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차고 깨끗했다. 갑자기 그가 맨덜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거기 살았던 이야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맨덜리에서는 봄철 오후의 황무지를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진다는것, 긴 겨울을 보낸 바다는 자주색으로 보인다는 것, 테라스에서면 밀려오는 파도가 작은 만을 씻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 수선화가 만발하여 저녁 바람에 흔들린다는 것, 흔들리는 가지 위에 붙은 그 황금빛 꽃송이를 아무리 많이 따도 줄어드는 기미는전혀 없다는 것, 꽃들은 마치 진격하는 군대처럼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는 것, 잔디밭 아래 둑 위에는 노랑 분홍, 연자주 크로커스가 자라지만 지금쯤은 절정기가 지나 창백한 눈송이처럼 시들어 떨어지리라는 것, 앵초는 빈틈만 있으면 잡초처럼 자라는 채신머리없는 꽃이라는 것, 초롱꽃은 아직 때가 일러 작년의 이파리속에 봉오리를 감추고 있겠지만 일단 피어나면 제비꽃을 압도하고 숲의 고사리까지 말려 죽이며 하늘빛과 경쟁하듯 푸른빛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 P50
그 부인은 쉽게 잊히지 않는 미모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그 말의 기억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부인이 갔던 장소들, 부인이 만졌던 물건들도 있다. 선반에는 부인이 수놓은 천이 깔려 여전히 부인의 향기를 풍기겠지. 내 침실베개 아래에는 부인의 손길이 닿았던 책도 있다. 나는 부인이 속표지를 펼치고 미소 지으면서 펜을 흔든 뒤 서명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을 테고 부인은 아침 식탁에서 다른 선물과 함께 그 시집을 건넸을 것이다. 그가 포장끈을 풀고 종이를 벗기는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웃었겠지. 그가 시집을 읽을 때부인은 몸을 굽혀 그의 어깨를 감쌌으리라. 그리고 남편을 맥스라고 불렀을 것이다. 맥스, 이 얼마나 친숙하고 다정하며 쉽게 발음되는 이름인가. 가족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그를 맥심이라고 불렀다. 나를 포함해 그보다 어리거나 별생각 없는 이들도 그랬다. 맥스라는 호칭은 그 부인의 선택, 그 부인만의 권한이었다. 부인은그 이름을 시집 속표지에 자랑스럽게 써넣었으리라. 흰 종이 위에 그 힘차고 비스듬한 필체를 거침없이 남기며.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그 부인은 남편에게 그런 메모를 썼을까…… 작은 쪽지도 있었을 테고 그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는 몇 장에걸쳐 둘만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도 보냈겠지. 그 부인의 목소리는 집 안 곳곳에서, 그리고 정원에서 울렸으리라. 시집에 남은 필체처럼 거침없고 익숙하게. 그리고 나는 그를 맥심이라고 불러야 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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