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서를 종합해볼 때 그 은닉처는 마지막으로 도시를 버리고 떠나면서 폐쇄 의식을 행한 물건들의 집결지였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 도시에 가장 마지막까지 잔류했던 주민들이 신성한물건들을 전부 걷어 모은 다음, 떠나는 길에 최후의 공물로 신들에게 바쳤는데 이때 물건들에 깃든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 그것들을 깨부순 것이었다. 모스키티아에서 발견된 다른 은닉처들 역시 정착촌을 버리고 떠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목적에 따다 남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도시들의 ‘죽음‘ 을 포함한 문명 전체의 파국은 대략 같은 시기인 1500년경, 바로 스페인 침략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이 지역을 조사한 적이 없었다. 탐험은커녕 그 밀림 오지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 P281

 강철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 십자가를 품은 사제들, 신세계의 생태계를 교란시킬 동물들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이 배에올라탔다.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미세한 ‘병원균‘을 실어 나른 것이다. 신세계 사람들은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어서 그에 맞설 유전적 저항력이 아예 없는 병원균들이었다. 언제라도 불이 번질 수 있는 바싹 마른 광활한 숲이나 매한가지인 신세계에 콜럼버스가 불을 들고 간 셈이었다. 유럽의 질병들이 신세계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유전학, 역학, 고고학에서발견한 사실들로 드러난 절멸의 과정은 그야말로 종말론 그 자체였다. 대학살극이 펼쳐졌던 토착 사회의 실상은 그 어떤 공포영화도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세계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질병 덕분이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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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명의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며 어둠속에 누워있었다. 페르드랑스의 치명적인 완벽함과 타고난 위엄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그 녀석에게 한 행동을 미안하게 여기면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에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뱀에 물려 다행히 목숨은 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인생 자체를 바꿀 것이었다. 기이한 방식이기는 하나 그뱀과의 조우로 내가 밀림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감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토록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상태로 남아 있는 골짜기가 21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진정 ‘잃어버린 세계‘였다. 우리를 원하지도 않고 우리가 속할 수도 없는 세계였다. - P180

우리는 몇 차례 급류를 건너야 했다. 그럴 때는 군인들이 물속에서 서로 팔짱을 껴 인간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강을 건넜다. 골짜기에 다다른 우리는 그 계곡에서 처음으로 인간 점유의 흔적을 발견했다. 황무지가 된 야생 바나나 나무 군락이었다. 바나나 나무는 토착종이 아닌 아시아가 원산지로, 스페인 사람들이 중앙아메리카로 가지고 들어왔다. 바나나 나무는 우리가 그 계곡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스페인 정복기 이후의 인간 거주 흔적이었다.
- P232

골짜기 사이를 빠져나갈 때였다. 정말로 그 계곡을 떠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곳은 더는 미지의 땅이아니었다. 마침내 T1은 세상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가 발견하고 탐사하며 지도로 만들고 발을 디디며 사진을 찍은 곳이 되었다. 그곳은 더는 잊힌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최초로 그곳을 탐사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원정으로 그곳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냄으로써 그곳을 손상시켰다는 점 역시 자각해야 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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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네가 신위를 써야지."
제사를 지낼 때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주어린 시절부터 신위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 머릿속에존재했죠. 제사 많은 집안의 장손이라면 누구라도 그런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이렇게 끊임없이 메모하고 기록하는 것을 ‘수사차록법‘隨思箚錄法‘이라 합니다.

부지런히 메모하라. 쉬지 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기록은 생각의 실마리다. 기록이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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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다 장비는 우주 라이다, 항공 라이다. 지상 라이다 이렇게 세 종류로 이뤄져 있다. 항공 라이다는 그동안 지구상에서 농업, 지질학, 채굴, 지구 온난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빙하 및 빙원 추적, 도 시 계획, 측량 작업에 이용되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기밀 상태에서 사용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지상 라이다는
현재 자율주행차, 지능형 순항제어에서 시험적으로 쓰이고 있는 단계다. 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릴 때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지도로 만드는 데 라이다를 사용한다. 물론 라이다는 방, 무덤, 조각품, 건물의 상세한 3차원 지도를 제작하는 데도 쓰인다. 그 어떤 3차원 사물이라도 아주 정밀하고 세세하게 디지털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다.

라이다(LIDAR) 기술은 1960년대 초 레이저가 발견된 직후에 개발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라이다는 레이더와 비슷하다. 즉, 레이저 광선이 뭔가에 부딪쳐 반사되면 그 반사를 포착해 왕복시간을 측정하여 거리를 알아내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도 제작도구로서 라이다의 잠재력을 금세 알아보았다. 아폴로 15호 및 17호 작전에서는 궤도선에 라이다 기기를 실어 보내 달 표면의 광폭영역에 관한지도를 제작했다. 화성 궤도를 도는 위성인 화성전역조사선 역시라이다 기기를 신고 가서 화성 표면에 레이저 광선을 초당 10회씩쏘아댔다. 1996~2006년까지 10년에 걸쳐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이 조사선은 굉장히 정밀한 화성 표면의 지형도를 만들어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도 제작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어쩌면 수백 년 동안 그곳에 발붙인 이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물어볼 사람도, 찾아볼 안내책자도, 라이다 영상을 능가하는 지도도, 폐허가 된 그 도시에서 우리가 찾게 될 것을 시각화할 방법도 전혀 없었다. 우리가 최초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한 동시에매우 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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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옥문에 들어서다

온두라스 동부 모스키티아 지역 밀림에는 지금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들이 있다. 약 8만 2,879km에 달하는 광활한 무법지대인 모스키티아는 열대우림, 습지, 석호, 강, 산으로 뒤덮인 땅이다. 옛 지도에는 포르탈 델 인피에르노, 즉 ‘지옥문이라고 표기되었던 곳이다. 워낙 다가가기 힘든 험지인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그곳을 뚫고 들어가 탐험해보겠다는시도는 지난 수백 년간 좌절되었다.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모스키티아의 열대우림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경멸적인 뉘앙스를 품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물론이고 곧이어 뛰어든 다른 과일 회사들은 정치적 음모, 세금 책략, 쿠데타 획책, 뇌물 수수, 노동자 착취로악명을 떨쳤다. 이 기업들은 온두라스의 진보를 틀어막아 숨통을 죽여놓았고 부패와 극단적 형태의 족벌 자본주의가 그 땅에서 자라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의 과일 회사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온두라스 정부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온두라스는 마약 밀매업자들의 밥이 되었다. 1990년대에 콜롬비아가 실효적인 마약 근절 정책 및 현장 급습을 단행하면서 마약거래의 상당 부분이 온두라스로 옮겨갔다. 밀수업자들은 온두라스를 남아메리카와 미국 사이에서 거래되는 코카인을 옮겨 싣는 최고의 마약 밀수 환적지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모스키티아가 있었다. 밀림을 불도저로 밀어 대충 만들어 놓은 활주로는 베네수엘라에서 날아온 마약의 야간 동체착륙에 사용되었다. 법 집행기관과 사법제도가 무너지면서 살인율은 치솟았다. 주요 도시의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한 폭력조직들은 강탈을 자행하고 보호를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으며 군과 경찰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을 만들었다. 범죄조직의 폭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자 달리 방도를 찾을 수없었던 온두라스 국민들은 대개 자식들을 북쪽으로, 즉 안전한 미국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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