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둘은 이미 이에룬의 지위를 시험해보기 시작한 듯했다. 왜냐하면 암놈들에 대한 그들의 공격이 위험할 정도로 이에룬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으려고 이에룬에게 도망쳐서 그를 포옹한 암놈들조차 니키와 라윗의 공격으로부터 늘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런상황에서도 이에룬이 강력하게 반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른 두 수놈의 판단에 중요한 지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부하를 지키는 것을 머뭇거리는 리더는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 P151

라윗과 이에룬이 공공연하게 충돌을 거듭하던 당시, 니키가 두 라이벌의 대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니키는 라윗에게 맞섰다. 이 사건은 권력투쟁의 초기, 즉 라윗이 니키와 스핀이 사랑 행위를 나누는 것을 무력으로 중단시키고 나서 10분쯤뒤에 벌어졌다. 이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라윗이 니키와 직접 싸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날에도이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리 명확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성적경쟁심이 원인이었다. 라윗에게 혼쭐난 니키는 비명을 지르면서 이에룬에게 다가가 연대를 형성하며 라윗을 위협했다. 라윗은 서둘러 사육장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두 사건은 라윗이 왜 니키와 적이 되는 것을일부러 피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니키가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게 하려면 라윗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니키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던 라윗은 그와 소원해질 위험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니키가 공개적으로 라윗에게 대든 적은 딱 한 번뿐이다. 오히려 그는 이에룬의 지지자들인 암놈들을 물리침으로써 간접적으로 라윗의 편을 들었다. 니키의 도움이 없었다면 라윗은 어떤 수를 쓴다 해도 이에문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의 통상적 패턴은 다음과 같다. 라윗이 이에룬의 주변에서 위협 과시를 시작하면 이를 더이상 묵과하지 못한 이에룬은 도움을 청하려고 비명을 지른다. 이에룬은 암놈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든가 아니면 직접 가서 암놈들을 끌고 온다. 이에룬과 그 지지자들이 라윗에게 접근하면 그때부터 니키가 나서서 이에룬 지지자들 가운데 한 놈, 특히 마마나 호릴라 가운데 어느 한쪽을 겨냥해서 공격한다. 이런 개입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즉,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는 동안 암놈들은 연합해서 니키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싸움은 대개 마른 떡갈나무 가지 위에서 종료된다. 거기에서 라윗은 자기 과시를 하고, 이에룬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에 있는 암놈 지지자들을 향해 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나무 밑의 암놈들은 지칠 줄 모르는 니키를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기 때문이다. - P151

그러나 니키는 손과 발만을 사용해 싸울 뿐, 결코 송곳니로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철저하게 지켰다. 수놈들이 간혹 암놈을 무는 경우가 있지만 앞니만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지 못한 암놈들의경우에는 다른 암놈과 싸울 때나 수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수놈들보다 신중하지 못하게 이빨을 사용하기도 한다.  - P154

이후에 관찰되는 패자의 ‘떼쓰기‘ 행동은 종말의 시작을 고하는 또하나의 특징적 현상이다. 충돌이 있은 후 대략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에룬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라윗이 위협 과시를 하는 동안, 그는 놀랄 만한 연기력을 발휘해서 마치 썩은 사과가 떨어지듯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금속성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뒹구는 것이었다. 이런 신경질적인 감정 폭발은 흡사 절망감과 굴욕감이 억제되지 못한 채 표출된 듯한인상을 주었다. 이에룬은 어느 정도 기분을 회복하자 암놈들을 향해 깽깽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몇 미터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 드러누워 암놈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이것은 동정을 구하는 몸짓이라기보다는 거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암놈들이 도움을거부하거나 피해서 돌아서버리면 이에룬은 또다시 겁에 질려 떼를 썼다. 그럴 때면 그는 불쌍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부림쳤다.
만약 암놈들이 도와줄 기색을 보이면 이에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벌떡 일어나서 암놈들을 포옹한 다음에 자기 등 뒤로 암놈들을 - P157

