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지금 여기에서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김성우

언어와 삶이 맺는 관계는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를 바꿀 수 있을까? 변화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며 변화의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고 성장하는 말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통적으로 언어와 삶의 관계는 말이 세계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묻는 방식으로 탐구되어왔다. 이 틀 안에서 보면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은 옳지만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말은 그릇되다. 참과 거짓, 이 두 가지 범주는 문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내 말이 맞아." 혹은 "네 말이 틀렸어."가 말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가 되는 셈이다. - P9

최근 동영상매체의 부상은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2018년 《뉴욕타임스》가 발행한 특집 기사의 제목은 무려 ‘탈텍스트미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Post-text Future)‘이다. 기사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변화는 텍스트의 쇠퇴와 오디오, 비디오의 파급 및 영향력의 폭발적증가에 있다."라는 논쟁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문자매체가 조만간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만큼은 오디오와 비디오에 주도적인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문자매체보다 영상을 통한 정보 접근을 선호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책이나 백과사전, 심지어 검색엔진도 아닌 유튜브가 지식의 제1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 정보채널의 다양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인기 등은 동영상 중심의 미디어 환경을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교과서와 ‘전과‘를 중심으로 기초교육을 받은 40~50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이는 단지 매체의 다양화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가 시간을 구획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정보채널을 변화시키고,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을 변화시킨다.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여몸을 만들어가듯,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고지식을 구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의 양상을 구성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다. 읽고 쓰기의 풍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해력의 추락에 대한 우려가 커져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도도한 흐름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항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 P11

먼저 글, 즉 문자언어의 습득입니다. 말의 세계에서 글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필수라는 뜻이죠. 둘째는 이를 통한 지식 및 정보에의 접근입니다. 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정보, 지식, 데이터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겠죠. 세 번째는 이에 기반한 문제해결 능력입니다. 문서를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리터러시는 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렇게 놓고 보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같지만 사실은 이들이 모두 엮여서 문식성의 발달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문자언어를 전부 습득한 다음에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관련된 단어나 표현을 찾아보면서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동시에 해당 상황을 타개할 수있는 것입니다. - P17

고대에는 ‘문학과 학식‘이, 중세에는 ‘라틴어‘가 근대 이후에는 ‘모국어‘가 리터러시 개념의중핵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마다 리터러시에 대한 태도나 그에 대한 가치 부여 방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불변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의미가 구성돼온 것이죠. 이처럼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환경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되고 동영상 등의 매체가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리터러시의 범위와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P18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동영상이나 멀티미디어 보조교재를 활용하고 일부 수행평가에 활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시험은 기본적으로텍스트잖아요. 평가체제의 근간이 텍스트라는 거죠. 수능도 마찬가지고요. 10대, 20대는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예요. 삶에서 늘 접하는미디어가 동영상과 이미지, 소셜미디어인데, 이것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어른들에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더 비판적으로는 젊은 세대가 삶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평가할 만한 잣대가 어른들한테 없다는 것을 지적해야겠죠. 여전히 성인들은 자기들이 할 줄 아는 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대를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배운 대로 가르치고, 평가받았던 대로 평가하고 있는 형국이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삶은 많은 부분 교과서적인 텍스트와 별 관련 없이돌아가고 있죠. 유튜브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테고요.
그러니까 성인들이 10대 전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공부할 시간을 반밖에 주지 않고 평가한 다음에왜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비난하는 거랑 비슷하죠. 그건 공정하지 않은 거예요. 공정하지 않은 평가를 하면서 이를 통해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심화되는 거죠.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같은 경우에는 대개 어렸을 때부터 동영상을 접하거든요.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접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 P32

