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더 나중에야 나는 그때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액션의 요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즈음에는 나도 그때 왜 우리가 해방자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압제자 브레즈네프를 위해서 축배를 들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 시절과 마찬가지로, 브레즈네프 시절 소련의 전위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집이나 작업실에 두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여주었는데, 그런 작품을 본 관객은 동료 전위 예술가들뿐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예술가들은 <초기 기독교도 공동체나 프리메이슨 같았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파악했고, 좋을 때나 나쁠때나 뭉쳤고, 집단 구성원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소련인민에게 허락된 진실보다 더 고차원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직 자신들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성을 배웠고, 호혜가 가득한 세상을 건설했다. 비록 강렬한 아이러니와 사소한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어도, 그들의 그 생명력은 사람들이 모든 제스처를 부질없게 여기게 된 국가에서 그들의 작품에 절실함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긴밀하게 공유하는 즐거움을 일구는 것으로 고난에 맞섰고, 그 심오한 목적의식에서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재미로부터 자신들의 재능의 가치를 확인했다. 그들의 재능은 실로 상당했다. 즐거움도 상당했겠지만, 그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에 초월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것을 장악한 체제와 씨름하려는 자가 지성이 부족해서야 좌절하기 마련이라, 바보들은 금세 패배했다. 모스크바 예술가 사회에는 수동적 관찰자의 자리가 없었다. 구성원들의 헌신은 엄청났다. - P80
거의 모든 그림이 팔렸다. 제일 예쁜 그림들, 혹은 누가 봐도 제일 평범한 그림들이 제일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사실에 모스크바전위 집단은 기겁했고, 서양이 자신들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소련 미술의 정전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경매장에서 본 일부 입찰자들 때문에 무척 심란해졌는데, 그 입찰자들이 소련의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작품에 맥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주이론적인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 작업실에서 자기 작품을 삼십 분 동안 설명했을 때, 나중에 경매장에서 최고 입찰가 축에 드는금액을 부를 여자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흑백과 회색만 쓰는건 여기에서는 색깔 있는 물감을 구하기가 어려워서인가요?」최고의 작품들 중 일부는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팔렸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기념품을 쇼핑하려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총판매액은 350만 달러로, 최고로 낙관적인 예측치였던 180만 달러의 두 배에 육박했다. 시몽드 퓨리는 소련 문화부 부국장 세르게이포포프를 얼싸안았다. 사람들이 대회의실을 떠날 때, 한 여자가 카탈로그를 짚으면서옆 사람에게 외쳤다. 「이걸 샀어요.」 여자는 살짝 찌푸리면서 덧붙였다. 「아니면 이건가. 뭔지 기억이 안 나네.」「뭐든 어때요.」 상대가 말했다. 「오늘 밤을 기억할 물건이 있으면 되는 거지. 재밌지 않았어요?」소련 예술가들은 이렇게 대중의 눈앞에 나서게 되었다. 극단적인 프라이버시에 기반하여 작품 활동을 했던 그들에게는 가시방석같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KGB에게 무의미해 보이도록, 심지어 지루해 보이도록 워낙 비밀스런 기준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서양에서 유명해진 뒤에도 오랫동안 서양인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채로 남을 얄궂은 운명이었다. 예술 작품이 그 기원으로부터 단절될 때 맨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 바로그 속에 담긴 아이러니다. 진실의 다중성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던소련 미술은 그림인 것 못지않게 정치적 발언이었는데,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진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적 구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비평할 때 그 초점은 작품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주제가 아니라 모호함이라는-속성 자체여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비평 방식이 사회학적 접근인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이 예술가들이 위장을 탁월하게 해냈다는 사실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유효한 평가이지만 위장 그 자체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 P88
「여기 우리는 소수이지만, 의사당에도이 나라 전체에도 수많은 사람이 더 있습니다.」 청년은 또 민주주의를 말하고, 탱크에 탄 군인들에게 과거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다른 사람들도 가세한다. 코스탸와 라리사도 군인들에게 열변을 토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명령을 강제로 따르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점을 강조한다. 「당신들이 명령을 따른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스스로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확성기를 든 청년이 말한다. 군인들은 서로 눈을 맞추다가 시선을 돌려 우리를 본다. 우리는쫄딱 젖었고, 너무 춥고, 신념에 대한 용기 외에는 가진 것이 없어무력한 처지이므로 스스로가 정의를 주장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물리적 방어는 누가 봐도 부족하다 군인들은 우리를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족히 일 분 동안 뚫어져라 우리를 보다가, 이윽고 선두의 탱크를 모는 군인이 마치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경로 앞에 굴복할 따름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대중의 뜻에 따라야 하겠지요.」 그는 우리더러 탱크들이 유턴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비키라고 지시한다. 탱크들이 유턴하는 데는 정말로 넓은 공간과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코스타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이 떠난 진짜 이유가 뭘까?」「우리 때문이지.」 코스타는 대답한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우리가 한 말 때문에」 우리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얼싸안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서 목이 쉬어라 환성을 지른다. 일이 다 끝나고서야, 영웅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경험했다는 생각과 수그러지는 두려움이 뒤섞이면서 비로소 더없이 황홀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무모한 용기는 지금은 이쯤이면 됐다고 결정한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열렬히 우리의 모험담을 들려준 뒤, 내 호텔로 간다. 우리는 호텔에서 멋진 점심을 먹고, 뿌듯해한다. 나는 오늘로 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점심 후에 공항으로 떠난다. 나머지사람들은 집에 가서 푹 자고, 기운을 차리고, 전화를 걸고, 오늘 밤 철야농성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철야농성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비행기에 체크인 할무렵에 이미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내부 분쟁 때문이었지만, 인간 바리케이드의 의견을 좇은 군인들 덕분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해방감을 안겼다. 자유는 그들이 늘 집착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흘 동안 그들은 물리적으로 그것을 수호하는 사치를 경험했던 것이다. 코스탸는 나중에 전화로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너랑, 나랑, 다른 모든 친구들이 그러고는 잠시 후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내 깃발이었어.」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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