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온순한 사람들이 평상시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아이디어를 내게 만들었다. 1942년 10월 말에 오펜하이머는 "비밀"이라고 표기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것은 옛 친구이자 동료인 바이스코프가 보낸 것이었는데, 당시 프린스턴에 와 있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에게서 들은 놀라운 소식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파울리에 따르면, 노벨상을 수상했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얼마 전 베를린의 핵연구 시설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Kaiser-Wilhelm Institute)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파울리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에서 강연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서 바이스코프는 이 소식을 베테와다. 바이스코프는 "나는 스위스에서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는 편이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나 베테가 스위스에 나타난다면의논하고 나서 즉시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독일인들도 같은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라고 썼다. 바이스코프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그 임무를 맡겠다고 자원하기까지 했다.
오펜하이머는 즉시 바이스코프에게 답장을 보내 "흥미로운" 편지를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할 것이라는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워싱턴의 "해당 당국과 이미 의논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정부 당국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싶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 문제를 의논했던 "해당 당국"이란 부시와 그로브스였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바이스코프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설령 하이젠베르크를 성공적으로 납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합국이 핵연구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나치스에게 알리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부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지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로브스는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거나 암살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1944년에 그는 전략 정보국(Office of StrategieServices, OSS) 요원이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모 버그(Moe Berg)를 스위•스로 보내 하이젠베르크의 뒤를 밟게 했다. 하지만 결국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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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게르는 오랫동안 꼼짝 않고 그녀를 응시했고 심장은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어 그녀가 주는 음식을받아먹었다.
그녀는 한입씩 그에게 먹여주었다. 보통 그는 밥 먹을 때 누가 시중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리스베트가 무엇을 원하는지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중을 드는 건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한 그를 정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한입에 적당한 양을 준비해놓고 그가 다 씹어 삼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빨대가꽂힌 잔을 가리키자 그녀가 차분한 손길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밥을 먹는 동안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한입을삼키고 나자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았고 더 원하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젠 됐어.
마침내 홀게르는 휠체어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리스베트가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었다. 문득 자신이 미국 영화에나오는 마피아 두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최고의 존경을 받는카포 디투티 카피•••••  그녀가 손등에 키스해주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 엉뚱한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이 안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홀게르가 뭐라고 웅얼댔지만 혀와 입술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쪽 구석에...... 커피가 있어."
"변호사님도 한잔 하실래요? 전처럼 설탕 없는 밀크커피?"
그가 머리를 끄덕이자 리스베트는 쟁반을 하나 들고 가 조금 있다
커피 두 잔을 받쳐들고 돌아왔다. 오늘 그녀는 평소와 달리 블랙커피를 마셨다. 홀게르는 그녀가 아까 우유 마실 때 쓰던 빨대를 커피잔에 꽂아놓은 걸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홀게르는 할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갑자기 혀가 굳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둘은 여러 차례 눈빛을 주고받았다. 리스베트는 너무나도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살아 계시리라곤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 줄 알았다면 절대로••••• 진작 뵈러 왔을거예요"
홀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해주세요."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입술이굳어 삐딱한 미소였지만. - P185

