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모든 곳의 특파원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를 알려 주셨다. 우리는 노란 뷰익으로 뉴욕주 9A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이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플레전트빌은 정말로 플레전트한(즐거운) 곳이냐고묻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삼킬로미터 지난 뒤 왜 나치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내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이미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탄없이 대뜸 집단 수용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은 기억난다. 나도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알았고, 그래서 만약 우리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그 일을 겪었을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최소한 네 번 졸랐다. 이야기에서 뭔가 빠진 부분이 있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급기야 대화를 무자르다시피 하는 단호한 말투로 그것은 그저 <순수한 악>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유대인들은 왜 상황이 나빠졌을 때 그냥 떠나 버리지 않았어요?」「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거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언제든 어딘가 갈 데가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력하고 의존적이고 잘 속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 P13

 미국을 떠나기 전, 여러 선생님들과 현명한 어른들이 불가리아는 끔찍한 소련 괴뢰국이지만 루마니아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지도자가 있어서 모스크바의 지령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불가리아에서는 가식적이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합창단의 주연 소프라노 루이즈 엘턴과 내가 집시 극단을 쫓아가느라고 잠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분위기는 쾌활했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억압적인 장면을 매일 목격했는데, 우리에게 자기 나라가 자유롭고 진보적인 곳임을 설득시키려고 한 주최 측의 말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광경들이었다. 한번은 병원 창문에서 어느 환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려고 하자 군복을 입은 간병인이 거칠게 그를 끌어당기고는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길에서 만난 초조한 기색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편지를 건네면서 그것을 몰래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두려워서 그런지 대화를 나누려고 들지는 않았다. 어디에나 군인들이 구석구석 지켜 서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부쿠레슈티 관광은 금지되었는데,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밤 생활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웃긴 말이라고 느낀 우리는 나머지 일정 내내 저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루마니아는 오싹한 경찰 국가더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내게 틀린 소리 하지 말라고 말했다. 차우셰스쿠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루마니아가 동유럽중에서도 아마 가장 억압적인 체제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훨씬 더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서야 드러났다. 나는 이 사건으로 직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첫눈에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 보니 음흉한 곳일 수는 있지만 첫눈에 음흉하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보니 사랑스러운 곳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20

2015년 11월, 그 예술가들 중 한 명인 친구 안드레이 로이테르와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책에 썼던 우리 공통의 추억 중 몇 가지를 끄집어냈다. 그가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품었었는지기억해요? 나는 그 꿈들이 실현되지 못한 것을 그가 애석하게 여기는지 궁금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록 근거 없는 희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어도, 그때 그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그림을, 내 모든 존재를 결정지었어요」 우리는 푸틴의 러시아에 만연한 무도함을 개탄했는데, 그는그런 폭력조차 희망 뒤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달라요> 하고 말했다. 대화 도중, 희망이란 행복한 유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 수혜자에게 불가피하게 뒤따를 트라우마를 견딜 힘을 갖춰준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 사랑처럼 경험된다. 이전까지 비교적 비정치적이었던 내 삶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궁지에 몰린 진실성이 갖기 마련인 절박함을 띠게 되었다. 아직 그 절박함을 목적성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여행이 그때 그 고양감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련 예술가들의 낙천주의는 결국 대체로 허구에지나지 않은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상상된 현실에 관한 감정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진정한 감정이었다. 좌절된 희망, 거기엔 애초 희망이 없던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어떤 고결함이 어려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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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가 많이 들어올수록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에 따라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같은 방법으로 석유산업을 적극 유인하기를 원했다. 프로이덴버그와 그램링과 달리 혹실드는 시추 사업에 대한 견해가 그렇게 획일적이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도시 거주민은 다른의견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거의 한목소리로 시추 사업에 찬성한 집단은 교육 수준이 낮고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혹실드는 우연히 읽은 기업 컨설팅 보고서에서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하는 석유산업 시설의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바로 이 집단이 지목된 것을 발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부지는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의 특징 하나는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라는 것. 또 하나는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이었다." - P386

