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31년으로, 당시 홍콩에서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이 발병, 확산되고 이를 조류인플루엔자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3월 18일자 경향신문 기사는 ‘지구촌 괴질 비상‘이라는 제목으로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를 날렸고 4월이 되자, 이내 이 괴질은 ‘조류독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사실 ‘괴질‘이라는 것도 쉽게 쓰면 안 되는 단어이지만, 독자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는 괴질 같은 어감의 용어가 제격이다.
2003년 4월 4일자 한국일보에서는 ‘괴질‘이라는 용어사용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감염 전문의 최강원 교수의 인터뷰를 기사로 실었다.

"괴질이라는 용어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인도 모르는 이상야릇한 병, 걸리기만 하면 죽을병이라는 공포감에 쏙믿음만 키워줄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는 해야겠지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 이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괴질‘로 불렸다. 홍콩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 2003년 2월 21일경이었다. 약한 달 후 이 병의 명칭은 ‘괴질‘로 변경된다. 이렇게 원인 미상의 폐렴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처음에 조류인플루엔자로 불리다가 괴질을거쳐 ‘급성중증호흡기 증후군‘, 또는 ‘사스SARS‘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사스라는 정식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이 바이러스는 계속 조류인플루엔자와 연관 지으며 괴질의 원인을 조류인플루엔자에서 찾고자하는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감염 증상이 비슷한데다, 1997년도 홍콩의 조류인플루엔자 인간 감염 사례가 만든 유추였을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우리 인류가 얼마나 전염병에 민감한지 느낄 수있었다. 지금도 ‘괴질‘이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 속의 좀비가 먼저 떠오른다. 마치 종말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론에겐 아주 달콤한 단어이다. 단독에 목마른 기자들에겐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단어가 없다.
누가 ‘괴질‘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대중의 공포심은 이런 식으로 점점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뉴스를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들의 뇌 속에는 자연스럽게 괴질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연결된다.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가 추가되는 것이다. - P62

 이렇게 공포와 혐오가 커질수록 국민들은 더욱 높은 수준의 방역 수준을 원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정책보다는 신속하게 감염원을 차단하는 ‘살처분‘ 방식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더욱 믿음직한 정책이었을 것이다. 국민의 공포심이 커질수록 살처분의 수요는 올라간다. ‘백신‘이라는 불확실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 P67

"새끼를 죽일 때 어미젖을 물리는데요, 그때 주사를 놔서 죽입니다. 그러면 어미의 커다란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 장면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매일 술을 마셔야 잠을 겨우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현장을 버텨내야 했다. 우리가 자동차 하부 세차를 고민하고 있을 때, 농촌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한 전염병, 바이러스가 이렇게 또 다른 형태로 괴롭히고 있었다. - P70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또 다른 형태로 논쟁의 중심이 됐다. 2010~2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정부는 결국 긴급 백신 투입을 지시한다.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백신 접종으로 전염병을 막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살처분에 지친 국민들에게 당연히 지지받을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백신을 맞은 고기의 유통‘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과연 백신 맞은 고기를 사 먹을까? 어릴 적 우리 집은작은 소 농장을 운영했다. 약 50여 두의 소를 키우면서 때가 되면 주사를 맞는 소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구제역 백신을 맞는 것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백신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고기를 믿고 먹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오염된 고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또한 도시 사람들은 모르는 ‘비가시성‘의 세계였다.
농가의 입장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취재를 나갔다 온 동료의 테이프를 돌려보다가 한 농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방역 담당자들에게 외치는 장면을 보게 됐다.

"백신 맞은 고기를 누가 사 먹어! 농민들은 죽으라는 거야?"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백신도 안 되고 살처분도 안 된다. 우리에게 가축이라는 동물은 이런 존재다. 무엇보다 백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백신과 같은 방법이 있는데 왜 그렇게 끔찍한 살처분을 계속해야만 했을까? 지금은 이 문제에 얽혀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P71

‘과연 사람들은 진짜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은 고기만을 먹고 있을까?"
‘혹시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을 맞고 있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5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가금류(새) 농장에서는 이미 다른 질병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그 접종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고기나 알에 남아 있다는 보고는 전혀 없다고 한다. 다만 우리는 닭들이 이렇게 여러 차례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아니 사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 P74