갑자기 그는 격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동료인 닐스 비우르만에게 연락해 리스베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무력감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왜 아직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그녀의 후견 체제를 끝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계속 만나고 싶었던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괴상한 소녀를 사랑했다. 한 번도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그에게 딸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와 계속 접촉할 구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그녀를 찾는 일이 그에겐 너무도 어려웠다. 이렇게 요양원에서 헌 가방처럼 축 늘어져 있는 주제에, 화장실에 가서바지 지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찾아나선단 말인가.
오히려 자신이 리스베트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여전히 살아남았구나. 하긴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아이였지.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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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리는 얼마 전 시카고에서 왔는데, 그곳에서 1942년 12월 2일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와 그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통제된 핵분열 연쇄 반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시카고는 훌륭한 대학과 세계 수준의 도서관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숙련된 테크니션, 유리공, 엔지니어 등 기술 인력이 풍부한 대도시였다. 로스앨러모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맨리는 "우리는 지금 호레이쇼 앨저(Horatio Alger) 소설책밖에 없는 목장 학교 도서관과 승마 용구 등속밖에 없는 뉴멕시코의 허허벌판에 최첨단 연구소를 지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중성자 가속기를 만들기에는 가용 자원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기록했다. 맨리는 오펜하이머가 실험물리학자였다면 "실험 물리학의 90퍼센트 이상은 사실상 배관 작업"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고, 이런 외딴 곳에 연구소를 지으려고 하지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의 세부 계획은 대단히 복잡했다. 오펜하이머는 일군의 과학자들과 함께 1943년 3월 중순 무렵 로스앨러모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오펜하이머는 베테에게 그 무렵이면 도시 설계 전문가가 과학자들이살기에 적절한 수준의 시설을 준비해 둘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주거시설로는 미혼자들을 위한 숙소와 가족을 위한 방 1개짜리부터 3개짜리까지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이 시설에는 모든 가구가 갖추어져 있었고, 각 가정에는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전화는 설치하지 않았다. 부엌에는 나무를 때는 난로와 히터가 설치되었고 벽난로와 냉장고도 제공되었다. 힘든 가사 일을 돕기 위해 때때로 가정부를 부를 수도 있었다. 로스앨러모스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학교도서관, 세탁 시설, 병원, 그리고 쓰레기 처리장이 건설되었다. 육군 영내 매점이 공동체의 식료품점과 통신 판매점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었다. 여가 생활을 담당하는 장교가 정기적으로 영화 상영과 근처 산으로의 하이킹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는 맥주 및 음료수, 그리고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주점(cantina), 미혼자들을 위한 식당, 그리고 기혼자들이 분위기 있게 식사할 수 있는 멋진 카페를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 P324

세계 최초의 핵무기 연구소에 필요한 시설을 짓고, 과학자들을 충원하며, 모든 장비들을 갖추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인내심이 있는 행정가가 필요했다. 1943년 초에 오펜하이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보다 큰 모임을 주재해 본 적이 없었다. 1938년에 그는 열다섯 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수백 명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지휘해야 했고, 그 수는 곧 수천 명에 달하게 될 것이었다. 그의 동료들 역시 그가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성정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로런스 밑에서 공부하던 젊은 실험 물리학자 윌슨은 "그는 1940년 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괴팍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행정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지요." 1942년 12월까지도 코넌트는 그로브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과 바네바 부시는 "우리가 적당한 사람에게 지휘를 맡겼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썼다.  - P325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맡은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곧 빠르게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윌슨은 불과 몇 달 사이에 그가 카리스마넘치고 효율적인 행정가로 변신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 한때 괴짜 이론물리학자이자 장발의 좌파 지식인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이제 대단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류 지도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윌슨은 "그에게는 품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그는우리가 그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던 것들을 단 몇 달만에 말끔하게 털어버렸습니다. 게다가 행정적인 절차들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구심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했다.  1943년 여름 무렵이면 윌슨은 "그와 함께 있으면 내 능력 이상을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펜하이머의 사람이 되었고, 그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 P327

