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더 나중에야 나는 그때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액션의 요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즈음에는 나도 그때 왜 우리가 해방자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압제자 브레즈네프를 위해서 축배를 들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 시절과 마찬가지로, 브레즈네프 시절 소련의 전위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집이나 작업실에 두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여주었는데, 그런 작품을 본 관객은 동료 전위 예술가들뿐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예술가들은 <초기 기독교도 공동체나 프리메이슨 같았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파악했고, 좋을 때나 나쁠때나 뭉쳤고, 집단 구성원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소련인민에게 허락된 진실보다 더 고차원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직 자신들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성을 배웠고, 호혜가 가득한 세상을 건설했다.
비록 강렬한 아이러니와 사소한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어도, 그들의 그 생명력은 사람들이 모든 제스처를 부질없게 여기게 된 국가에서 그들의 작품에 절실함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긴밀하게 공유하는 즐거움을 일구는 것으로 고난에 맞섰고, 그 심오한 목적의식에서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재미로부터 자신들의 재능의 가치를 확인했다.
그들의 재능은 실로 상당했다. 즐거움도 상당했겠지만, 그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에 초월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것을 장악한 체제와 씨름하려는 자가 지성이 부족해서야 좌절하기 마련이라, 바보들은 금세 패배했다. 모스크바 예술가 사회에는 수동적 관찰자의 자리가 없었다. 구성원들의 헌신은 엄청났다.  - P80

거의 모든 그림이 팔렸다. 제일 예쁜 그림들, 혹은 누가 봐도 제일 평범한 그림들이 제일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사실에 모스크바전위 집단은 기겁했고, 서양이 자신들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소련 미술의 정전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경매장에서 본 일부 입찰자들 때문에 무척 심란해졌는데, 그 입찰자들이 소련의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작품에 맥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주이론적인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 작업실에서 자기 작품을 삼십 분 동안 설명했을 때, 나중에 경매장에서 최고 입찰가 축에 드는금액을 부를 여자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흑백과 회색만 쓰는건 여기에서는 색깔 있는 물감을 구하기가 어려워서인가요?」최고의 작품들 중 일부는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팔렸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기념품을 쇼핑하려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총판매액은 350만 달러로, 최고로 낙관적인 예측치였던 180만 달러의 두 배에 육박했다. 시몽드 퓨리는 소련 문화부 부국장 세르게이포포프를 얼싸안았다.
사람들이 대회의실을 떠날 때, 한 여자가 카탈로그를 짚으면서옆 사람에게 외쳤다. 「이걸 샀어요.」 여자는 살짝 찌푸리면서 덧붙였다. 「아니면 이건가. 뭔지 기억이 안 나네.」「뭐든 어때요.」 상대가 말했다. 「오늘 밤을 기억할 물건이 있으면 되는 거지. 재밌지 않았어요?」소련 예술가들은 이렇게 대중의 눈앞에 나서게 되었다. 극단적인 프라이버시에 기반하여 작품 활동을 했던 그들에게는 가시방석같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KGB에게 무의미해 보이도록, 심지어 지루해 보이도록 워낙 비밀스런 기준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서양에서 유명해진 뒤에도 오랫동안 서양인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채로 남을 얄궂은 운명이었다. 예술 작품이 그 기원으로부터 단절될 때 맨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 바로그 속에 담긴 아이러니다. 진실의 다중성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던소련 미술은 그림인 것 못지않게 정치적 발언이었는데,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진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적 구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비평할 때 그 초점은 작품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주제가 아니라 모호함이라는-속성 자체여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비평 방식이 사회학적 접근인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이 예술가들이 위장을 탁월하게 해냈다는 사실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유효한 평가이지만 위장 그 자체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 P88

