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생 갈라파고스물개가 따뜻하게 데워진 검은 화성암 위를 기어 어미 곁으로 다가와 햇볕을 쥔다. 어미 옆에는 갓 태어난 새끼 물개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참으로 평화스러운 정경이다.
그런데 갑자기 1년생 손위 물개가 사납게 덤벼들더니 새끼 물개의 목을 물어뜯는다. 갓난 새끼를 가운데 두고 어미와 자식 간에 숨가쁜 각축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새끼 물개가 여러 번 내동댕이쳐진 후에야 어미는 겨우 새끼의 뒷지느러미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형과 어미가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새끼 물개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솔로몬이 아기를 반으로 쪼개라고 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었지만 자연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23

이유야 어쨌든 과잉 생산과 불안정한 환경이라는 두 요인이 어우러져 수많은 동식물이 형제자매와 생태적으로 경쟁하고 때로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는 시스템이 탄생했다.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생태환경이 열악할 때는 자연선택의 저울추가 이기적 형질을 발현시키는 대립유전자의 생존 쪽으로 기운다는 의미다. 상황이 특히 안 좋을 때는 심지어 가까운 혈족의 유전자 사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개체 자신의 생존을 돕는 유전자가 퍼질 수 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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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내리는 눈의 경우 적설량 1cm를 강수량 1mm로환산하곤 하는데, 이것이 쌓일 때는 위에 쌓이는 눈의 무게로 압축되기 때문에 적설량1cm가 강수량 3mm 정도에 해당하는 무게가 된다. 이 점에 입각해 적설량 3m의 눈이 가로세로 6m인 지붕에 쌓인다고 가정하면 가로세로 1m당 몸집이 작은 씨름 선수 (100kg)가 9명(0.9) 지붕 전체에는 총 324명(32.4)이 올라가 있는 셈이 된다. 그래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지붕에 쌓인 눈을 반드시 치워야하는 것이다.
- P303

흔히 세간에서 지진운이라며 화제가 되는 구름은 전부 기상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구름이다. 구름은 지진의 전조 현상이 될수 없다. 그럼에도 지진운이라는 비과학적인 생각이 때때로 화제가 되는 이유는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이 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오해를 받은 끝에 급기야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P307

이 책은 일상적으로 구름을 사랑하고 친해지며 즐기기 위한 기상 정보와 현저한 현상의 관천망기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기상재해에 대한 방재력을 갖추는 능동적이고 즐거운 방재를 지향한다. 이것이야말로 감천망기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구름 사랑을 깊게 하고 전파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 나아가서는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까지 지킬 수 있다. 구름사랑의 길이 재해 제로의 미래로 이어진다. 기도만 해서는 닿지않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하늘이 이어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도달하는 장소는 같다고 믿는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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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비행기운은 상공의 저온환경에서 발생한다. 비행기의 엔진이빨아들인 공기는 압축되고 연소를 통해 섭씨 300~600℃의 뜨거운 배기가스가 되어 방출된 뒤 주위의 공기와 섞이며 급속히 식는다. 또한 비행기 날개 뒤쪽에서는 공기의 소용돌이가 발생해 부분적으로 기압과 기온이저하된다. 이러한 요인으로 차가워진 배기가스가 구름응결핵으로 작용해서 과냉각 구름방울이 발생하고 그 후에 빙정핵이 형성되어 빙정의 비행기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P239

