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피치
이서현 지음 / 한끼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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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 상처가 한 사람의 생을 오래도록 짓누르곤 한다. 도깨비 몫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재회의 벽“ 덕에 어쩌면 사람들은 스스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상처와 좌절을 넘어설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본 가영이란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 가영이 그랬듯 누군가들도 가영에게 함께 해주어서도. 정말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여름의 마지막 피치>, 이서현 장편소설, 한끼

p47 “보다 보면 조금은 저를 챙기고 싶어지거든요. 엉망진창인 하루에도 내가 먹을 밥을 하면 되는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수고를 알아주자, 그런 마음이요. 요리를 잘 못해서 대부 분은 실패하지만요."
울컥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거라고, 요리가 아닌 제 몸만 보고 있을 거라 여겼던 걸까.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에 좋아하던 요리마저 외면했었다.

p57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태준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반짝거리던 지난 과거가 오직 태준 때문이라 여겼는데••••• 태준을 마주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가 요리가 하고 싶었다.

p82 “그러니까 갑자기 지고 싶지 않아졌어요. 지금 내 몸은 나를 방치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생긴 결과물이 나 다름없는데? 저 아픈 데 하나 없고, 오히려 엄청 건강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처럼, 아니 더 충실하게 해보려고요."
기나긴 고백의 말을 듣는 동안 현수는 한 숟갈도 먹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야 화를 내던 주아도, 달라진 주아도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확신을 찾은 주아가 멋있고 부러워졌다.

p154 “엄마는 뭐 알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왜 몰라. 인생 살아봐. 빤히 보이는 게 있는 거야."
“나 별로 손가락질 안 받았어. 무지 잘나갔어. 다들 용하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지금도 예약이 내후년까지 가득 차 있네요."
“그게 아니라."
엄마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윤호를 쳐다보았다.
“무당 찾아오는 사람 중에 즐거운 사람이 있어? 매번 우는소리만 들어야 할 텐데. 그 인생들을 어떻게 다 짊어지고 사나. 무거워서 어떡하나."
윤호는 목이 메었다. 이제껏 들어온 괴로움이, 분노가, 슬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p193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번쯤은 균형이 깨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예요."
“응?"
“클라이밍 할 때마다 다들 그러잖아요. 균형이 맞아야 한다. 중심을 잡아라. 근데 기회가 딱 한 번이라면 한 번쯤은 힘이 가는 쪽에 더 힘을 실어줘도 된다는 거죠."
생각지도 못했던 충고였다. 아픈 발목 생각만 하느라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주아의 말에 오히려 힘을 줄 곳이 더 분명해졌다.

p216 늘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민경의 말을 의심한 적도 있었다. 1등의 여유이겠거니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 적도. 지금은……민경의 말처럼 같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클라이밍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이 자신을 처음으로 돌려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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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
캔디(윤다림) 지음 / 들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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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의 짧다면 짧은, 여는 글을 읽으면서도 울컥 일렁하였다. 같은 도시와 동네에서는 아닌,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저자인 캔디의 이야기를 보아와서이기도 하고, 성소수자인권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그의 활동을 만나고, 보아와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친구들과 동료들의 어떤 얼굴들과 태도들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어서일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주요한 이유일 ‘력사’님 이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1부에 해당할 글을 읽어가는 것이 쉬운 것이거나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찌한다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늘 생각하더라도 실제 마주하는 것과 또 그러기까지 돌봄과 일상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주 돌봄을 해야하는 형태로 있어보지 않았기에 여전히 막막한 것들을 나도 모른 체하며 살았을 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상황들.

행복, 으로만 기억되거나 남진 않고 여러 감정과 감각으로 남겠으나 나에게 뮤지션 이랑과 활동가 캔디가 곁을 떠나보내며 나눠준 사랑과 돌봄은 정말 다른 레퍼런스가 되었다. 하나의 물질적 행위일 장례와 그리고 그 전후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애도에 대해서. 최근 읽는 책에서 무지하게 많이 만나고 있는 ‘배회’라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안녕과 완료점 그리고 이어지는 삶에서 계속해서 나눠가고 확장해갈 사랑과 돌봄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랑과 돌봄은 그가 누가됐든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이성애 규범 속 단일한 모양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쓰여지고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이 이 퀴어한 참조들이 필요하다. 그게 캔디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풍성하고 다정한 레퍼런스들이 생겼다.

