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녀석들은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해. 나는 녀석들한테 말했어. 리즈를 가만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내가 영국을 떠난 순간부터 아니, 훨씬 전,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뒤처리를 한 게 분명해. 빚을 갚아주고, 식료품 가게 주인과 합의하고, 집주인한테 밀린 방세를 치르고, 무엇보다도 리즈 문제를 해결했어. 그건미친 짓이고, 생각도 못한 짓이야.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랬을까? 피들러를 죽이려고? 자기네 첩보원을 죽이려고? 자신들의 공작을 방해하려고? 스마일리 개인의 생각이었을까? 스마일리가 알량한 양심 때문에 저지른 짓일까? 이렇게 된이상 내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야. 리즈와 피들러를 이 사건에서 떼어 놓고 나 혼자 책임을 지는 거지. 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쫓겨난 몸이 아닌가. 피들러를 구할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리즈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어. 도대체 놈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아냈지? 그날 오후스마일리의 집에 갈 때 절대로 미행당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는데, 그리고 돈 - 내가 본부에서 돈을 횡령했다는 이야기를 놈들은 어디서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건 오로지 내부용으로 꾸며낸 이야기였는데.. 그런데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당혹감과 분노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교수대로 다가가는 사형수처럼 뻣뻣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통로를 걸어갔다. - P282
어쨌든 그들이 이 공작을 생각해 냈소. 한 사람이 미끼가되어서 제 발로 덫에 걸려들자. 관리관은 그렇게 말했소. 덫에걸린 시늉을 하면서 상대가 미끼를 무는지 보자고 그후우리는 철저히 계획을 세웠소. 이른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방법이었지요. 스마일리는 그걸 <귀납법>이라고 불렀소. 만약 문트가 우리 공작원이라면 우리는 문트에게 어떻게 공작금을 지불했을까. 파일은 어떻게 보일까 등등. 피터는 1, 2년전에 어떤 아랍인이 동독 보위부의 내부 조직을 우리한테 팔려고 했지만 우리가 단호히 거절한 일을 기억해 냈소. 나중에 우리는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았지요. 피터는 그 실수를 역이용하자고 제안했소.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랍인의 제의를 거절한 척하자고. 그건 아주 절묘한 착상이었소. 그다음은 짐작할 수 있을 거요. 나는 엉망으로 무너지는체했소. 술에 절고 빚을 지고, 공금을 횡령하고••••• 모두 앞뒤가 맞아떨어졌소. 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경리과의 엘시가맡았고, 그 밖에도 한두 명이 거들었소. 그들은 그 일을 아주잘해 냈지요.」 리머스는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 P286
그는 불빛을 손으로 막으며 장벽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 리즈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금속 쐐기를 다시 내려가 리즈옆에 섰다. 그녀는 죽어 있었다. 얼굴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검은 머리는 비를 막아주려는 듯 뺨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사격을 가하기 전에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마침내 두세 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그는 투우장에 끌려나온 눈먼 황소처럼 주위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쓰러질 때 그는 보았다. 대형 트럭 사이에 짓눌린 작은 자동차를, 그리고 유리창을 통해 쾌활하게 손을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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