떼쓰기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30대의 성숙한 이에룬이 마치 어린애 같은, 아니 완전히 유치한 퇴행적인 행동으로 다른 침팬지들의 주목을 끌고 동정을 얻으려 한 점이다. 그것은 젖 먹는 아기 때나 볼수 있는 모습이다. 어린 새끼들은 어미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다시 안아줄 때까지 울거나 발길질을 해댄다. 어미가 받아주면 놀랍게도(그리고 수상쩍게도) 금세 떼쓰기를 그만둔다. 이에룬이 자신을 지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라윗의 책동에 겁을 먹어 불안과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아기와 똑같은 행동을 연출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모른다. 말하자면 이에룬은 권력의 젖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 P158

침팬지를 제외한 다른 대형 유인원의 경우, 어른 수놈들 사이에서는 관용을 찾기 힘들며, 기껏해야 신경질적이며 비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오랑우탄 수놈들은 다른 수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림속의 넓은 세력권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같은 집단 내에서 생활은 하지만 암놈들을 독점하려 드는 것이 보통인 고릴라 수놈은 침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격한 싸움을 벌인다. 보노보 수놈은 함께생활은 하지만 매우 경쟁적이다. 그들은 침팬지 수놈들처럼 함께 사냥을 하지도 않으며,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거나 함께 세력권을 방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노보 수놈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따라 숲을 떠돌고어미에게 의지해 그들의 지위를 누린다. 어른 보노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미를 둔 자식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노보 사회는 암놈끼리의 동맹에 의해, 또 암놈의 지배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침팬지사회처럼 수놈 간의 복잡한 관계를 살피는 데는 적당치 않은 모델이다.
침팬지 수놈은 다른 동물들의 수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적인경향을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협력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친척뻘인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연합을 유지하면서도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들처럼, 수놈 침팬지 역시 그들의 이웃에 대항해 공동연대를 형성할 필요성 때문에 경쟁심을 삭이고 의식화한다. 비록 아른험에는 대항해야 할 이웃 집단이 존재하지는않았지만, 몇백만 년 동안 자연 서식지에서 집단 간의 투쟁을 벌이면서형성된 수놈 침팬지들의 심리에는 경쟁과 협동 모두 겸비되어 있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어떤 수준에서 일어나든 간에 수놈들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해 서로를 의지한다. 이처럼 동료의식과 경쟁의식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은 다른 대형 유인원들의 사회보다 침팬지 사회를 더 친숙하게 만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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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항상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나를 소개하려고 노력하는데, 문제는 가끔 그가 없을 때 (내가 접시를 치우거나 장작을 채워 넣는 걸보며) 내가 고용된 일꾼인 줄 알고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것이다.
어떤 해에는, 내가 난로에 장작을 넣고 있는데 작가들의 쉼터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공짜 와인과 공짜 바닷가재를 먹고 있던 아주 유명한 신문 칼럼니스트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빈 설탕 통을 가리키며 나에게 "설탕!"이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이런 방문자는 내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것보다 더 심한 부류는, 그 집이 내 집이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부엌이나작가들의 쉼터에서 마리아를 돕는 사람들이나 니키, 플로, 또는 베선 을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손님들을 별로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들보다 크게 나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도 종업원들이나 청소부 혹은 가게 점원들에게 무례하게 대한 적이 없고, 또 이제까지 내가 누군가를사회적 약자처럼 취급한 적이 없었기를 바란다. 대신 나에게 무례하게대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예의 없게 행동한 적은 있다. 그나마 나는 무례한 손님들에게 똑같이 갚아 줄 여유라도 있지만(이건 내 서점이고, 아무도 날 해고할 수 없으니까) 서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같은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걸 악용해서 눈곱만큼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위인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물론 나도 손님의 외양을 관찰하는편이긴 하지만 그건 그저 관찰일 뿐이지 판단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 P312

‘무례하기 굴긴 싫지만...‘ 하는 식으로 말문을 여는 것은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이라고 시작하는 말과 똑같은 경계경보를울린다.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무례하게 굴기 싫으면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면,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 P317

11시에 십 대 남자아이가 어색해하며 쭈뼛쭈뼛 계산대로 걸어오더니 내 앞에 ‘호밀밭의 파수꾼』과 책값으로 2.50파운드어치 잔돈을 함께 내밀었다. 내가 이 아이만 했을 때, 성인으로 성장해 가던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책만큼 내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많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강요하는 인생과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라는인물에 대한 샐린저의 묘사는 1951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십대 청소년 독자에게 무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 P359

