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햄은 한마디로 공포의 도시였다. 흑인들은 물론이고 백인들에게도 공포의 도시였다. 버밍햄에는 커너의 방법에 찬동하지 않는 온건한 백인들도 있었고, 사적인 자리에서 흑인에 대한 가혹행위를 비난하는 점잖은 백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보복이 두려워서 공개석상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공포감이 배어 있는 침묵이었다. 버밍햄의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군다는 점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이 침묵을 지킨다는 점이었다. 버밍햄의 흑인들은 백인의 오랜 폭정에 위축되어 희망을 잃고 그릇된 열등감만 키워가고 있었다. 정치, 경제계의 대표들은 흑인대표들과 사회정의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것조차 거부했다. 버밍햄은 조지 월러스 주지사가 관할하는 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는데, 월러스 주지사는 취임선서에서 ‘오늘도 차별, 내일도 차별, 영원히 차별‘을 맹세한 사람이었다. 버밍햄은 미국 최고의 흑백차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 P239
저는 기독교도들과 유태교도들에게 고백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저는 지난 몇 년 간 온건한 백인들에게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흑인의 지위함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은 ‘백인지민평의회‘나 ‘KKK단‘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질서‘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가진 온건한 백인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의가존재하는 적극적인 평화보다는 긴장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하고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실천하는 직접 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자신이 다른사람의 자유쟁취운동의 일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애매한시간 개념에 입각해서 흑인들에게 ‘보다 좋은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의 완벽한 몰이해가 아니라 선랑한 사람들의 천박한 인식입니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노골적으로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온건한 백인들이 법과 질서는 정의라는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것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 P266
문제는 극단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점에서 극단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증오를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극단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불의를 유지하는 극단주의자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정의를 베푸는 극단주의자가 될 것입니까? 예수님을 비롯하여 세 사람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세 사람의 죄명은 모두 극단주의였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주위 환경에 비해서 비도덕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고,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와 선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습니다. 남부와 미국, 세계에는 창조적인 극단주의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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