물론 그전에도 이미 캔디는 바이섹슈얼로도 나에게 어떤 레퍼런스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캔디와 오쓰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다채로운 레퍼런스라고 생각한다. 결혼 소식을 알려주던 그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전의 캔디와 달리 결혼하고픈 바람이 잘 없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둘의 관계에서 둘로만 완료되는 것이 아닌 ‘다르고’ 더 ’확장된‘ 사랑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정상가족 범주에 톡톡 균열을 내고 드넓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연애를 하고 헤어진 후 관계가 단절되고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에도 여전히 보통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연애 경험을 공유한 전 애인들, 남성과도 여성과도 모두 친구로 지내고 있고, 가족이라 여기는 이도 있는데, 그에 대해 의아한 반응이나 신기해하는 반응을 받을 때가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캔디와 오쓰 두 분의 관계와 그들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력사,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부분 ‘참조‘점이 된다. 혹여 내가 언젠가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지더라도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다른‘ 모양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원가족 중심의 장례와 죽음이지 않고 싶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동료가 될 참고점들이 생기고 있다.

그러니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내가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모습 또한 어떤 다양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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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김진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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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짧은 글들이 작지만 빼곡히 담긴 <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사랑이 뭘까 잘 모르겠던 시절, 서툴고 부족했던 시간들, 헤어나오지 못할만큼 빠진 나나들, 미움과 안녕들. 상처와 고통. 회복과 취향들. 다양한 감정들과 경험, 기분들이 담겨있다. 어떤 면에선 진부함도 존재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우리 생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될 때는 또 얼마나 그것이 특별해질까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 진리일지도. 사랑 하나에 마음을 다 내어주는 이는 사랑과 또 사랑을 걸쳐 나를 지키고 나를 사랑하면서 타인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거겠지. 부디 그러할 수 있기를. 나도, 당신도. 사랑이 소중하고 필요한만큼 내 자신 역시 그러하니까.

그렇게 사랑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온다. 우리 앞에 선다.

<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김진아,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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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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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인 바누 무슈타크의 <하트 램프>는 ‘여성’에 대헌 억압적이고 소외된 일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강고한 가부장제의 관습 속에서 핍박받고 차별받지만, 그럼에도 살아내고 살아나가는 여성들을 담고 있다. 인도의 무슬림 공동체라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공간의 이야기이긴 하나, 이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외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법률가이자 활동가이기도 한 작가는 그러한 차별적 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도 가 닿기 위한 노력을 기하고 있는 들을 썼다. 덕분에 인도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당신들을 만난다.

<하트램프>, 바누 무슈타크,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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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해 닳은 사랑
히코로히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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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덕에 첫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런, 뭐랄까… ‘작정하고’ 연애 연애인, 소설을 읽은 것 같기도. 그것도 일본 소설이라니! 추천사를 쓴 요시모토 바나나도, ‘시마세 연야문학상’을 받은 저자와 같이 이 상을 이미 받은 에쿠니 가오리도 좋아하는/좋아했던 일본 소설가이다. 특히나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세계관을 사랑했다. <닿지 못해 닳은 사랑>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거나 로맨틱한 이야기들이 있는 것은 아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우리 인생에서 대체로 연애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공감되기도 하고, 찌르르- 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새 좀 생경해진 감각에 담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맞아, 그랬지. 하나만의 감각만이 아니라 정말 그라데이션 같은 색감과 감정이 존재하는 게 우리네 연애였지.

<닿지 못해 닳은 사랑>, 히코로히 지음, 문예춘추사

p12 화를 내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 그를 이해 하려 애쓰는 데도 지쳤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도 포기했다. 내 속에서 리쿠에 대한 감정 한 조각이 또 뚝 부러져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부러져나가는 감정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부러져야 완전히 사라질까. 그리고 이미 이만큼 부러진 이상, 정체 모를 ’이것‘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나는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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