더티 워크는 특정 계급에게 불균형하게 배정될 뿐 아니라 특정장소에 집중되어 있다. 교도소는 주로 ‘시골 게토‘에, 정육공장은 외딴 산업 단지에 지어진다. 누구에게나 눈엣가시인 정유공장과 시추선은 캘리포니아주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저항성이 가장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들어선다. 더티 워크의 지리는 인종불평등과 계급 불평등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층 강화하기에, 낙인찍힌 산업과 시설은 빈곤한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암 골목‘
이 그런 곳이다. - P392

개인적 안전이란 "안전모를 써! 굴러떨어지지 마!"로 요약된다. 노동자는 훈련 과정에서 이 메시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기가 알아서 사고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릴리언도 잡역부 시절엔 그렇게 생각했다. "시추선에서 일할 때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고를 우리가 일으킨 거라고 생각했어요."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더티 워커도 똑같은 메시지를 듣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그들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릴리언은 생각을 바꾸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공정 안전process safety‘이라고 믿었다. 공정 안전은 비용 절감, 조업 속도 최대화처럼 시스템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결정이 누적된 결과다. 공정 안전은 릴리언의 표현으로 "창의 뭉툭한 끝에 앉은 고위급 임원들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그 반대편
"창의 날카로운 끝"에서는 일선 노동자가 부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윗사람들을 대신해 더러운 일을 한다. - P399

세라가 시추선 노동자에 대해 한 말은 모든 종류의 더티 워커에게 적용된다. 더티 워크는 그 일을 하는 개인만을 더럽히지않는다.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를 더럽히고, 그가 만나고 교유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도록 흔적을남긴다. 과밀하고 폭력적인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더러운 노동은 교도관만이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사람을 조각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불결한 일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둔감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 P411

폴슨이 이런 상황마다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이익을 지켜낸데에는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이유도 없지 않았으니, 그가소극적이고 자립심이 약한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다른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나아가 윤리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 테크 노동자들이 높은 위상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목소리를 낸 구글 직원은 폴슨만이 아니었다. 기사가 나오고 2주 후, 1000명이 넘는 직원이 공동 서한을 통해 문제의 사업 계획을 비판하고 직원의 사업 결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투명성이, 결정권이, 그리고 분명하고개방적인 과정에 대한 약속이 당장 필요하다."
이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저숙련 직종의 더티 워커와 달리 자신이 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테크 노동자 중에는 ‘네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고 가르치는 일류대학 출신이 많은 데다 회사 측이 직원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은 ‘스마트 크리에이티브한 직원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에 전체 회의를 연다(《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 슈미트와 로젠버그는 "악해지지 말자"는 모토 또한 "직원에게 힘을 부여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도마에 올랐을 때 구글은 직원의 이견을 그리 환영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제기된 금요일 전체 회의는 실로엉망으로 끝났고, 많은 직원이 사실은 회사가 직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 P426

이 인자는 바로 권력이다. 고프먼이 지적했듯낙인은 관계를 통해 획득된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얼룩지고 에누리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스테레오타입은 사회적 상호작용을통해 창출된다. 그러나 브루스 링크Bruce Link와 조 펠란Jo Phelan의 말대로 스테레오타입의 효력은 전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자 링크와 펠란은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오만하고 냉담한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했다. 환자는 직원의 등 뒤에서 그들을 비웃을 수 있다. 그들을 못 믿을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직원이 낙인찍힌 무리에 속하는 일은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환자에겐 직원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심각한 차별이라는 결과로 실현할 만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묵직한 위력"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교육기관, 직업, 주거, 의료 등 주요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권을 통제할" 힘, 바로 권력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낙인찍히고 정체성이 손상되어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이 없기때문이다. - P438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금융 붕괴 이후에도 과거와 다름없이 고액의 상여금을 받은 은행가들은 더티 워커는 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낙인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 한 방법은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미덕을 내보이는 행위가 가난한 노동자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누군가 그들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투자 은행가가 자신이 얼룩지고 에누리당했다는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금융업이 부당하게 규제당하고 비난받게 생겼다며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바로 이것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오만", 즉 일류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자기애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샌델이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 P439

