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이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이 국립법무병원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며 대체 어떤 곳인지, 왜 요즘 들어 정신질환 범죄자가 더 늘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치료받으며 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면좋겠다. 이 책을 읽는다고 정신질환자가 ‘친근한 사람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정신질환자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아마 내일 출근하는 차 안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또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고 병동에 가게 되겠지. 당분간은 지금처럼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할 생각이다. 그게 내가 오늘해야 할 일이므로.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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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강제입원의 적합성‘에 관한 판단을 의사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는 데 있다. 입원 적합성 여부는 전문성을 갖춘 독립된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즉 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참고해 법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부 산하의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적인 사법기관에서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추세다. 프랑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의선진국에서 법원이나 독립된 준사법기관에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결정하고 있다. WHO와 UN에서도 사법기관이나 독립적이고 공정한 심사기관에서 강제입원 여부를 심사하도록 권고한다. 강제입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환자의 입원이 의학적으로 적절한가, 적절하다면 인권 침해 여지는 없는가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보건복지부가 주장하는 ‘환자 인권보호‘의 핵심인데, 이는 의사 개인이 아닌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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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노부모를 제외한 다른 보호자는 주치의 입장에서 아슬아슬하다. 언제 연락이 끊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락이 된다 하면 대부분 재산 문제가 얽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평생 얼굴도 모르고 살던 조카까지 나타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환자의 재산을 관리하겠다며 막무가내로 환자 스스로 생활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한다. 이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는데, 이런 사람을 만나면 원래 인간은 악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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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5》는 성격장애를 크게 A, B, C의 3가지 군으로 분류한다. A군에는 편집성 성격장애, 조현성 성격장애, 조현형 성격장애가 있다. 보통 이들은 괴상하고 의심이 많은 특성이 있다. B군에 속하는 성격장애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앞에서 말했던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여기에 속하며, 경계성 성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도 있다. 이들은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럽다. C군에는 회피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가 있고 이들은 불안하고 겁이많은 특성을 보인다.
A군이나 C군에 속하는 성격장애 환자가 범죄에 연루되는경우는 많지 않다. 편집성 성격장애 환자들이 무분별한 고소를 남발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 정도다. 하지만 성격장애의 꽃, B군에 속하는 환자는 국립법무병원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 P239

모든 환자가 이런 정도의 병식을 지니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10년 넘게 단 한 사례만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병식 없음‘은 매우 흔한 증상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게으르거나 무지해서‘ 치료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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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강한 젊은 성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한 집단은 연구실에서 철저히 지켜보면서 밤새 깨어 있도록 했다. 다른 한 집단은 밤에 정상적으로 잠을 잤다. 다음 날 뇌 영상을 촬영할 때 양쪽 집단에 똑같이 100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감정적으로 중립적인 것(양동이, 떠다니는 나무토막)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것(불타는집, 달려들려 하는 독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들이었다. 이 감정을 환기시키는 정도가 다른 사진들을 이용하여, 우리는 점점 더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하는 사진들을 볼 때 뇌의 반응 세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수있었다.
뇌 영상을 분석하니, 지금까지 내가 측정한 반응 중에서 가장 큰차이가 나타났다. 수면이 부족한 참가자들에게서 뇌의 양쪽에 있는 편도체라는 구조- 분노와 흥분 같은 강한 감정을 촉발하는 핵심부위로서, 싸움-도피 반응과 관련이 있다 - 가 감정 반응을 60퍼센트 이상 증폭시켰음이 드러났다. 대조적으로 잠을 충분히 잔 참가자들은 똑같은 사진들을 보았음에도, 편도체의 반응이 억제되고 온건한 수준으로 일어났다. 마치 잠이 부족하면, 우리 뇌가 통제가 안되는 반응이라는 원시적인 양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우리는 통제되지 않은 부적절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며, 더 폭넓거나 더 사려 깊은 맥락에 사건을 놓을 수가 없게 된다.
이 해답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잠을 못 자면 뇌의 감정중추가 왜 그렇게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일까? MRI를 더욱 상세히 분석하니, 근본원인이 드러났다. 밤잠을 푹 자고 나면, 전전두엽 피질 - 눈알 바로 위에 있는 뇌 영역으로서,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에게서 가장 발달했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및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곳 - 이 편도체와 강하게 결부되어서 이 몹시 감정적인 뇌를 억제함으로써 조절했다. 밤잠을 충분히 잤을 때에는 감정가속 페달(편도체)과 브레이크(전전두엽 피질)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자면, 이 두뇌 영역 사이의 강한 연결이 끊긴다. 우리는 옛 파충류 조상들이 지녔던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된다. 감정 가속 페달(편도체)을 마구 밟아 대고 조절 브레이크(전전두엽 피질)는 제대로 밟지 않는 상태가 된다. 매일 밤 수면을 통해 합-리적인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경학적으로 따라서 감정적으로 균형을 잃는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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