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온순한 사람들이 평상시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아이디어를 내게 만들었다. 1942년 10월 말에 오펜하이머는 "비밀"이라고 표기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것은 옛 친구이자 동료인 바이스코프가 보낸 것이었는데, 당시 프린스턴에 와 있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에게서 들은 놀라운 소식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파울리에 따르면, 노벨상을 수상했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얼마 전 베를린의 핵연구 시설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Kaiser-Wilhelm Institute)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파울리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에서 강연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서 바이스코프는 이 소식을 베테와다. 바이스코프는 "나는 스위스에서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는 편이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나 베테가 스위스에 나타난다면의논하고 나서 즉시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독일인들도 같은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라고 썼다. 바이스코프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그 임무를 맡겠다고 자원하기까지 했다.
오펜하이머는 즉시 바이스코프에게 답장을 보내 "흥미로운" 편지를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할 것이라는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워싱턴의 "해당 당국과 이미 의논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정부 당국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싶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 문제를 의논했던 "해당 당국"이란 부시와 그로브스였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바이스코프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설령 하이젠베르크를 성공적으로 납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합국이 핵연구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나치스에게 알리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부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지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로브스는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거나 암살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1944년에 그는 전략 정보국(Office of StrategieServices, OSS) 요원이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모 버그(Moe Berg)를 스위•스로 보내 하이젠베르크의 뒤를 밟게 했다. 하지만 결국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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