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녀는 좁다란 철제 간이침대에 묶여 있었다. 온몸을 옭아맨 가죽끈들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는데 마구처럼 생긴 굵직한 벨트가 흉곽을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그녀의 두 손목은 가느다란 가죽끈으로 침대 양쪽 강철봉에 묶여 있었다.
벗어나보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정신은 깨어 있었지만 눈은 감은 채였다. 눈을 떠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보이는 건 시커먼 어둠에 문틈으로 가느다랗게 새어드는 빛줄기가 전부였다. 입에서는 고약한 맛이 느껴졌다. 지금처럼 이를 닦고 싶은 욕구가 맹렬한 적도 없었다.
의식의 일부는 항상 팽팽히 긴장하고 있었다. 발소리를 탐지하기위해서였다. 그 소리는 바로 그가 오고 있음을 의미했으니까. 저녁때라고만 짐작될 뿐 정확히 몇시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방문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침대가 진동하는 걸 느끼고 눈을 떴다. 건물 어디선가 기계 같은 것이 작동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이 소리가 현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엑스 하나를 새겨 또 하루를 지웠다.
갇힌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 P9

순수하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에게 법적인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얼마든지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정서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이 모든 이성적인 사고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사실을 인정할 뿐, 행위 자체를 자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년전, 리스베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첫눈에 그녀가 자신의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법이니 규칙이니 윤리니 사회적 의무 같은 건이미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참으로 기묘했다. 성인이었지만 마치 미성년자처럼 보였다. 그녀의 삶을 제어할 권리가 그에게 있었으니 더욱 마음대로 그녀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조건이었다. - P50

사회적으로 무능해 남의 손아귀에 맡겨진 난잡한 성인 여자......
그렇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이상적인 장난감이었다.
닐스 비우르만이 이처럼 고객을 학대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과 직업적으로 관계를 맺은 누군가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일은감히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특별한 성적 욕구를 배출하고 싶을 때는주로 성매매를 했다. 은밀하고도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그 일에서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그녀들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녀들의 행위는 연극에 불과했다. 그가 돈을 지불하면 여자들은 신음하고 비명을 질러대며 애써 연기를 했지만 그 모든 결과는 거장의 모사화만큼이나 참담할 뿐이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를 지배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 역시 협조해줬지만 연극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그에게 리스베트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여인인 셈이었다. 그녀에게는 방어수단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완벽하게 취약한 존재이자 진정한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기회가 도둑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그를 짓뭉개버렸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힘과 결의로 반격해왔다. 도리어 그를 능멸하고 고문했다. 한마디로 그를 부숴버렸다. - P51

이윽고 리스베트는 사라졌다. 그녀가 열쇠를 돌려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닐스는 그녀를 더욱 강렬하게 증오했다. 시뻘겋게 달궈진 강철처럼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증오, 그녀를 짓이겨버리겠다는 미친듯한 갈증이 그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증오였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상상했다. ‘그래, 네발로 기면서 자비를 빌게 만들 거야. 하지만 난 무자비하지. 그년 목에 두 손을 대고서 천천히 조를 거야. 얼굴이 새빨개져서 캑캑댈 때까지... 닐스는 그녀의 눈알을 뽑아내고 가슴에서 심장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지구상에서 그녀를 깨끗이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 그의 육체가 다시 기능하기 시작했고 기이한 정신적 균형 상태가 되돌아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 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어 있는 매 순간을그녀의 존재에 집중하고 있음을.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다시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녀를 짓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성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해야 했다. 그의 삶에 새로운 목적이 하나 생겼다.
닐스는 그날 이후로 더이상 리스베트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 P56

미카엘은 이 자리에서 다그를 처음 만났지만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류의 기자, 즉 이야기의 본질을 아는 기자였다. 미카엘이 생각하기에 기자가 명심해야 할 진실이 하나 있다면 어떤 일에는 항상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 즉 나쁜 놈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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