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은 행정가로서는 무능하지만 정치적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 그는 교육과 언론이 민주주의의 자양분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물리적 위협뿐 아니라 심리적 위협을 능숙하게 활용하는데, 심리적 위협의효과가 훨씬 더 크다. 동물들은 나중에 사실상 그의 인질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장면은 그렇게 인질이 된 민중이 스스로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대목이다. 젊은 돼지들의 발언을 막는 것은 양들이다. 양들은 외친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그 선량하고 이상적인, 동시에 얄팍하고 선정적인 구호가 회의를 중단시키고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막는다. 모든 구호가 그런 위험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사회, 각론이 부실한사회, 대신 맹목적인 열성 지지자와 그럴싸한 구호와 선정적인 음모론이 넘치는 사회를 진심으로 염려한다. 그런 사회는 전체주의로 가는 내리막길에 있다. 여기서 지금의 한국 현실을 떠올리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리라. 오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예언자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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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품을 많이 들여서 캠페인을 하면 ‘면적‘이라는 단어를 몇십 년쯤 뒤에는 안 쓰게 될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이 뭔지 난 잘 모르겠고, 그럴 바에야 같은 노력으로 한국어의 다른 부분을 개선하는 게 훨씬 더 필요하다고 본다. 상대를 서로 존중하는 두 사람이 쓸 수 있는 이인칭 대명사를 개발한다든가 일제강점기는 삼십오 년이었는데, 해방이 된 지는 칠십 년이지났다. 이제 남은 일본어 투는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흡수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칠십 년간의 언어순화 운동이 효과적이었다면 그 정도 한 걸로 충분하고, 그게 별 효과가 없었다면 앞으로 더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납득‘ ‘내역‘ ‘당혹‘을 정말 ‘이해‘ ‘명세‘ ‘당황‘으로 바꿔 써야 하나? 양쪽 모두를 우리말로 품으면 안 될까? ‘단말기‘가 ‘끝장치‘보다 더 자연스럽지 않나? ‘공수표‘는 ‘부도수표‘와 다른 뜻이지 않나? 내 생각에는 이제 ‘몸뻬‘나 ‘나가리‘ ‘노가다‘도 고유의 어감을 가진 우리말 같다. ‘일바지‘ ‘유찰‘ ‘노동자‘와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찹쌀떡‘과 다른 ‘모찌떡‘도 물론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우리가 일본에게 지배당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어 투 용어는 우리말에 많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니까. 문화도 비슷하고. 그런 나라의 말이 한국어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자연스럽다.
금기는 콤플렉스의 반영이다. 이제 우리가 콤플렉스와 금기를 함께 떨쳐버릴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 P287

최근 몇 년 새 의미가 확장되면서 크게 유행한 ‘꼰대‘라는 말은 어떨까. 한국은 유교문화와 권위주의 분위기가 여전히 강한나라이고, 실력도 논리도 예의도 없이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맞서는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는단어는 좋은 무기가 된다. 어지간한 중장년은 꼰대라는 비판을마음 깊이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오남용된다.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직급이 위라면, 그리고 그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면, 너무나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다. 모든 충고와 조언, 지적, 비판에 대해 "꼰대질하지 마세요"라고 함으로써 나이든 상대를 몰아세울 수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이 젊은 사람들의 발언권을 뺏고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막는 것과 똑같다.
역설적이게도 생각이 깊은 이들일수록 ‘꼰대‘나 ‘싸가지‘ 같은 공격을 두려워해 말을 삼가고, 아집으로 똘똘 뭉친 어리석은 이들일수록 그런 자기검열에 관심이 없다. 밭에 있어야 할 좋은곤충은 말려 죽이고 나쁜 벌레는 점점 더 독하게 만드는, 부작용 많은 살충제 같은 말들 아닐까. 정중한 대화와 토론을 북돋는 거름 같은 언어는 없을까. - P303

그런데 그렇게 첨삭 지도를 받으면 글쓰기가 나아질까? 글쓰기 훈련의 왕도는 첨삭 지도일까? 나는 글을 잘 쓰는 데 있어서 논리력이나 어휘력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을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 앞에, 사회에 내보이겠다는 각오다. 글을 쓰려면 결연해져야 한다.
애초에 말과 글의 속성이 다르다. 축음기, 라디오, 확성기, 전화가 발명되기 전을 떠올려보자. 말은 내 앞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 듣는 이가 수백 명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말하기는 대부분 한 방향 웅변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쌍방향 대화였다.
반면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도 글쓰기는 자기 앞에 있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행위였다. 읽는 이는 한 명일 수도 있지만 수만 명일 수도 있었다. 내가 만날 일이 없는 먼 나라 사람, 동시대인이 아닌 후세인들도 내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글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인이 된다. ‘보편 독자‘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 P306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눌수록 논의가 점점 더 죽음보다는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 죽음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때까지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였다. 그것은 곧 존엄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이 됐다. 어디까지 버티겠느냐, 어떤 것을 양보하지 못하느냐에 답하다보니 막연하던 생각이점점 모양새를 갖춰갔다.
내게 있어 인간의 존엄함이란, 의미와 기품을 말하는 듯하다. 어느 정도 자존심이나 통제력과 겹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상처투성이인 승리나 절대적인 결정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상실, 하락, 불가사의는 인생에서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다만 그 순간 도움을 주는이와 받는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존엄성은 그런 품위와 관련이 있다.
한 단어로 줄이라면 ‘우아함‘이라고 표현하겠다. 인간은 존엄하다. 내게 있어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우아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우아해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인간다운 사회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해 우아함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때 복지수당의 액수만큼이나 그 돈을 전달하는 방식도 신경써야 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존엄한 사회‘다. - P315