먼저, 연직시어가 없는 환경에서 발달하는 독립된 단일 적란운(단일셀, 대류셀)의 일생을 생각해보자, 적란운은 대기의상태가 불안정할 때 등에 발달하지만, 그것만으로 적란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①국지 전선이나 지형 등이 하층의 공기를 상승시켜 상승류가 발생한다. ② 이 상승류로 하층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상승해 응결 고도까지 상승하면 구름이 생긴다. ③상승류를 통해서 상승한 공기가 자유 대류 고도를 넘어서면 자력으로 상승한다. 그 후에는 상승과 함께 구름이 커지며, 구름 속에서는 다양한 구름 물리 과정을 거쳐 강수 입자가 형성된다. 그러면 ④강수 입자의 상변화에 따른 냉각이나 로딩으로 구름 속에 하강류가 발생한다. 이 무렵 ⑤ 운정은 평형 고도(대류권계면 등)에 다다.
르며, 모루를 동반해 적란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지상에서는 강수가 강해지며 하강류가 상승류를 상쇄할 만큼 강해진다. ③상승류를 잃은 적란운은 하강류에 지배당해 쇠약해진다.
지상에 다다른 하강류는 주위로 확산되어 돌풍 전선이라는 국지전선을 만들고, 그 끝에서 주위의 공기가 상승해 새로운 적란운이 될 때가 있다.(①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적란운은 일생을 마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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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예술을 거부하겠다는 생각입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형성된) 1950~60년대 서구 예술에 뭔가 문제가 있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예술 창조‘를 꿈꾸며 의기투합한 것이죠.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한 그 당시 서구 예술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마키우나스가 쓴 플럭서스 선언문을 보면 알 수있습니다.

"지적이고 전문적이며 삼업화한 문화와 부르주아의 병든 세계를 추방하라 죽은 예술, 모, 인공적인 예술, 추상적인 예술의 세계를 제거하라. 살아 있는 예술, 반예술을 진전시켜라, 평론가, 예술매효가, 전문가만이 마니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 개념을 증진시켜라." 

글쓴이의 분노가 느껴지는 과격한 선언문, 전문화가 옳다고 여기며예술을 미술, 음악, 문학, 영화, 연극, 무용 등으로 잘게 찢어놓은 현실을 비판합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팽창하는 자본주의 논리 속에 예술마지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비판합니다. (1910년 뒤샹이 레디메이드로 금을 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50년이 지난 1960년대에도 이전히 ‘회화와 조각‘ 형태를 고수하는 미술의 현실을 비판합니다. 사람과삶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담기지 않은, 관객과의 소통을 고려하지 않는 회화와 조각 형태의 추상미술이 득세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 P356

인류의 평화를 노래한 존 레논처럼,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로 인류평화를 염원하는 굿판을 벌입니다. 밥 먹듯 숨 쉬듯 매일 TV와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 파고들던 남준, 마침내 그는 가까운 미래에 TV가 ‘인류평화를 가능케 할 매개물‘이 될 것이라는 통찰에 도달합니다. 다시 말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질 미래의 TV는 시공을 초월해 전세계 모든 이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케 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여, 결국 국가 · 인종 · 이념의 벽을 허물어 세계인을 하나로 만들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렇다면, TV를 어떻게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로 만들 수 있을까? 남준은 1980년대에 떠오른 뜨거운 첨단기술, ‘통신‘에 주목합니다. 미래에 TV와 통신 기술이 만나 인류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결국 인류의 공존공영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갈 것이라 본 것입니다. 나아가 인류는 기술을 그렇게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P371

우리는 내 밖에 있는 타인을 객체로 보고 내 마음대로 규정해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오로지 내 생각만 옳고, 내 식대로 모든 것이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향해 무조건적 폭언·폭력을 가하지 않았는가? 자연을 객체로 보고 내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타인과 자연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제, 우리가 타자와조화롭게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 관점으로 타자를 보는 고집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타자를 보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않을까? (나와 마찬가지로 ‘타자도 살아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우환은 작품에 ‘돌‘을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오직 인간의 머리에서 짜내 만들어낸 것만 작품이고 가치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상황인데. 그럼, 이 돌은 뭔가? 인간이 만들지않은 이 돌(타자)은 뭔가? 언제까지 타자를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할 생각인가?"
- P404

그 타자인 듯하면서도 아닌 듯한‘ 이우환, 김환기와의 만남, 대화,
관계 맺기, 그 속에서 1970년대 한국미술계에서는 ‘한국적, 동아시아적 정신세계를 회화에 반영하는 것‘을 화두로 하는 회화 경향이 탄생합니다. 박서보, 윤형근(김환기의 사위), 윤명로,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의 화가로 대표되는 단색화입니다. "색채 덩어리를 옷처럼 뒤집어쓰고 어둠을 깨운다. 육체의 고통은 그림의 운명이고, 사랑이다. 단색화는 통쾌한 해방감이다. 라고 하종현이 말하듯, 이들은 회화 재료가 가진 물질성을 탐구하고, 반복적 그리기 행위를 통한 동양적 수행혹은 정신적 해방을 추구했죠. 다시 말해, 그들에게 그리기 과정은 물질 (물감, 붓, 캔버스, 종이 등)과 만나 논밭을 갈듯, 바느질하듯, 오체투지하듯 일정한 행위를 반복하는 수행 과정‘이었고, 그 과정 끝에 완성된그림은 그 수행 과정을 보여주는 ‘수행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 P409