성공한 능력주의자의 오만은 정당하지 않다고, 왜냐하면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너무도 흔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공한 능력주의자가 오만한 이유는 그처럼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마저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본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때문이다. 어떤 노동이 더티 워크가 되려면 ‘선량한 사람들‘, 이른바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더럽다고 여겨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려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노동, 드론 전투원의 노동, 시추선 잡역부의 노동이 그런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사이트 안정성 엔지니어의 노동, 월스트리트 은행가의 노동은 그런 일이 아니다. - P440

과연 그 장면은 콩고가 ‘독립국‘이던 식민지 시대, 그러니까 레오폴 2세가 고무와 상아를 수탈하려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극도의 잔인성과 폭력을 휘둘렀던100여 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 영상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런 "충격적인 일"은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에 은폐되어, 집과 사무실에서 충전용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장비를 쓰는 사람 대다수의 눈에는 보이지않는다. 채찍을 휘두르는 군인과 그 모습을 태연히 지켜보는 공무원은 식민지 시대의 밀사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대신해 더티 워크를 하고 있다. - P452

《베트남의 아킬레우스에서 조너선 셰이는 도덕적 외상을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유화하는 것이라고 썼다. 가령 귀환병에게는 그 사람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에 의료노동자는 도덕적 외상의 위험을 무릅쓰긴 했어도 자신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낀 대중은 존경과 호기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해리엇 같은더러운 노동자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해리엇은 자신의 경험을 사적으로 대면해야 했고 그로부터 펼쳐진 불안한 기억과 홀로씨름해야 했다. 여기엔 공동체적 대면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보훈의료 센터에서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귀환병이 전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위배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함께, 소리 높여 귀환병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가 마땅히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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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렛 휴스의 말을 빌리면, 더티 워커는 "우리 모두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의 다수 시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불미스러운 일을 수행하는데도 위임자인 우리는 더티 워커에게 거리를 두고 그들을 멸시한다. 더티 워커의 한 예는 미국의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교도관이다. 1970년대에 각 주에서 정신병원을 폐쇄한 이후 구치소와 교도소는 사실상 이 나라의 정신병원이 되었다. 더티 워커의 또 다른 예는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드론 전투원이다. 이들은 9·11 테러이후 점점 전쟁에 대해 관심을 잃고 냉담해지는 국민을 대신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더티 워크, 그리고 휴스가 그의 글에서 논한 모든 종류의 더러운 노동은 국가가 위임했다. 즉 국민이 그들의 고용주이며, 이 점에서 더러운 노동자는 무슨 불량배가아니라 사회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모든 현대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더티 워크가 한 가지 있다. 여기서 시민은 고용주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그 노동을 뒷받침하고 이익을 취한다. 플로르 마르티네스는 정부 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에서 일했지만, 이 산업에 가장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은 바로 미국인의 식욕이다.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어치우지만 그 고기가 생산된 현장에는 근처에도 갈 필요가 없다.  - P322

이 먼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이자 심미적인 거리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닭다리는 이 시스템의 잔인성을 감추는 무색무취의 포장재에 들어 있다. 뼈가 없는 햄버거 패티, 빵가루를입힌 치킨너겟 같은 식품은 아예 고기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만드느라 동물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러한 욕망에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문명화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은폐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도축을 예로 들었다. 원래 중세 시대 상류층은 일상적으로 식탁에서
"생선을 통째, 새를 통째 (...) 그뿐 아니라 토끼나 양도 통째로, 송아지는 4분의 1 토막을 잘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준이 달라졌다. "고기 요리가 동물을 죽이는 행위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상기시키지 않는다는 새로운 규준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고기 요리는 많은 경우 조리와 절단을 통해 동물의 원래 형태가 감춰지고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동안 요리의 기원을 거의 연상할 수 없다."
엘리아스는 이어 이렇게 쓴다. "그 일은 상점이나 부엌에서전문가들이 처리한다. (...) 커다란 고깃덩어리나 심지어 생선 한마리를 식탁에서 자르는 것에서 시작하여, 죽은 동물을 보는 데서오는 불쾌감의 한계치가 높아지다가, 자르는 행위가 무대 뒤편의 전문화되고 고립된 공간으로 옮겨지는 이 곡선은 전형적인 문명화곡선이다.  - P325