 「여기 우리는 소수이지만, 의사당에도이 나라 전체에도 수많은 사람이 더 있습니다.」 청년은 또 민주주의를 말하고, 탱크에 탄 군인들에게 과거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다른 사람들도 가세한다. 코스탸와 라리사도 군인들에게 열변을 토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명령을 강제로 따르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점을 강조한다. 「당신들이 명령을 따른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스스로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확성기를 든 청년이 말한다.
군인들은 서로 눈을 맞추다가 시선을 돌려 우리를 본다. 우리는쫄딱 젖었고, 너무 춥고, 신념에 대한 용기 외에는 가진 것이 없어무력한 처지이므로 스스로가 정의를 주장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물리적 방어는 누가 봐도 부족하다 군인들은 우리를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족히 일 분 동안 뚫어져라 우리를 보다가, 이윽고 선두의 탱크를 모는 군인이 마치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경로 앞에 굴복할 따름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대중의 뜻에 따라야 하겠지요.」 그는 우리더러 탱크들이 유턴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비키라고 지시한다. 탱크들이 유턴하는 데는 정말로 넓은 공간과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코스타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이 떠난 진짜 이유가 뭘까?」「우리 때문이지.」 코스타는 대답한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우리가 한 말 때문에」 우리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얼싸안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서 목이 쉬어라 환성을 지른다.
일이 다 끝나고서야, 영웅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경험했다는 생각과 수그러지는 두려움이 뒤섞이면서 비로소 더없이 황홀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무모한 용기는 지금은 이쯤이면 됐다고 결정한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열렬히 우리의 모험담을 들려준 뒤, 내 호텔로 간다. 우리는 호텔에서 멋진 점심을 먹고, 뿌듯해한다. 나는 오늘로 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점심 후에 공항으로 떠난다. 나머지사람들은 집에 가서 푹 자고, 기운을 차리고, 전화를 걸고, 오늘 밤 철야농성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철야농성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비행기에 체크인 할무렵에 이미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내부 분쟁 때문이었지만, 인간 바리케이드의 의견을 좇은 군인들 덕분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해방감을 안겼다. 자유는 그들이 늘 집착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흘 동안 그들은 물리적으로 그것을 수호하는 사치를 경험했던 것이다. 코스탸는 나중에 전화로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너랑, 나랑, 다른 모든 친구들이 그러고는 잠시 후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내 깃발이었어.」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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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이점을 남들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공통의 도덕적 목표이기는 해도, PEN이 전 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만은 아니다. 미국 시인 에마 래저러스는 <우리가 모두 자유로워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인간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태도가 담겨 있으며, 바로 이것이 기자로서 내 목적의식이다. 여러분도이 책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목소리가 틀어막히는 것은 그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은 것이고, 우리가 다 함께 의지하는 집단 지성을 훼손한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는 1997년 미국인에게 <당신들의 자유로 우리의 자유를 촉진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우리의 자유는 다른 모든 이들의 자유에 달려 있다. PEN이미국과 해외에서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싸우는 것은 서로 별개인 두 사업이 아니다. 이것은 공개적 의견 교환이라는 하나의 캠페인이다. - P62

내가 리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기본적으로 친미주의자인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었고, 격렬한 반미주의자들은 모두 그렇지 않은 이들이었다. 내 말은 미국이 아이오와 주립 대학이나 UCLA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학생 비자를 마구 내주면 세상의 문제를 다 풀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든 가보지 못한 장소를 사랑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요주의 국가> 사람들의 방문을 포괄적으로 몽땅 금하는 정책은 미국에게 우호적인 말을 해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미국에 「베이워치」 외에 무슨 장점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결국에는 안보에 해가 된다. - P64

우리가 타자를 격리하면 그들은 우리에 대해 무지를 기르고, 무지는 금세 위험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에서도 위험한 증오가 싹튼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세계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우리 자신을 빈틈없이 둘러싸서 막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궁극에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외국인 혐오 정서가 맨 먼저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그 구하는 행위다. 고립주의자들의 몽상과는달리, 우리는 경비가 튼튼하고 멋진 궁전에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곪아가는 감옥에 가두는 것뿐이다. - P65

