 우리 일행의 일은 모두 득룡이 아니면 감당할 사람이 없다. 가산과 용천, 철산 등 부府의 중군中軍(지방장판막하의 수석 군관)을 지내고 품계가 가선에까지 이르렀다. 사행이 있을 때마다 미리 가산으로 공문을 보내서 득룡의 식구들을 인질로 붙잡아두는데, 이는 그가 도망치는 것을 막으려는 심산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재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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