"물리적 위험보다 더한 가장 끔찍한 위험은 감정이 다치는거예요." 어느 돼지고기 정육공장의 노동자가 게일 아이스니츠에게 한 말이다. "도살장에 온 돼지들이 나한테 다가와서 강아지처럼 코를 문대요. 2분 후에 내가 죽일 텐데." 이 공장에는 그로 인한고통을 누르려고 약물이나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일한 문제는, 그렇게 술로 감정을 억눌러봤자 깨고 나면 그대로라는 거죠." 이 문장에서 나는 톰 베네즈를 비롯해 여러 교도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축 노동자는 교도관과 비슷한 대응기제에 의지하고 있다. 아이스니츠는 생계를 위해 동물을 죽이는사람은 그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쓴다.
패키릿의 결론은 이와는 다르다. 노킹 박스에서 동물을 죽이는 일은 인간의 감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동료는 그에게 "그런 일을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밤에 악몽을 꾸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듯했다. 이것이 가능한 중요한 이유 하나는 노동분업에 있었다. 소고기 정육공장에는 도축 노동이 내장 뜯어내기, 간 걸기, 머리 조각내기 등 실로 다양한 하위 분야로 세분화되어있다. 즉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자잘하게 나뉘어 있었다(그래서 소를 실제로 죽이는 것은 노킹 담당자뿐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나도 어느 닭고기 공장을 방문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어느 부서는 간을 빼고, 어느 부서는 목을 자르고, 또 어느 부서는 ‘결함‘부위를 제거했다. 이들이 닭을 조각내고 솎아내는 동안 바닥에는핏물 섞인 분홍빛 폐수가 하수구를 향해 흘렀고 내 신발 밑창에도튀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냄새는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닭의 목을 자르고 간을빼는 일이 어떻게 평범한 일이 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실제로 내가 만난 샌더슨 팜스 노동자들은 도축 노동을 힘든 감정과는 무관한 기계적인 작업으로 생각했다.  - P328

 2020년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 1500명이 양성 판정을 받자 지역 당국은휴교령과 봉쇄령을 선포했다. 그런데 이 공장의 소유주인 퇴니스는 집단감염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비난하려다가 곧 반발에 부딪혔다. 독일의 노동부 장관 후베르투스 하일Hubertus Heil은 퇴니스가 "지역 전체를 볼모로 삼았다며 그 비용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퇴니스는 사과와 더불어 지역사회의 대대적인 검사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하일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않고 자신은 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제로‘라고 언론에 밝혔다. 이후 그는 정육산업을 "무책임이 조직화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규정하면서 감시 강화, 하청 계약 금지 등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이처럼 정부 공무원은 위험하고 모욕적인 노동환경이 세상에 폭로되었을 때 그러한 환경에서 이익을 취하는 회사를 망신 주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 P349

 듀크대학교의 경제학자 매슈 존슨MatthewJohnson,
Jasmin은 <망신 주기를 통한 규제megulation by Shaming>라는 논문에서 기업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전략의 억제 효과를 분석했다. 존슨에 따르면 지역 언론과 업계 간행물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발신하면해당 지역의 동종 업계 시설에서 규제 위반 사례가 30퍼센트 감소한다. 또 한 번의 뉴스 보도가 직업안전보건국의 안전 조사 200회에 해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2020년 9월24일 노동차관 패트릭 피젤라Patrick Pizzella는 직업안전보건국을 비롯한 집행 기관에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기업의 규제 위반행위를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유행병 관련 규제 위반에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그대로 중단되었다. 이 정부의 우선순위에는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보다 정육회사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앞섰을 것으로 보인다. - P350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좋은 먹거리‘ 운동이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로 축소되면 식품업의 생산환경 같은 구조적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수 있다. - P358

