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똥차를 몰고 곧장 남아공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야영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열흘치 식량을 갖고 있었고 후 그곳 주민 집에서 묵게 된다면 선물할 요량으로 그곳 주식인 옥수수가루도 열 봉지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싣고 돌아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해가 뜬 직후, 유달리 꾀죄죄한 원형 초가들이 모인 마을을 보았다. 길에 차를 세우고, 내가 경사진 둑을 넘어 마을로 다가갔다. 주민 몇 명이 가냘픈 불길을 둘러싸고 손을 비벼 녹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식료품 열 봉지를 건넨 뒤, 어리벙벙한 표정을 보면서 잠시 즐겼다. 여행에는 낯선이에게 주는 도움과 낯선 이에게서 받는 도움이 다 있다.
나는 개입과 상호성이라는 문제를 갈수록 더 유념하게 되었다. 모든 새로운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대신, 그 혼란에 자신을 더 활짝 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일은 본디 잘하는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 내 차이를 인식해야 했고 그들도 그 차이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과 같은 척 꾸며서는 그들에게 녹아들 수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이 그들의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낫다는 가정을 접어 둘 때, 비로소 녹아들 수 있다. - P36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연습이다. 여행은 우리를 증류하여, 맥락을 떠난 본질만을 남긴다. 완전히 낯선 장소에 몸을 담갔을 때만큼 자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또 없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곳 사람들이 내게 색다른 기대를 적용하기 때문인데, 내가 말하는 방식, 내가 입은 옷의 재단, 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단서들 따위가 아니라 내 국적이 그들의 기대를 형성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행은 우리를 위장시킨다. 나에 대해서 개략적인 선입견만을 품은 사람들의 시선에 둘러싸일 때, 우리는 꼭 위장한 것만 같고 익명이 된 것만 같다. 스스로 선택한 것인 한, 나는 외로움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집에서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한, 멀고 험난한 장소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나는 사회적 구속을 싫어하고, 여행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었다. - P39

진정성은 여행자의 성배다. 진정성은 발견될 수는 있지만 계획될 수는 없다. 스물여덟 살 때 친구 탤컷 캠프와 함께 보츠와나의 유일한 간선도로를 달려서 그 나라를 가로질렀는데, 도로를 건너는 소떼 때문에 주기적으로 차를 세워야 했다. 한번은 아주아주 멀리 동물 떼가 보였지만 목동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코끼리 떼였다. 우리는 코끼리의 <자연 서식지>인 드넓은 보호 구역에서 코끼리를 이미 많이 본 터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돈 내고 들어가서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법적 경계인 국립 공원이란 왠지 야생동물과의 조우에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그 공식 경계 너머에서 코끼리들을 우연히 만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우리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 한 시간쯤 서 있었다. 이우는 햇살에 후피동물들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십여 개국에서 코끼리를 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때처럼 벅찬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 P43

자유가 정체와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유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단발적으로 등장한다. 자유의 한 구성 요소는 낙관주의인데, 낙관주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지금 벌어지는 일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변화는 종종 무모하다. 종종 끔찍하게 잘못된다. 분위기에 짜릿한 자극을 가하지만 종종 그 짜릿함이 실현되지 않고 소실되는 결과만을 낳는다.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모든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의 무게를 나눠서 짊어지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추상적 개념으로는 매력적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직접 투표해야 하는 순간에는 벅차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미얀마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 티다 박사를 미얀마에서 인터뷰했다. 18개월 뒤 그녀가 뉴욕에 와서 만났는데, 그때 그녀는 정부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뿐이라면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억압에 길들었던 국민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ㅡ이 일에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유를 좇아 구속을 떨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란 참으로 영광스럽지만 참으로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유를 획득한 뒤에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토니 모리슨의 말을 빌리면, <자유로워진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따라서 장애물만 제거되면 어디서나 민주주의가 생겨날 것이라고가정하지만(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아마 이런 가정에 따라서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증거는 그런 예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유는 배워야 하는 것,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 P48

저우언라이는프랑스 혁명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단지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은 아니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설령 변화의 약속이 영영 실현되지 않더라도, 변화의 순간 그 자체가 귀중할 수도있다. 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에 평생 매료된 사람이라, 변혁의 목전에 놓인 곳들을 자주 가보았다. 그러는 동안 과거보다는 냉소가 늘었다. 역사의 교차로에서, 전보다 나은 것을 가져올 것 같았던 변화가 도리어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진전이 비극과 함께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상시적 불확실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변화는 점진적인 침식의 결과가 아니라 빈발하는 부정 출발의 결과일 때가 많다. 실패한 시작이 두 번, 세 번, 혹은 열 번쯤 쌓인 뒤에야 비로소 돌파구가열리고 변화가 오는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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