"개발도상국(후진국)의 경우, 이 바이러스는 감염병의 주기적인 유행엔데믹, endemic입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가축을 죽게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가축은 소셜 파워를 상징하는데, 그걸 잃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유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데 구제역은 그 생산성을 떨어뜨립니다. 메인 이슈는 결국 ‘생산성의 저하‘ 입니다. ... (중략)…선진국에서는 ‘경제적 이슈‘입니다만 후진국에서는 ‘생존(존속)의 이슈‘입니다."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의 통제는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지구상에 있는 바이러스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 공급이 가능한 백신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백신 공급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바이러스는 많은 유형이 있으므로 하나의 백신만으로 모든 구제역 혈청(유형)을 막을 순 없습니다. 영국과 같은 섬나라는 조금 쉬울 수도 있겠지만, 한국과 같이 국경을 접한 나라에서는 어떤 유형의 바이러스가 유입될지 알수 없습니다. 따라서 백신 뱅크 설립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질병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백신은 이렇게 여러 요소를 충족해야 개발할 수 있다. ‘가격‘, ‘보관‘, ‘신속한 진단과 투입‘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백신은 무용지물이다.  - P80

벡터 백신이란 유전자에 백신을 주사해서 닭에게 주입한 후, 어떤 질병 증후군이 보일 때 이 백신을 맞은 가축의 항체를 보고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다. 닭에서 벡터로 쓰이는 바이러스는 뉴캐슬병 바이러스, 전염성 기관염 바이러스, 마렉 바이러스 등이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이미 유전자 조작에 의해 병원성이 제거되고 필요에 따라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 일부를 재조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과학자가 에이즈, 암 등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바이러스 기반의 재조합 벡터 백신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벡터 백신을 사용해 빠른 판단과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점은 서유럽 국가의 생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홍콩은 중국과 인접해 H5N1, H7N9과 같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를 거의 해마다 막아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 P92

"홍콩의 백신 정책은 2002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03년 12월부터 홍콩에 오는 모든 조류에 백신을 접종했고 AI는 오늘날까지(2018년 기준) 2008년 오직 한 농장에서 발발한 사례밖에 없습니다. 그 AI 발발 사례는 항원 장벽이 있는 바이러스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예방 목적의 백신 사용이 효과가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은 아직까지 중국 본토로부터 살아 있는 가금류가 들어오고 있고 또한 철새의 이동도 활발합니다. 또한 중국 본토에는 바이러스가 근절되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중입니다. 따라서 백신 정책은 높은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홍콩이라는 지리적특성 때문에 진행됐습니다. 대부분의 백신을 사용하는 나라는 이미 풍토병이 된 곳에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도 1997년 백신으로 컨트롤하지 않았을 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살처분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가금류 시장이 파괴됐습니다. 하지만 예방적 백신 정책을 사용한 이후에는단 한 건의 감염 사례만 있었는데요. 이때는 농장이나 시장의 가금류에 대해 살처분을 시행했습니다. 물론 발병 사례가 생기면 가금류 살처분이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백신을 통해 이 부담까지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93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다른 종에의 감염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합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백신이 질병의 전파나노출에 대한 상황을 좋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감염돼서 닭이 죽으면 바이러스는 더 빨리 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신은 그런 급성폐사를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방역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백신이 이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가 적게 순환될수록 인간에게 노출될 확률도 낮아지죠. 저는이런 측면에서 백신을 강하게 신뢰합니다. - P94

