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퍼센트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은 활동량이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다. 열 시간 정도를 털을 고르거나 쉬고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를 잔다. 유인원을 연구한 학자들은 궁금했다. 어째서 이들은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데 인간과 같은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을까? 동물원의 침팬지조차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매일같이 엄청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가? 유인원과 달리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걷고 뛰었다.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하루 평균 9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를 이동하는데, 이는 평균적인 미국인이 일주일 동안 걷거나 뛰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 P87

2007년에 하버드대 고고학과와 유타대 생물학과 합동 연구팀은 원시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뛰어서 쫓아가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밝혀내 BBC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초기 인류가 어떤 존재였을지, 우리가 어떤 이들로부터 진화해왔을지를 알 수 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 P89

김현경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한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민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구한말 진주에선 그들의 자식들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자 양반과 상민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일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진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양반이나 상민과 같지만, 그들은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소도 주어지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칫 나무에 목이 매달릴 수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과 20세기 초 나치 치하의 유대인과 1960년대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환대는커녕, 공적 장소에서 배제되거나 추방당했다. 오직 표지(‘다윗의 별‘이나 유니폼)로 개별성이 지워진 이들만 허용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사상과 윤리적 자아를 갖추어도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은 저자인 샤미소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싶다면 말이지. - P126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매클리시는 이어서 우주의 이 끝 모를 차가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형제 brothers, 서로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라고 부연했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 P136

 당황하는 그녀 대신 현지인 할머니가 버스요금을 내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P147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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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년 전에는 자식이 사실상 자산이었고 부모는 죽이는 짓을 제외하고는 자식을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 그럼에도 부모는 여전히 자녀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언제 자야 하는지 등을 결정한다. 육체적인 통일성에 관련된 결정도 온전히 부모의 권한일까? 인공와우이식수술에 반대하는 일부 반대자들은 열여덟 살이 넘으면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신경학적 쟁점들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열여덟 살이 된 청각 장애인은 단순히 청각 장애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건청인으로 살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세상 경험이 청각 장애인으로서 규정되어 왔음에도 기존의 경험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P193

건청인 세상에서 자라고 구화법 교육을 받은 청각 장애인 남성 조시스윌러는 뒤늦게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그 과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했다. 그는 보청기와 그 밖의 다른 보조 장치들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보청기를 사용하면 말 속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듣는 그대로만 이해하게 된다. 마치 정교한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대학가술집에 들어간 고등학교 2학년생처럼 나는 사람들을 속여서 내가 위장하고 싶은 사람처럼 믿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상태, 즉 청각 장애인과 건청인의 세계양쪽 모두를 기만하는 거짓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건청인이다. 그럼 나 자신에게 나는 어느 쪽일까? 사람들이 나를 건청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넘어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또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그런 문제는 나에게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점점 미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똑같은 짓을 계속 반복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윌러가 갈로뎃 대학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에 맞추어 학교 신문사에서는 복용 즉시 청능이 생기는 알약이 있다면 그 약을 먹을 것인지 학생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대다수 학생들이 먹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윌러는 <하지만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알고 싶었다.
우리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썼다. 몇 년 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짧은 자전적인 글을 올렸다. 2005년에 조시라는 사람이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자신이 ASL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어적인 태도와 불신을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의 동질성으로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 P200

