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얼핏 보아 말투는 천진하고 느슨하며 시시껄렁한 태도는 시러베장단에 호박 국 끓여 먹을 기세이고 가명도 어딘가 미련하게 들리는 데다 지금 하고 나타난 차림새는 사업 실패로 집을 날리고 장롱에 식탁까지 차압당한 뒤 신장이 떼이기 일보 직전인 알코올중독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로, 뜯어보면 은근히 밀알진 얼굴에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며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높으신분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니 명품 양복을 수시로 갈아들인다. 신속 정확 치밀과 같은 방역업자가 기본으로 장착해야할 속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기에 서비스 정신까지 딸려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방역을 완수하기만 하면 된다고생각하는 업자들이 있는 반면, 투우는 사소한 과정 한 단계까지 고객의 필요에 따라 이행한다. 요구 사항이 따로 없는경우는 목표물을 찾아내어 제거하기까지 국내 거주자인 경우 1박 2일 정도면 충분하지만, 귀퉁이를 물그릇에 담가둔수건처럼 작은 징후가 번져나가게 하고 목표물의 영혼을 불안과 초조에 충분히 적신 뒤 그가 온몸의 구멍으로 남김없이 배설물을 쏟아낼 만큼의 공포에 사로잡혀 가능한 한 처참하게 가도록 해달라는 옵션 주문이 들어오면 개중에는모든 손가락을 한 마디씩 끊어서 총 스물여덟 개의 조각을먼저 보내달라거나 팔다리 관절부터 분질러달라는, 깊은 원한의 소산이라고만 하기엔 참으로 번거롭고 정서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주문들도 많았다-그에 필요한 무대를 짜고연출을 하여 최장 석 달 가까이 목표물 주위를 맴돌기도한다. - P36

처음에는 사소한 이변과 의구심 정도였다가 압박감과 고조되는 두려움으로 호흡곤란 지경이 되면 비로소 목표물은 어그러진 일상과 폐허를 목도하게 되고, 목표물이 미쳐버리기 직전 투우는 그 앞에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 목표물이 완전히 미칠 틈을 주지 않도록 그의 정신 공간의 여분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한편 작품에 꽂을 나사를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보다 정확한 견적을 낼 필요가 있는데, 정신이 나간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셈이 되어서 의뢰인의 요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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