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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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소통을 하고 설득의 장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세상에서, 그런 단위와 환경들이 넘쳐나는 중에, 또 다른 스펙트럼의 이들과 이해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사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가슴에 깊이 공감되는 밑줄이 남게 되는 책이었다. 침묵할 수 있고, 무대응할 수 있다. 이해도 들으려고도 하지 이에게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넓히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위안이 되었다.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창비

p16-17 ‘보편'의 상대어는 '특수'가 아니라 '차이'지요. 차이는 보편을 해체, 재구성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를 드러내고 다르게 말하는 것,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말하기,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 소통의 실마리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목소리들이 있었겠죠. 모든 책은 다시 쓰여야 합니다.

p20 이 책은 소통 가능성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자기돌봄의 외침에 가깝습니다. 자기돌봄이 가능할 때 타인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이의 소통이 본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소통방식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인문학적 시도입니다. 소통이 왜 근본적으로 불가능한가에 대한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4 그래서 이 책이 제안하는 것은 소통의 포기나 소통 잘하는 법이 아니라 '소통에 관한 고민' 최소한의 소통'입니다. 모든 사람과 원활한 소통을 바라지 말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침묵이 나을 때는 침묵할 권리를 행사하고, 나에게 의미있는 관계와 장면을 골라 최소한으로 소통하는 법을 연습하자는 것입니다. 이때 소통 불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현실 인식이나 비관론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답을 찾기 위한 전제조건이 됩니다.

p36-37 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평화라면, 그것은 조용한 평화가 아니라 격렬한 평화입니다. 서로의 전압이 충돌하고,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 상대를 회피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견디는 상태, 다름을 지탱하는 대화. 저는 그런 의미의 대화만이 평등에 가깝고 윤리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p55 계급•장애•젠더•나이•경험•처지 등에 따라 혹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서로의 삶이 다르고 언어 역시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젠더만으로 구성되는 '여성과 '남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젠더, 계급, 지역, 성정체성, 인종, 장애, 연령 등이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결합되어 있는 복합적 존재입니다.

p64-65 한편 언어는 '사람 아닌 자들'을 양산하는 장치로도 작동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라는 혐오 표현을 듣습니다. 일단 이는 문법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누군가가 동성애
'행위를 반대하는 의견을 가질 수는 있어도 동성애자를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동성애자를 반대한다? 이는 동성애자라는 사람의 '존재'를 반대한다는 의미인데, 그러기는 불가능하지요. 행위를 비난하는 것과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성애 규범과 생물학적 핵가족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가족제도를 비판하지만, 이성애자라는 존재 자체를 적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라는 혐오 표현은 이 둘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합니다.

p69 고통을 경쟁하는 문화가 일상의 일부가 된 이유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평범하게 살면서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자체가 비윤리적일 때 유일하게 깨끗한 위치는 피해자의 자리뿐입니다.

p70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에서 "나는 피해자다"라는 선언은 "그래도 나는 윤리적이다"라는 자기확신의 의미를 띱니다. 『부산행」 의 좀비는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이기도 한 애매한 우리 시대의 자아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요?

p81 거듭 말씀드리지만 페미니즘의 목적은 가부장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모순을 극대화하고 틈새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공존합니다. 물론 가부장제도 여성주의와 공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죠. 그렇지 않은 사회를 우리는 파시즘, 전체주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82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것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부수적인 존재로 동원하는 '백인 남성'의 사고방식을 따라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수많은 제2의 성과 타자들을 '제3의 성'(아줌마, 난민, 이주민·•)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지 않는 실천입니다.

p88 위치성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젠더, 연령, 계급, 지역, 인종, 장애 여부, 이성애 제도, 개인의 캐릭터 등은- 사회적 구조이자 개인의 삶, 몸의 경험 그 자체를 구성합니 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사회운동에 의해 새롭게 등장하고 가시화 및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이 있기 전까지 젠더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자 인권운 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으로 인해 동성애는 공식적으로 '질병'에서 '정체성'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죠.

p99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중심•주류는 자신을 특별하게 명명할 필요가 없지만, 주변은 늘 자신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포지션의 차이와 언어적 비대칭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 느냐에 따라 우연히 대화가 성사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고, 평행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p111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은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 언어가 서구•남성•이성애•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에 그 바깥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단어를 찾기 위해서는 '의식화' 등 별도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주의를 "끊어진 언어의 길을 다시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든 이주민이든 노동자든 모든 타자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모든 집단에는 여성이 있고, 성차별은 모든 차별의 모델이 되니까요.

