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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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교수의 책들을 앞서 읽은 덕에 어려움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고 이런 광대한 이야기들을 좀 많은 페이지지만 한 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신분석 공부는 다시 한번 느끼지만 너무 어렵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영혼의 주인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기의기분이나 정서를 제어할 수 없는 한, 무의식적인 요인이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계획이나 결정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은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무의식적 요인이 생기는 것은 원형이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기의 분열 상태를 인식하지 않기 위해 칸막이 체계 systent of compariment 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니까 외부 생활과 자신의 행동 영역의 특정 부분을 각각 다른 서랍에 넣어 놓고 서로 대면시키지 않는 것이다.
- P122

 자기실현이라고 하는 이 과업이 사람마다 다른, 말하자면 지극히 독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대부분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모든 소나무가 다 비슷하지만(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소나무인 줄 안다)똑같은 소나무는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성화 과정의 다양한 모습을 요약하기 어려운 것은, 개인의 모습이 끝없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은 어떤 측면에서든 타인과는 다른 것, 결국 자기 자신에게만 고유한 것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251

실제적인 용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인간 존재라고 하는 것은 개개의본능 즉 배고픔, 권력, 성, 적자생존, 종의 보존 같은 일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메커니즘 내에서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없다. 그 까닭은 인간의주된 목적은 먹는 것, 혹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되는것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적 심리 현실은 단순한 본능의 욕구를 초월해 살아 있는 신비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상장을통한 표절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강력한 우주적 인간 의 이미지를 선택한다.
- P310

실제로 사람이 순수하게 내적인 세계를 향하고, 자기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면(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반추하는 대신 꿈이나 공상 같은 객관적 본성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일 경우), <자기>는 언젠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자아는 새로운 재생을 가능케 하는 내적인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금까지는 간접적으로밖에는 기술할 수 없었던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이 어려움이 무엇이냐 하면 무의식의 인격화(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는 빛과 어둠의 양면을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그림자는 열등한 측면, 나쁜 측면, 따라서 우리가 필경은극복해야 하는 본능적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그것은 우리가 키워 나가고 순종해야 하는 성장의 충동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니마, 아니무스도 양면성을 지닌다. 이 양자는 인격에 창조성을 부여할 수도 있고, 육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할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전체를 포괄하는 무의식의 상징인 자기까지도 상극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가령 에스키모 설화에서 키작은 부인은 달의 정에게서 주인공 소녀를 구해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이 주인공을 거미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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