이웃을 사랑하기란 어렵고, 적을 사랑하기란 더 어려우며, 후자는 실제로 가끔 부주의한 판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 짓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굳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생태적 필요일 수도 있고, 사회적 의무일 수도 있고, 갈수록 좁아지는 세계의 불가피한 성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사람들 간의 모든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늘 역효과를 낳는다. 진보주의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여러 신뢰할 만한연구에 따르면 인종에 관한 말을 전혀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일수록 피부색에 따라 무리를 짓고, 거꾸로 차이를 충분히 학습한 아이들일수록 더 기꺼이 섞인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타인과 자신을 대비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존재다. 다른 나라들이 없다면, 미국도 없다. 다른 나라들을 몽땅 탈신비화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아는 미국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권을 기준으로 무리 지으면서도 국가 간에 친절하도록 애쓸 수 있고, 마셜 플랜이 최소한 드레스덴 공습만큼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며, 우리가 누리는 이점을 갖지 못한 이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지지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적을 파악해야하는 시급한 필요성과 새 적을 만드는 끔찍한 어리석음을 충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 P67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보고 싶던 곳으로 가는 여행이든 그리운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든, 그저 출발 자체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는 것을 여행은 삶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환기시킨다. 내가 이륙할 때 초조해지는 것은 기압 탓도,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걱정되어서도 아니다. 나 자신이 꼭 녹아 없어질 것처럼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용기보다 안락을, 안락보다 안전을 우선하라고 배웠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위계를 뒤집으려고애쓰며 살았다. 릴케는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습할 것은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쉽게 되는 일이니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오를 때, 나는 내가 떠나온 곳이나 방문했던 곳을 놓아주는 연습을 한다. 곧 어딘가에 도착하리라는 생각으로 출발을 견디지만, 분리는 잠깐이나마 늘 나를 회한에 빠뜨린다. 그러나 그런 슬픔 속에서도 안다. 내가 거듭 밖으로 나가 본 뒤에야 집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서야 밖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적어도 내게, 작별은 친밀함의 필수 조건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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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차고 깨끗했다. 갑자기 그가 맨덜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거기 살았던 이야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맨덜리에서는 봄철 오후의 황무지를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진다는것, 긴 겨울을 보낸 바다는 자주색으로 보인다는 것, 테라스에서면 밀려오는 파도가 작은 만을 씻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 수선화가 만발하여 저녁 바람에 흔들린다는 것, 흔들리는 가지 위에 붙은 그 황금빛 꽃송이를 아무리 많이 따도 줄어드는 기미는전혀 없다는 것, 꽃들은 마치 진격하는 군대처럼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는 것, 잔디밭 아래 둑 위에는 노랑 분홍, 연자주 크로커스가 자라지만 지금쯤은 절정기가 지나 창백한 눈송이처럼 시들어 떨어지리라는 것, 앵초는 빈틈만 있으면 잡초처럼 자라는 채신머리없는 꽃이라는 것, 초롱꽃은 아직 때가 일러 작년의 이파리속에 봉오리를 감추고 있겠지만 일단 피어나면 제비꽃을 압도하고 숲의 고사리까지 말려 죽이며 하늘빛과 경쟁하듯 푸른빛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 P50

