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기 힘든 사람들 - 돌봄, 의존 그리고 지켜져야 할 우리의 일상에 대하여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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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함께 ‘있기.’ 이 책의 주제는 ‘있기’다. 처음엔 <있기 힘든 사람들>이란 책 제목에 조금은 갸웃하며 의아하기도 하고, 여러 번 읽고 생각을 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의 자각일 수 있는 ‘있기’가 이 책의 주제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하다. ‘있기’가 불가능한/불가능해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니, 나라고 늘 ‘있기’가 능수능란하고 쉬웠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책의 추천사를 쓴 고병권 선생님은 “누군가 곁에 있고 돌봄을 제공하기에 우리는 우리로서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내게도 누군가 나에게 그래주었고, 나도 그랬기에 가능했던 “있기”의 무사함이란 생각을 한다.

저자는 돌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전문가적으로(생각했던) ‘치료’가 하고 싶었던 임상심리사이다. 그러던 그도 질문을 갖게 되었다. 치료란 무엇이며, 돌봄이란 무엇일까? 그가 여러 사람들과 매일을 보낸 돌봄 시설에서는 치료가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가 다반사이기도 하고, 돌봄이 절대적 영향을 갖기도 하고, 또 치료와 돌봄이 이분법화 되어 나뉘고 갈라지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있기’를 오늘도 내일도 해나가기 위해 모인 그 시/공간에는 어떤 건 치료, 어떤 건 돌봄이라며 명확히 구분되기보다 그것이 같이 흘러갔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각각의 것들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실습을 했던 주간보호시설이 생각이 났다. 중년의 발달장애인분들의 낮 시간을 위한 그 공간에서 아침에는 매일의 일정 등을 나누고 점심시간 전까지 자유 시간이 진행되었는데, 침묵의 자유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여러 음성언어들이 떠도는 공간에서 길면 한 시간, 그게 너무 어려우면 30분을 조용히 각자가 하고 싶은 놀이나 프로그램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있기’라는 것에 생각할 때 머리에 들었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엄기호 선생님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가 생각이 났다. ‘멤버’라고 불리는 참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곁에 있는 직원들, 활동가들의 소진과 떠나감을 보면서 누군가의 ‘있기’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있기’는 어떻게 존중받고 보호되는가, 또 그들 역시 어떻게 쉽게 무너지는지 생각했다. 고꾸라지기 전의 사람들, 고꾸라진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저자를 포함해서. 그러나 저자도 짚었듯 그저 ‘있기’의 가치를 갈수록 사회는 도외시하고, 자본을 쫒기에 우리의 ‘있기’는 쉽게 침범당하고, 외면당한다. ‘돌봄’이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일면 반가운 일이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자꾸만 자본과 연결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할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다른 ‘돌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되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있기’를 위해 ‘있기’를 하는 것은 ‘있기’를 강제하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결과, 생산성과 이윤을 한 손에 쥐고 같은 값이 되는 돌봄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닌, 다른 돌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있기 힘든 사람들>, 도하타 가이토 지금,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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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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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의 상주.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다지만, 너무 젊은 상주이고 그의 엄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 수 없는 불상. 딸인 저자가 어린이 시절부터 기억하기로 내내 알콜 중독으로 살아왔던 엄마의 죽음이었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알콜 중독으로 그를 외롭게 하고, 짓눌린 부채감과 죄책감을 주기도 했던 엄마의 죽음 이후 써내려간 딸의 기록이다. 이제는 자신도 엄마가 되어 그전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러나 그가 철저히 딸로서 필요했던 돌봄과 애정이 때론 부재하기도 했던. 그럼에도 엄마에게서는 사랑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좋은 어른들과 곁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사랑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이로 자라나 죽이고 싶을만큼 엄마가 밉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글이 숨이 막히듯 조금 답답할 때도 있고, 묵직한 한숨과 함께 어지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글쓰기를 무사히 마친 그에게 다정을 보내고 싶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에세이, 달

p21-22 나를 낳고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나와 밥을 먹던 사람. 본인 스스로도 잘 돌보지 못했던, 어딘가 서툴렀던 사람. 늘 불안해 보이고 흔들렸던 사람.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이전의 물음은 이제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마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까'로 전환된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 만 산다는 것이 때론 두렵고 불안해서 술로 도피했을 그 마음. 이젠 이해하려 애쓰거나 일부러 밀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전해져오는 그 마음을 그대로 느껴볼 뿐이다.

p58 “•••시영씨, 그냥 단유하자. 막상 단유 마사지 받으러 오니까 아쉽지? 그런데 회사에서 회의라도 길어지면 젖이 샐 거고, 윗사람이 불러서 타이밍 놓치면 가슴이 아플 거고. 젖이 차오르니까 옷도 타이트할 거고. 아이에게 좋은 걸 주겠다는 마음은 아는데 그러면 애가 하루종일 엄마만 기다릴 거야. 아이가 엄마 말고 다른 곳을 보고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해."

