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으로 인물을 내다보는 독특한 안목을 갖고있다. 1986년부터 간행한 『만인보 12권에서 그는 김근태에 관해 썼다.

김근태

그는 70년대에는 물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 어딘가
후덥지근한 이 공장 저 공장에 스며들어가
자격증 네 개 다섯 개 땄다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장 따위 던져도 좋았다
공장에서
떳떳한 호모 파베르였다

하얀 양초 같은 얼굴
하얀 염소 같은 얼굴
그러나 노란 눈동자 안에는
어떤 동요도 없이
몇십 년을 한 뜻으로 가는 의지
슬쩍 내비쳤다가 숨어버린다

평생 노동자와 일치하리라고 결심한 이래
그는 70년대에는
몇몇 친구들밖에는 몰랐다
무서운 청년시절을 다 바쳐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떨치는 것
나서는 것
그것이야 뒤로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죽기 직전까지
그 자신의 고문을 의식 속에 기록한
결사적인 또 하나의 그 자신이야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 P65

1983년 9월 30일 저녁 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가톨릭상지회관에서는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서 진보적인 지식청년 59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저녁 7시를 전후하여 150여 명의 회원들이 상지회관 주변에 모였으나 상당수가 성북경찰서로 연행되어, 59명만 참석할 수 있었다.
대회는 의장으로 내정된 김근태가 ‘민청련 창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막이 올랐다. "고통과 희망을 한 몸에 안고 억압받는 제3세계 민중의 일원으로서, 민족사의 전진에 앞장서야 할 청년으로서 (•••••) 민주·통일을 위한 민주정치 확립, 민주자립경제의 확립, 자생적이고 창조적인 문화 교육 체계의 형성, 냉전체제 해소와 핵전쟁 방지"라는 내용의 선언문이었다.
창립선언문(요지)은 다음과 같다.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참된 민주정치는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평등하고 인간적인 생활을 위한 민주자립경제가 이룩되어야 하며, 부정부패 특권경제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역동적이고 건강한 민중의 삶을 위하여 자생적이고, 창조적인 문화, 교육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국제평화와 민족 생존을 위해 냉전체제의 해소와 핵전쟁의 방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 P68

민청련 간부들은 결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꺼비를 상징으로 내세웠다. 두꺼비는 뱀에게 잡혀먹히면서도 자신의 독성으로 뱀을 죽여 뱃속의 새끼들이 그 뱀을 자양분으로 삼아 알을 깨고 나오게 한다. 자신을 죽여서 새끼를 살리는 두꺼비를 통해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민중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민청련은 깃발을 든 동학농민군에 빙 둘러싸인 두꺼비를 탱크처럼 그린 판화를 제작, 민청련 기관지 《민주화의 길》 표지에 로고처럼 실었다. - P76

김근태 민청련 의장을 맡으면서 점차 정치 투사가 되어갔다. 온순했던 성격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안기부 수사국장의술상을 뒤엎을 만큼 담대해졌다. 민주화에 대한 의지도 더욱 강해졌으며 대정부 투쟁 방법에서도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만큼 주도면밀해졌다. 그중 하나가 기관지 발행이었다.
당시 제도언론은 이미 언론의 정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대거 쫓겨난 언론계에는 독재정권에 부역하면서 정관계로 진출하거나, 치부하는 데에만 눈이 먼 신문·방송인들이 많았다.
민청련은 반독재 투쟁의 홍보 전략으로 기관지를 발행하기로 했다. 정론 부재의 언론 상황에서 대안언론의 기능을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1984년 3월 11일 민청련은 "관제언론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이 어두움을 뚫고 민주화운동의 앞길을 열어가는 횃불로서 대중언론의 깃발을 높이 들 것"을 선언하며 기관지 《민주화의 길>을 창간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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