이런 상황에서 문해력이 탄탄하지 않았던 사람들, 평생 동안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식을 쌓는다든가, 배경의 맥락을 파악하든가, 신문기사나 책을 두루두루 읽어서 사회현상을 파악한 경험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한테 전혀 다른 미디어가 주어진 거예요. 쉽게 소식을 접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한테 일종의 신세계가 열린 거죠. 이 세계에 대해 파악할 도구나 무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최신의 고급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 통로가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동영상인 거죠.
이 상황이 전적으로 그분들의 잘못은 아니죠. 사회경제적인 토대가 약했기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었던 거잖아요. 교육받을 기회 또한 상대적으로 적었고요. 흔히 말하는 비판적인 리터러시를 갖출 만한조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유튜브가 이분들의 세계가 되어버린 거예요. 저는 사회적·교육적 공백이 그런 분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그 세대에게 체계적으로 리터러시를 키워주거나 비판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책을 소화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거짓 정보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소통과 표현에 대한 욕망이 둑 안에 갇혀 있다가 새로운 채널로 출구를 찾은 거니까요. 그런데 이 상황이 40대나 50대에게는 되게 한심해 보이는 겁니다. " 도대체 노인네들은 왜 저러냐?" - P36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일일이 알 필요는없지만, 그것이 주는 정동(affect)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정동은 언어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인문사회과학에서 ‘정동적 전회 (情動的 轉回, affective turn)‘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큰 변화가 있습니다. 문자 텍스트 중심의 단일 문해력에서는 이해와 의미 파악이 중요했다면, 지금과 같은 멀티리터러시 상황에서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알고 공명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케이팝 스타의 유튜브에 전혀 알 수 없는 태국 글자로 댓글이 달려 있고 또 한자가 적혀 있고 하지만, 거기 붙어 있는 이모티콘과 느낌표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동적 독해라고 하는 게의미론적인 독해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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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일이 달로 바뀌고 달이 해로 바뀌면서, 장군에 대한 그리움은 무디어졌다. 외할머니는 장군에게는 당신이 한낱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것, 언제나 편리할 때 다시 주워들 수 있는 노리갯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외할머니의 불안정한 마음이 초점을 맞출 대상을 잃고 말았다. 그 마음은 꽉 끼는 옷 속에 억지로 눌려 있었다. 그 불안정한 마음이 가끔 사지를 뻗칠 때면, 외할머니는너무 심란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때는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여생 동안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증세를 지니고 사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남편"이 잠시 외출하듯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 때로부터 6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났다. 두사람의 만남은 외할머니가 두 사람이 헤어진 직후에 꿈꾸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헤어진 직후에 외할머니는 열정적으로 장군에게달려가 자신을 내던지는 광경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이제 외할머니는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그를 맞아들였다. 외할머니는 당신이 하인들가운데 누군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하인들이 장군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일생을 망치기 위해서 엉뚱한 이야기를 꾸며내지는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쉰이 넘은 장군은 성질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고, 전처럼 그렇게 위엄이 넘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외할머니가 예상했던 대로 장군은 자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났었는지, 또 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외할머니도 묻지 않았다. 따져묻는다고 책망을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 P60

외할머니는 겁이 났다. 첩으로서 외할머니의 장래와, 또 당신이낳은 딸의 장래가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 만약 장군이 죽는다면, 외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정실부인의 처분에 맡겨질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일은 무슨 짓도 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를 돈많은 남자, 심지어 사창가에 팔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딸을 데리고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도망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을 하려고 해도 외할머니는 자신의 머리가 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외할머니의 다리는 너무나 약해서 가구를 붙들지 않고는 걸음도 못 걸을 지경이었다. 낙심한 외할머니는 다시 울었다. 이곳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장군이 자기를 이런 덫에 걸리게 해놓고 언제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P66

곧 그는 처음으로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날 저녁 그는 천으로 싼 꾸러미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눈을 찡긋해보이면서 두 사람에게 보자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맞혀보라고 했다. 어머니는 두 눈을 김이 나는 그 꾸러미에 붙이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찐 만두!"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꾸러미를 찢어 열어젖혔다. 어머니는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샤 선생의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50년이상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의 행복해하던 샤 선생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요즘도 그때 먹었던 만두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는 한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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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치 황금 나리꽃"
군벌 장군의 첩
(1909-1933)

열다섯 살에 외할머니는 군벌 장군의 첩이 되었다. 그 장군은 허약한 중국 정부의 경찰총감이었다. 1924년 당시 중국은 혼돈에 빠져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던 만주를 포함하여 중국의 대부분이 군벌의 통치하에 있었다. 외할머니를 장군의 첩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만리장성에서 북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400킬로미터 떨어진 만주 남서부의 지방 도시 이셴의 경찰관이었던 외증조할아버지였다. - P39