한 손님이 4시쯤 조제 사라마구의 놀라운 책 ‘눈먼 자들의 도시』와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한 권이 포함된 한 상자분량의 현대 소설 페이퍼백을 가져왔다. 이 두 소설은 이탈리아인 친구가 현대 유럽 소설에 너무 무지한 나에게 경악하며 보내 줬던 책이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정말이지 대단한 소설이었다. 이 책처럼 몰입도가 높고 내용을선명하게 시각화시키는(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추잡하고 무기력하게 변해 버린 세상, 한가지 감각의 상실로 인해 드러나는 사회계약의 허망함과 급속히 붕괴되는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 냄으로써 독자들을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 세상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결말에 가서는(호그의 사면된 죄인의 사적인 고백과 기록에서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 P365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와 하그머네이 사이의 일주일은 확실하게 문을 열 가치가 있는 기간이다. 이때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온다. 그리고 금세 가족들과 같은 집에서 몇 날 며칠을 같이 지낼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더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일년 중 가장 어두컴컴한 달에 좁은 공간에서 가족들과 줄곧 지내다가 뛰쳐나온 사람들로 서점이 북적거린다. 어떻게든 탈출할 구실을 찾아 밖에 나온 사람들은 서점으로 몰려와 책을 뒤적이며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다가, 대개는 책을 사 간다. - P371

오늘 온 손님 중 한 명은 나이 든 남자였는데, 뭔가 굉장히 신난 표정으로 책 한 권을 움켜쥐고 계산대로 왔다. "이 책 얼마면 되겠소?" 그건 라틴어 학교 교재였는데, 그는 황급히 책을 펼쳐 면지에 만년필로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 아버지가 쓰던 책이오"라고 말했다. 가격은 4.50파운드였는데 나는 그 손님에게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 책이 어떻게 서점에 들어오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손님이 그 책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해서 그냥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켄트에서 휴가차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캔•터베리 외곽의 한 집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책 사이에 들어 있었던 것같다. - P378

책 상자를 살펴보다가 (목사에게서 사온 책이었던 것 같다) 같은 상자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책 두 권을 발견했다. 하나는 ‘나의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만든 올리브나무로 된 성경 책이었다.
『나의 투쟁』이란 책을 만나면 뭔가 도덕적으로 껄끄러운 입장에처하게 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나의 투쟁』은 60파운드 정도의 가치가있고 많은 서적상들은 웬만해선 건드리려고 하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수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많다고 할 수는 없어도 한 달 내에 팔릴거라는 기대를 할 정도의 수요는 있다. 문제는 과연 이 책이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이다. 극우적 성향을 가진 미친놈일 수도있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오류를 밝히려는 사학자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내년에 독일에서 저작권이 만료되면 [나의 투쟁』의 판로에 변화가 올 것이다. - P384

디컨 씨가 4시쯤 앨리슨 위어의 「탑에 갇힌 왕자들』을 주문하러왔다. 팔에 깁스는 이미 푼 상태였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하고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적어도 디컨 씨가 나가려는 순간 내가 아주 발작적인 기침을 할 때까지는, 내가 기침하는 걸 지켜보던 디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런, 같은 처지라 마음이 쓰이네요. 나도 많이 아프거든요." 나는 갑자기 그가 어디가 아픈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에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질문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알츠하이머예요. 요즘 단어들이 생각이 잘 안나요." 그의 이런 안타까운 고백에 뒤이어, 우리는 지난번에 그가 딸들과 함께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는 그의 삶에 대한대화를 처음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는 법정 변호사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는 무능함을 더욱 좌절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4시 30분에 에든버러로 가기 위해 서점을 나섰다. 서점 문이 내 뒤에서 닫히는 순간 뒤를 돌아보자 니키가 집에서 만들어 온 이름표를 또 책장 한 귀퉁이에 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못마땅한 ‘전시후방 소설‘이라는 이름표가 귀환한 것 같다.

