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렛 휴스의 말을 빌리면, 더티 워커는 "우리 모두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의 다수 시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불미스러운 일을 수행하는데도 위임자인 우리는 더티 워커에게 거리를 두고 그들을 멸시한다. 더티 워커의 한 예는 미국의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교도관이다. 1970년대에 각 주에서 정신병원을 폐쇄한 이후 구치소와 교도소는 사실상 이 나라의 정신병원이 되었다. 더티 워커의 또 다른 예는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드론 전투원이다. 이들은 9·11 테러이후 점점 전쟁에 대해 관심을 잃고 냉담해지는 국민을 대신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더티 워크, 그리고 휴스가 그의 글에서 논한 모든 종류의 더러운 노동은 국가가 위임했다. 즉 국민이 그들의 고용주이며, 이 점에서 더러운 노동자는 무슨 불량배가아니라 사회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모든 현대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더티 워크가 한 가지 있다. 여기서 시민은 고용주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그 노동을 뒷받침하고 이익을 취한다. 플로르 마르티네스는 정부 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에서 일했지만, 이 산업에 가장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은 바로 미국인의 식욕이다.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어치우지만 그 고기가 생산된 현장에는 근처에도 갈 필요가 없다. - P322
이 먼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이자 심미적인 거리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닭다리는 이 시스템의 잔인성을 감추는 무색무취의 포장재에 들어 있다. 뼈가 없는 햄버거 패티, 빵가루를입힌 치킨너겟 같은 식품은 아예 고기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만드느라 동물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러한 욕망에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문명화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은폐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도축을 예로 들었다. 원래 중세 시대 상류층은 일상적으로 식탁에서 "생선을 통째, 새를 통째 (...) 그뿐 아니라 토끼나 양도 통째로, 송아지는 4분의 1 토막을 잘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준이 달라졌다. "고기 요리가 동물을 죽이는 행위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상기시키지 않는다는 새로운 규준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고기 요리는 많은 경우 조리와 절단을 통해 동물의 원래 형태가 감춰지고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동안 요리의 기원을 거의 연상할 수 없다." 엘리아스는 이어 이렇게 쓴다. "그 일은 상점이나 부엌에서전문가들이 처리한다. (...) 커다란 고깃덩어리나 심지어 생선 한마리를 식탁에서 자르는 것에서 시작하여, 죽은 동물을 보는 데서오는 불쾌감의 한계치가 높아지다가, 자르는 행위가 무대 뒤편의 전문화되고 고립된 공간으로 옮겨지는 이 곡선은 전형적인 문명화곡선이다. - P325
"물리적 위험보다 더한 가장 끔찍한 위험은 감정이 다치는거예요." 어느 돼지고기 정육공장의 노동자가 게일 아이스니츠에게 한 말이다. "도살장에 온 돼지들이 나한테 다가와서 강아지처럼 코를 문대요. 2분 후에 내가 죽일 텐데." 이 공장에는 그로 인한고통을 누르려고 약물이나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일한 문제는, 그렇게 술로 감정을 억눌러봤자 깨고 나면 그대로라는 거죠." 이 문장에서 나는 톰 베네즈를 비롯해 여러 교도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축 노동자는 교도관과 비슷한 대응기제에 의지하고 있다. 아이스니츠는 생계를 위해 동물을 죽이는사람은 그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쓴다. 패키릿의 결론은 이와는 다르다. 노킹 박스에서 동물을 죽이는 일은 인간의 감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동료는 그에게 "그런 일을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밤에 악몽을 꾸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듯했다. 이것이 가능한 중요한 이유 하나는 노동분업에 있었다. 소고기 정육공장에는 도축 노동이 내장 뜯어내기, 간 걸기, 머리 조각내기 등 실로 다양한 하위 분야로 세분화되어있다. 즉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자잘하게 나뉘어 있었다(그래서 소를 실제로 죽이는 것은 노킹 담당자뿐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나도 어느 닭고기 공장을 방문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어느 부서는 간을 빼고, 어느 부서는 목을 자르고, 또 어느 부서는 ‘결함‘부위를 제거했다. 이들이 닭을 조각내고 솎아내는 동안 바닥에는핏물 섞인 분홍빛 폐수가 하수구를 향해 흘렀고 내 신발 밑창에도튀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냄새는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닭의 목을 자르고 간을빼는 일이 어떻게 평범한 일이 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실제로 내가 만난 샌더슨 팜스 노동자들은 도축 노동을 힘든 감정과는 무관한 기계적인 작업으로 생각했다. - P328
2020년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 1500명이 양성 판정을 받자 지역 당국은휴교령과 봉쇄령을 선포했다. 그런데 이 공장의 소유주인 퇴니스는 집단감염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비난하려다가 곧 반발에 부딪혔다. 독일의 노동부 장관 후베르투스 하일Hubertus Heil은 퇴니스가 "지역 전체를 볼모로 삼았다며 그 비용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퇴니스는 사과와 더불어 지역사회의 대대적인 검사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하일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않고 자신은 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제로‘라고 언론에 밝혔다. 이후 그는 정육산업을 "무책임이 조직화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규정하면서 감시 강화, 하청 계약 금지 등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이처럼 정부 공무원은 위험하고 모욕적인 노동환경이 세상에 폭로되었을 때 그러한 환경에서 이익을 취하는 회사를 망신 주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 P349
듀크대학교의 경제학자 매슈 존슨MatthewJohnson, Jasmin은 <망신 주기를 통한 규제megulation by Shaming>라는 논문에서 기업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전략의 억제 효과를 분석했다. 존슨에 따르면 지역 언론과 업계 간행물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발신하면해당 지역의 동종 업계 시설에서 규제 위반 사례가 30퍼센트 감소한다. 또 한 번의 뉴스 보도가 직업안전보건국의 안전 조사 200회에 해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2020년 9월24일 노동차관 패트릭 피젤라Patrick Pizzella는 직업안전보건국을 비롯한 집행 기관에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기업의 규제 위반행위를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유행병 관련 규제 위반에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그대로 중단되었다. 이 정부의 우선순위에는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보다 정육회사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앞섰을 것으로 보인다. - P350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좋은 먹거리‘ 운동이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로 축소되면 식품업의 생산환경 같은 구조적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수 있다. - P358
가처분 소득이 많은 사람에겐 윤리적 소비가 쉬운 일이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푸드 스탬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다. 소비에서 발생하는 윤리 격차는 계급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KFC와 월마트에서 나쁜 고기를 소비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식당과 홀푸즈 같은 상점에서 윤리적인 고기를 소비한다. 그런 소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라벨은 소비자가 스스로에게서 순수함과 미덕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덕은 특권과 한 쌍을 이루어, 부유한 소비자는 공장식 축산에서벌어지는 불순하고 더러운 관행에 가담하는 기분을 돈으로 떨쳐낼 수 있다. 불순하고 더럽게 생산되는 식품은 미덕, 윤리가 부족한 소비자의 몫이다. 누가 미덕이 부족한 소비자인가 하면, ‘해체라인‘에서 간을 걸고 내장을 뜯어내며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도축노동자들이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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