각 나라마다 질병의 통제에 대한 생각과 여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4년 당시, 방역위원회 소속 모 수의대 교수님께 우리나라에서도 백신을 쓰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살처분으로 막아내는 방법이 최선이며 백신으로 막아내는 방법은 후진국에서나 쓰일 법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백신이 더 과학적인 방법이고 선진국에서나 쓰일 법한 방식이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덮어놓고 무조건 죽이는 방식이 더선진국다운 방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살처분은 훨씬더 많은 비용을 수반하는 정책이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뿐이다.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그렇다.
이런 논리에 사로잡혀 빠른 살처분을 최우선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역 정책이다. 2018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 이런 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강연 내용을 봐도 조류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점, 또한 변이가 활발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현 단계에서는 살처분이 가장 깔끔한 방식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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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얼핏 보아 말투는 천진하고 느슨하며 시시껄렁한 태도는 시러베장단에 호박 국 끓여 먹을 기세이고 가명도 어딘가 미련하게 들리는 데다 지금 하고 나타난 차림새는 사업 실패로 집을 날리고 장롱에 식탁까지 차압당한 뒤 신장이 떼이기 일보 직전인 알코올중독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뜯어보면 은근히 밀알진 얼굴에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며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높으신분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니 명품 양복을 수시로 갈아들인다. 신속 정확 치밀과 같은 방역업자가 기본으로 장착해야할 속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기에 서비스 정신까지 딸려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방역을 완수하기만 하면 된다고생각하는 업자들이 있는 반면, 투우는 사소한 과정 한 단계까지 고객의 필요에 따라 이행한다. 요구 사항이 따로 없는경우는 목표물을 찾아내어 제거하기까지 국내 거주자인 경우 1박 2일 정도면 충분하지만, 귀퉁이를 물그릇에 담가둔수건처럼 작은 징후가 번져나가게 하고 목표물의 영혼을 불안과 초조에 충분히 적신 뒤 그가 온몸의 구멍으로 남김없이 배설물을 쏟아낼 만큼의 공포에 사로잡혀 가능한 한 처참하게 가도록 해달라는 옵션 주문이 들어오면 개중에는모든 손가락을 한 마디씩 끊어서 총 스물여덟 개의 조각을먼저 보내달라거나 팔다리 관절부터 분질러달라는, 깊은 원한의 소산이라고만 하기엔 참으로 번거롭고 정서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주문들도 많았다-그에 필요한 무대를 짜고연출을 하여 최장 석 달 가까이 목표물 주위를 맴돌기도한다. - P36

처음에는 사소한 이변과 의구심 정도였다가 압박감과 고조되는 두려움으로 호흡곤란 지경이 되면 비로소 목표물은 어그러진 일상과 폐허를 목도하게 되고, 목표물이 미쳐버리기 직전 투우는 그 앞에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 목표물이 완전히 미칠 틈을 주지 않도록 그의 정신 공간의 여분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한편 작품에 꽂을 나사를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보다 정확한 견적을 낼 필요가 있는데, 정신이 나간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셈이 되어서 의뢰인의 요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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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밀착을 넘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서로에게 흡착되다시피 한 생면부지의 몸사이에 종잇장만 한 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누군가 입을 열거나 숨을 쉴 때마다 머리 위로 끼얹어지는 고기 누린내와 마늘 냄새 문뱃내에 들숨을 참더라도, 그 냄새가 닷새간의 노동이 끝났음을 알려주기에 안도하는 시간. 과연 내년에도 혹은 다음 달에도, 심지어 당장 다음주에도 이 시간에 전차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존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접어두는 시간. 다음 역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한 무더기의 노동자들-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피로와 고뇌와 얼른 귀가하여 젖은 휴지 같은 몸을 매트리스에 부려놓고 싶다는 갈망 사이로 그녀가 들어선다. - P7

복잡한 장소에서 일 마치고 코너를 돌 때는••••••.
속도를 줄이거나 벽쪽에 붙지 말고 바깥으로 원을 넉넉하게 그리라고 했지. 마주 오던 사람이랑 부딪혀 갖고 있던걸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여기 증거물 있으니다 가져가세요 하게?
그렇게 말하던 이의 표정을 바로 어제인 양 떠올리며 그녀는 집에 닿는 가능한 한 복잡한 경로를 머릿속에 그린다.
이대로 나가 한 블록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나올 테고 거기서 아무 번호나 잡아탄 다음 이곳으로부터 최대한 멀리떨어진 또 다른 노선의 전철역에 내려 굳이 먼 길을 돌아가리라, 최대한의 궤적을 그리며 잔손금과도 같이 펼쳐진 길을 돌아가리라, 몸이 허락하는 한 그녀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간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지상의 찬란한 어둠을 향해 나아간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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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지금처럼 미세한 현미경도 없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1715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조반니 마리아 란치시 Giovanni Maria Lancisi는 우역의 통제 방법으로 살처분을 고안해냈다. 동물 치료 방식을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병의 차단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감염원을 죽여 감염의 길목을 차단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천명선 교수는 이 방식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영국에서 정책으로 자리잡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이 방식은 농민에게 큰 희생을 요구했다. 자신의 농장에서 키우던 소들을 살처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를 강제로 집행했고, 따라서 농장주의 희생이 컸다. 하지만 영국은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상을해줄 테니 빨리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고 있는 살처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려 300년이나 된 정책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구제역에 대해 우역과 똑같은 방법으로 방역을 진행한 다는 점이다. 구제역은 우역만큼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병이다. 구제역의 치명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다 자란 소의 치명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의 대처에도 동일한 살처분 방법이 적용된다. 근대의 가축 전염병 제도들이 우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P24

"책의 주제는 ‘구제역에 대한 책임‘입니다. 구제역에서는 대량 살처분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살처분은 특정한 때나 장소, 사람에 의해서만 논의됐는데요. 농업 환경이많이 변화했음에도 19세기 말에 쓰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슈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고싶었습니다."