하지만 외할머니의 가장 큰 자산은 중국말로 "세 치 황금 나리꽃三寸"이라고 불리던 전족)이었다. 이런 작은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국 여성 감식가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외할머니가 "미풍에 흔들리는 연약한 어린 버드나무 가지처럼" 걷는다는 의미였다. 여인이 전족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이 남자들을 성적으로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녀의 무방비성이 보는 사람에게 보호본능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발은 두 살 때 천으로 단단히 묶여졌다. 자신도 전족을 한 외증조할머니가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모든 발가락을 안으로 구부려서 발바닥 밑으로 밀어넣은 채 6미터 정도의 하얀 천으로 발을 감았던 것이다. 그런 다음 아치형 뼈를 부수기 위해서 그 꼭대기에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다. 외할머니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외증조할머니)에게 제발 그만 하라고 애원했다.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가 고함을 지르지 못하도록 외할머니의 입에 천을 물렸다. 외할머니는 고통에 못 이겨 여러 차례 기절했다.
이런 과정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뼈가 다 부러진 후에도 밤낮없이 발을 두꺼운 천으로 단단히 묶고 있어야 했다. 풀어놓는 순간발이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해 동안 외할머니는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외할머니가 발을 풀어달라고 애원할라치면 외증조할머니는 울면서 전족을 하지 않은 발이 네 일생을 망칠 거라고, 네 장래 행복을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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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이라고? 개나 줘 버리라지. 경험이 풍부한 생물학자일수록 생물계의복잡한 구조와 연결 고리를 더욱 오래, 그리고 더욱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생장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서로를 원조하고 돕는다는 직감 또한 점점 강렬해진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서로 헌신하면서, 자신이 상대에게 효율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허락한다. 만약 경쟁 체계가 존재한다면그것은 지엽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균형이 깨졌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뭇가지들이 빛을 향해 서로 밀치며 자라나고, 뿌리들이 샘에 닿기 위해 경쟁을 벌이며, 동물끼리 서로를 잡아먹긴 하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인간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두려울 정도의 조화와 일치가 깔려 있다. 우리 모두는 거대한 하나의 몸체로 이루어진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치르는 전쟁은 내전에 불과하다. 살아 있다(이것 말고 대체 어떤 어휘를 사용할수 있겠는가.)는 것은 100만 가지의 특성과 자질을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며, 삶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죽음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오류나 잘못 또한 없다. 죄를 저지른 자도, 무고한 자도 없고, 공이나 과도 없으며, 선과 악도 없다. 이러한 개념을 만든 당사자는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 P432

그 시절, 6월의 밤을 그녀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기억은 천천히 홀로그램의 심연을 열기 시작한다.
어떤 날들은 아주 손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또 어떤 날들은 시와분까지도 명확히 떠오른다. 고정된 이미지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같은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마치 모래밭에서 고대의 해골을 발굴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뼈 한 개만 보이지만, 솔질을 계속 하다 보면 점차 다른 부위가 나타난다. 그러다 마침내 복잡한 인체가 구조를 드러내게 된다. 관절과 마디들, 그리고 육신의 시간 그동안 지탱해 왔던 구조물이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 P436

"지속적인 고통과 점진적인 마비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는 그런상태를 한번 상상해 봐. 그래도 뭐, 어떻게든 고통을 참을 수는 있었을 거야.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날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지금겪는 이 고통 말고 다른 방법은 없으며 앞으로도 이 고통에 대해아무런 보상도 없으리라는 생각, 매 시각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질것이며 그렇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는생각, 열 개의 통증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환각으로 지어진 지옥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지옥의 여정 속에서 인도해 주는 안내자가 한 사람도 없고 손잡아 줄 이 또한 아무도 없다는 생각,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건 실은 별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어떤 형벌도 포상도 없으리라는 그런 생각 말이야." - P437

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중년 여인이 되면 타인의 눈에 절대 띄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비단 남자들뿐 아니라, 직장에서 그녀를 더는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 다른 여자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과 뺨, 코를 훑어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미끄러져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상당히 새롭고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그녀의 몸을 고스란히 관통했다. 아마도 그들은 투명한 그녀의 육체 너머에 있는 광고판과 풍경, 열차 시간표까지 보았으리라. 그렇다. 그녀는 투명 인간이 된 게 틀림없었다. 다시 말해 이제 막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한, 무궁무진한 능력이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리라. 증인들은 이렇게 증언할 것이다. "어떤 여자였는데••••••." 또는 "누군가가 여기에 서 있었는데••••••." 귀걸이 따위를 주목하는 여자들과 비교해 보면 남자들은 훨씬 더무례하다. 그녀가 귀걸이를 걸고 있었다 해도 그들은 단 1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을 테니까. 어린아이들만 이따금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의 얼굴을 꼼꼼히. 그리고 무심하게 응시하다가 미래를 향해 얼굴을 돌려 버린다. - P450

