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퍼센트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은 활동량이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다. 열 시간 정도를 털을 고르거나 쉬고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를 잔다. 유인원을 연구한 학자들은 궁금했다. 어째서 이들은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데 인간과 같은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을까? 동물원의 침팬지조차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매일같이 엄청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가? 유인원과 달리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걷고 뛰었다.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하루 평균 9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를 이동하는데, 이는 평균적인 미국인이 일주일 동안 걷거나 뛰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 P87
2007년에 하버드대 고고학과와 유타대 생물학과 합동 연구팀은 원시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뛰어서 쫓아가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밝혀내 BBC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초기 인류가 어떤 존재였을지, 우리가 어떤 이들로부터 진화해왔을지를 알 수 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 P89
김현경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한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민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구한말 진주에선 그들의 자식들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자 양반과 상민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일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진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양반이나 상민과 같지만, 그들은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소도 주어지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칫 나무에 목이 매달릴 수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과 20세기 초 나치 치하의 유대인과 1960년대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환대는커녕, 공적 장소에서 배제되거나 추방당했다. 오직 표지(‘다윗의 별‘이나 유니폼)로 개별성이 지워진 이들만 허용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사상과 윤리적 자아를 갖추어도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은 저자인 샤미소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싶다면 말이지. - P126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매클리시는 이어서 우주의 이 끝 모를 차가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형제 brothers, 서로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라고 부연했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 P136
당황하는 그녀 대신 현지인 할머니가 버스요금을 내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P147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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