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명의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며 어둠속에 누워있었다. 페르드랑스의 치명적인 완벽함과 타고난 위엄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그 녀석에게 한 행동을 미안하게 여기면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에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뱀에 물려 다행히 목숨은 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인생 자체를 바꿀 것이었다. 기이한 방식이기는 하나 그뱀과의 조우로 내가 밀림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감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토록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상태로 남아 있는 골짜기가 21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진정 ‘잃어버린 세계‘였다. 우리를 원하지도 않고 우리가 속할 수도 없는 세계였다. - P180

우리는 몇 차례 급류를 건너야 했다. 그럴 때는 군인들이 물속에서 서로 팔짱을 껴 인간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강을 건넜다. 골짜기에 다다른 우리는 그 계곡에서 처음으로 인간 점유의 흔적을 발견했다. 황무지가 된 야생 바나나 나무 군락이었다. 바나나 나무는 토착종이 아닌 아시아가 원산지로, 스페인 사람들이 중앙아메리카로 가지고 들어왔다. 바나나 나무는 우리가 그 계곡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스페인 정복기 이후의 인간 거주 흔적이었다.
- P232

골짜기 사이를 빠져나갈 때였다. 정말로 그 계곡을 떠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곳은 더는 미지의 땅이아니었다. 마침내 T1은 세상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가 발견하고 탐사하며 지도로 만들고 발을 디디며 사진을 찍은 곳이 되었다. 그곳은 더는 잊힌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최초로 그곳을 탐사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원정으로 그곳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냄으로써 그곳을 손상시켰다는 점 역시 자각해야 했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