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지금처럼 미세한 현미경도 없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1715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조반니 마리아 란치시 Giovanni Maria Lancisi는 우역의 통제 방법으로 살처분을 고안해냈다. 동물 치료 방식을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병의 차단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감염원을 죽여 감염의 길목을 차단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천명선 교수는 이 방식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영국에서 정책으로 자리잡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이 방식은 농민에게 큰 희생을 요구했다. 자신의 농장에서 키우던 소들을 살처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를 강제로 집행했고, 따라서 농장주의 희생이 컸다. 하지만 영국은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상을해줄 테니 빨리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고 있는 살처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려 300년이나 된 정책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구제역에 대해 우역과 똑같은 방법으로 방역을 진행한 다는 점이다. 구제역은 우역만큼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병이다. 구제역의 치명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다 자란 소의 치명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의 대처에도 동일한 살처분 방법이 적용된다. 근대의 가축 전염병 제도들이 우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P24

"책의 주제는 ‘구제역에 대한 책임‘입니다. 구제역에서는 대량 살처분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살처분은 특정한 때나 장소, 사람에 의해서만 논의됐는데요. 농업 환경이많이 변화했음에도 19세기 말에 쓰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슈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고싶었습니다."

구제역에 한해서는 살처분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이 돌면 무조건 살처분을 하는데, 살처분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량 살처분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는 밑바탕에는 ‘구제역은 아주 위험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또 국가 간 무역에 관한 이슈가 작용하기도 하지요. 백신을 사용하면 수입제한 조치나 패널티를 받게 되기 때문이죠. 구제역은 19세기 에도 심각한 질병이었지만 살처분을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못했어요. 이 병은 전파가 빨랐지만 동물은 곧 회복했습니다. 또한 그때는 무역에 대한 레짐 Regimes, 합의되거나 명시적인 규칙도, 백신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살처분에 대한 요구도 없었습니다. 영국은 축산 산업이 커질수록 힘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가축이 돈이 될수록 정책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오래된 질병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를 키우는 업자를 중심으로 국가 책임론이 대두되고 이 병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가축을 키우는 것이 산업화될수록 이 생명들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셈이다. 구제역은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른 질병으로, 축종에 따라 치사율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보다는 양이 더욱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소가 구제역에 감염되면 고열이 발생하고 이틀에서 사흘 후 열이 내린다. 또 입속에 수포가 생겨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며 발굽에도 수포가 생겨 걸음을 걷기 힘들어진다. 다 자란 성체의 경우 체중이 감소하고 우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기도 한다. 어린 송아지일수록 심근염 등이 발병해 폐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다 자란 성체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 죽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발생하면 살처분으로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감염에따른 생산성의 감소 때문이다. - P28

요즘처럼 가축을 대량 사육하는 방식하에서 구제역 바이러스의빠른 전염력은 농가의 생산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빠른 살처분으로 전염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최소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동물을 인간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코로나가 치명률이 낮음에도 전염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발병 지역의 사람을 모두 죽여 전염을 차단한다고 하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질병이 아무리 치명적이라도 인간에게는 이런 잣대를 들이댄 적이 없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이런 기준이 버젓이 적용된다. 심지어 구제역의 백신은 오래전에 개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서 백신보다는 살처분이 우선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 P30

‘살처분‘은 축산 선진국에게 청정국의 지위를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우즈 교수의 주장처럼 영국이 축산 강국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자 이것이 표준에 가까운 정책이 된 것이다.
현재 세계동물보건기구는 각 나라를 구제역 발병 상황에 따라 백신 여부와 상관없이 구제역이 발생하는 곳, 백신 접종하에 구제역이발생하지 않는 곳, 백신 접종 없이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분류한다. 이 가운데 백신 접종 없이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 분류된 나라가 가축 및 육류의 수출 시장에서 우위를 점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영국 등의 축산 선진국에서는 이 부류인 청정국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P30

식민지가 많았던 영국은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외래종에 대해서낮은 서열을 매기고, 심지어 자기 편의에 따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지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부들은 살처분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처분은 자국의 축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만난 많은 농부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내내 친절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살처분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신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혈통 종과 축산업이 만든 강력한 방식이 바로 ‘살처분‘이었던 것이다.  - P42