1960년대 초 미국에는 유행성 풍진이 돌았고 그 결과 청각 장애 아동이 급증했다. 이제 중년이 된 이 세대는 <풍진 급등 세대>라고 불린다. 140오늘날에는 백신이 대부분의 잠재적인 어머니들을 풍진으로부터 보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을 풍진과 뇌막염으로부터 보호한다. 청각 장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와우이식수술은 청각 장애 아동 중 대다수가 건청인 세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 홀리벅은 렉싱턴 졸업식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지금이 청각 장애인으로 살기에 최고의 시기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각 장애인이 감소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청각장애인으로 살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정작 청각 장애인의 숫자는 점점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청각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성인 청각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이제는 자녀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이 지금은 사라진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녀에게 인공와우이식수술을 시키지 않는 부모는 점점 쇠퇴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농문화 운동은 스토키가 1960년에 언어로서 ASL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나서야 오늘날의 형태로 탄생했다. 농문화 운동은 1984년에 인공와우이식수술이 FDA의 승인을 받았을 때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패트릭 부드로는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자신의 문제에 관한 해답을 찾고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 세상은 청각 장애인과 어떻게 교류하는가 같은 문제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의 해답을 찾고 있을 뿐인데 이제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팔머는 우생학과 다문화주의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P204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동화(同化) 대 소외에 대한 아울러 인간을 표준화하는 행위가 어디까지 바람직한 진화의 징후인지에 대한, 어디까지가 회반죽으로 볼품없이 위장한 우생학인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논의를 위해 사실상 연결 장치 역할을 한다. 난청 연구 재단의 대표잭 횔러Jack Wheeler는 <우리는 미국 신생아들의 청각 장애를 정복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신생아에게 청능 검사를 실시하고 부모들을 정치적인 힘으로 조직해서, 부모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아기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매년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1만 2천 명의 신생아들은 자신을 건청인으로 인식하는 1만 2천 명의 아기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시합은 계속된다. 한 팀은 청각 장애인을 건청인으로 만들려는의사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팀은 농문화의 주창자들이다. 그들은 비전을 쫓는 이상주의자들이다. 하지만 각 팀은 상대 팀을 무의미한 집단으로 만들 것이다. 농문화는 점점 강해지면서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 영화 「청각 장애인의 눈으로Through Deaf Eyes를 공동 감독한 로런스 호트와 다이앤 게리는 <청각장애는 거의 언제나 한 세대만큼의 역사를 갖는다>고 단언했다. 한편 일부학자들은 농문화를 전향자들의 문화>라고 지칭하고 있다.  - P208

아버지 시대의 문화는 빈곤했다. 나의 아버지는 브롱크스에 있는 공동주택에서 자랐지만 전문직 계층으로 성장했고, 남부럽지 않게 나와 내 형을 길렀다. 그럼에도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때때로 그리워했으며 우리에게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누구의 현실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태어났고 근대에 들어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막노동을 하고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그 세상은 이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자라온 윤택한 미국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재키 로스는 내게 오늘날의 하시디즘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있어야 안심해요. 예컨대 금요일 밤에 안식일 모임을 갖고 유대교회당에 모이죠. 그들만의 학교도 있어요. 그들만의 전통도 있어요. 뭐든지 그들만의 고유한 것을 가졌어요. 그런데도 굳이 귀찮게 다른 세상을 신경 쓸 이유가 있겠어요? 농인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농인 커뮤니티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으며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청각 장애인들은 갈수록 주변인이 되겠죠.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런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야해요.」 - P210

건청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ASL의 유행을 지켜보면서 인권 운동가 캐럴 패든이 물었다. 「상호 대립적인 두 가지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즉 청각 장애를 근절하려는 욕구와, 독특한 인간 언어의창조와 유지라는 최고로 빛나는 결과물을 찬양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욕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신은 농문화를 존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 자식이 농문화의 일원이 되는 것은 반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은 위선일 뿐이다. 누구나 청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순수한 상태로 유지되는 농문화는 모든 사람이 마치 18세기라도 되는 양 살아가는 민속촌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청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통점을 갖게 될까? 그들의 언어가 여전히 사용될까? 물론이다. 예컨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시대에도 양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듯이, 극세사가 개발된 마당에도 여전히 면직물을 즐겨 입듯이, 텔레비전이 있음에도 독서를하듯이 청각 장애인의 언어도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우리는 농문화가우리에게 준 것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농문화의 어느 부분이 귀중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술하는 작업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의학적 진보를 위한 수직적 요구는 수평적인 사회를 필연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 P212