매출 18.50파운드
손님 4명 -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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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험 침팬지들의 이름은 이곳 사육장에서 태어난 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서로 다른 머리글자로 시작된다. 각각의 머리글자는 관찰 중에 약칭으로 사용되는데, 이렇게 하면 집단의 구성원을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장성한 세 수놈(Y, L, N), 어린 수놈 한 놈(D), 장성한 암놈 여덟M, G, F, J. K, S, T. P), 어린 암놈 넷 가운데 한 놈은 거의 어른(A), 아직 어린 나머지 셋(O.Z.H).
두 마리의 양자를 제외하고 사육장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모두 어미의 이름과 똑같은 머리글자로 불린다. 어떤 암놈의 첫 자식에게는 이름의 두 번째 문자에 ‘ㅇ‘를 넣고, 두 번째 자식에게는 ‘a‘를 붙인다. 이미(Jimmie)의 두 자식이 요나스(Jonas)와 야키(Jakie)가 되듯이 말이다.
사육장에는 모두 일곱 마리의 새끼가 있는데 그중 가장 어린 두 놈만이 암놈이다. - P121

몸집의 크기와 사회적 서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회적 서열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로 나타나는 특정한 행동 형태에 의해 더욱 확고해진다. 바로 ‘복종적인 인사(submissive greeting)‘라는 행동인데 야생에서뿐만 아니라 아른험에서도 동일하게나타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인사‘란 헐떡이는 것처럼 짧고 빠르게 ‘아하아하‘ 하는 소리를 계속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위가 낮은 놈은 이런 소리를 내면서 ‘인사‘받는 상대를 우러러 보는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상대방에게 연신 절을 해대는데 이 동작은 ‘굽신거리기‘라고 불린다. 때로는 ‘인사‘하는 녀석이 나뭇잎이나 나무 막대기같은 것을 가져와서 지위가 높은 놈에게 건네기도 하고, 혹은 발이나 목, 가슴 등에 키스를 하기도 한다. 지위가 높은 침팬지는 이런 ‘인사‘를받으면 몸을 곧추세워 키가 커 보이게 하거나 털을 곤두세운다. 이로인해 실제 체구가 같은 놈들끼리도 외양이 명확한 대조를 보인다. 한쪽은 굴욕적으로 굽실거리고, 다른 한쪽은 왕처럼 ‘인사‘를 받는다. 또한어른 수놈들 사이에서 보이는 우열관계는 지위가 높은 놈이 ‘인사하는 놈을 밟거나 그 위를 넘어 다니는 연극적인 동작을 통해서 더욱 강조된다(소위 말하는 으름장이나 허세 부리기). 이때 지위가 낮은 놈은 몸을 웅크리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이같은 곡예 짓은 암놈이 ‘인사‘할 때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암놈은 대개 수놈 우위자가 자신의 성기를 검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엉덩이를 내민다.
암놈이 엉덩이를 들어 수놈에게 성기를 보여주는 이 행동이 자세를 ‘프레젠팅(presenting)‘이라 한다. - P129

이렇듯 우열관계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표출된다. 먼저 사회적 영향력, 즉 ‘권력‘이다. 이는 누가 누구를 이기고 누가 집단적인 갈등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반영한다. 특히 침팬지들의 경우 이합집산에 능하기 때문에 이런 대결의 결과가 어떨지는 100퍼센트 예측할 수 없다. 다른 동물에 비해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서열이 일시적으로 역전되는 사태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의 서열 조작은 종종 ‘유동적이다‘라든지 ‘유연하다‘고 표현된다. 때에 따라서는두세 살쯤 된 어린 침팬지가 어른 암놈이나 수놈을 쫓아버리기도 하고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는 경우마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놀이에 그치지않고 심각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린 요나스가 어미의 후광을 업고 프란예의 젖을 뺏어먹은 경우처럼 말이다.
새끼들이 어른에게 ‘인사‘를 받는 경우는 없다. 새끼들은 실제적인 권력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형식적인 우위‘는 갖지 못한다. 다툼의 결과는 때때로 지도자마저 나무 위로 쫓겨갈 정도로 다양하지만 ‘인사‘ 의식은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 ‘인사‘는 ‘고정된‘ 우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침팬지 사회에서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비상호적인 사회적 행동 양식이다. 간단히 말해, 일정 기간 A가 B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 그 기간에는 반대의 상황, 즉 B가 A에게 ‘인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두드러진 경직성은 일련의 낮은 신음소리를 동반하는 복종적인 인사에서만 나타난다. 침팬지들은 여러 가지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나 내가 인용 부호를 붙여 ‘인사‘라고 하는경우는 낮은 신음소리를 동반하는 복종적인 것을 지칭한다. 이에룬은 자신이 1인자였을 때 절대 이같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고, 대신 집단 내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자주 그 ‘인사‘를 받았다. - P132

