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31년으로, 당시 홍콩에서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이 발병, 확산되고 이를 조류인플루엔자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3월 18일자 경향신문 기사는 ‘지구촌 괴질 비상‘이라는 제목으로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를 날렸고 4월이 되자, 이내 이 괴질은 ‘조류독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사실 ‘괴질‘이라는 것도 쉽게 쓰면 안 되는 단어이지만, 독자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는 괴질 같은 어감의 용어가 제격이다.
2003년 4월 4일자 한국일보에서는 ‘괴질‘이라는 용어사용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감염 전문의 최강원 교수의 인터뷰를 기사로 실었다.

"괴질이라는 용어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인도 모르는 이상야릇한 병, 걸리기만 하면 죽을병이라는 공포감에 쏙믿음만 키워줄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는 해야겠지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 이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괴질‘로 불렸다. 홍콩에서 조류인플루엔자로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 2003년 2월 21일경이었다. 약한 달 후 이 병의 명칭은 ‘괴질‘로 변경된다. 이렇게 원인 미상의 폐렴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처음에 조류인플루엔자로 불리다가 괴질을거쳐 ‘급성중증호흡기 증후군‘, 또는 ‘사스SARS‘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사스라는 정식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이 바이러스는 계속 조류인플루엔자와 연관 지으며 괴질의 원인을 조류인플루엔자에서 찾고자하는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감염 증상이 비슷한데다, 1997년도 홍콩의 조류인플루엔자 인간 감염 사례가 만든 유추였을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우리 인류가 얼마나 전염병에 민감한지 느낄 수있었다. 지금도 ‘괴질‘이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 속의 좀비가 먼저 떠오른다. 마치 종말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론에겐 아주 달콤한 단어이다. 단독에 목마른 기자들에겐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단어가 없다.
누가 ‘괴질‘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대중의 공포심은 이런 식으로 점점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뉴스를 자세히 보지 않은 사람들의 뇌 속에는 자연스럽게 괴질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연결된다.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가 추가되는 것이다. - P62

 이렇게 공포와 혐오가 커질수록 국민들은 더욱 높은 수준의 방역 수준을 원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정책보다는 신속하게 감염원을 차단하는 ‘살처분‘ 방식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더욱 믿음직한 정책이었을 것이다. 국민의 공포심이 커질수록 살처분의 수요는 올라간다. ‘백신‘이라는 불확실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 P67

"새끼를 죽일 때 어미젖을 물리는데요, 그때 주사를 놔서 죽입니다. 그러면 어미의 커다란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 장면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매일 술을 마셔야 잠을 겨우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현장을 버텨내야 했다. 우리가 자동차 하부 세차를 고민하고 있을 때, 농촌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한 전염병, 바이러스가 이렇게 또 다른 형태로 괴롭히고 있었다. - P70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또 다른 형태로 논쟁의 중심이 됐다. 2010~2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정부는 결국 긴급 백신 투입을 지시한다.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백신 접종으로 전염병을 막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살처분에 지친 국민들에게 당연히 지지받을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백신을 맞은 고기의 유통‘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과연 백신 맞은 고기를 사 먹을까? 어릴 적 우리 집은작은 소 농장을 운영했다. 약 50여 두의 소를 키우면서 때가 되면 주사를 맞는 소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구제역 백신을 맞는 것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백신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고기를 믿고 먹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오염된 고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또한 도시 사람들은 모르는 ‘비가시성‘의 세계였다.
농가의 입장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취재를 나갔다 온 동료의 테이프를 돌려보다가 한 농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방역 담당자들에게 외치는 장면을 보게 됐다.

"백신 맞은 고기를 누가 사 먹어! 농민들은 죽으라는 거야?"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백신도 안 되고 살처분도 안 된다. 우리에게 가축이라는 동물은 이런 존재다. 무엇보다 백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백신과 같은 방법이 있는데 왜 그렇게 끔찍한 살처분을 계속해야만 했을까? 지금은 이 문제에 얽혀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P71

‘과연 사람들은 진짜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은 고기만을 먹고 있을까?"
‘혹시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을 맞고 있는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5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가금류(새) 농장에서는 이미 다른 질병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그 접종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고기나 알에 남아 있다는 보고는 전혀 없다고 한다. 다만 우리는 닭들이 이렇게 여러 차례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아니 사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 P74

