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
캔디(윤다림) 지음 / 들녘 / 2026년 2월
평점 :
3장의 짧다면 짧은, 여는 글을 읽으면서도 울컥 일렁하였다. 같은 도시와 동네에서는 아닌,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저자인 캔디의 이야기를 보아와서이기도 하고, 성소수자인권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그의 활동을 만나고, 보아와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친구들과 동료들의 어떤 얼굴들과 태도들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어서일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주요한 이유일 ‘력사’님 이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1부에 해당할 글을 읽어가는 것이 쉬운 것이거나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찌한다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늘 생각하더라도 실제 마주하는 것과 또 그러기까지 돌봄과 일상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주 돌봄을 해야하는 형태로 있어보지 않았기에 여전히 막막한 것들을 나도 모른 체하며 살았을 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상황들.
행복, 으로만 기억되거나 남진 않고 여러 감정과 감각으로 남겠으나 나에게 뮤지션 이랑과 활동가 캔디가 곁을 떠나보내며 나눠준 사랑과 돌봄은 정말 다른 레퍼런스가 되었다. 하나의 물질적 행위일 장례와 그리고 그 전후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애도에 대해서. 최근 읽는 책에서 무지하게 많이 만나고 있는 ‘배회’라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안녕과 완료점 그리고 이어지는 삶에서 계속해서 나눠가고 확장해갈 사랑과 돌봄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랑과 돌봄은 그가 누가됐든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이성애 규범 속 단일한 모양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쓰여지고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이 이 퀴어한 참조들이 필요하다. 그게 캔디가 전해준 이야기였다. 이제 우리에게는 더 풍성하고 다정한 레퍼런스들이 생겼다.
물론 그전에도 이미 캔디는 바이섹슈얼로도 나에게 어떤 레퍼런스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캔디와 오쓰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다채로운 레퍼런스라고 생각한다. 결혼 소식을 알려주던 그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전의 캔디와 달리 결혼하고픈 바람이 잘 없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둘의 관계에서 둘로만 완료되는 것이 아닌 ‘다르고’ 더 ’확장된‘ 사랑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정상가족 범주에 톡톡 균열을 내고 드넓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연애를 하고 헤어진 후 관계가 단절되고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에도 여전히 보통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연애 경험을 공유한 전 애인들, 남성과도 여성과도 모두 친구로 지내고 있고, 가족이라 여기는 이도 있는데, 그에 대해 의아한 반응이나 신기해하는 반응을 받을 때가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캔디와 오쓰 두 분의 관계와 그들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력사,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부분 ‘참조‘점이 된다. 혹여 내가 언젠가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지더라도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다른‘ 모양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원가족 중심의 장례와 죽음이지 않고 싶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동료가 될 참고점들이 생기고 있다.
그러니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내가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모습 또한 어떤 다양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