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서를 종합해볼 때 그 은닉처는 마지막으로 도시를 버리고 떠나면서 폐쇄 의식을 행한 물건들의 집결지였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 도시에 가장 마지막까지 잔류했던 주민들이 신성한물건들을 전부 걷어 모은 다음, 떠나는 길에 최후의 공물로 신들에게 바쳤는데 이때 물건들에 깃든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 그것들을 깨부순 것이었다. 모스키티아에서 발견된 다른 은닉처들 역시 정착촌을 버리고 떠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목적에 따다 남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도시들의 ‘죽음‘ 을 포함한 문명 전체의 파국은 대략 같은 시기인 1500년경, 바로 스페인 침략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이 지역을 조사한 적이 없었다. 탐험은커녕 그 밀림 오지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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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 십자가를 품은 사제들, 신세계의 생태계를 교란시킬 동물들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이 배에올라탔다.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미세한 ‘병원균‘을 실어 나른 것이다. 신세계 사람들은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어서 그에 맞설 유전적 저항력이 아예 없는 병원균들이었다. 언제라도 불이 번질 수 있는 바싹 마른 광활한 숲이나 매한가지인 신세계에 콜럼버스가 불을 들고 간 셈이었다. 유럽의 질병들이 신세계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유전학, 역학, 고고학에서발견한 사실들로 드러난 절멸의 과정은 그야말로 종말론 그 자체였다. 대학살극이 펼쳐졌던 토착 사회의 실상은 그 어떤 공포영화도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세계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질병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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