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지금 여기에서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김성우
언어와 삶이 맺는 관계는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를 바꿀 수 있을까? 변화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며 변화의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고 성장하는 말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통적으로 언어와 삶의 관계는 말이 세계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묻는 방식으로 탐구되어왔다. 이 틀 안에서 보면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은 옳지만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말은 그릇되다. 참과 거짓, 이 두 가지 범주는 문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내 말이 맞아." 혹은 "네 말이 틀렸어."가 말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가 되는 셈이다. - P9
최근 동영상매체의 부상은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2018년 《뉴욕타임스》가 발행한 특집 기사의 제목은 무려 ‘탈텍스트미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Post-text Future)‘이다. 기사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변화는 텍스트의 쇠퇴와 오디오, 비디오의 파급 및 영향력의 폭발적증가에 있다."라는 논쟁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문자매체가 조만간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만큼은 오디오와 비디오에 주도적인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문자매체보다 영상을 통한 정보 접근을 선호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책이나 백과사전, 심지어 검색엔진도 아닌 유튜브가 지식의 제1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 정보채널의 다양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인기 등은 동영상 중심의 미디어 환경을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교과서와 ‘전과‘를 중심으로 기초교육을 받은 40~50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이는 단지 매체의 다양화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가 시간을 구획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정보채널을 변화시키고,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을 변화시킨다.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여몸을 만들어가듯,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고지식을 구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의 양상을 구성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다. 읽고 쓰기의 풍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해력의 추락에 대한 우려가 커져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도도한 흐름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항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 P11
먼저 글, 즉 문자언어의 습득입니다. 말의 세계에서 글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필수라는 뜻이죠. 둘째는 이를 통한 지식 및 정보에의 접근입니다. 글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정보, 지식, 데이터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게 되겠죠. 세 번째는 이에 기반한 문제해결 능력입니다. 문서를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리터러시는 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렇게 놓고 보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같지만 사실은 이들이 모두 엮여서 문식성의 발달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문자언어를 전부 습득한 다음에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관련된 단어나 표현을 찾아보면서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동시에 해당 상황을 타개할 수있는 것입니다. - P17
고대에는 ‘문학과 학식‘이, 중세에는 ‘라틴어‘가 근대 이후에는 ‘모국어‘가 리터러시 개념의중핵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마다 리터러시에 대한 태도나 그에 대한 가치 부여 방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불변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적절한 의미가 구성돼온 것이죠. 이처럼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환경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되고 동영상 등의 매체가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리터러시의 범위와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P18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동영상이나 멀티미디어 보조교재를 활용하고 일부 수행평가에 활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시험은 기본적으로텍스트잖아요. 평가체제의 근간이 텍스트라는 거죠. 수능도 마찬가지고요. 10대, 20대는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예요. 삶에서 늘 접하는미디어가 동영상과 이미지, 소셜미디어인데, 이것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어른들에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더 비판적으로는 젊은 세대가 삶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평가할 만한 잣대가 어른들한테 없다는 것을 지적해야겠죠. 여전히 성인들은 자기들이 할 줄 아는 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대를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배운 대로 가르치고, 평가받았던 대로 평가하고 있는 형국이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삶은 많은 부분 교과서적인 텍스트와 별 관련 없이돌아가고 있죠. 유튜브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테고요. 그러니까 성인들이 10대 전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공부할 시간을 반밖에 주지 않고 평가한 다음에왜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비난하는 거랑 비슷하죠. 그건 공정하지 않은 거예요. 공정하지 않은 평가를 하면서 이를 통해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심화되는 거죠.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같은 경우에는 대개 어렸을 때부터 동영상을 접하거든요.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접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 P32
이런 상황에서 문해력이 탄탄하지 않았던 사람들, 평생 동안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식을 쌓는다든가, 배경의 맥락을 파악하든가, 신문기사나 책을 두루두루 읽어서 사회현상을 파악한 경험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한테 전혀 다른 미디어가 주어진 거예요. 쉽게 소식을 접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한테 일종의 신세계가 열린 거죠. 이 세계에 대해 파악할 도구나 무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최신의 고급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 통로가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동영상인 거죠. 이 상황이 전적으로 그분들의 잘못은 아니죠. 사회경제적인 토대가 약했기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었던 거잖아요. 교육받을 기회 또한 상대적으로 적었고요. 흔히 말하는 비판적인 리터러시를 갖출 만한조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유튜브가 이분들의 세계가 되어버린 거예요. 저는 사회적·교육적 공백이 그런 분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그 세대에게 체계적으로 리터러시를 키워주거나 비판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책을 소화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거짓 정보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소통과 표현에 대한 욕망이 둑 안에 갇혀 있다가 새로운 채널로 출구를 찾은 거니까요. 그런데 이 상황이 40대나 50대에게는 되게 한심해 보이는 겁니다. " 도대체 노인네들은 왜 저러냐?" - P36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일일이 알 필요는없지만, 그것이 주는 정동(affect)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정동은 언어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인문사회과학에서 ‘정동적 전회 (情動的 轉回, affective turn)‘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큰 변화가 있습니다. 문자 텍스트 중심의 단일 문해력에서는 이해와 의미 파악이 중요했다면, 지금과 같은 멀티리터러시 상황에서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알고 공명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케이팝 스타의 유튜브에 전혀 알 수 없는 태국 글자로 댓글이 달려 있고 또 한자가 적혀 있고 하지만, 거기 붙어 있는 이모티콘과 느낌표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동적 독해라고 하는 게의미론적인 독해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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