그가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괜찮은거야?"
쿠니츠키가 대답했다. 괜찮다고. 하지만 그는 알았다. 그들이지금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부엌은 결투장이 될 테고, 거기서 그들은 각자 공격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식탁 근처에 자리를 잡을 테고, 그녀는 창문을 등지고 설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중요한 순간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왜냐하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정말 마지막이자 유일한 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진실은 무엇일까. 하지만 그는 또한 알았다. 자신이 지금 지뢰밭을 밟고 있음을. 모든 질문은 폭탄이 될 것이다. 그는 겁쟁이가 아니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자 그는 자신이 마치 옷 속에 폭탄을 감춘 테러리스트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폭탄은 그들이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터질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리라. - P537

불을 피울 만한 땔감도 없었다. 눅눅하고 차가운 이끼와 불길조차 집어삼키려 하지 않는 희귀한 덤불뿐이었다. 그들은 이끼덮인 바위틈에서 침낭에 들어가 그날 밤을 보냈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얼어붙은 하늘에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자 그들은 용암 덩어리가 얼굴의 형상을 취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속삭임과 중얼거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지의 따뜻한 온기를느끼기 위해 이끼 아래, 돌 밑에다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미세한 진동과 움직임, 그리고 호흡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의심의 여지가없었다. 대지는 살아 있었다.
나중에 그들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통해 그날 밤 별일 없이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깨우쳤다. 그들처럼 길 잃은 사람들이 있으면, 대지는 기꺼이 자신의 따뜻한 젖꼭지를 내어준다고 아이슬란드인들은 말했다. 그러면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젖꼭지를 빨면서 거기서 흘러나오는 모유를 마시면 된다는 것이다. 그 모유는 아마도 수산화마그네슘 같은 맛이리라. 위산 과다증이나 속 쓰림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약국에서 판매하는 바로 그 약품 말이다. - P545

나는 펠로폰네소스 해협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양이라고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 아닌, 위대한 어머니의 손 모양을닮았다. 자식을 씻길 목욕물의 온도가 적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물속에 담근 어머니의 손. - P552

그러나 교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피의 강물이 흘러넘쳐 붉은대양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닷물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범람했다. 먼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의 한 평원을 집어삼켰다. 도시와 다리, 그리고 그의 조상들이 대대손손 어렵게 지은 댐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갈대숲에 감춰져 있던 그들의집 문턱까지 침범했고, 과감하게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돌바닥에깔린 붉은 양탄자와 토요일마다 문질러 닦던 부엌의 나무 바닥을 휩쓸더니, 마지막으로 벽난로의 불을 꺼뜨리고 찬장과 테이블까지 덮쳤다. 그다음으로는 기차역과 공항, 언젠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수가 고향을 떠난 바로 그곳을 집어삼켜 버렸다. 또한 그가 여행을 다녔던 도시들과 거리들이 전부 물에 잠겼다. 그가 임대해서 지내던 방, 싸구려 호텔, 끼니를 해결하던 음식점도 모조리 사라졌다. 붉게 빛나는 그 수면은 그가 너무도 사랑하던 도서관의 첫 번째 서가를 공격했다. 책장들이 물에 젖어 퉁퉁 불었다. 표지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검붉은 혓바닥이 문자들을 핥았고 검게 인쇄된 활자를 지워 없앴다.
자녀들이 졸업장을 받은 학교의 계단과 마룻바닥도, 교수 임명을 받기 위해 자랑스럽게 달려가던 도로도 전부 붉은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와 카렌이 함께 누워 늙고 노쇠한 육신을 처음으로결합했던 침대 시트도 붉게 물들었다. 붉은빛의 그 끈끈한 점성액체는 그가 자신의 신용 카드와 비행기 표, 손자들의 사진을 넣어둔 지갑의 칸막이도 영원히 봉인해 버렸다. 물살은 기차역과 철로, 공항과 활주로를 모조리 덮쳤고, 이제는 그 어떤 비행기도, 그 어떤 기차도 거기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해수면은 끈질기게 상승했고, 말과 개념과 추억을 모두 집어삼켰다. 가로등 불빛이 모조리 꺼지고 전구들이 터져 버렸다. 전선은 끊어지고 네트워크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죽은 거미줄이되어 버렸으며 전화기는 먹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느리고 무한한 대양이 마침내 병원 근처까지 왔다. 그리고 아테네 전체가 핏물에 잠겼다. 신전들, 성스러운 길과 수풀들, 이 시각엔 늘 비어있는 아고라, 여신의 빛나는 조각상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올리브나무까지 모두.
그녀는 계속 그와 함께 있었다. 그들이 불필요한 장치를 그에게서 떼기로 결정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리스 간호사가 단 한 번의 능숙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얼굴을 시트로 덮는 순간까지. 시신은 화장했다. 유골은 그의 자식들과 함께 에게해에 뿌렸다. 이런 식의 장례를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을 거라고 믿으면서. - P587

