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현 네오픽션 ON시리즈 31
강민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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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작가의 <작별의 현>은 세상을 파국으로 만든 존재인 인간과 인간과 닮은 형태지만 미지의 생명체인 심해의 발라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육지에 이어 바다까지 오염시킨 인간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인간 유진은 바다와 바닷속 살아가는 이들의 안전을 바란다. 그런 유진을 보며 망해가는 세계 속에서도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이 최대의 천적으로 알려진 발라비 사회에서 금지구역으로 향하고 빛을 바라보고 결국 인간과도 마주하게 되는 네하를 보며 질문하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무작정의 경계나 공포, 혐오가 아니라 서로에게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우리에게 호흡하기 위해 필요했던” “서로의 눈동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비록 서로의 음성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그것이 늘 소통되고 공통의 인식이 만들어지던가? 그렇지 않음을 지금도 매일 목도하고 있지 않던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작별은 서글프지만은 않다. 실패이지 않다.

<작별의 현>, 강민영 장편소설, 네오픽션

p51 그런 식으로 생활하는 심해 생물이 있다면 그걸 단지 인간의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에게 심해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빛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곳에 서사는 이 특이한 생물이 만일 인류의 조상 정도 된다면, 육지에서 숨을 쉬고 있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퇴화한 자들이 아닐까.

p93-94 유진이 좋아하는 바다의 고요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의 표면은 검고 잿빛의 혼탁수로 가득하지만, 그 아래는 유진이 평생을 사랑해온 바다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풍경임에도 유진은 늘 이 온전함에 감사했다. 바다의 생태는 엉망이 된 지 오래일지언정 그 아래서 부단히 노력하는 생물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 덕분에 바다가 가진 고유의 색이 아직까지는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p143 심해는 우주와 더불어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유진은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돌려서 심해를 묘사하고는 했다. 알 수 없는 세계, 당도하지 못한 세계, 영영 이해할 수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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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자의 차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6
연여름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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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취약하여 멸종의 위기까지 놓인 인간은 인공지능의 제안으로 그를 중재자로 받아들여 바이러스를 피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한다. 생존을 위하여 안전을 찾을 수 없었던 인간들이 인공지능 모세로 하여금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었고, 삶은 안전하게 지속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은 인간의 욕구나 자유의지의 선택 없음의 선택이었다. 다른 선택지와 질문, 상상, 꿈이 없이 아니 그리하여 어쩌면 안전하게 흘러온 중재도시. 그러나 그곳에 아무도 의문이나 질문을 갖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오류와 부적격으로 처리되었던 지난한 시간을 지나 도시 바깥으로 나가기를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돔 안의 안전함을 포기하고 어쩌면 ‘나’를 찾는 여정일 그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있어 이제 그 이후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더이상 없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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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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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처음 출간된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 그는 엘레나 페란테에게도 영향이 컸던 사람이라고 한다. 엘레니 페란테를 좋아하기에 그의 책도 궁금했다. 금지된 일기라, 금지? 왜 금지된 걸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기는 발레리아와 그의 가족들이 나온다. 담배 외 다른 것을 판매해선 안 되는 일요일에 몰래 사온 일기장을 쓰기 시작한 발레리아.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행위가 이 소설 속에서 금지된 것, 비밀스러운 것, 들키지 말아야 하는 조심스러운 행위로 이야기되는 것은 그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사회였고, 무엇을 요구했으며 또한 무엇을 허락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불안해하면서 일기를 쓰지만 이내 일기 쓰는 시간을 기다리되는 발레리아. 그에게 그 시간은 숨죽이는 시간이지만, 솔직할 수 있는 본인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페미니스트인 알바 데 세스페데스가 담은 한 여성이 자기를 찾는 여정.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 없이 응당 여성이라면 이래야 한다 의심 없이 살아온 여성이 글을 쓰며 알게 된다. 항상 하찮게 생각해 온 자신의 삶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결혼과 출산 빼고는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사소한 말투나 단어 선택이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만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같이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은밀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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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가브리엘르 블레어 지음, 성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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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하는 모든 이들이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후 파생될 수 있는 결과 중 하나인 ‘임신’에 대해 원치 않을 때 선택될 수 있는/있을 ‘임신중단’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에게만 주목해왔다. 이 책은 ‘원치 않는 임신’을 만든 ‘남성’에게 더 주목하고, 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해야 한 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지 않아서 너무 많은 고통과 문제가 만들어졌던 것에 대해 ‘사정’의 ‘책임’에 대해,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고. 남성만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고,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도 그렇다. 그런데 왜 한쪽만 피임을, 그것도 더 위험하고나 부작용이 큰 방식을 감당하고 임신 위험으로 불안해야 하는가. 남성이 피임을 하고(일단 제일 쉬운 콘돔!!), 함께 선택하고 논의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이 무책임의 결과로 고통받거나 힘든 이들의 경험이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연애들을 생각해보았다. 동성 파트너를 제외하고 사정하며 정자를 내보낼 수 있었던 이성 파트너들과의 섹스에서 언제나 반드시 콘돔이 기본전제가 된 것만은 아니었단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과거형인데도 아찔해진다. 그때의 나는 운이 좋았다. 다행이었다, 고 말해야할까.. 그럼 누군가는 운이 좋지 않아서, 불행이어서 원치 않는 임신이나 임신중단을 경험하는 걸까? 나도 누군가도 이런 방식의 회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책임감 있는 사정이다.

덧: 이 책의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이 책이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관점이란 것을 밝혔다. LGBTQIA+ 경험을 지워내거나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저는 결국 시스젠더 이성애자로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위해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주장을 펼치기로 했”다고, 권력관계나 책임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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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의 맛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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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택한 책이었다. 두리안을 처음 먹었을 때의 그 묘한 맛. 친구들이 불호일 때, 나에게 호였던 신기한 두리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소설은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들이었고, 나는 이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친구를 보고 동생을 보고 엄마를 보곤 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동생은 잘 읽혔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소설은 잘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용들이 좀 힘들었다고. 이어 책을 읽으며 동생의 말을 금방 이해하게 되었다. 지리멸렬한 삶의 이야기들을 누가 반기고 웃으며 맞이할까 싶기도 하여서.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의 이야기가 좋다. 그건 실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밑줄 그은 글귀는 “수현과 우정을 나누면서 나는 단순히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치유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문장이다. 나는 이 소설집이 그러해서 좋았다. 징글징글한 삶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견디는데 우리가 갖는 관계, 우리가 맺는 관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뤄주어서.

<두리안의 맛>, 김의경 소설,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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