부모는 왜소증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간주하여 자녀와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여기저기 소인 모임에 참석하고, 자녀의 삶에 다른 소인들을 끌어들이고, 전등 스위치를 키가 작은 사람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달고, 그들이 요리하기 편하도록 주방을 개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신을주된 정체성으로 인식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떤환경에 갇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설령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내재적인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자신과 종교나 민족성, 성적 취향, 정치적인 신념, 취미, 사회 경제적 지위 등을 공유하는 사람을 위주로 교제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인으로서 완전한 삶을 실현할 만큼 소인들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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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 『삼십육계』의마지막 부분은 「패전계」로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은 약할 때의 방책이 담겨 있다. 서른여섯 개 계책 중에 서른여섯번째, 즉 마지막 계책은 ‘주위상走爲上‘으로, 불리할 때는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흔히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온 것이다.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개조하고 통제하며 발전해왔고,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기계발서들은 우리에게 주변의 문제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때로는 내가 강하고, 때로는 적이 강하다. 적의 세력이 나를 압도할 때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을 써야 한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알 것이다. - P67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다르다고 말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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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는 <청각 장애 아동을 두려움에 떨게 놔두지 않으려면 그 부모가 먼저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해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않도록 하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 P155

구화법주의와 수화법주의 간의 논쟁과, 수화를 이용해서 가르칠 경우에는 전적으로 수화만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수화와 구어를 병행하여교사들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수화를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통합적 의사소통>이나 <동시 의사소통> 같은 기술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이런 통합적 의사소통이나 동시 의사소통 같은방법은 청각 장애 아동에게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제공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서로 무관한 문법과 통사론을 통합하려는 시도가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구어와 수화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수화를 하면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어로 글을 적으면서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어는 단어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발화되는 순차적인 언어다. 청자의 단기 기억력은 한 문장으로 연결된 단어들을기억하고 그 단어들의 상호 관계에서 의미를 추출한다. 한편, 수화는 동시언어라서 개별적인 각각의 수화가 합쳐져서 복합적인 의미를 만든다. 예를 들어, 하나의 복잡하고 유동적인 동작만으로 그는 이스트 코스트에서 웨스트 코스트로 이사했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모든 수화에는 손의 형태,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몸에 밀착하거나 근접한 위치, 방향을 가리키는 움직임이 포함된다. 여기에 더해서 얼굴 표정은 감정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수화 동작들에 대해서 구조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표정과 수화의 조합은 단기 시각 기억만 이용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인데 이는 단기 시각 기억이 청각 기억보다 적은 숫자의 별개 이미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화로 먼저 <그는>, 그다음에 <이스트 코스트>, 그다음에 <에서> 등의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면 물리적인 노력이 너무 많아질 뿐더러 논리도 없어질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을 동시에발음해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뒤죽박죽된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도출될 것이다. 따라서 영어를 말로 하듯이 단어 하나하나씩 표현하는, 이를테면 <정확한 수화 영어>나 <피긴 수화 영어>, <개념상 정확한 수화 영어>처럼 수화로 암호화된 영어 형태는 대체로 이미 말을 배우고 난 다음에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런 사람들은 구어에 기초한 사고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입장에서는 구어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수화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표현수단으로 적합하지 않은 문법이 직관적으로 이해될 리 만무한 까닭이다. - P156

대부분의 사회에서 청각 장애 관련 쟁점은 언어학적 예외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수화를 공용어로 삼는다는 맥락의 개념에 흥미를 느꼈다. 발리 북쪽에 있는 벵칼라라는 작은 마을에는 선천적인 형태의 청각 장애가250년간 계속 이어져 왔고 전체 인구의 2퍼센트 정도는 항상 청각 장애인이다. 벵칼라의 모든 주민은 청각 장애인과 함께 성장하고, 이 마을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수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건청인과 청각 장애인 간 경험 단절의 폭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좁을 것이다. - P158

 크리스티나 팔머가 말했다. 「우리는 농인 민족성 가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요컨대 건청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다른 농인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거나 농인 커뮤니티에 대해 배우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들의 문화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없어요‘ 구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청각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에게 부담이 된다면, 수화를 사용하기로 하는 결정은 세력 기반의 이동을 초래하여 다른 건청인 가족 구성원에게 이해와 관련해 보다 큰 부담을 지운다. 실제로 부모는 그들 자신이 수화를 배워서 청각 장애가 있는 자식과 항상 서투른 수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니면 아이에게 구화법을 강요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부모는 그 아이가 언제나 서투른 말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익숙한 격언 중 하나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기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화를 당연한 선택으로 여기는 것은 비주류가 주류를, 또는 주류가 비주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어느 한쪽의 비전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행위다. - P175