그 부인은 쉽게 잊히지 않는 미모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그 말의 기억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부인이 갔던 장소들, 부인이 만졌던 물건들도 있다. 선반에는 부인이 수놓은 천이 깔려 여전히 부인의 향기를 풍기겠지. 내 침실베개 아래에는 부인의 손길이 닿았던 책도 있다. 나는 부인이 속표지를 펼치고 미소 지으면서 펜을 흔든 뒤 서명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을 테고 부인은 아침 식탁에서 다른 선물과 함께 그 시집을 건넸을 것이다. 그가 포장끈을 풀고 종이를 벗기는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웃었겠지. 그가 시집을 읽을 때부인은 몸을 굽혀 그의 어깨를 감쌌으리라. 그리고 남편을 맥스라고 불렀을 것이다. 맥스, 이 얼마나 친숙하고 다정하며 쉽게 발음되는 이름인가. 가족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그를 맥심이라고 불렀다. 나를 포함해 그보다 어리거나 별생각 없는 이들도 그랬다.
맥스라는 호칭은 그 부인의 선택, 그 부인만의 권한이었다. 부인은그 이름을 시집 속표지에 자랑스럽게 써넣었으리라. 흰 종이 위에 그 힘차고 비스듬한 필체를 거침없이 남기며.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그 부인은 남편에게 그런 메모를 썼을까…… 작은 쪽지도 있었을 테고 그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는 몇 장에걸쳐 둘만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도 보냈겠지. 그 부인의 목소리는 집 안 곳곳에서, 그리고 정원에서 울렸으리라. 시집에 남은 필체처럼 거침없고 익숙하게.
그리고 나는 그를 맥심이라고 불러야 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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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똥차를 몰고 곧장 남아공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야영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열흘치 식량을 갖고 있었고 후 그곳 주민 집에서 묵게 된다면 선물할 요량으로 그곳 주식인 옥수수가루도 열 봉지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싣고 돌아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해가 뜬 직후, 유달리 꾀죄죄한 원형 초가들이 모인 마을을 보았다. 길에 차를 세우고, 내가 경사진 둑을 넘어 마을로 다가갔다. 주민 몇 명이 가냘픈 불길을 둘러싸고 손을 비벼 녹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식료품 열 봉지를 건넨 뒤, 어리벙벙한 표정을 보면서 잠시 즐겼다. 여행에는 낯선이에게 주는 도움과 낯선 이에게서 받는 도움이 다 있다.
나는 개입과 상호성이라는 문제를 갈수록 더 유념하게 되었다. 모든 새로운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대신, 그 혼란에 자신을 더 활짝 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일은 본디 잘하는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 내 차이를 인식해야 했고 그들도 그 차이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과 같은 척 꾸며서는 그들에게 녹아들 수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이 그들의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낫다는 가정을 접어 둘 때, 비로소 녹아들 수 있다. - P36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연습이다. 여행은 우리를 증류하여, 맥락을 떠난 본질만을 남긴다. 완전히 낯선 장소에 몸을 담갔을 때만큼 자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또 없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곳 사람들이 내게 색다른 기대를 적용하기 때문인데, 내가 말하는 방식, 내가 입은 옷의 재단, 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단서들 따위가 아니라 내 국적이 그들의 기대를 형성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행은 우리를 위장시킨다. 나에 대해서 개략적인 선입견만을 품은 사람들의 시선에 둘러싸일 때, 우리는 꼭 위장한 것만 같고 익명이 된 것만 같다. 스스로 선택한 것인 한, 나는 외로움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집에서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한, 멀고 험난한 장소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나는 사회적 구속을 싫어하고, 여행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었다. - P39

진정성은 여행자의 성배다. 진정성은 발견될 수는 있지만 계획될 수는 없다. 스물여덟 살 때 친구 탤컷 캠프와 함께 보츠와나의 유일한 간선도로를 달려서 그 나라를 가로질렀는데, 도로를 건너는 소떼 때문에 주기적으로 차를 세워야 했다. 한번은 아주아주 멀리 동물 떼가 보였지만 목동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코끼리 떼였다. 우리는 코끼리의 <자연 서식지>인 드넓은 보호 구역에서 코끼리를 이미 많이 본 터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돈 내고 들어가서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법적 경계인 국립 공원이란 왠지 야생동물과의 조우에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그 공식 경계 너머에서 코끼리들을 우연히 만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우리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 한 시간쯤 서 있었다. 이우는 햇살에 후피동물들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십여 개국에서 코끼리를 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때처럼 벅찬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 P43

자유가 정체와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유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단발적으로 등장한다. 자유의 한 구성 요소는 낙관주의인데, 낙관주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지금 벌어지는 일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변화는 종종 무모하다. 종종 끔찍하게 잘못된다. 분위기에 짜릿한 자극을 가하지만 종종 그 짜릿함이 실현되지 않고 소실되는 결과만을 낳는다.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모든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의 무게를 나눠서 짊어지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추상적 개념으로는 매력적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직접 투표해야 하는 순간에는 벅차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미얀마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 티다 박사를 미얀마에서 인터뷰했다. 18개월 뒤 그녀가 뉴욕에 와서 만났는데, 그때 그녀는 정부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뿐이라면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억압에 길들었던 국민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ㅡ이 일에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유를 좇아 구속을 떨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란 참으로 영광스럽지만 참으로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유를 획득한 뒤에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토니 모리슨의 말을 빌리면, <자유로워진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따라서 장애물만 제거되면 어디서나 민주주의가 생겨날 것이라고가정하지만(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아마 이런 가정에 따라서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증거는 그런 예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유는 배워야 하는 것,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 P48