아마 그는 여러 정치세력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하지 않을것이다. 평생 약자의 편이었던 그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청년 구직자, 빈곤노인, 여성, 성소수자의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친일 수구 냉전 세력 척결‘ 같은 말을 입에 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성장률 몇 퍼센트와 같은 약속을 듣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 슬퍼하는 이가 복이 있다며, 그저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며 우리가 하는 그 비판으로 우리 자신이 비판을 받을 테니 남 비판하지 말고 먼저 세상의 소금이 되라며. 그러면 우리는 다시 격분하리라. 개혁 대상은 늘 내가 아니라 남이어야 하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꼬마전구와 달콤한 캐럴과 아기 예수 인형에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힘이다. 그리하여 성탄절 아침에는 일개 세속주의자도, 우리가 산상수훈의 한 구절 정도는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냘픈 희망을 품는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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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현실은 깊고 쓸쓸한 밤, 그리고 영원히 날이 밝지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암흑일 뿐이다. 꿈을 통해 칙칙한 밤을 잊으려고 하는 만큼, 그들에게는 과거의 낮뿐 아니라 내일의 낮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현재의 밤을 제대로 응시할 용기가 이미 이 네 사람에게서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모든 가족은 마침내 ‘밤으로의 긴 여로‘에 합류하게 된다. 꿈이 꿈을 증폭시키고, 밤이 밤을 더 키우는 꼴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이들 가족에게 더 이상 환한 낮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질 것 같다는 느낌, 이건 나만의 생각일까? 더 비극적인것은 이 음울한 가족 이야기가 유진 오닐 본인의 내밀한 가족사를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옳다면, 유진 오닐의 작품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절절한 노력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 P224

<노르웨이의 숲>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방황하는 두 남녀를 통해 저마다 상실의 아픔을 이겨 나가는 젊은이들의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내 젊음의 기능 일부가 완전하고도 영원히 망가져 버린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뚜렷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지, 그것은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는 도피의 세계를 찾는 영혼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야.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이런 점에서 외부 세계와 이곳은 완전히 달라. 외부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뒤틀렸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뒤틀림이야말로 존재의 조건이야, 인디언이 머리에 자기 부족을 상징하는 깃털을 꽂듯이 우리는 뒤틀림을 끌어안고 있어,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는 거야. - P245

어쩌면 노인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노쇠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과거 젊었을 때, 이미 되찾을 수 없는 영광이었으니까 말이다. 노인이 바란 것은 모든 사람들의 찬탄이 아니라, 오직 한사람,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지했던 소년의 찬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노인이 원했던 것은 이미 노인이 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빛나는 영광이었던 것이다. 아마 앞으로 자신과 함께 배를 타겠다는 소년의 말만으로 우리 늙은 어부는 충분히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를 아련하게 한다.

길 위쪽의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노인을 다시 떠날 것이다. 지금 소년은 어느 늙은 어부의 마지막 영광을 보고 있는 셈이니까. - P264

그렇지만 영광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다른 사람에게 당할 멸시나 경멸에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니까 영광의 자리에 이른 사람들은 치욕에서 가장 멀리 있다는 느낌 때문에 안도하는 것이고, 치욕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광의 정점에서 허무하게 굴러 떨어져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권력이나 자본이 항상 상벌의 논리로 우리를 유혹할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영광을 추구하고 치욕을 멀리하려는 욕망이 있기때문이다. 사실 권력과 자본은 유년시절부터 몸서리쳐지는 치욕의 경험을 선사해서 우리에게 치욕을 겪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심을 각인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권력과 자본은 진정한 영광의 자리를 오직 한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도록 세팅해 놓았다. 권력의 해묵은 공식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 소수는 반드시 다수를 깨알처럼 분리시키고 분열시켜야만 한다. - P266

감사(gratia) 또는 사은(gratitudo)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사랑의 노력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것은, 감사의 감정에는 분명 사랑이라는 열정적인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사의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식힐 수 있다. 아니, 식히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서둘러 상대방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지도 모른다. 서로 알고는 있지만 고백할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마무리될 때, 어느 커플이든 그제야 애잔하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나랑 함께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 P272