p112 이렇게 언제나 임시적인 모색이라는 점이 페미니즘 공부가 어려운 이유지요. 기존 개념의 전제를 의심하고 새 이름과 언어를 찾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만들어진 언어가 영원한 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성주의 언어도, 장애학의 언어도 언제나 임시적입니다. 끊임없는 갱신이야말로 언어의 본질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다른 공부도 쉬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페미니즘은 참 쓸모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p157 우리는 모든 사람의 말을 수용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윤리적 기준에 따라 어떤 사람의 말은 존중하고, 어떤 사람의 말은 무시하는 판단 자체가 이미 고도의 정치적 선택 행위입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혹은 “나는 당신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은 소통의 거부가 아니라, 지배적인 담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저항의 언어입니다.

p165 우리는 흔히 소통의 성공을 유창하고 화통한 말하기에서 찾지만,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방식의 소통이 되기도 합니다. 침묵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포기와 좌절 속에서 가만히 있는 상태가 그것이고, 또 하나는 저항으로서 침묵이 있습니다.

p177 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p185-186 그래서 저는 소통의 전장에서 지친 이들에게 세가지 원칙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 가능하면 적게 싸울 것
* 내가 싸워야 할 전선을 스스로 취사선택할 것
* 전선 그 자체를 옮길 것

전선을 옮긴다는 것은 상대가 설계한 싸움의 틀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강자가 선점한 주제, 강자가 만든 언어 그리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규칙 안에서 아무리 훌 륭하게 칼을 휘두른들 판 전체를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약자 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강자의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 '내가 싸울 자리'를 새롭게 획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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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피치
이서현 지음 / 한끼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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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 상처가 한 사람의 생을 오래도록 짓누르곤 한다. 도깨비 몫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재회의 벽“ 덕에 어쩌면 사람들은 스스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상처와 좌절을 넘어설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본 가영이란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 가영이 그랬듯 누군가들도 가영에게 함께 해주어서도. 정말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여름의 마지막 피치>, 이서현 장편소설, 한끼

p47 “보다 보면 조금은 저를 챙기고 싶어지거든요. 엉망진창인 하루에도 내가 먹을 밥을 하면 되는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수고를 알아주자, 그런 마음이요. 요리를 잘 못해서 대부 분은 실패하지만요."
울컥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거라고, 요리가 아닌 제 몸만 보고 있을 거라 여겼던 걸까.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에 좋아하던 요리마저 외면했었다.

p57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태준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반짝거리던 지난 과거가 오직 태준 때문이라 여겼는데••••• 태준을 마주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가 요리가 하고 싶었다.

p82 “그러니까 갑자기 지고 싶지 않아졌어요. 지금 내 몸은 나를 방치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생긴 결과물이 나 다름없는데? 저 아픈 데 하나 없고, 오히려 엄청 건강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처럼, 아니 더 충실하게 해보려고요."
기나긴 고백의 말을 듣는 동안 현수는 한 숟갈도 먹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야 화를 내던 주아도, 달라진 주아도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확신을 찾은 주아가 멋있고 부러워졌다.

p154 “엄마는 뭐 알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왜 몰라. 인생 살아봐. 빤히 보이는 게 있는 거야."
“나 별로 손가락질 안 받았어. 무지 잘나갔어. 다들 용하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지금도 예약이 내후년까지 가득 차 있네요."
“그게 아니라."
엄마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윤호를 쳐다보았다.
“무당 찾아오는 사람 중에 즐거운 사람이 있어? 매번 우는소리만 들어야 할 텐데. 그 인생들을 어떻게 다 짊어지고 사나. 무거워서 어떡하나."
윤호는 목이 메었다. 이제껏 들어온 괴로움이, 분노가, 슬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p193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번쯤은 균형이 깨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예요."
“응?"
“클라이밍 할 때마다 다들 그러잖아요. 균형이 맞아야 한다. 중심을 잡아라. 근데 기회가 딱 한 번이라면 한 번쯤은 힘이 가는 쪽에 더 힘을 실어줘도 된다는 거죠."
생각지도 못했던 충고였다. 아픈 발목 생각만 하느라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주아의 말에 오히려 힘을 줄 곳이 더 분명해졌다.