저우언라이는프랑스 혁명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단지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은 아니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설령 변화의 약속이 영영 실현되지 않더라도, 변화의 순간 그 자체가 귀중할 수도있다. 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에 평생 매료된 사람이라, 변혁의 목전에 놓인 곳들을 자주 가보았다. 그러는 동안 과거보다는 냉소가 늘었다. 역사의 교차로에서, 전보다 나은 것을 가져올 것 같았던 변화가 도리어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진전이 비극과 함께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상시적 불확실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변화는 점진적인 침식의 결과가 아니라 빈발하는 부정 출발의 결과일 때가 많다. 실패한 시작이 두 번, 세 번, 혹은 열 번쯤 쌓인 뒤에야 비로소 돌파구가열리고 변화가 오는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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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모든 곳의 특파원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를 알려 주셨다. 우리는 노란 뷰익으로 뉴욕주 9A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이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플레전트빌은 정말로 플레전트한(즐거운) 곳이냐고묻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삼킬로미터 지난 뒤 왜 나치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내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이미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탄없이 대뜸 집단 수용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은 기억난다. 나도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알았고, 그래서 만약 우리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그 일을 겪었을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최소한 네 번 졸랐다. 이야기에서 뭔가 빠진 부분이 있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급기야 대화를 무자르다시피 하는 단호한 말투로 그것은 그저 <순수한 악>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유대인들은 왜 상황이 나빠졌을 때 그냥 떠나 버리지 않았어요?」「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거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언제든 어딘가 갈 데가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력하고 의존적이고 잘 속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 P13

 미국을 떠나기 전, 여러 선생님들과 현명한 어른들이 불가리아는 끔찍한 소련 괴뢰국이지만 루마니아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지도자가 있어서 모스크바의 지령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불가리아에서는 가식적이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합창단의 주연 소프라노 루이즈 엘턴과 내가 집시 극단을 쫓아가느라고 잠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분위기는 쾌활했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억압적인 장면을 매일 목격했는데, 우리에게 자기 나라가 자유롭고 진보적인 곳임을 설득시키려고 한 주최 측의 말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광경들이었다. 한번은 병원 창문에서 어느 환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려고 하자 군복을 입은 간병인이 거칠게 그를 끌어당기고는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길에서 만난 초조한 기색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편지를 건네면서 그것을 몰래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두려워서 그런지 대화를 나누려고 들지는 않았다. 어디에나 군인들이 구석구석 지켜 서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부쿠레슈티 관광은 금지되었는데,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밤 생활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웃긴 말이라고 느낀 우리는 나머지 일정 내내 저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루마니아는 오싹한 경찰 국가더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내게 틀린 소리 하지 말라고 말했다. 차우셰스쿠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루마니아가 동유럽중에서도 아마 가장 억압적인 체제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훨씬 더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서야 드러났다. 나는 이 사건으로 직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첫눈에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 보니 음흉한 곳일 수는 있지만 첫눈에 음흉하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보니 사랑스러운 곳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20

2015년 11월, 그 예술가들 중 한 명인 친구 안드레이 로이테르와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책에 썼던 우리 공통의 추억 중 몇 가지를 끄집어냈다. 그가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품었었는지기억해요? 나는 그 꿈들이 실현되지 못한 것을 그가 애석하게 여기는지 궁금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록 근거 없는 희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어도, 그때 그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그림을, 내 모든 존재를 결정지었어요」 우리는 푸틴의 러시아에 만연한 무도함을 개탄했는데, 그는그런 폭력조차 희망 뒤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달라요> 하고 말했다. 대화 도중, 희망이란 행복한 유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 수혜자에게 불가피하게 뒤따를 트라우마를 견딜 힘을 갖춰준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 사랑처럼 경험된다. 이전까지 비교적 비정치적이었던 내 삶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궁지에 몰린 진실성이 갖기 마련인 절박함을 띠게 되었다. 아직 그 절박함을 목적성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여행이 그때 그 고양감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련 예술가들의 낙천주의는 결국 대체로 허구에지나지 않은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상상된 현실에 관한 감정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진정한 감정이었다. 좌절된 희망, 거기엔 애초 희망이 없던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어떤 고결함이 어려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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