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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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늘 내 자신에게 묻곤 했지. 내게 장애가 있나? 단어가 입술 사이를 가로막아 산산조각이 난 언어. 끝없이누수되는 호흡, 치아 사이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말들
나는 분명 장애가 있지. 타인의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일일까? 장애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오직 확인만 가능할뿐이지. 잘려져 나가거나 뽑혀져 없어져야만 비로소 알아볼 수 있는 불구, 혹은 처음부터 남다른 기형의 조건들, 그들은 오직확연하게 다른 것만 분간할 수 있거든. 입속에 숨은 작은 혓바닥이 아무리 떨며 뒤틀려도 내 혀는 불구가 아니야. 그들은 내장애를 이해할 수 없어.
- P18

지루함이 길면 죽고 싶어진다. 파도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닷속에 잠겨 있던 침묵이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부서지는 것뿐. 들리는 것은 끝없는 침묵, 침묵뿐이다. 지루하 다. 지루해지면 곧 우울해졌다. 우울함이 길어지면 마음 깊숙한곳이 뒤집히고, 수없이 많은 방이 텅텅 비는 것 같은 허무함을 느꼈다. 그럴 때면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갑판에 몇 번이고 침을 뱉었다. 침은 금세 말라붙어 죽은 새우껍질처럼 하얀 찌꺼기들을 남겼다. 그 찌꺼기들을 보고 있으면또 지루해지고, 우울해지고, 기어이 죽고 싶어졌다. 시간은 죽고 싶다는 생각의 끝없는 회귀이고, 삶은 그것을 버텨내는 불안함이자 미쳐가는 정신의 바다를 항해하는 돛 없는 배였다. 난끝없이 표류하고 조금씩 침몰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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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20-05-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함에 그냥 빠져보고 싶네요.

몽이엉덩이 2020-05-1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읽기가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