누가 이것을 읽을 것인가?
곧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승무원들이 게이트 앞에 서서 승객을 맞을 준비를 끝내자 지금껏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승객들이벌떡 일어나서 기내 수화물을 챙긴다. 탑승권을 뒤적거리고, 채읽지 못한 신문을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각자 머릿속에서 말없이 양심의 성찰을 한다. 여권과 표, 서류 등등을 모두 챙겼는지, 환전은 했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인지, 그리고 그곳에 가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제대로된 방향을 선택했는지.
천사처럼 아름다운 승무원들이 우리의 여행 적합도를 확인하고 난 뒤, 호의적인 손짓으로 우리를 들여보낸다. 폭신한 카펫이 깔리고 둥근 벽이 에워싼 터널 속으로, 이 터널을 통과하여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차가운 공중 도로를 날아서 새로운 세계로 향할 것이다. 우리의 눈에 비친 그들의 미소에는 일종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 미소가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이번에는 적절한 시간. 적절한 장소에서. - P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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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 ㅡ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하더라도, 정리된 언어로 해석하고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 경험들을 내가 대항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계속 넘어가게 된다.
김승섭 ㅡ 어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디 있냐?"라고 묻기도 한다. 소수자가 차별 경험을 말하려면 "내가 동성애자다", "HIV 감염인이다"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워 차별을 당하고도 참게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당시와 마찬가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 사회에 등장하는 차별 경험의 숫자는 급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사회 구석구석에서 혼란이 생겨날 거다. 그 혼란은 차별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국 사회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혼란이다. 그 억눌렸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새로운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 P223

김승섭 ㅡ 많은 사람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만을 금지하는 법이 아니다. 성소수자는 차별금지법이 보호하는 수많은 집단 중 하나이고, 차별금지법은 혐오 표현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네 가지 주요영역(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용역의 공급과 이용)에서 혐오의 근간이 되는 차별 행위를 막기 위한 법이다. 차별은 무인도에서 한 인간과 한 인간이 만나 생겨나는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차별을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한 사회의 불평등한 역사와 구조가 만든 권력관계의 자장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 P225

김승섭 ㅡ 미투가 보여주는 건 개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넘어서 실제 어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다는 증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폭로에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않고 초점을 피해자에게 두고서 그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만 계속 물어요. 성폭력이 진공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역사와 권력과 문화가 있는 건데, 이런 걸 놔두고서 개인에게 자꾸 짐을 지우고 있지요.
서지현 ㅡ 왜 아직까지 한국은 개인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할까요.
왜 나의 모든 걸 내던질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걸까요. 저 역시 더 이상 검사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나아가 변호사도 할 수 없을 거고요. 검찰 출신 변호사가 검찰에 밉보이면 변호사로 일하기도 쉽지않아요. 모두 내던지지 않고서는, 앞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 없이는 입을 열 수 없었어요. - P255

하이젤든 박사가 신생아 볼린저가 죽도록 허락한 것을 두고 삶의 신성함에대한 여러 논쟁이 진행 중이다. 박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삶‘에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삶은 단순히 숨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물론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런 삶에 가치가 없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삶을 신성하게 만드는것은 행복과 지성과 능력의 존재 가능성이다. 열등하고, 기형이며, 마비되고, 생각할 수 없는 생명체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헬렌 켈러는 이 글에서 가치가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인간의 경계를 나눈다. 기형이고 마비된, 특히 지능이 낮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생명체는 존엄한 인간의 경계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판단은 누가 어떻게해야 하는가?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누군가가 천치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의사 배심원들이 고려하는 증거들은 정확하고 과학적일 것이다. 그들이 확인한 내용은 편견이 없고, 훈련되지 않은사람들의 관찰에서 생기는 부정확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진정으로 천치인 경우,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그 판단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훈련받은 전문가이자 과학자인 의사가 해야 한다. 이런 사안은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도 다른 전문가들처럼 자신의 지식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기가 사망하기 전에 그 판단의 근거를 대중에 공개한다면, 실수나 남용의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의 기고문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우리는 하이젤든 박사가 보여준 뛰어난 인간애와 비겁한 감상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P277