기업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존스 홉킨스와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연구에 따르면, 기타 청각 장애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과 비교할 때 인공와우이식수술을 받으면 청각 장애 아동 한 명당 평균 5만 3천 달러가 절약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다 복잡한 계산법이 필요하다. 인공와우이식수술을 받더라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고 그 결과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식수술을 받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수화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은 정신적 외상을 유발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느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큼 많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건청인 부모들은 인공와우이식수술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하기 쉽다. 한 어머니가 말했다. 「만약 당신의 아이에게 안경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안경을 해줄 겁니다. 다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족을 해주겠죠. 똑같은 거예요.」 또 한 어머니는 만약 내 딸 도로시 제인이 스무 살이 되어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요컨대 나는 내딸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식수술을 받고 건청인 그룹으로 재분류된 사람들에게는 만약 그들이 장애인이었다면 받게될 혜택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식수술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치료법>이 있음에도 장애를 <선택>했고,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정>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식수술이 존재함으로써 다른 청각 장애인들의 장애 상태가 폄하될 수 있다. - P181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어요. <내게는 청각 장애가 있는 아들한 명이 있고, 내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세 명 더 있어요.>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로리가 나와 함께 노래도 하고 기타도 연주하길 바랍니다. 반대로 로리는 내가 수화를 능숙하게 구사하길 바라죠.
나는 이런 논쟁에서 항상 자녀가 승리해야 하는지, 자녀의 역할은 단지 존재 그 자체인 반면에 부모의 역할은 위기에 잘 대처하는 것이라고 명시된 일종의 문서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밥 오스브링크는 내가 인터뷰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 자긍심도 강하지만 동시에 보다 우울한 듯보였다. 로리는 세 살 때 청능을 잃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부모나 자녀의 인생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밥의 아쉬움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예컨대 한 번은 음악에서 또 한 번은 스포츠에서 아들과 깊은 유대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의 설명이다. "내가 놓쳐 버린 것들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를테면 로리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마치 이해한 것처럼 행동했을 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요.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있었지만정작 무슨 농담이었는지도 몰랐던 거예요. 로리가 청각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을 그 모든 일을 여과 없이 다 겪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내 가슴 한편에는 늘 그로 인한 슬픔이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로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슬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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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건청인은 청각 장애가 청능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청각 장애인은 청각 장애를 청능의 부재가 아니라 청각 장애의 존재로 본다. 농문화는 하나의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며, 언어이면서 미학적특징이고, 신체적인 특징이자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지식이다. 이 문화에서는 건청인의 경우와 달리 몸과 마음의 긴밀한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에게 언어란 단지 혀와 후두의 제한된 구조가 아니라 주요한 여러근육 조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인 까닭이다. 사회 언어학의 초석중 하나인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작고하기 불과 얼마전인 2000년에 윌리엄 스토키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수화가 구어와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어요. 수화의 유효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였죠. 일단 수화의 유효성이 폭넓게 수용되고 나면 우리는 보다 흥미로운 주제, 즉 수화와 구어의 차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수화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과 그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건청인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수있답니다‘ - P119

레이철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선 활동에 참여했고, 언젠가 건청인 세계를 향한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적대감을 발견했다. 「나는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 커뮤니티에 사춘기가 길어지도록 종용하는 무언가가 있다는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사춘기가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방법으로서는 효과적이지만 보다 넓은 세상에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아요」 정치적 성향을 띤 농인 커뮤니티를 곤란해하기는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청각 장애에도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청각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이철이 말했다. 찰리가 자기와 같은 기숙사에 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생각나요. 그 소년은 밤마다 자신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찰리가 그러더군요. <엄마,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게 정말 슬프지 않아요? 그렇죠?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아, 우리가 제대로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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