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미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는 자기 위로 몸을 굽히고 있는 얼굴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자기를 간질이고 찌르고 비집는 손가락들을 느끼고서 이 새로 온 사람들이 자기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시계를 낚아채고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지갑을 빼내고, 그가 첫번째 영성체를 받은 이후로 목에 두르고 다녔던 림피아스의 신부가 새겨진 메달을 잡아뜯었다. 루초 아브릴 마로킨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놀라움을 못이겨 어둡고도 어두운 밤 속으로 빠져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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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휘를 써야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갈등하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평소에 지각하지 못한 전제 조건이 깔려있다. 어휘의 정의가 고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어휘를가지고 사람마다 내리는 정의가 제각각이라면 바벨탑이 무너진 직후에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느라 소통이 막힌 바빌론처럼 극심한 혼란에 빠질 테니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한번쯤 그 당연한 삼식을 뒤집어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고정된 어휘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의집에서 관찰한 물건, 음식, 방 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부드러운 단추들(Tender Buttons)에 썼다. 이것은 무엇에 대한 정의일까.

내부에서는 잠들고 있고
외부에서는 붉어지고 있다.
 
바로 구운 쇠고기‘ 이다. 모든 수수께끼가 그렇듯 답을알고 나면 쉽다. 그런데 과연 ‘구운 쇠고기‘ 이기만 할까? 혹시 갓밝이의 ‘방‘ 같지 않은가? - P265

한편으로 아름다움은 낡고 닮은 어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것, 많은 사람의 꿈이 아닐는지, 꿈과는 별개로 누가 그런 식으로 문장을 쓰면 나는 꼭 빵점을 줄 것이다.
‘아름답다‘는 어휘는 햇살 좋은 오후, 해변을 거닐다 발견한 입 꾹 다문 하얀 조가비 같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부귀했는지, 헌신적이었는지, 출중했는지,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보람 있었는지, 뭐가 어땠는지 구체적인 정보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 P274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예술가에게 경외의 대상이자 다다라야 할 목표, 행위를 하는 목적, 삶의 이유, 그리고 라이벌이었다. 오랫동안 궁금했다. 이름다움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하고……….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라는 시구는 이름다움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왜 우리176가 먹먹한 감동을 느끼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허락된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 때문에, 죽을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세상의 온갖 소란 속에 잊고 지낸 진실을 찰나의 빛처럼 일깨워준다. 자칫 허무나 비관으로 빠질 수있는 ‘생의 유한성‘을 지혜롭게 견딜 힘을 준다. 아름다움은 이처럼 생의 유한성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희귀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으니 그죽음의 개수만큼 흔하디흔해야 한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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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입되는 정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찬찬히 살필 여유 없이 텍스트는 Z자 형태로, SNS는 수직으로 대충 훑고 쓰륵쓰륵 넘긴다.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 눈길을 붙잡는 콘텐츠를 발견하면 잠시 넋을 놓고 보지만 끝나도 멈출 줄 모르고 또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플랫폼이 오랜 시간 체류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맞춤한 알고리즘을 설정하고 있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는 새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배고 스마트폰 화면을 누비는 손가락만큼이나 성미가 부산해져 무엇하나 골똘히 집중하지 못한다. 사용자의 이런 성향을 알기에 온라인상의 어휘는 클릭 수나 체류 시간을 높일 목적으로 더욱 직감적이고 자극적으로 되어 가고 이제 그런 어휘들조차 단조롭다.
숫자가 기업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가진 반응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는 한 사유, 추론, 음미, 상상, 사색  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소리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할 길 없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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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에 그녀는 자기가 올가 아주머니와 함께 눈물이 글썽해진채 그 연속극들을 듣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페드로 카마조의 글재주가 리마의 가정주부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지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며칠 동안 몇몇 친척들의 집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건 내가 어쩌다 라우라 아주머니 댁을 찾아갔을 때의 일인데, 그 아주머니는 볼리비아 방송작가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고 만지기까지 하려는 것처럼 (떨리는가, 거친가, 열렬한가, 또는 퉁명한가) 라디오 쪽으로 바짝 몸을 담기고 앉아 있다가 내가 기실 문간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으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또 가비 아주머니 댁을 찾아갔을때는 그녀와 오르텐시아 아주머니가 건성으로 뜨개실 뭉치를 풀면서 루시아노 판도와 호세피나 산제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늘 소설 나부랭이나 즐겨 읽으시던 우리 할아버지까지도 이제는 라디오 연속극에 상당히 관심을 갖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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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은 일정하게 자리 잡은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을 말하려면 ‘주책(이)없다‘고 해야 맞지만, 으레 ‘주책이다‘라 하고 ‘주책없다‘ 와
‘주책이다‘가 같은 뜻으로 함께 인정받고 있다. 사용자들이 의미를 바꾼 대표적 사례다. 
••••••
"어떤 낱말의 의미는 주체가 주관적으로 정의하는 게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그 의미가 규정된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P171

모든 어휘와 문장구조는 중의성과 모호성을 띨수 있다. 최대한 걷어내기 위해 적확한 낱말을 선택할수 있는 어휘력과 적절히 나열할 수 있는 문법 지식이필요하다. 그렇다고 풍부한 어휘력과 바른 문법을 갖춘 말과 글이 늘 바람직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몇 안 되는 어휘로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하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글이 있다. 뜨뜻한 손바닥으로 아픈 곳을 지그시 누르듯 인간의 속성을 짚어낼 때다. 정확히 설명하기어렵고 섣불리 판단하기 힘든 것을 정확히 그 옮기려 들면 도리어 허상을 만들 수 있다. 중의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울림을 준다. 이때 수신자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자유를 누리면 된다.
모든 어휘와 문장구조는 중의성과 모호성을 지녔다.
- P179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내가 없으면, 구체적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일기 쓰기를 권한다. 이런 글쓰기는 분명 자기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게 아니고서야 글 쓸 때 나는 이런 나이기를 바란다. "내가 ‘나‘라고 할 때는 당신들 모두를 가리키는 거요."  - P198

나는 돌덩이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 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남은 나.
나는 다이아.

ㅡ 광진, 웹툰&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 P206

일찍이 문자가 미디어이자 클라우드가 될 수있으며 권력과 부로 맞바꿀 수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들이있었다. 그들은 문자를, 지식과 정보를,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이라 불리는 것)을 창조했다. 문자는 오랫동안 위치재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문자의 민주화는 불과 백여 년 사이에 벌어진 일로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라 쟁취된 것이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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