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년 전에는 자식이 사실상 자산이었고 부모는 죽이는 짓을 제외하고는 자식을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 그럼에도 부모는 여전히 자녀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언제 자야 하는지 등을 결정한다. 육체적인 통일성에 관련된 결정도 온전히 부모의 권한일까? 인공와우이식수술에 반대하는 일부 반대자들은 열여덟 살이 넘으면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신경학적 쟁점들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열여덟 살이 된 청각 장애인은 단순히 청각 장애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건청인으로 살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세상 경험이 청각 장애인으로서 규정되어 왔음에도 기존의 경험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P193
건청인 세상에서 자라고 구화법 교육을 받은 청각 장애인 남성 조시스윌러는 뒤늦게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그 과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했다. 그는 보청기와 그 밖의 다른 보조 장치들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보청기를 사용하면 말 속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듣는 그대로만 이해하게 된다. 마치 정교한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대학가술집에 들어간 고등학교 2학년생처럼 나는 사람들을 속여서 내가 위장하고 싶은 사람처럼 믿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상태, 즉 청각 장애인과 건청인의 세계양쪽 모두를 기만하는 거짓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건청인이다. 그럼 나 자신에게 나는 어느 쪽일까? 사람들이 나를 건청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넘어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또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그런 문제는 나에게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점점 미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똑같은 짓을 계속 반복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윌러가 갈로뎃 대학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에 맞추어 학교 신문사에서는 복용 즉시 청능이 생기는 알약이 있다면 그 약을 먹을 것인지 학생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대다수 학생들이 먹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윌러는 <하지만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알고 싶었다. 우리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썼다. 몇 년 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짧은 자전적인 글을 올렸다. 2005년에 조시라는 사람이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자신이 ASL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어적인 태도와 불신을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의 동질성으로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 P200
1960년대 초 미국에는 유행성 풍진이 돌았고 그 결과 청각 장애 아동이 급증했다. 이제 중년이 된 이 세대는 <풍진 급등 세대>라고 불린다. 140오늘날에는 백신이 대부분의 잠재적인 어머니들을 풍진으로부터 보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을 풍진과 뇌막염으로부터 보호한다. 청각 장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와우이식수술은 청각 장애 아동 중 대다수가 건청인 세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 홀리벅은 렉싱턴 졸업식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지금이 청각 장애인으로 살기에 최고의 시기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각 장애인이 감소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청각장애인으로 살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정작 청각 장애인의 숫자는 점점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청각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성인 청각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이제는 자녀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이 지금은 사라진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녀에게 인공와우이식수술을 시키지 않는 부모는 점점 쇠퇴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농문화 운동은 스토키가 1960년에 언어로서 ASL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나서야 오늘날의 형태로 탄생했다. 농문화 운동은 1984년에 인공와우이식수술이 FDA의 승인을 받았을 때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패트릭 부드로는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자신의 문제에 관한 해답을 찾고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 세상은 청각 장애인과 어떻게 교류하는가 같은 문제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의 해답을 찾고 있을 뿐인데 이제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팔머는 우생학과 다문화주의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P204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동화(同化) 대 소외에 대한 아울러 인간을 표준화하는 행위가 어디까지 바람직한 진화의 징후인지에 대한, 어디까지가 회반죽으로 볼품없이 위장한 우생학인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논의를 위해 사실상 연결 장치 역할을 한다. 난청 연구 재단의 대표잭 횔러Jack Wheeler는 <우리는 미국 신생아들의 청각 장애를 정복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신생아에게 청능 검사를 실시하고 부모들을 정치적인 힘으로 조직해서, 부모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아기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매년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1만 2천 명의 신생아들은 자신을 건청인으로 인식하는 1만 2천 명의 아기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시합은 계속된다. 한 팀은 청각 장애인을 건청인으로 만들려는의사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팀은 농문화의 주창자들이다. 그들은 비전을 쫓는 이상주의자들이다. 하지만 각 팀은 상대 팀을 무의미한 집단으로 만들 것이다. 농문화는 점점 강해지면서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 영화 「청각 장애인의 눈으로Through Deaf Eyes를 공동 감독한 로런스 호트와 다이앤 게리는 <청각장애는 거의 언제나 한 세대만큼의 역사를 갖는다>고 단언했다. 한편 일부학자들은 농문화를 전향자들의 문화>라고 지칭하고 있다. - P208
아버지 시대의 문화는 빈곤했다. 나의 아버지는 브롱크스에 있는 공동주택에서 자랐지만 전문직 계층으로 성장했고, 남부럽지 않게 나와 내 형을 길렀다. 그럼에도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때때로 그리워했으며 우리에게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누구의 현실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태어났고 근대에 들어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막노동을 하고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그 세상은 이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자라온 윤택한 미국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재키 로스는 내게 오늘날의 하시디즘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있어야 안심해요. 예컨대 금요일 밤에 안식일 모임을 갖고 유대교회당에 모이죠. 그들만의 학교도 있어요. 그들만의 전통도 있어요. 뭐든지 그들만의 고유한 것을 가졌어요. 그런데도 굳이 귀찮게 다른 세상을 신경 쓸 이유가 있겠어요? 농인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농인 커뮤니티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으며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청각 장애인들은 갈수록 주변인이 되겠죠.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런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야해요.」 - P210
건청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ASL의 유행을 지켜보면서 인권 운동가 캐럴 패든이 물었다. 「상호 대립적인 두 가지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즉 청각 장애를 근절하려는 욕구와, 독특한 인간 언어의창조와 유지라는 최고로 빛나는 결과물을 찬양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욕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신은 농문화를 존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 자식이 농문화의 일원이 되는 것은 반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은 위선일 뿐이다. 누구나 청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순수한 상태로 유지되는 농문화는 모든 사람이 마치 18세기라도 되는 양 살아가는 민속촌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청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통점을 갖게 될까? 그들의 언어가 여전히 사용될까? 물론이다. 예컨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시대에도 양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듯이, 극세사가 개발된 마당에도 여전히 면직물을 즐겨 입듯이, 텔레비전이 있음에도 독서를하듯이 청각 장애인의 언어도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우리는 농문화가우리에게 준 것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농문화의 어느 부분이 귀중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술하는 작업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의학적 진보를 위한 수직적 요구는 수평적인 사회를 필연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 P212
부모는 왜소증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간주하여 자녀와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여기저기 소인 모임에 참석하고, 자녀의 삶에 다른 소인들을 끌어들이고, 전등 스위치를 키가 작은 사람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달고, 그들이 요리하기 편하도록 주방을 개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신을주된 정체성으로 인식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떤환경에 갇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설령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내재적인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자신과 종교나 민족성, 성적 취향, 정치적인 신념, 취미, 사회 경제적 지위 등을 공유하는 사람을 위주로 교제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인으로서 완전한 삶을 실현할 만큼 소인들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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