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회사가 많이 들어올수록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에 따라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같은 방법으로 석유산업을 적극 유인하기를 원했다. 프로이덴버그와 그램링과 달리 혹실드는 시추 사업에 대한 견해가 그렇게 획일적이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도시 거주민은 다른의견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거의 한목소리로 시추 사업에 찬성한 집단은 교육 수준이 낮고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혹실드는 우연히 읽은 기업 컨설팅 보고서에서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하는 석유산업 시설의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바로 이 집단이 지목된 것을 발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부지는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의 특징 하나는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라는 것. 또 하나는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이었다." - P386
더티 워크는 특정 계급에게 불균형하게 배정될 뿐 아니라 특정장소에 집중되어 있다. 교도소는 주로 ‘시골 게토‘에, 정육공장은 외딴 산업 단지에 지어진다. 누구에게나 눈엣가시인 정유공장과 시추선은 캘리포니아주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저항성이 가장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들어선다. 더티 워크의 지리는 인종불평등과 계급 불평등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층 강화하기에, 낙인찍힌 산업과 시설은 빈곤한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암 골목‘ 이 그런 곳이다. - P392
개인적 안전이란 "안전모를 써! 굴러떨어지지 마!"로 요약된다. 노동자는 훈련 과정에서 이 메시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기가 알아서 사고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릴리언도 잡역부 시절엔 그렇게 생각했다. "시추선에서 일할 때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고를 우리가 일으킨 거라고 생각했어요."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더티 워커도 똑같은 메시지를 듣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그들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릴리언은 생각을 바꾸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공정 안전process safety‘이라고 믿었다. 공정 안전은 비용 절감, 조업 속도 최대화처럼 시스템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결정이 누적된 결과다. 공정 안전은 릴리언의 표현으로 "창의 뭉툭한 끝에 앉은 고위급 임원들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그 반대편 "창의 날카로운 끝"에서는 일선 노동자가 부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윗사람들을 대신해 더러운 일을 한다. - P399
세라가 시추선 노동자에 대해 한 말은 모든 종류의 더티 워커에게 적용된다. 더티 워크는 그 일을 하는 개인만을 더럽히지않는다.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를 더럽히고, 그가 만나고 교유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도록 흔적을남긴다. 과밀하고 폭력적인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더러운 노동은 교도관만이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사람을 조각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불결한 일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둔감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 P411
폴슨이 이런 상황마다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이익을 지켜낸데에는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이유도 없지 않았으니, 그가소극적이고 자립심이 약한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다른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나아가 윤리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 테크 노동자들이 높은 위상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목소리를 낸 구글 직원은 폴슨만이 아니었다. 기사가 나오고 2주 후, 1000명이 넘는 직원이 공동 서한을 통해 문제의 사업 계획을 비판하고 직원의 사업 결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투명성이, 결정권이, 그리고 분명하고개방적인 과정에 대한 약속이 당장 필요하다." 이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저숙련 직종의 더티 워커와 달리 자신이 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테크 노동자 중에는 ‘네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고 가르치는 일류대학 출신이 많은 데다 회사 측이 직원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은 ‘스마트 크리에이티브한 직원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에 전체 회의를 연다(《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 슈미트와 로젠버그는 "악해지지 말자"는 모토 또한 "직원에게 힘을 부여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도마에 올랐을 때 구글은 직원의 이견을 그리 환영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제기된 금요일 전체 회의는 실로엉망으로 끝났고, 많은 직원이 사실은 회사가 직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 P426
이 인자는 바로 권력이다. 고프먼이 지적했듯낙인은 관계를 통해 획득된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얼룩지고 에누리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스테레오타입은 사회적 상호작용을통해 창출된다. 그러나 브루스 링크Bruce Link와 조 펠란Jo Phelan의 말대로 스테레오타입의 효력은 전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자 링크와 펠란은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오만하고 냉담한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했다. 환자는 직원의 등 뒤에서 그들을 비웃을 수 있다. 그들을 못 믿을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직원이 낙인찍힌 무리에 속하는 일은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환자에겐 직원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심각한 차별이라는 결과로 실현할 만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묵직한 위력"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교육기관, 직업, 주거, 의료 등 주요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권을 통제할" 힘, 바로 권력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낙인찍히고 정체성이 손상되어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이 없기때문이다. - P438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금융 붕괴 이후에도 과거와 다름없이 고액의 상여금을 받은 은행가들은 더티 워커는 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낙인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 한 방법은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미덕을 내보이는 행위가 가난한 노동자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누군가 그들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투자 은행가가 자신이 얼룩지고 에누리당했다는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금융업이 부당하게 규제당하고 비난받게 생겼다며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바로 이것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오만", 즉 일류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자기애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샌델이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 P439
성공한 능력주의자의 오만은 정당하지 않다고, 왜냐하면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너무도 흔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공한 능력주의자가 오만한 이유는 그처럼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마저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본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때문이다. 어떤 노동이 더티 워크가 되려면 ‘선량한 사람들‘, 이른바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더럽다고 여겨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려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노동, 드론 전투원의 노동, 시추선 잡역부의 노동이 그런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사이트 안정성 엔지니어의 노동, 월스트리트 은행가의 노동은 그런 일이 아니다. - P440
과연 그 장면은 콩고가 ‘독립국‘이던 식민지 시대, 그러니까 레오폴 2세가 고무와 상아를 수탈하려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극도의 잔인성과 폭력을 휘둘렀던100여 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 영상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런 "충격적인 일"은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에 은폐되어, 집과 사무실에서 충전용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장비를 쓰는 사람 대다수의 눈에는 보이지않는다. 채찍을 휘두르는 군인과 그 모습을 태연히 지켜보는 공무원은 식민지 시대의 밀사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대신해 더티 워크를 하고 있다. - P452
《베트남의 아킬레우스에서 조너선 셰이는 도덕적 외상을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유화하는 것이라고 썼다. 가령 귀환병에게는 그 사람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에 의료노동자는 도덕적 외상의 위험을 무릅쓰긴 했어도 자신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낀 대중은 존경과 호기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해리엇 같은더러운 노동자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해리엇은 자신의 경험을 사적으로 대면해야 했고 그로부터 펼쳐진 불안한 기억과 홀로씨름해야 했다. 여기엔 공동체적 대면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보훈의료 센터에서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귀환병이 전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위배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함께, 소리 높여 귀환병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가 마땅히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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