가처분 소득이 많은 사람에겐 윤리적 소비가 쉬운 일이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푸드 스탬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다. 소비에서 발생하는 윤리 격차는 계급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KFC와 월마트에서 나쁜 고기를 소비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식당과 홀푸즈 같은 상점에서 윤리적인 고기를 소비한다. 그런 소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라벨은 소비자가 스스로에게서 순수함과 미덕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덕은 특권과 한 쌍을 이루어, 부유한 소비자는 공장식 축산에서벌어지는 불순하고 더러운 관행에 가담하는 기분을 돈으로 떨쳐낼 수 있다. 불순하고 더럽게 생산되는 식품은 미덕, 윤리가 부족한 소비자의 몫이다. 누가 미덕이 부족한 소비자인가 하면, ‘해체라인‘에서 간을 걸고 내장을 뜯어내며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도축노동자들이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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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 저택으로 이어지는 길입구의 철문 앞에 섰지만 굳게 닫힌 탓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문에는 쇠사슬이 가로걸리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지기를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녹슨 철문 틈새로 들여다보니 문지기 집은 오랫동안 버려졌던 듯한 모습이었다. 굴뚝에서 연기도 나오지 않았고 작은 격자창은 깨어져 쓸쓸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 P5

달콤한 시럽이 뚝뚝 듣는 핫케이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바삭한 토스트, 갓 구워내 뜨거운 스콘, 속에 뭘 넣었는지 알 수없지만 맛이 좋았던 샌드위치, 그리고 아주 특별했던 생강 빵도 떠오른다. 입에서 녹아버리는 카스텔라, 과일 사탕절임과 건포도가터질 듯 가득 든 빵도 생각난다. 굶주린 가족이 한 주 내내 먹을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음식이었다. 결국 남은 음식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때로 그 낭비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음식의 행방에 대해 댄버스 부인에게 감히 묻지는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비웃는 듯 차가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오만한 미소와 함께 "돌아가신 드윈터 부인께서는 그깟 일에 신경쓰지 않으셨지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댄버스 부인이라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파벨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제일 처음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은 댄버스 부인의 얼굴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본능적으로 레베카와 비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 드리워졌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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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 국민은 자국군의 드론이 정찰하는 지역의 민간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에 관한 정보도찾으려고만 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가령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글로벌 정의 연구소(Global Justice Clinic와 스탠퍼드대학교 국제 인권 및 갈등해결 연구소가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 <드론 밑에서 살아간다는 것uring Under Drones)mes>은 미군이 파키스탄에서 수행한 드론 공습의 증인과 생존자 130여 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중에는 칼릴 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도시 다타켈에서 드론이반군 집회로 의심된 무리에 미사일을 떨어뜨렸을 때 칸은 현장으로 달려가 그날 내내 "조각난 시체를 모아 관에 넣었고, 마을 사람들은 수십 개의 관을 거리로 운구했다고 연구진에게 말했다. 그집회는 광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부족 장로들의 모임이었다. 한 시골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늘 우리를 감시하고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머리 위를 맴도는 눈 없는 비행기는 "감정적 쇠약, 드론이 머리 위에 나타나기만 해도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거나 숨는 행동, 기절, 악몽을 비롯한 침투적 사고, 큰 소음에 과도하게 놀라는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겁이 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장소를 피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보고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럴 마음을 먹지 않을 뿐이다. 펜타곤을 촬영한 패글런의 "검은 세계" 연작 사진집 《보이지 않는 Invisible》에 리베카 솔닛RebeccaSolnit의 글이 실렸다. "패글런이 묘사한 지도 위의 빈 점들은 마음속의 빈 점들, 그리고 공적 대화 속의 빈 점들과 동류다." 헤더 라인보의 <가디언> 사설에 쏟아진 반응을 보건대, 이 점들이 계속비어 있는 이유는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자세한 것까지는 알아내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 P266