당황스러운 글이다. 장애인 당사자였던 헬렌 켈러는 장애인권 운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체제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다. 1944년 헬렌 켈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인과 맹인에게서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주 정부의 예산 집행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초라한 건물의 학교들을 방문했다. 그들은빈곤 속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적절한 교육과 의료서비스를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차별 때문에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 이 부유한 나라에서, 다른 인종[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과 여성이 그처럼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데 국가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 막강한 방해물을 넘어서 맹인인 유색인종들이 자신들의 존엄과 용기를 지킬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장애의 역사248~249쪽) - P279

마지막으로, 헬렌 켈러는 신체적 손상이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장애가 된다고 보는 현대 장애학의 관점, 몸의 차이를긍정하고 장애를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여기는 장애 인권 운동의 감수성을 접할 수 없는 시대를 살다 갔다.
더구나 1887년 헬렌 켈러를 퍼킨스 맹인학교와 연결시켜준 인물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o]었다. 전화기 발명에 기여한 과학자이자 농인 교육 이론가였던 벨은 수어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확고한 구어주의자였다. 그는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사용이 농인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벨은 독순술과 결합된 구화법이 "가장 위대한 길"이라고 말했고, 평생 동안 벨을 따르고 의지했던 헬렌 켈러는 이러한 구어주의를 "19세기의 가장 신성한 기적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수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어 사용을 주장하는 농인 공동체의 주장에 반대했다.
킴 닐슨은 「헬렌 켈러의 급진적 삶에서 앤 설리번을 포함해 헬렌 켈러와 가까이 지냈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녀가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 스스로도 농인 단체나 다른 장애인 단체의 연설 요구를 반복적으로거절했다고 서술한다. 그것은 헬렌 켈러를 ‘기적의 존재‘가 아닌 장애인 중 한 명으로, 그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는 농과 맹을 가진 개인이었지만, 스스로를 억압된 소수자 집단의 일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성참정권, 인종 불평등, 전쟁, 자본주의에 대해 냉철하게 정치적 분석을 하던 헬렌 켈러는 장애를 두고서는 비슷한수준의 분석을 하지 않았다. 혹은 하지 못했다. 맹인의 교육과인권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비장애중심주의·장애차별주의의 구조와 모순을 파고들어 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개인의 적응과 노력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찾았다. 헬렌 켈러가 ‘선택한‘ 이러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당대의 인권운동가들이 장애의 정치적 함의를 논하고 장애 인권을 주장하는 데 방해물이되기도 했다.
당대의 시간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냈던 헬렌 켈러의 삶에는 많은 사람이 경이롭게 생각하는 성과만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모순이 함께 새겨져 있다.  - P284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면 조금 침묵하고 기다릴 수 있잖아요. 판단을 유보하고 배워가야지요. 우리가 그만큼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몇몇 정치인은 그 저열함에 기대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요. 하지만 나에게 편견과 고집이 있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마구마구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조심스러움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그 조심스러움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고요.
어쩌다 보니 제가 천안함과 세월호 연구를 모두 했던 유일한 사람이에요. 제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세월호 참사 생존자 곁에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긴 하니까, ‘천안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월호 참사를 모욕하지 않으면서, 두 사건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상처를 비교해서 어느 한쪽을 덧나게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 P298

김승섭 ㅡ 이런 사건에 덤벼들 수 있는 건 제가 공부하는 사람이어서예요. 저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빚지고 있어요. 수많은 희로애락과 온갖 일을 겪으면서 기록하고 표현하고 또 이해하려고 애썼던 역사를 저는 아주 일부분이지만 읽고 습득했고, 그 토대위에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예민한 사건들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감각을 곤두세우기 위해 내 몸을 사건 속에 던져놓는 씨줄과 논문과 책을 읽는 공부를 하면서 사건을 바라볼 통찰을 찾는 날줄이 만나는 지점을 계속 찾는 과정이에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최대한 넓히고, 그 안에서 글을 쓰려고 해요. 공부만 되고 마음이 안 나가는 글은 논리적일지 모르지만, 딱딱해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렵고요. 학술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는데 감정적인 글은 투정을 부리는 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교집합을 찾는 게 내내 어려운 점이에요. 그 과정을, 나의 감정과 나의 관계 속에서 계속 출렁이듯이 헤매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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