구제역에 한해서는 살처분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이 돌면 무조건 살처분을 하는데, 살처분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량 살처분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는 밑바탕에는 ‘구제역은 아주 위험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또 국가 간 무역에 관한 이슈가 작용하기도 하지요. 백신을 사용하면 수입제한 조치나 패널티를 받게 되기 때문이죠. 구제역은 19세기 에도 심각한 질병이었지만 살처분을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못했어요. 이 병은 전파가 빨랐지만 동물은 곧 회복했습니다. 또한 그때는 무역에 대한 레짐 Regimes, 합의되거나 명시적인 규칙도, 백신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살처분에 대한 요구도 없었습니다. 영국은 축산 산업이 커질수록 힘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가축이 돈이 될수록 정책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오래된 질병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를 키우는 업자를 중심으로 국가 책임론이 대두되고 이 병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가축을 키우는 것이 산업화될수록 이 생명들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셈이다. 구제역은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른 질병으로, 축종에 따라 치사율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보다는 양이 더욱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소가 구제역에 감염되면 고열이 발생하고 이틀에서 사흘 후 열이 내린다. 또 입속에 수포가 생겨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며 발굽에도 수포가 생겨 걸음을 걷기 힘들어진다. 다 자란 성체의 경우 체중이 감소하고 우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기도 한다. 어린 송아지일수록 심근염 등이 발병해 폐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다 자란 성체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 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발생하면 살처분으로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감염에따른 생산성의 감소 때문이다. - P28

요즘처럼 가축을 대량 사육하는 방식하에서 구제역 바이러스의빠른 전염력은 농가의 생산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빠른 살처분으로 전염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최소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동물을 인간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코로나가 치명률이 낮음에도 전염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발병 지역의 사람을 모두 죽여 전염을 차단한다고 하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질병이 아무리 치명적이라도 인간에게는 이런 잣대를 들이댄 적이 없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이런 기준이 버젓이 적용된다. 심지어 구제역의 백신은 오래전에 개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서 백신보다는 살처분이 우선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 P30

‘살처분‘은 축산 선진국에게 청정국의 지위를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우즈 교수의 주장처럼 영국이 축산 강국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자 이것이 표준에 가까운 정책이 된 것이다.
현재 세계동물보건기구는 각 나라를 구제역 발병 상황에 따라 백신 여부와 상관없이 구제역이 발생하는 곳, 백신 접종하에 구제역이발생하지 않는 곳, 백신 접종 없이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분류한다. 이 가운데 백신 접종 없이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 분류된 나라가 가축 및 육류의 수출 시장에서 우위를 점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영국 등의 축산 선진국에서는 이 부류인 청정국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P30

식민지가 많았던 영국은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외래종에 대해서낮은 서열을 매기고, 심지어 자기 편의에 따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지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부들은 살처분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처분은 자국의 축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만난 많은 농부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내내 친절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살처분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신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혈통 종과 축산업이 만든 강력한 방식이 바로 ‘살처분‘이었던 것이다.  - P42

유럽 대륙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네덜란드 농장주가 가진 질병에대한 인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한국도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상황이 섬나라와 비슷하다. 섬나라는 국경이 붙어 있는 국가가 드물고 자유로운 왕래도 힘들다. 그래서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터질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농장주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하지만 유럽의 대륙국가들의 상황은 다르다.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고 국경도 붙어 있다. 송아지도 옆 나라의 우시장에서 자유롭게사온다. 주로 독일과 동유럽의 송아지를 많이 들여온다고 한다. 심지어 국경이 붙어 있어 구제역과 같은 질병은 바람을 타고 쉽게 전파될수 있다. 우리나라의 충청도가 경기도, 경상도, 강원도와 붙어 있는것과 같다. ‘이웃‘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처럼 자신의 혈통 종을 보호하기 위해 외래종을 죽여 버리는 식의 살처분 정책은 이들에겐 상식 밖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대륙국가에서는 백신을 살처분 방식에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발병 농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방역대를 형성해 전염된 농가에서 먼 농가부터 백신을 접종해 전파를 신속히 차단하고 이후 백신 맞은 가축들도 서서히 선택적으로 살처분하는 방식이다. - P47

"네덜란드에서는 구제역 백신을 따로 쓰고 있는지요?"