이우환의 조각은 음악과 같다고?
이우환의 작품은 제작연도가 ‘1969/2013‘과 같이 쓰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앞의 숫자는 최초로 작업한 해이고, 뒤의 숫자는 다시 작업한 해‘입니다.
이우환의 ‘조각‘은 ‘음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작곡가가 악보를 하나 만들어놓으면, 이후 연주자가 언제든지 그 악보를 토대로 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 결과, (악보는 같지만) 그것이 연주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곡은 달라집니다. 우환의 조각도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환이 <관계항> 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기획해놓으면, 이후 퍼포머가 실행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항상 새롭게 창조됩니다. 다시 말해, 곡이 연주되는 시공간에 따라 곡이 달라지듯, <관계항> 이 시행되는 시공간에 따라 조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콘셉트라도 누가, 무엇으로, 언제, 어디서‘ 행위하는지에 따라 무한하게 달라진다는 그 엄연한 진실을 자신의 조각 작업에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노파의 예술관입니다.) 이것은 조각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장소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 조각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 조각가라 볼 수 있습니다. 이우환 이전의 조각을 떠올려보세요, 조각이 놓이는 시공간과 관계없이 이미 조각은 완성되어 있있습니다. 조각과 관계 맺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타자를 무시한 것이죠. 이우환은 관계항을 작업할 때마다 새로운돌을 찾아, 새로운 시공간과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행해지는 순간마다 새롭게태어나는 ‘살아 있는 조각‘인 것입니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이며 살아 있다는것의 의미, 느끼지시나요?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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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밍햄은 한마디로 공포의 도시였다. 흑인들은 물론이고 백인들에게도 공포의 도시였다. 버밍햄에는 커너의 방법에 찬동하지 않는 온건한 백인들도 있었고, 사적인 자리에서 흑인에 대한 가혹행위를 비난하는 점잖은 백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보복이 두려워서 공개석상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공포감이 배어 있는 침묵이었다. 버밍햄의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군다는 점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이 침묵을 지킨다는 점이었다.
버밍햄의 흑인들은 백인의 오랜 폭정에 위축되어 희망을 잃고 그릇된 열등감만 키워가고 있었다. 정치, 경제계의 대표들은 흑인대표들과 사회정의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것조차 거부했다.
버밍햄은 조지 월러스 주지사가 관할하는 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는데, 월러스 주지사는 취임선서에서 ‘오늘도 차별, 내일도 차별, 영원히 차별‘을 맹세한 사람이었다. 버밍햄은 미국 최고의 흑백차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 P239

저는 기독교도들과 유태교도들에게 고백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저는 지난 몇 년 간 온건한 백인들에게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흑인의 지위함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은 ‘백인지민평의회‘나 ‘KKK단‘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질서‘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가진 온건한 백인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의가존재하는 적극적인 평화보다는 긴장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하고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실천하는 직접 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자신이 다른사람의 자유쟁취운동의 일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애매한시간 개념에 입각해서 흑인들에게 ‘보다 좋은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의 완벽한 몰이해가 아니라 선랑한 사람들의 천박한 인식입니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노골적으로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온건한 백인들이 법과 질서는 정의라는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것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P266

문제는 극단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점에서 극단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증오를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극단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불의를 유지하는 극단주의자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정의를 베푸는 극단주의자가 될 것입니까? 예수님을 비롯하여 세 사람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세 사람의 죄명은 모두 극단주의였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주위 환경에 비해서 비도덕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고,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와 선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습니다. 남부와 미국, 세계에는 창조적인 극단주의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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