p154 아저씨, 아저씨는 달랐어요. 그전의 아저씨들처럼 늦은 밤 집 앞으로 찾아와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고 제게 엄마가 어디 있냐며 무섭게 묻지도 않았어요. 맨정신의 엄마가 밖에 나갔다 오면 늘 술에 취해서 들어왔는데 아저씨를 만난 날 에는 술에 취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저씨네 집에 도착하면 아저씨는 늘 제게 전화를 주었지요.
“엄마 여기 잘 왔어. 걱정하지 말고 잘 있어라."
이 몇 마디가 제 마음을 얼마나 다독였는지 아셨나요. 어른이 주는 안정감이 그런 것이었구나를 어른이 되어 느꼈습니다. 어릴 때 그런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 저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요.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더 단단해 제 마음 에 차는 어른이 되었을까요.
아저씨는 제 죄책감을 나누어 가진 첫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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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루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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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산지 십년>으로 글을 만났던 천쉐 작가의 장편소설 <마천대루>는 400페이지가 넘고 자칫 사람들에 대한 설명처럼 여겨질 뻔 한데, 그렇지 않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천대루는 현대 도시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었고 그 속엔 정말 다채롭다 못해 징글징글한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그럴 수 있지, 하기도 하고 참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삶이 있는가 싶었다가도 또 징그럽기도 했다.

메이바오의 삶과 그녀의 죽음을 만나며 괴로웠다.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태어난 것인가. 그게 그녀의 잘못인가. 그것이 그녀가 성/폭력에 놓여야했고, 도망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인가. 왜 피해경험자가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녀의 엄마는 왜 허구헌날 그런 남자들만 만날까. 메이바오에게 한 행동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성별화된 사회에서 그 여성에게 쥘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천쉐 작가의 소설이 더 궁금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양각색 치밀히 구성한 덕에 흥미로운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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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차별 - 그러나 고유한 삶들의 행성
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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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안희경의 <인간 차별>은 저자 스스로도 여성이자 이주민, 미국에서의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고, 그가 다룬 이 책에서도 다양한 위치성과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차별받은 사례들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차별이 될 수 있고, 되고 있는 걸 말하는데, 그건 이주민의 출신국가에 대한 임의적 어떠한 고정적 이미지다. 차별이라 불리울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았더라도 들여다보면 너무나 쉽게 차별기제와 동정이 될 수 있는, 우리는 다르다는 인식의 벽에 대해서 저자 스스로도 여러 사례에서 깨달았다.

얼마전, 한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한 행동의 적용에 배제되는 정체성이 있는 안내글을 보았다. 어떤 이들에게, 어떤 것에 집중하는 운동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어떤 이들을, 어떤 것을 너는 마치 여기에 있을 존재가 아니란 것처럼 함부로 판단하고 밀어내려는 것은 문제이다. 나의 안전은 나만을 가린다고해서 혹은 나만 지킨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다. 고유한 삶들의 행성은 각자 개별적이며 고유함이 맞지만, 그런 우리는 비슷한 일상이란 삶 속에서 오늘도 같이 살아간다.

<인간차별: 그러나 고유한 삶들의 행성>, 안희경,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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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현 네오픽션 ON시리즈 31
강민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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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작가의 <작별의 현>은 세상을 파국으로 만든 존재인 인간과 인간과 닮은 형태지만 미지의 생명체인 심해의 발라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육지에 이어 바다까지 오염시킨 인간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인간 유진은 바다와 바닷속 살아가는 이들의 안전을 바란다. 그런 유진을 보며 망해가는 세계 속에서도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이 최대의 천적으로 알려진 발라비 사회에서 금지구역으로 향하고 빛을 바라보고 결국 인간과도 마주하게 되는 네하를 보며 질문하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무작정의 경계나 공포, 혐오가 아니라 서로에게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우리에게 호흡하기 위해 필요했던” “서로의 눈동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비록 서로의 음성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그것이 늘 소통되고 공통의 인식이 만들어지던가? 그렇지 않음을 지금도 매일 목도하고 있지 않던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작별은 서글프지만은 않다. 실패이지 않다.

<작별의 현>, 강민영 장편소설, 네오픽션

p51 그런 식으로 생활하는 심해 생물이 있다면 그걸 단지 인간의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에게 심해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빛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곳에 서사는 이 특이한 생물이 만일 인류의 조상 정도 된다면, 육지에서 숨을 쉬고 있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퇴화한 자들이 아닐까.

p93-94 유진이 좋아하는 바다의 고요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의 표면은 검고 잿빛의 혼탁수로 가득하지만, 그 아래는 유진이 평생을 사랑해온 바다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풍경임에도 유진은 늘 이 온전함에 감사했다. 바다의 생태는 엉망이 된 지 오래일지언정 그 아래서 부단히 노력하는 생물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 덕분에 바다가 가진 고유의 색이 아직까지는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p143 심해는 우주와 더불어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유진은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돌려서 심해를 묘사하고는 했다. 알 수 없는 세계, 당도하지 못한 세계, 영영 이해할 수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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