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게르는 오랫동안 꼼짝 않고 그녀를 응시했고 심장은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어 그녀가 주는 음식을받아먹었다.
그녀는 한입씩 그에게 먹여주었다. 보통 그는 밥 먹을 때 누가 시중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리스베트가 무엇을 원하는지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중을 드는 건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한 그를 정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한입에 적당한 양을 준비해놓고 그가 다 씹어 삼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빨대가꽂힌 잔을 가리키자 그녀가 차분한 손길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밥을 먹는 동안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한입을삼키고 나자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았고 더 원하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젠 됐어.
마침내 홀게르는 휠체어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리스베트가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었다. 문득 자신이 미국 영화에나오는 마피아 두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최고의 존경을 받는카포 디투티 카피•••••  그녀가 손등에 키스해주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 엉뚱한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이 안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홀게르가 뭐라고 웅얼댔지만 혀와 입술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쪽 구석에...... 커피가 있어."
"변호사님도 한잔 하실래요? 전처럼 설탕 없는 밀크커피?"
그가 머리를 끄덕이자 리스베트는 쟁반을 하나 들고 가 조금 있다
커피 두 잔을 받쳐들고 돌아왔다. 오늘 그녀는 평소와 달리 블랙커피를 마셨다. 홀게르는 그녀가 아까 우유 마실 때 쓰던 빨대를 커피잔에 꽂아놓은 걸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홀게르는 할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갑자기 혀가 굳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둘은 여러 차례 눈빛을 주고받았다. 리스베트는 너무나도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살아 계시리라곤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 줄 알았다면 절대로••••• 진작 뵈러 왔을거예요"
홀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해주세요."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입술이굳어 삐딱한 미소였지만. - P185

갑자기 그는 격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동료인 닐스 비우르만에게 연락해 리스베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무력감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왜 아직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그녀의 후견 체제를 끝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계속 만나고 싶었던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괴상한 소녀를 사랑했다. 한 번도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그에게 딸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와 계속 접촉할 구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그녀를 찾는 일이 그에겐 너무도 어려웠다. 이렇게 요양원에서 헌 가방처럼 축 늘어져 있는 주제에, 화장실에 가서바지 지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찾아나선단 말인가.
오히려 자신이 리스베트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여전히 살아남았구나. 하긴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아이였지.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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