유럽 대륙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네덜란드 농장주가 가진 질병에대한 인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한국도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상황이 섬나라와 비슷하다. 섬나라는 국경이 붙어 있는 국가가 드물고 자유로운 왕래도 힘들다. 그래서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터질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농장주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하지만 유럽의 대륙국가들의 상황은 다르다.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고 국경도 붙어 있다. 송아지도 옆 나라의 우시장에서 자유롭게사온다. 주로 독일과 동유럽의 송아지를 많이 들여온다고 한다. 심지어 국경이 붙어 있어 구제역과 같은 질병은 바람을 타고 쉽게 전파될수 있다. 우리나라의 충청도가 경기도, 경상도, 강원도와 붙어 있는것과 같다. ‘이웃‘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처럼 자신의 혈통 종을 보호하기 위해 외래종을 죽여 버리는 식의 살처분 정책은 이들에겐 상식 밖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대륙국가에서는 백신을 살처분 방식에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발병 농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방역대를 형성해 전염된 농가에서 먼 농가부터 백신을 접종해 전파를 신속히 차단하고 이후 백신 맞은 가축들도 서서히 선택적으로 살처분하는 방식이다. - P47

"네덜란드에서는 구제역 백신을 따로 쓰고 있는지요?"

"네덜란드 백신 정책의 시작은 링-백시네이션을 실시한 후살처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포위 접종‘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발병 농가를 중심으로 수 km의 방역대를 형성해 바깥에서부터 백신을 접종해 병의 확산을 조기에 막은 후그 방역대 안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디바DIVA, Differentiating Infected from Vaccinated An-imals 백신 개발을 계기로, 방향을 치료 위주로 전환했습니다. 백신 정책이 잘 수행된다면 더 이상의 살처분은 없을 겁니다."

"백신을 쓰는 것이 유럽연합의 합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요?"

"맞습니다. 유럽연합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네덜란드는 백신 정책에 대한 제안서를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병하면 언제든지 제안서를 제출하고 허락을받아낼 예정입니다. 어떤 타입의 바이러스인지를 알면 백신을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아형 subtype, 하위 변형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나오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 시설을 구비해 놓았습니다."

"디바 백신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현재 어디까지 진행된상태인가요?"

"미래에는 디바 백신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백신을 감염된 동물과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구별해 접종합니다. 우리는 전부 살리기 위한 백신 접종을 하고 있고요, 백신 접종 이후에는 더 이상 (구제역으로) 동물들을 살처분하지 않을 겁니다."
- P50

이런 마음이 드니 더 이상 공포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종이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저 멀리 우주 밖에서 신들이 우리인간들을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충돌했다. 불쌍한 생각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다만 경험해본 인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최소한 달걀을 먹을 때, 닭들이 어떻게 회생하는지 정도는 아는 인간이 됐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딱 거기까지였다.
다만 이 경험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젖어 있던 나의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비(非)가시성‘의 영역에 살고 있는가?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가게‘에서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으로부터 뭔가를 얻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살았다. 산란계 농장에서 만난 닭들은 알을 내어주지만 고기를 내어주는 생명들은 또 어떨까? 몇년 전 취재 과정 중 본, 도축장에 끌려가기 싫어 버티던 염소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동물에겐 너무나 가혹하고 인간에겐 축복이다. 우리는 이런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아도 편리하게 고기나 달걀을 만날 수 있다. TV프로그램에서 닭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달걀을 하나씩 빼먹는 자연주의적인 삶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하지만 실제로 접해본 현실은 달랐다. - P60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가축‘이라 불리는 동물은 인간의 삶에서 멀어졌다. 농촌은 생산하는 곳, 도시는 소비하는 곳으로 정해졌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우쭐대기 일쑤지만 정작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밥상에 도착하는지는 철저히 외면하며 살고 있다.
도시는 깨끗해야 한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질병이 돌면 안 된다. 농촌의 가축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러지는 농촌의 가축 전염병은 도시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가축은 도시에 음식을 공급하지만 양질의 고기 외엔 도시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살처분 당하는 가축에게 대체로 무신경하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에 속하는 사람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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