이 집단에 있는 아홉 마리의 어른 암놈들이 마치 일치 단결한 것처럼 보인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들이 실제로도 만장일치였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우위 경쟁은 가끔 암놈들 사이에도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그럴 때면 마마와 호릴라 같은 서열높은 암놈들이 분명하게 이에룬을 적극 지지했지만 파위스트나 이미같은 다른 암놈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파위스트는 이에룬 편이 되어 라윗에 대항하려던 마마를 공격한 적도 있다. 이후 암놈들의 공동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반대의 경우도 나타났다. 결국 라윗이 최강자로 등극하자 가장 먼저 이에룬을 버리고 새로운 권력자 진영에 합류한 것은 파워스트였다. 초기에 마마는 파위스트의 탈당에 분노해서 파위스트가 공공연하게 라윗의 편을 들 때마다 그녀를 공격했다. 만일 마마가 없었다면 파워스트나 이미 같은 암놈들이 더 빨리 라윗 편에 달라붙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암놈들이 몇 달에걸쳐서 이에룬을 공동으로 지지한 데에는 자발적인 만장일치보다는 마마의 압도적인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배후에 이런 강력한 지지 집단이 있는 이상, 이에룬은 무서울 것이 전혀 없지 않겠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첫날부터 그가 집단적인 지원을 상실할 위험성을 갖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마마는 그가 따라오는 것을 몇 차례 거부했고 이것은 이에룬의 권력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라윗의 전술에 의한 것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P143

나는 이에룬이 암놈 집단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떼어놓는 라윗의행위를 ‘떼어놓기 간섭(separating interventions)‘이라고 부른다. 그것의단기적인 효과는 명백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져올 효과를 알아보려고 그해 말에 통계를 분석해보았다. 특히 과정 자체가 느리게 진행될 때 주관적인 인상은 확실히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매 5분마다 어느 놈들이 서로 어울려 소집단을 형성하는가, 즉 누가 2미터 이내에 앉아 있는지를 휴대용 테이프에 녹음해왔다. 1976년 여름에 행한 연구에서 우리는 몇백 개의 기록자료를 분석해서 이에룬이 그밖의 침팬지들과 어떤 친소관계에 있었는지를 그려냈다.
라윗이 아직 이에룬에게 주기적으로 ‘인사‘를 하던 1976년 봄, 이에룬은 자기 시간의 30퍼센트 가량을 어른 암놈들의 집단과 무리를 지어 보냈다. 그러나 처음으로 라윗에게 노골적인 도전을 받은 뒤 몇 주동안에는 그 시간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당시 이에룬이암놈들과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있으려고 했다는 것을 뜻한다. 라윗의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사실을 간파한 이에룬은 아마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음을 느꼈는지 자주 암놈들에게로 물러나 있었다. 당시 라윗은 이에룬에게 거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룬이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시기에 암놈 무리라는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기록 자료의 분석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우리는 곤란한 사태가 진전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새로운 권력투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의 데이터는 매우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윗이 이에룬의 리더십에 좀더 적극적으로 도전해서 수없이 ‘떼어놓기 간섭‘을 자행하고 있던 몇 주 동안, 이에룬이 암놈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차츰 줄어들었다. 급기야 가을이 오자 암놈들과의 접촉 횟수가 뚝 떨어졌고, 암놈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봄철보다 더욱더 줄어들었다. 우리가 조사한 데이터를 통해서 이에룬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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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오브위트혼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독립 투표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떠들썩한 언쟁이 벌어졌다. 애나는 처음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반감(조부모님이 둘 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고, 특히 할아버지는 해방될 당시 아우슈비츠의 수감자였다고한다) 때문에 독립을 반대했었는데 이제 민족주의와 독립이란 꼭 일맥상통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듯했다. 오늘 같이 저녁을 먹은 우리들 중 반은 독립 찬성파였고 나머지 반은 반대파였다. 만일 투표 결과가 오늘 저녁식사 때 모였던 우리처럼 반반으로 나뉜다면 18일 저녁에 개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 일어난, 생각지도 못했던 일 중의 하나는 우리가 시에관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우리를 저녁에 초대한 집주인 크리스토퍼는 농부이고, 대학에서는 순수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시집 쪽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거의 평생을 알고 지냈다고 해도 될 만큼 오랜 친구인데도 그 친구가 강수량이나 수확량이외의 것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크리스토퍼가 예이츠의 「방랑자 앵거스의 노래」를 암송했다. 정말 감동적이고 훌륭한 낭송이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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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으로 인물을 내다보는 독특한 안목을 갖고있다. 1986년부터 간행한 『만인보 12권에서 그는 김근태에 관해 썼다.