"네덜란드 백신 정책의 시작은 링-백시네이션을 실시한 후살처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포위 접종‘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발병 농가를 중심으로 수 km의 방역대를 형성해 바깥에서부터 백신을 접종해 병의 확산을 조기에 막은 후그 방역대 안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디바DIVA, Differentiating Infected from Vaccinated An-imals 백신 개발을 계기로, 방향을 치료 위주로 전환했습니다. 백신 정책이 잘 수행된다면 더 이상의 살처분은 없을 겁니다."

"백신을 쓰는 것이 유럽연합의 합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요?"

"맞습니다. 유럽연합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네덜란드는 백신 정책에 대한 제안서를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병하면 언제든지 제안서를 제출하고 허락을받아낼 예정입니다. 어떤 타입의 바이러스인지를 알면 백신을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아형 subtype, 하위 변형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나오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 시설을 구비해 놓았습니다."

"디바 백신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현재 어디까지 진행된상태인가요?"

"미래에는 디바 백신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백신을 감염된 동물과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구별해 접종합니다. 우리는 전부 살리기 위한 백신 접종을 하고 있고요, 백신 접종 이후에는 더 이상 (구제역으로) 동물들을 살처분하지 않을 겁니다."
- P50

이런 마음이 드니 더 이상 공포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종이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저 멀리 우주 밖에서 신들이 우리인간들을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충돌했다. 불쌍한 생각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다만 경험해본 인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최소한 달걀을 먹을 때, 닭들이 어떻게 회생하는지 정도는 아는 인간이 됐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딱 거기까지였다.
다만 이 경험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젖어 있던 나의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비(非)가시성‘의 영역에 살고 있는가?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가게‘에서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으로부터 뭔가를 얻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살았다. 산란계 농장에서 만난 닭들은 알을 내어주지만 고기를 내어주는 생명들은 또 어떨까? 몇년 전 취재 과정 중 본, 도축장에 끌려가기 싫어 버티던 염소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동물에겐 너무나 가혹하고 인간에겐 축복이다. 우리는 이런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아도 편리하게 고기나 달걀을 만날 수 있다. TV프로그램에서 닭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달걀을 하나씩 빼먹는 자연주의적인 삶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하지만 실제로 접해본 현실은 달랐다. - P60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가축‘이라 불리는 동물은 인간의 삶에서 멀어졌다. 농촌은 생산하는 곳, 도시는 소비하는 곳으로 정해졌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우쭐대기 일쑤지만 정작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밥상에 도착하는지는 철저히 외면하며 살고 있다.
도시는 깨끗해야 한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질병이 돌면 안 된다. 농촌의 가축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러지는 농촌의 가축 전염병은 도시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가축은 도시에 음식을 공급하지만 양질의 고기 외엔 도시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살처분 당하는 가축에게 대체로 무신경하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에 속하는 사람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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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코로나 시대 2년차를 목전에 둔 우리는 백신을 애타게 기다리고있습니다. 어언 1년 이상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의존해 답답한 하늘과 변화된 기후와 몸과 마음의 간격을 둔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언제쯤 어떻게 끝나게 될까 모두들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pandemic이 발생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인플루엔자가 가장 큰 위협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실제로 몇 명의 사람이 죽었을까요?

지금 세계에서 코로나19로 매일 죽는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것을생각한다면, 조류인플루엔자가 변이를 일으켜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확률은 사람이 일평생 개에 물려 죽을 확률보다 낮습니다. 우린 일어나지 않을 일에 너무 많은 우려를 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언론과 비과학이 만들어낸 환상에 사로잡혀 이미 터널의 출구가 보이지만, 아직까지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이 질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구제역이 백신 정책으로 돌아선 이후 다시 과거의 무분별한 살처분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전염병을 거쳤지만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요? 매년가축 방역 분야에서 전염병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고 다시 반복됩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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