p216 늘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민경의 말을 의심한 적도 있었다. 1등의 여유이겠거니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 적도. 지금은……민경의 말처럼 같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클라이밍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이 자신을 처음으로 돌려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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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
캔디(윤다림) 지음 / 들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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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의 짧다면 짧은, 여는 글을 읽으면서도 울컥 일렁하였다. 같은 도시와 동네에서는 아닌,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저자인 캔디의 이야기를 보아와서이기도 하고, 성소수자인권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그의 활동을 만나고, 보아와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친구들과 동료들의 어떤 얼굴들과 태도들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어서일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주요한 이유일 ‘력사’님 이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1부에 해당할 글을 읽어가는 것이 쉬운 것이거나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찌한다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늘 생각하더라도 실제 마주하는 것과 또 그러기까지 돌봄과 일상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주 돌봄을 해야하는 형태로 있어보지 않았기에 여전히 막막한 것들을 나도 모른 체하며 살았을 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상황들.

행복, 으로만 기억되거나 남진 않고 여러 감정과 감각으로 남겠으나 나에게 뮤지션 이랑과 활동가 캔디가 곁을 떠나보내며 나눠준 사랑과 돌봄은 정말 다른 레퍼런스가 되었다. 하나의 물질적 행위일 장례와 그리고 그 전후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애도에 대해서. 최근 읽는 책에서 무지하게 많이 만나고 있는 ‘배회’라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안녕과 완료점 그리고 이어지는 삶에서 계속해서 나눠가고 확장해갈 사랑과 돌봄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랑과 돌봄은 그가 누가됐든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이성애 규범 속 단일한 모양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쓰여지고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이 이 퀴어한 참조들이 필요하다. 그게 캔디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풍성하고 다정한 레퍼런스들이 생겼다.

물론 그전에도 이미 캔디는 바이섹슈얼로도 나에게 어떤 레퍼런스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캔디와 오쓰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다채로운 레퍼런스라고 생각한다. 결혼 소식을 알려주던 그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전의 캔디와 달리 결혼하고픈 바람이 잘 없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둘의 관계에서 둘로만 완료되는 것이 아닌 ‘다르고’ 더 ’확장된‘ 사랑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정상가족 범주에 톡톡 균열을 내고 드넓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연애를 하고 헤어진 후 관계가 단절되고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에도 여전히 보통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연애 경험을 공유한 전 애인들, 남성과도 여성과도 모두 친구로 지내고 있고, 가족이라 여기는 이도 있는데, 그에 대해 의아한 반응이나 신기해하는 반응을 받을 때가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캔디와 오쓰 두 분의 관계와 그들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력사,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부분 ‘참조‘점이 된다. 혹여 내가 언젠가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지더라도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다른‘ 모양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원가족 중심의 장례와 죽음이지 않고 싶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동료가 될 참고점들이 생기고 있다.

그러니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내가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모습 또한 어떤 다양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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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김진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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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짧은 글들이 작지만 빼곡히 담긴 <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사랑이 뭘까 잘 모르겠던 시절, 서툴고 부족했던 시간들, 헤어나오지 못할만큼 빠진 나나들, 미움과 안녕들. 상처와 고통. 회복과 취향들. 다양한 감정들과 경험, 기분들이 담겨있다. 어떤 면에선 진부함도 존재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우리 생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될 때는 또 얼마나 그것이 특별해질까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 진리일지도. 사랑 하나에 마음을 다 내어주는 이는 사랑과 또 사랑을 걸쳐 나를 지키고 나를 사랑하면서 타인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거겠지. 부디 그러할 수 있기를. 나도, 당신도. 사랑이 소중하고 필요한만큼 내 자신 역시 그러하니까.

그렇게 사랑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온다. 우리 앞에 선다.

<사랑이 오기로 한 자리>, 김진아,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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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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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인 바누 무슈타크의 <하트 램프>는 ‘여성’에 대헌 억압적이고 소외된 일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강고한 가부장제의 관습 속에서 핍박받고 차별받지만, 그럼에도 살아내고 살아나가는 여성들을 담고 있다. 인도의 무슬림 공동체라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공간의 이야기이긴 하나, 이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외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법률가이자 활동가이기도 한 작가는 그러한 차별적 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도 가 닿기 위한 노력을 기하고 있는 들을 썼다. 덕분에 인도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당신들을 만난다.

<하트램프>, 바누 무슈타크,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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