발렌틴은 이성주의자답게 사랑마저도 자신의 이성과 생각대로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적인 감성이나 행동을 부정한 채로 말이다. 바로 이것이 몰리나가 이별을 준비하면서 감사의 말만 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만일 발렌틴이 더 민감했었다면, 자신도 몰리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키스를 소원했던 몰리나, 거미여인 몰리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그 마지막 순간에.
어쩌면 발렌틴은 몰리나에게서 만날 수 없는 애인 마르타의 흔적을 찾아 그것을 사랑했는지도, 혹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몰리나는 발렌틴을 사랑했고 발렌틴도 몰리나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상대방을 통해 자신이 완전해진다는 느낌, 그 행복의 느낌을 두 사람 모두 공유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은 생각이나 말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속적인 행동 속에서만 드러나는 법이다. 두 사람은 지금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사랑의 힘이 아니라면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감옥에서 나온 몰리나는 발렌틴의 부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발렌틴을 만나지 않았다면 생길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이제 외롭게 감방에 남아 있던 발렌틴에게는 정부의 가혹한 고문과 심문이 가해졌다. 발렌틴이 약물에 취해 있을 때 마르타의 이름을 언급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몰리나의 강한 흔적을 느끼게 된다.
몰리나랑 있을 때 마르타를 떠올렸건만, 발렌틴은 지금 마르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몰리나를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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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녀석들은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해. 나는 녀석들한테 말했어. 리즈를 가만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내가 영국을 떠난 순간부터 아니, 훨씬 전,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뒤처리를 한 게 분명해. 빚을 갚아주고, 식료품 가게 주인과 합의하고, 집주인한테 밀린 방세를 치르고, 무엇보다도 리즈 문제를 해결했어. 그건미친 짓이고, 생각도 못한 짓이야.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랬을까? 피들러를 죽이려고? 자기네 첩보원을 죽이려고? 자신들의 공작을 방해하려고? 스마일리 개인의 생각이었을까? 스마일리가 알량한 양심 때문에 저지른 짓일까? 이렇게 된이상 내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야. 리즈와 피들러를 이 사건에서 떼어 놓고 나 혼자 책임을 지는 거지. 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쫓겨난 몸이 아닌가. 피들러를 구할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리즈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어.
도대체 놈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아냈지? 그날 오후스마일리의 집에 갈 때 절대로 미행당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는데, 그리고 돈 - 내가 본부에서 돈을 횡령했다는 이야기를 놈들은 어디서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건 오로지 내부용으로 꾸며낸 이야기였는데.. 그런데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당혹감과 분노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교수대로 다가가는 사형수처럼 뻣뻣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통로를 걸어갔다. - P282

어쨌든 그들이 이 공작을 생각해 냈소. 한 사람이 미끼가되어서 제 발로 덫에 걸려들자. 관리관은 그렇게 말했소. 덫에걸린 시늉을 하면서 상대가 미끼를 무는지 보자고 그후우리는 철저히 계획을 세웠소. 이른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방법이었지요. 스마일리는 그걸 <귀납법>이라고 불렀소. 만약 문트가 우리 공작원이라면 우리는 문트에게 어떻게 공작금을 지불했을까. 파일은 어떻게 보일까 등등. 피터는 1, 2년전에 어떤 아랍인이 동독 보위부의 내부 조직을 우리한테 팔려고 했지만 우리가 단호히 거절한 일을 기억해 냈소. 나중에 우리는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았지요. 피터는 그 실수를 역이용하자고 제안했소.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랍인의 제의를 거절한 척하자고. 그건 아주 절묘한 착상이었소.
그다음은 짐작할 수 있을 거요. 나는 엉망으로 무너지는체했소. 술에 절고 빚을 지고, 공금을 횡령하고••••• 모두 앞뒤가 맞아떨어졌소. 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경리과의 엘시가맡았고, 그 밖에도 한두 명이 거들었소. 그들은 그 일을 아주잘해 냈지요.」 리머스는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 P286

그는 불빛을 손으로 막으며 장벽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리즈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금속 쐐기를 다시 내려가 리즈옆에 섰다. 그녀는 죽어 있었다. 얼굴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검은 머리는 비를 막아주려는 듯 뺨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사격을 가하기 전에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마침내 두세 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그는 투우장에 끌려나온 눈먼 황소처럼 주위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쓰러질 때 그는 보았다. 대형 트럭 사이에 짓눌린 작은 자동차를, 그리고 유리창을 통해 쾌활하게 손을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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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피들러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말했다.
「문트가 나 자신 때문에, 나에 대한 증오나 질투 때문에 나를 괴롭혔다면 괜찮았을 겁니다. 어쨌든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을 겁니다. 그걸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랫동안 그 고통을 당하면서 줄곧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건 자연이 알아서 할 일이야. 그런데 고통의 강도는 바이올린 주자가 E현에 도달하듯 계속 올라갑니다. 더 이상 올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계속 올라갑니다. 고통은 그런 거예요. 올라가고 또 올라가지요. 자연이 하는 일이라고는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한테 듣기를 가르치듯 이 소리에서 저 소리로 한 단계씩 당신을 끌어올리는 것뿐입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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