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모든 곳의 특파원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를 알려 주셨다. 우리는 노란 뷰익으로 뉴욕주 9A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이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플레전트빌은 정말로 플레전트한(즐거운) 곳이냐고묻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삼킬로미터 지난 뒤 왜 나치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내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이미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탄없이 대뜸 집단 수용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은 기억난다. 나도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알았고, 그래서 만약 우리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그 일을 겪었을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최소한 네 번 졸랐다. 이야기에서 뭔가 빠진 부분이 있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급기야 대화를 무자르다시피 하는 단호한 말투로 그것은 그저 <순수한 악>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유대인들은 왜 상황이 나빠졌을 때 그냥 떠나 버리지 않았어요?」「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거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언제든 어딘가 갈 데가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력하고 의존적이고 잘 속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 P13
미국을 떠나기 전, 여러 선생님들과 현명한 어른들이 불가리아는 끔찍한 소련 괴뢰국이지만 루마니아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지도자가 있어서 모스크바의 지령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불가리아에서는 가식적이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합창단의 주연 소프라노 루이즈 엘턴과 내가 집시 극단을 쫓아가느라고 잠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분위기는 쾌활했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억압적인 장면을 매일 목격했는데, 우리에게 자기 나라가 자유롭고 진보적인 곳임을 설득시키려고 한 주최 측의 말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광경들이었다. 한번은 병원 창문에서 어느 환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려고 하자 군복을 입은 간병인이 거칠게 그를 끌어당기고는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길에서 만난 초조한 기색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편지를 건네면서 그것을 몰래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두려워서 그런지 대화를 나누려고 들지는 않았다. 어디에나 군인들이 구석구석 지켜 서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부쿠레슈티 관광은 금지되었는데,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밤 생활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웃긴 말이라고 느낀 우리는 나머지 일정 내내 저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루마니아는 오싹한 경찰 국가더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내게 틀린 소리 하지 말라고 말했다. 차우셰스쿠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루마니아가 동유럽중에서도 아마 가장 억압적인 체제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훨씬 더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서야 드러났다. 나는 이 사건으로 직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첫눈에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 보니 음흉한 곳일 수는 있지만 첫눈에 음흉하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보니 사랑스러운 곳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20
2015년 11월, 그 예술가들 중 한 명인 친구 안드레이 로이테르와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책에 썼던 우리 공통의 추억 중 몇 가지를 끄집어냈다. 그가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품었었는지기억해요? 나는 그 꿈들이 실현되지 못한 것을 그가 애석하게 여기는지 궁금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록 근거 없는 희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어도, 그때 그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그림을, 내 모든 존재를 결정지었어요」 우리는 푸틴의 러시아에 만연한 무도함을 개탄했는데, 그는그런 폭력조차 희망 뒤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달라요> 하고 말했다. 대화 도중, 희망이란 행복한 유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 수혜자에게 불가피하게 뒤따를 트라우마를 견딜 힘을 갖춰준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 사랑처럼 경험된다. 이전까지 비교적 비정치적이었던 내 삶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궁지에 몰린 진실성이 갖기 마련인 절박함을 띠게 되었다. 아직 그 절박함을 목적성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여행이 그때 그 고양감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련 예술가들의 낙천주의는 결국 대체로 허구에지나지 않은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상상된 현실에 관한 감정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진정한 감정이었다. 좌절된 희망, 거기엔 애초 희망이 없던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어떤 고결함이 어려 있다. - P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