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록서序

어째서 후삼경자後三庚子라고 했는가. 여정과 날씨의 흐리고 맑음을 기록하면서 한 해를 가지고 달과 날짜를 말하려는 것이다. 어째서 ‘후後‘라고 했는가.
지금이 숭정崇禎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외층이 통치하던 시기의 연호) 연간의 뒤를 잇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삼경자‘라 하였는가. 숭정 황제가 즉위한 지 세번째로 맞는 경자년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숭정‘을 말하지 않았는가. 압록강을 건너야하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이다. 어째서 이를 피했는가. 강 저편은 온통 청나라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천하가 모두 청나라의 연호를 쓰기 때문에 감히 숭정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사사로이 숭정을 말하는 것인가.
황명皇明은 중화인데 우리나라가 애초에 승인을 받은 상국上國인 까닭이다. 숭정17년 의종황제가 명나라 사직을 위하여 죽었다. 명이 망한 지 벌써130여 년이나 되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숭정의 연호를 쓰고 있는가. 청나라사람들이 들어와 중국을 차지하자 선왕의 제도가 변해서 오랑캐가 되었다. 우리의 동녘 수천리 강토는 강을 경계로 나라를 이룩하여 홀로 선왕의 제도를지켰다. 이는 명나라의 황실이 여전히 압록강 동쪽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는 일이다. 힘은 비록 저 오랑캐를 쳐 없애고 중원 땅을 깨끗이 정리함으로써 선왕의 옛 시절을 광복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사람마다 모두 숭정을 높여 중국을 보존하자는 뜻이다.
숭정 156년 계묘에 열상외사(열上外史연암의 별호)는 쓰다.
‘후삼경자‘는 곧 우리 성상聖上 (정조를 말함) 4년(1780년) 청淸 건륭乾隆 45년이다. - P36

성문에 못 미쳐 동쪽에서 한바탕 소나기가 몰려온다.
채찍을 마구 휘두르며 서둘러 성 문턱에 와서야 말에서내렸다. 혼자 문루에 걸어 올라갔다. 성 밑을 굽어보니,
창대 혼자 말을 잡고 섰고 장복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뒤 장복이가 튀어나와, 길 옆 작은 일각문‘에 버티고 서서위아래를 살피더니 삿갓으로 비를 가린다. 손에는 조그만오지병을 들고 바람나게 걸어온다. 둘이 주머니를 터니 돈스물여섯 푼이 나왔단다. 조선의 돈은 청나라로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길에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술을 샀다는 것이다.
"너희들, 술은 얼마나 하느냐?"
"입에도 못 댑니다요."
"예끼! 한심한 놈들, 술도 마실 줄 모르다니."
한바탕 꾸짖으면서 다른 한편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술도먼 행로에 약간의 도움은 될 테지."
혼자서 쓸쓸히 한 잔을 부어 마시며 동쪽을 바라보니,
용만과 철산의 모든 산들이 첩첩 구름 속에 들어 있다.
다시 한 잔을 가득 부었다. 문루 첫번째 기둥에 뿌리며, 잘다녀올 것을 스스로 빌었다. 그리고 또 한 잔을 부어 그다음 기둥에 뿌리며 장복과 창대를 위해 빌었다. 술병을 흔들어 보니, 아직도 몇 잔 더 남아 있기에 창대를 시켜 술을 땅에 뿌리도록 했다. 말을 위한 것이다. - P42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기하학의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
그러므로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정자산‘ 같은사람이라야 될걸."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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