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닦음은 자체로 가치가 있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가 부드러워짐에 따라 지혜와 내적 평화가 비례하여 커지고,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도 커진다. 어떤 이들은 자연, 나아가 우주 전체로부터 환영받는 느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끔 모든 것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고립된 자아로 자신을 보는 것에서, 일체가 국소적으로 현현한(manifesting) 것이 바로 자신(you)이라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오직 한 덩어리, 오직 하나의 여여함(suchness)이라는 심오한느낌은 진실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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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seeing)과 관련하자면, 거기에는 오직 봄밖에 없을 것이다. 들을때는, 오직 들음뿐. 감각할 때는, 오직 감각뿐. 인식할 때는[예를 들어, 생각하기, 느끼기, 기억해 내기], 오직 인식함뿐. 스스로를 이렇게 훈련시켜야한다.
너에게 있어 볼 때는 오직 봄만, 들을 때는 오직 들음만, 감각할 때는 오직 감각만, 인식할 때는 오직 인식함만 있다면, 바히야여, 그때 그것들과 연결된 너는 어디에도 없다.
그와 연결된 네가 없을 때, 거기에 너는 없다. 거기에 네가 없을 때,
너는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으며, 그 둘사이에도 없느니라.
이것, 오직 이것만이, 고통의 종말이니라."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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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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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작가가 남긴 660여 편의 산문 중 베스트 35편을 선별하여 놓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박완서작가.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 유명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아직 읽어보질 못했다. 갑작스레 다 찾아읽을 자신은 없어서 우선 그녀의 인생 요약본이라 생각되는 책<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을 통해 작가 박완서가 왜 '한국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고, 나 역시 그녀의 인생과 감성과 문체에 흠뻑 빠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얼마나 가볍고 헛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소박하고 쉬운 글처럼 보이지만 세월의 깊이와 단단함이 쌓이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진실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것만 겨우 눈치챘을 뿐이다.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생각을 바꾸니> p128

책 속 이야기들 중 가장 끌렸던 <생각을 바꾸니>에는 노래를 잘 못하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노래방까지 가게되어 곤욕을 치른 경험담이 담겨있다. 그녀는 노래를 못해서 늘 노래불러야 하는 상황을 피해다녀야 했고, 어쩌다 그 상황에 놓이면 분위기 망치는 죄인이 되어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도 나와 같았다니, 살면서 같은 공감을 나눈 적이 없어서 그런지 반갑다 못해 놀랍기까지 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가수도 아닌데 잘하면 어떻고 못하면 어때? 그냥 즐기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소심하고 자의식 강한 나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못하는 것, 자신 없는 것은 절대 타인 앞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때마다 드는 자기혐오다. '나는 왜 노래를 못해서 부끄러워야 하는 걸까. 못하면 활발하기라도 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던가' 같은 생각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든다. 작가는 친구에게 '너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게'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지만 나는 그녀처럼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는 수 밖에 없다.

부끄러움. 수치심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만은 일어나면 안 될 일이라 생각하니 힘든 것이다. 내가 뭐길래. 나 역시 허점 많은 평범한 사람이고 내 인생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상처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나만은 안돼!'같은 교만한 생각을 '그럴 수 있어'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엄숙하기만 한 지금의 삶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간은 신이었을까> p252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이지만 힘이 있고, 현실적이지만 따뜻했다. 다만 글 속 디테일한 포인트는 깊이있게 공감하지 못했다. 작가는 다른 시대를, 다른 환경을 살았고, 내게는 그 세월을 공감할 터득된 연륜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늙어가는 내 모습에,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낸 것에만 서글퍼했지 정작 중요한 나이 먹을 자격이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주는 고통을 통해 성숙하게 변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아파하고 휘둘리는 것을 보면.. 그래도 다행인 건 나만 후회하고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도. 대단하게만 보이는 박완서작가 역시 부족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살았다 하시니 '그럴 수 있다'고 털어내고 작가의 소소한 글처럼 가벼우면서도 탄탄하게 살아가보고 싶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무탈히 살아온 인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주는 따뜻한 책이다. 박완서작가의 진실된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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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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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작가다. 헤르만 헤세, 카프카 등 동시대에 유명한 작가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2000년대 이후 그의 편지와 일기들이 공개되면서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재조명되고 있다.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유복하지만 화목하지는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부인과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수수께끼의 인물이라 불리었던 슈테판 츠바이크. 그의 사적인 삶은 상당부분 가려져있지만 그가 남긴 시와 소설들을 통해 지성인의 면모와 섬세하고 예리한 통찰력을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영혼과 정신과 감정과 고통!