김근태

그는 70년대에는 물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 어딘가
후덥지근한 이 공장 저 공장에 스며들어가
자격증 네 개 다섯 개 땄다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장 따위 던져도 좋았다
공장에서
떳떳한 호모 파베르였다

하얀 양초 같은 얼굴
하얀 염소 같은 얼굴
그러나 노란 눈동자 안에는
어떤 동요도 없이
몇십 년을 한 뜻으로 가는 의지
슬쩍 내비쳤다가 숨어버린다

평생 노동자와 일치하리라고 결심한 이래
그는 70년대에는
몇몇 친구들밖에는 몰랐다
무서운 청년시절을 다 바쳐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떨치는 것
나서는 것
그것이야 뒤로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죽기 직전까지
그 자신의 고문을 의식 속에 기록한
결사적인 또 하나의 그 자신이야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 P65

1983년 9월 30일 저녁 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가톨릭상지회관에서는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서 진보적인 지식청년 59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저녁 7시를 전후하여 150여 명의 회원들이 상지회관 주변에 모였으나 상당수가 성북경찰서로 연행되어, 59명만 참석할 수 있었다.
대회는 의장으로 내정된 김근태가 ‘민청련 창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막이 올랐다. "고통과 희망을 한 몸에 안고 억압받는 제3세계 민중의 일원으로서, 민족사의 전진에 앞장서야 할 청년으로서 (•••••) 민주·통일을 위한 민주정치 확립, 민주자립경제의 확립, 자생적이고 창조적인 문화 교육 체계의 형성, 냉전체제 해소와 핵전쟁 방지"라는 내용의 선언문이었다.
창립선언문(요지)은 다음과 같다.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참된 민주정치는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평등하고 인간적인 생활을 위한 민주자립경제가 이룩되어야 하며, 부정부패 특권경제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역동적이고 건강한 민중의 삶을 위하여 자생적이고, 창조적인 문화, 교육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국제평화와 민족 생존을 위해 냉전체제의 해소와 핵전쟁의 방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 P68

민청련 간부들은 결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꺼비를 상징으로 내세웠다. 두꺼비는 뱀에게 잡혀먹히면서도 자신의 독성으로 뱀을 죽여 뱃속의 새끼들이 그 뱀을 자양분으로 삼아 알을 깨고 나오게 한다. 자신을 죽여서 새끼를 살리는 두꺼비를 통해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민중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민청련은 깃발을 든 동학농민군에 빙 둘러싸인 두꺼비를 탱크처럼 그린 판화를 제작, 민청련 기관지 《민주화의 길》 표지에 로고처럼 실었다. - P76

김근태 민청련 의장을 맡으면서 점차 정치 투사가 되어갔다. 온순했던 성격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안기부 수사국장의술상을 뒤엎을 만큼 담대해졌다. 민주화에 대한 의지도 더욱 강해졌으며 대정부 투쟁 방법에서도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만큼 주도면밀해졌다. 그중 하나가 기관지 발행이었다.
당시 제도언론은 이미 언론의 정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대거 쫓겨난 언론계에는 독재정권에 부역하면서 정관계로 진출하거나, 치부하는 데에만 눈이 먼 신문·방송인들이 많았다.
민청련은 반독재 투쟁의 홍보 전략으로 기관지를 발행하기로 했다. 정론 부재의 언론 상황에서 대안언론의 기능을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1984년 3월 11일 민청련은 "관제언론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이 어두움을 뚫고 민주화운동의 앞길을 열어가는 횃불로서 대중언론의 깃발을 높이 들 것"을 선언하며 기관지 《민주화의 길>을 창간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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