그리고놀랍게도 오펜하이머는 연구소의 모든 과학자들을 육군 장교로 임관시키자는 그로브스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43년 1월 중순에 오펜하이머는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육군 기지인 프리시디오(thePresidio)를 방문해 육군 중령 계급장을 받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육군의 신체검사 기준치를 넘지 못했다. 육군 군의관들은 오펜하이머가몸무게가 58킬로그램으로 최저 몸무게보다 5킬로그램 적었고, 같은 키와 연령대의 정상 몸무게에 비해서는 무려 12킬로그램이나 적게 나간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그가 1927년부터 "만성적인 기침"에 시달리고있었고, 엑스선 판독 결과 폐결핵을 앓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또한 허리 디스크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다. 약 열흘에 한 번씩 왼쪽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육군 군의관들은 오펜하이머를 "현역 복무 부적격"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브스가 이미 군의관들에게 오펜하이머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고지시해 두었기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위와 같은 신체적인 문제들에도불구하고 현역 복무를 하겠다는 메모에 서명해야만 했다. 
신체검사가 끝나고 오펜하이머는 장교용 군복을 맞췄다.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다. 어쩌면 고급 장교용 군복을 입는 것이 자신의 유태인 혈통에 대해 의식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마침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2년에 군복을 입는 것은 애국적 행위이기도 했다. 전국에서 젊은 남녀들은 국가를 지킨다는 상징적 의미로 군복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오펜하이머의 심리는 단순했다. 윌슨은 "오피는 멍해 보이는 눈을 하고는 이번 전쟁이 이전의 전쟁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이것은 자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이 전쟁이 나치스에 맞서고 파시즘을 물리치기위한 위대한 노력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인민의 군대(people‘s army)와 인민의 전쟁(people‘s war)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요•••••.그의 언어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급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는 애국적인 특징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똑같았던 것입니다"라고 회고했다. 
••••••
그달 말이 되자 그로브스는 절충안에 동의했다. 23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실험 단계에서는 민간인 신분을 유지해도 좋지만, 일단 무기를 실제로 시험해 볼 수 있게 되면 모두 군복을 입도록 했다. 로스앨러모스주변은 철조망을 둘러친 육군 기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술 구역‘안에서 과학자들은 ‘연구소장(Scientific Director)‘인 오펜하이머의 지시에따르게 되었다. 육군은 공동체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통제했지만, 과학자들의 정보 교환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의 의견 교환은오펜하이머의 책임이었다. 베테는 오펜하이머가 육군과 벌인 협상 결과에 대해 "이제 외교 전문가가 되었군요."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 P328

오펜하이머는 라비를 로스앨러모스로 불러오지 못했던 것을 크게아쉬워했다. 그는 라비에게 연구소 부소장 자리까지 제안할 정도로 그를 참가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라비는 폭탄을 만든다는 생각 자체에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1931년에 일본군이 상하이 교외에 폭탄을 퍼붓는 사진들을 보고 난 이후부터, 폭격이라는 방식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26 폭탄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터져 버리지요. 도망갈 수가 없어요. 신중한 사람이건 죄 없는 사람이건 피할 수가 없습니다•••••. 독일과의 전쟁 도중에, 우리(방사선 연구소)는 폭격에 필요한 장비 개발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적이었고 심각한 문제였지요. 하지만 원자 폭탄을 이용한 폭격은 이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것이었고, 나는 그 생각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끔찍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비는 레이더라는 훨씬 간단한 기술로도 이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었다. 라비는 "나는 그 제의에 대해 심사숙고한 끝에 거절했습니다. 나는 ‘나 역시 이 전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있어. 레이더 기술이 부족하면 질 수도 있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27라비는 이에 덧붙여 자신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한 보다 깊이 있는 이유를 댔다. 그는 오펜하이머에게 자신은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 "물리학 300년의 정점"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 말이었고, 라비는 오펜하이머처럼 철학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비가 이미 원자 폭탄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데 비해 오펜하이머에게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친구의 이의 제기를 외면했다. 그는 라비에게 "나 역시 이번 프로젝트가 ‘물리학 300년의 정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네와는다른 생각을 하고 있네. 나에게 이것은 전쟁 중에 상당히 중요한 무기를 만드는 일이야. 나치스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생각해."라고 썼다. 오펜하이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치스보다 먼저 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 P331