우리는 언제나 오만하게 이런 것들에 대해 언급하곤 하지만

저는 이들이 지극히 약하고 보잘것없고 형체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경악하곤 합니다.

정신적 고통이 최대 용량에 달했을 때조차도 괴로워하는 몸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그런 순간에도 쓰러져 죽지 않고, 계속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고통은 비겁합니다.

고통은 살고자 하는 막강한 요구 앞에서는 움찔 물러섭니다.

살고자 하는 요구는 우리의 정신 안에 있는 죽음을 향한 열망보다 더 강하게,

우리의 육신속에 뿌리내리고 있나봅니다.

<어느 여인의 24시간> P344

이 책<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요 소설 6편을 모아 만든 단편집이다. 작가는 각각의 이야기마다 어떤 상황에 놓인 인물의 혼란스러운 내면세계를 심리분석가처럼 세밀하고 집요하게 포착하여 숨가쁘게 그려내고 있어 독자가 소설 속 인물이 겪는 주제에 깊이 빠져들어 다음 내용이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아찔한 비밀>은 사춘기소년이 어른들의 위선적인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느끼는 혼란과 불안을 그려낸 작품이고, <불안>은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배우던 시기에 쓴 작품으로 불륜에 빠진 유부녀가 연인의 전 여자친구라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협박을 당하게 되면서 자신의 불륜이 발각될까 봐 불안해하는 심리를 해부하듯 풀어내었다.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전쟁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이야기로 옮겨와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츠바이크가 주인공 R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다. 자신때문에 상처입은 여성을 가감없이 묘사하여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하는 내용이라 짐작된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전쟁배상금때문에 인플레이션을 겪던 독일의 상황을 액자소설 형식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른채 환상속에서 살고있는 늙은 시작장애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남편이 죽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정숙한 여인이 도박중독에 빠진 한 청년을 도우려다 사랑에 빠져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 내용이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속 6편 모두 나름의 매력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나와는 연관성하나 없는 내용들임에도 어느 순간 그 상황들이,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흡입력 강한 고전소설을 찾는다면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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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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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 체제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켜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배경은 당이 허구의 인물 '빅브라더'를 내세워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당은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라는 슬로건 하에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등을 이용하여 독재체제를 유지해나간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곳에서 독재의 신성화를 위해 없애야 하는 과거기록들을 정정, 삭제하는 일을 한다. 그는 '빅브라더'의 감시때문에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삶에 답답함을 느끼고, 그들의 눈을 피해 일기를 쓰고, 연애를 하며 반체제적 행동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일탈들은 처음부터 감시당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사상경찰에 붙잡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고 마지막 남은 심리적 의지까지 당에게 빼앗기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현재 진실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이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단지 끝없이 자신의 기억과 싸워 그것을 무찔러 버리는 것뿐이다.

그들은 그것을 '현실 통제'라고 했으며, 신조어로 '이중사고'라고 했다.

<1984> p056

<1984>에서 개인의 존엄과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그래서 각각의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면 기득권의 권력유지가 불가능해지기때문에 그들은 밤낮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여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의 내면까지 억압할 수는 없었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존재이기에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주인공 윈스턴은 붙잡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죽음과 가까워지는 걸 알면서도 '빅브라더'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했다. 자신의 욕망, 감정, 판단이 무력화된 채 빈껍데기로 살아가기 싫어서 하루하루를, 미래가 없는 현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책에 출구는 없었다. 윈스턴은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수 없었다. 모두에게는 각각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 있기 마련인데 당은 그에게 가장 끔찍한 것이 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 공포를 견딜 방법이 없었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해서든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2 더하기 2는 4'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2 더하기 2는 5'다.

실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닐세. 실재는 인간의 정신속에 있는거야.

개개인의 정신속에 있는 게 아니라네. 오직 당의 정신 속에 있는 거라네.

그게 무엇이든 당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진실이 '되는' 걸세.

<1984> p380

<1984>는 1940년대에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쓴 글이지만 놀랍게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CCTV, 인터넷 검색, 카드결제 등 안전과 편리함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는 자유와 생각을 위협받고 있고, 환경문제와 사회구조의 변화로 정신세계도 피폐해지고 있다. 그리고 집단과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는 우리를 점점 더 무력하게 만든다.

책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위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기술의 발달과 집단의 이기심에 저항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나만의 가치관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까지 파고들어 그들이 원하는 '이중사고'에 갇혀 조종당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두려움과 참담함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아직 1984를 읽지 않은 분들께는 꼭 한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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