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ㅡ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하더라도, 정리된 언어로 해석하고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 경험들을 내가 대항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계속 넘어가게 된다. 김승섭 ㅡ 어떤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디 있냐?"라고 묻기도 한다. 소수자가 차별 경험을 말하려면 "내가 동성애자다", "HIV 감염인이다"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워 차별을 당하고도 참게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당시와 마찬가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 사회에 등장하는 차별 경험의 숫자는 급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사회 구석구석에서 혼란이 생겨날 거다. 그 혼란은 차별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국 사회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혼란이다. 그 억눌렸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새로운 무게중심을 찾아야 한다. - P223
김승섭 ㅡ 많은 사람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만을 금지하는 법이 아니다. 성소수자는 차별금지법이 보호하는 수많은 집단 중 하나이고, 차별금지법은 혐오 표현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네 가지 주요영역(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용역의 공급과 이용)에서 혐오의 근간이 되는 차별 행위를 막기 위한 법이다. 차별은 무인도에서 한 인간과 한 인간이 만나 생겨나는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차별을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한 사회의 불평등한 역사와 구조가 만든 권력관계의 자장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 P225
김승섭 ㅡ 미투가 보여주는 건 개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넘어서 실제 어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다는 증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폭로에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않고 초점을 피해자에게 두고서 그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만 계속 물어요. 성폭력이 진공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역사와 권력과 문화가 있는 건데, 이런 걸 놔두고서 개인에게 자꾸 짐을 지우고 있지요. 서지현 ㅡ 왜 아직까지 한국은 개인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할까요. 왜 나의 모든 걸 내던질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걸까요. 저 역시 더 이상 검사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나아가 변호사도 할 수 없을 거고요. 검찰 출신 변호사가 검찰에 밉보이면 변호사로 일하기도 쉽지않아요. 모두 내던지지 않고서는, 앞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 없이는 입을 열 수 없었어요. - P255
하이젤든 박사가 신생아 볼린저가 죽도록 허락한 것을 두고 삶의 신성함에대한 여러 논쟁이 진행 중이다. 박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삶‘에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삶은 단순히 숨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물론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런 삶에 가치가 없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삶을 신성하게 만드는것은 행복과 지성과 능력의 존재 가능성이다. 열등하고, 기형이며, 마비되고, 생각할 수 없는 생명체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헬렌 켈러는 이 글에서 가치가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인간의 경계를 나눈다. 기형이고 마비된, 특히 지능이 낮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생명체는 존엄한 인간의 경계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판단은 누가 어떻게해야 하는가?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누군가가 천치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의사 배심원들이 고려하는 증거들은 정확하고 과학적일 것이다. 그들이 확인한 내용은 편견이 없고, 훈련되지 않은사람들의 관찰에서 생기는 부정확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진정으로 천치인 경우,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그 판단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훈련받은 전문가이자 과학자인 의사가 해야 한다. 이런 사안은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도 다른 전문가들처럼 자신의 지식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기가 사망하기 전에 그 판단의 근거를 대중에 공개한다면, 실수나 남용의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의 기고문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우리는 하이젤든 박사가 보여준 뛰어난 인간애와 비겁한 감상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P277
당황스러운 글이다. 장애인 당사자였던 헬렌 켈러는 장애인권 운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체제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다. 1944년 헬렌 켈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인과 맹인에게서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주 정부의 예산 집행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초라한 건물의 학교들을 방문했다. 그들은빈곤 속에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적절한 교육과 의료서비스를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차별 때문에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 이 부유한 나라에서, 다른 인종[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과 여성이 그처럼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데 국가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 막강한 방해물을 넘어서 맹인인 유색인종들이 자신들의 존엄과 용기를 지킬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장애의 역사248~249쪽) - P279
마지막으로, 헬렌 켈러는 신체적 손상이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장애가 된다고 보는 현대 장애학의 관점, 몸의 차이를긍정하고 장애를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여기는 장애 인권 운동의 감수성을 접할 수 없는 시대를 살다 갔다. 더구나 1887년 헬렌 켈러를 퍼킨스 맹인학교와 연결시켜준 인물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o]었다. 전화기 발명에 기여한 과학자이자 농인 교육 이론가였던 벨은 수어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확고한 구어주의자였다. 그는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사용이 농인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벨은 독순술과 결합된 구화법이 "가장 위대한 길"이라고 말했고, 평생 동안 벨을 따르고 의지했던 헬렌 켈러는 이러한 구어주의를 "19세기의 가장 신성한 기적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수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어 사용을 주장하는 농인 공동체의 주장에 반대했다. 킴 닐슨은 「헬렌 켈러의 급진적 삶에서 앤 설리번을 포함해 헬렌 켈러와 가까이 지냈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녀가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 스스로도 농인 단체나 다른 장애인 단체의 연설 요구를 반복적으로거절했다고 서술한다. 그것은 헬렌 켈러를 ‘기적의 존재‘가 아닌 장애인 중 한 명으로, 그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는 농과 맹을 가진 개인이었지만, 스스로를 억압된 소수자 집단의 일원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성참정권, 인종 불평등, 전쟁, 자본주의에 대해 냉철하게 정치적 분석을 하던 헬렌 켈러는 장애를 두고서는 비슷한수준의 분석을 하지 않았다. 혹은 하지 못했다. 맹인의 교육과인권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비장애중심주의·장애차별주의의 구조와 모순을 파고들어 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개인의 적응과 노력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찾았다. 헬렌 켈러가 ‘선택한‘ 이러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당대의 인권운동가들이 장애의 정치적 함의를 논하고 장애 인권을 주장하는 데 방해물이되기도 했다. 당대의 시간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냈던 헬렌 켈러의 삶에는 많은 사람이 경이롭게 생각하는 성과만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모순이 함께 새겨져 있다. - P284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면 조금 침묵하고 기다릴 수 있잖아요. 판단을 유보하고 배워가야지요. 우리가 그만큼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몇몇 정치인은 그 저열함에 기대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요. 하지만 나에게 편견과 고집이 있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마구마구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조심스러움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그 조심스러움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고요. 어쩌다 보니 제가 천안함과 세월호 연구를 모두 했던 유일한 사람이에요. 제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세월호 참사 생존자 곁에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긴 하니까, ‘천안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월호 참사를 모욕하지 않으면서, 두 사건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상처를 비교해서 어느 한쪽을 덧나게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 P298
김승섭 ㅡ 이런 사건에 덤벼들 수 있는 건 제가 공부하는 사람이어서예요. 저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빚지고 있어요. 수많은 희로애락과 온갖 일을 겪으면서 기록하고 표현하고 또 이해하려고 애썼던 역사를 저는 아주 일부분이지만 읽고 습득했고, 그 토대위에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예민한 사건들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감각을 곤두세우기 위해 내 몸을 사건 속에 던져놓는 씨줄과 논문과 책을 읽는 공부를 하면서 사건을 바라볼 통찰을 찾는 날줄이 만나는 지점을 계속 찾는 과정이에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최대한 넓히고, 그 안에서 글을 쓰려고 해요. 공부만 되고 마음이 안 나가는 글은 논리적일지 모르지만, 딱딱해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렵고요. 학술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는데 감정적인 글은 투정을 부리는 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교집합을 찾는 게 내내 어려운 점이에요. 그 과정을, 나의 감정과 나의 관계 속에서 계속 출렁이듯이 헤매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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