라비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일하던 일군의 물리학자들의 "사기가떨어지고 있다."라고 경고하자, 오펜하이머는 20명의 프린스턴 대학교과학자들을 한꺼번에 로스앨러모스로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이것은상당히 중대한 결정이 되었다. 이들 중에는 로버트 윌슨뿐만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라는 명석하고 재기 넘치는 24세의 물리학자도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파인만의 천재성을 즉시 알아보았고, 그를 로스앨러모스로 데리고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파인만의 아내 알린(Arline)은 결핵을 앓고 있었고, 파인만은 그녀를 두고 로스앨러모스로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파인만은 이것으로 얘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1943년 겨울의 어느 날 그는 시카고에서 걸려 온 장거리 전화를 받았다. 오펜하이머였다. 그는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알린이 머물 만한결핵 요양소를 찾아냈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그는 파인만이 로스앨러모스에서 일하면서 주말마다 알린을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파인만은 감동을 받았고 오펜하이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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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녀는 좁다란 철제 간이침대에 묶여 있었다. 온몸을 옭아맨 가죽끈들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는데 마구처럼 생긴 굵직한 벨트가 흉곽을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그녀의 두 손목은 가느다란 가죽끈으로 침대 양쪽 강철봉에 묶여 있었다.
벗어나보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정신은 깨어 있었지만 눈은 감은 채였다. 눈을 떠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보이는 건 시커먼 어둠에 문틈으로 가느다랗게 새어드는 빛줄기가 전부였다. 입에서는 고약한 맛이 느껴졌다. 지금처럼 이를 닦고 싶은 욕구가 맹렬한 적도 없었다.
의식의 일부는 항상 팽팽히 긴장하고 있었다. 발소리를 탐지하기위해서였다. 그 소리는 바로 그가 오고 있음을 의미했으니까. 저녁때라고만 짐작될 뿐 정확히 몇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방문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침대가 진동하는 걸 느끼고 눈을 떴다. 건물 어디선가 기계 같은 것이 작동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이 소리가 현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엑스 하나를 새겨 또 하루를 지웠다.
갇힌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 P9

순수하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에게 법적인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얼마든지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정서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 모든 이성적인 사고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사실을 인정할 뿐, 행위 자체를 자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년전, 리스베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첫눈에 그녀가 자신의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법이니 규칙이니 윤리니 사회적 의무 같은 건이미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참으로 기묘했다. 성인이었지만 마치 미성년자처럼 보였다. 그녀의 삶을 제어할 권리가 그에게 있었으니 더욱 마음대로 그녀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조건이었다. - P50

사회적으로 무능해 남의 손아귀에 맡겨진 난잡한 성인 여자......
그렇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이상적인 장난감이었다.
닐스 비우르만이 이처럼 고객을 학대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과 직업적으로 관계를 맺은 누군가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일은감히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특별한 성적 욕구를 배출하고 싶을 때는주로 성매매를 했다. 은밀하고도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그 일에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그녀들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들의 행위는 연극에 불과했다. 그가 돈을 지불하면 여자들은 신음하고 비명을 질러대며 애써 연기를 했지만 그 모든 결과는 거장의 모사화만큼이나 참담할 뿐이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를 지배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 역시 협조해줬지만 연극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그에게 리스베트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여인인 셈이었다. 그녀에게는 방어수단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완벽하게 취약한 존재이자 진정한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기회가 도둑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그를 짓뭉개버렸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힘과 결의로 반격해왔다. 도리어 그를 능멸하고 고문했다. 한마디로 그를 부숴버렸다. - P51

이윽고 리스베트는 사라졌다. 그녀가 열쇠를 돌려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닐스는 그녀를 더욱 강렬하게 증오했다. 시뻘겋게 달궈진 강철처럼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증오, 그녀를 짓이겨버리겠다는 미친듯한 갈증이 그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증오였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상상했다. ‘그래, 네발로 기면서 자비를 빌게 만들 거야. 하지만 난 무자비하지. 그년 목에 두 손을 대고서 천천히 조를 거야. 얼굴이 새빨개져서 캑캑댈 때까지... 닐스는 그녀의 눈알을 뽑아내고 가슴에서 심장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지구상에서 그녀를 깨끗이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 그의 육체가 다시 기능하기 시작했고 기이한 정신적 균형 상태가 되돌아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 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어 있는 매 순간을그녀의 존재에 집중하고 있음을.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다시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녀를 짓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성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해야 했다. 그의 삶에 새로운 목적이 하나 생겼다.
닐스는 그날 이후로 더이상 리스베트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 P56

미카엘은 이 자리에서 다그를 처음 만났지만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류의 기자, 즉 이야기의 본질을 아는 기자였다. 미카엘이 생각하기에 기자가 명심해야 할 진실이 하나 있다면 어떤 일에는 항상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 즉 나쁜 놈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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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은 이 자리에서 다그를 처음 만났지만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류의 기자, 즉 이야기의 본질을 아는 기자였다. 미카엘이 생각하기에 기자가 명심해야 할 진실이 하나 있다면 어떤 일에는 항상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 즉 나쁜 놈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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