문제의 일자리가 미국 본토인에게 실제로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는 이주민 때문에 본토인에겐 매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앨버트빌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닭고기 공장 일은 ‘이주민 노동‘이 되었고, 그 결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협상력에 이주노동자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팻이 일하는 정육공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앨라배마주는 노동조합 의무 가입이 금지된 주이기에 신규 채용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었고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자한때 94퍼센트에 달했던 노조 가입률이 40퍼센트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팻의 소득도 줄었다.  - P283

이 역학에 주목한 경제학자 필립 마틴Philip Martin은 채소 수확, 호텔 객실 청소 같은 틈새 노동시장에 이주민이 진입하면 그러잖아도 힘든 노동이 더욱 힘들어지고 본토인에겐 더더욱 매력 없는노동, 더티 워크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주자를 고용할 수 있는 한 고용주는 더러운 일을 개선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미국인은 더러운 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고분고분한 외국인에게 대체될까 두려워하는 본토박이 저숙련 노동자들의 계급 불안과 인종차별이 뒤섞여, 이주민들은 사회적 더러움을 획득한다(팻은 "그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쫓겨날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 P284

닭고기 정육산업이 고수익 사업으로 급성장한1990년대에는 흑인과 라틴계 주민이 정육공장에서 일했다(2020년기준으로 닭고기와 달걀은 미시시피주의 가장 중요한 농산물로, 총 매출액이28억 달러에 달했다). 스튀시는 그 수익이 노동자에게 거의 분배되지않는다는 점에서 닭고기 정육산업을 "대농장식 자본주의 Plantationcapitalisa" 시스템으로 규정했다. 이 개념은 노동자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환경에서 주로 소수인종이 일하고, 기업의 소유주와 임원은 거의 대부분 백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과거 대농장에서와 똑같이 가금류 정육공장에서는 관리자가 전권을 휘두르며 일선노동자를 가혹하게 취급한다. 고된 노동으로 물리적 상처뿐만 아니라 감정적 상처도 남는다는 것까지 과거 대농장에서와 똑같다.
도축 노동은 "몸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유발한다. 관리자의 만성적인 홀대는 노동자의 존엄성, 자존심, 정의감을 위협하기에 정신을 다치게 한다."18노예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라면 ‘대농장식‘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브라이언의 도축 노동자를만나 그들이 겪은 모욕에 대해 들으면서 그 용어를 거듭 떠올릴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없는 건 채찍뿐이에요." 레지나는 이렇게말하며 관리자들이 그를 무자비하게 채근할 때 그러듯이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 P296

한편으로는 미투 운동이 부딪힌 장벽이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호사를 통해 가해자를고소하는 일은 보복과 공적 모욕이 뒤따를 수 있기에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나 여성 뉴스 앵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약간의 불만을 표출하기만 해도 보복당할 수 있는 라틴계 이주노동자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사 측의 보복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법률가들의 발표에 이은 토론 시간에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노동자는 관리자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상부에 보고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격분했는데, 분노의 대상은 가해자인 관리자가 아니라 자신의 아내였다. 정육공장 내 젠더 역학은 노동자 가정 내 젠더 역학을 너무도 여실히 반영했다. 여성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안전한 장소는 거의없었다. - P308

그들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해도 자신의 주제를 알게 된다.
이처럼 미국 사회는 멕시코계 이주민을 더러운 존재로 분류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질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가상의 위협을 중화한다고 몬테자노는 말한다. 그의 분석은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Hary Daugins의 연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더글러스는 그의 권위서《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 (1966)에서 오물을 "제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했다. "오물은 본질적으로 더러워서가 아니라 사회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양식이나 전제와 조화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오물은 질서를 거스른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런데 무언가를 더러운 것으로 분류하는 일은 더럽지 않은 것,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을 분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물이 있는 곳에 체계가 존재한다. 질서가 부적절한 요소의 거부와 관련되는 한, 오물은 사물의 체계적 질서화 및 분류의 부산물이다." 부적절한 요소는 쓰레기, 배설물 같은 무생물일 수도 있지만 사람일 수도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순수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접촉을 피하는 이를 더글러스는 "오염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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