"개발도상국(후진국)의 경우, 이 바이러스는 감염병의 주기적인 유행엔데믹, endemic입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가축을 죽게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가축은 소셜 파워를 상징하는데, 그걸 잃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유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데 구제역은 그 생산성을 떨어뜨립니다. 메인 이슈는 결국 ‘생산성의 저하‘ 입니다. ... (중략)…선진국에서는 ‘경제적 이슈‘입니다만 후진국에서는 ‘생존(존속)의 이슈‘입니다."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의 통제는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지구상에 있는 바이러스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에 공급이 가능한 백신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백신 공급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바이러스는 많은 유형이 있으므로 하나의 백신만으로 모든 구제역 혈청(유형)을 막을 순 없습니다. 영국과 같은 섬나라는 조금 쉬울 수도 있겠지만, 한국과 같이 국경을 접한 나라에서는 어떤 유형의 바이러스가 유입될지 알수 없습니다. 따라서 백신 뱅크 설립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질병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백신은 이렇게 여러 요소를 충족해야 개발할 수 있다. ‘가격‘, ‘보관‘, ‘신속한 진단과 투입‘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백신은 무용지물이다.  - P80

벡터 백신이란 유전자에 백신을 주사해서 닭에게 주입한 후, 어떤 질병 증후군이 보일 때 이 백신을 맞은 가축의 항체를 보고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다. 닭에서 벡터로 쓰이는 바이러스는 뉴캐슬병 바이러스, 전염성 기관염 바이러스, 마렉 바이러스 등이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이미 유전자 조작에 의해 병원성이 제거되고 필요에 따라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 일부를 재조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과학자가 에이즈, 암 등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바이러스 기반의 재조합 벡터 백신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벡터 백신을 사용해 빠른 판단과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점은 서유럽 국가의 생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홍콩은 중국과 인접해 H5N1, H7N9과 같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를 거의 해마다 막아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 P92

"홍콩의 백신 정책은 2002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03년 12월부터 홍콩에 오는 모든 조류에 백신을 접종했고 AI는 오늘날까지(2018년 기준) 2008년 오직 한 농장에서 발발한 사례밖에 없습니다. 그 AI 발발 사례는 항원 장벽이 있는 바이러스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예방 목적의 백신 사용이 효과가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은 아직까지 중국 본토로부터 살아 있는 가금류가 들어오고 있고 또한 철새의 이동도 활발합니다. 또한 중국 본토에는 바이러스가 근절되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중입니다. 따라서 백신 정책은 높은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홍콩이라는 지리적특성 때문에 진행됐습니다. 대부분의 백신을 사용하는 나라는 이미 풍토병이 된 곳에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도 1997년 백신으로 컨트롤하지 않았을 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살처분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가금류 시장이 파괴됐습니다. 하지만 예방적 백신 정책을 사용한 이후에는단 한 건의 감염 사례만 있었는데요. 이때는 농장이나 시장의 가금류에 대해 살처분을 시행했습니다. 물론 발병 사례가 생기면 가금류 살처분이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백신을 통해 이 부담까지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93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다른 종에의 감염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합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백신이 질병의 전파나노출에 대한 상황을 좋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감염돼서 닭이 죽으면 바이러스는 더 빨리 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신은 그런 급성폐사를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방역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백신이 이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가 적게 순환될수록 인간에게 노출될 확률도 낮아지죠. 저는이런 측면에서 백신을 강하게 신뢰합니다. - P94

각 나라마다 질병의 통제에 대한 생각과 여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4년 당시, 방역위원회 소속 모 수의대 교수님께 우리나라에서도 백신을 쓰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살처분으로 막아내는 방법이 최선이며 백신으로 막아내는 방법은 후진국에서나 쓰일 법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백신이 더 과학적인 방법이고 선진국에서나 쓰일 법한 방식이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덮어놓고 무조건 죽이는 방식이 더선진국다운 방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살처분은 훨씬더 많은 비용을 수반하는 정책이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뿐이다.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그렇다.
이런 논리에 사로잡혀 빠른 살처분을 최우선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역 정책이다. 2018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 이런 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강연 내용을 봐도 조류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점, 또한 변이가 활발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현 단계에서는 살처분이 가장 깔끔한 방식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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