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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평점 :
스물 일곱의 상주.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다지만, 너무 젊은 상주이고 그의 엄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 수 없는 불상. 딸인 저자가 어린이 시절부터 기억하기로 내내 알콜 중독으로 살아왔던 엄마의 죽음이었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알콜 중독으로 그를 외롭게 하고, 짓눌린 부채감과 죄책감을 주기도 했던 엄마의 죽음 이후 써내려간 딸의 기록이다. 이제는 자신도 엄마가 되어 그전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러나 그가 철저히 딸로서 필요했던 돌봄과 애정이 때론 부재하기도 했던. 그럼에도 엄마에게서는 사랑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좋은 어른들과 곁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사랑이 없던 것이 아니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이로 자라나 죽이고 싶을만큼 엄마가 밉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글이 숨이 막히듯 조금 답답할 때도 있고, 묵직한 한숨과 함께 어지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 글쓰기를 무사히 마친 그에게 다정을 보내고 싶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에세이, 달
p21-22 나를 낳고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나와 밥을 먹던 사람. 본인 스스로도 잘 돌보지 못했던, 어딘가 서툴렀던 사람. 늘 불안해 보이고 흔들렸던 사람.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이전의 물음은 이제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마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까'로 전환된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 만 산다는 것이 때론 두렵고 불안해서 술로 도피했을 그 마음. 이젠 이해하려 애쓰거나 일부러 밀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전해져오는 그 마음을 그대로 느껴볼 뿐이다.
p58 “•••시영씨, 그냥 단유하자. 막상 단유 마사지 받으러 오니까 아쉽지? 그런데 회사에서 회의라도 길어지면 젖이 샐 거고, 윗사람이 불러서 타이밍 놓치면 가슴이 아플 거고. 젖이 차오르니까 옷도 타이트할 거고. 아이에게 좋은 걸 주겠다는 마음은 아는데 그러면 애가 하루종일 엄마만 기다릴 거야. 아이가 엄마 말고 다른 곳을 보고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해."
p154 아저씨, 아저씨는 달랐어요. 그전의 아저씨들처럼 늦은 밤 집 앞으로 찾아와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고 제게 엄마가 어디 있냐며 무섭게 묻지도 않았어요. 맨정신의 엄마가 밖에 나갔다 오면 늘 술에 취해서 들어왔는데 아저씨를 만난 날 에는 술에 취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저씨네 집에 도착하면 아저씨는 늘 제게 전화를 주었지요.
“엄마 여기 잘 왔어. 걱정하지 말고 잘 있어라."
이 몇 마디가 제 마음을 얼마나 다독였는지 아셨나요. 어른이 주는 안정감이 그런 것이었구나를 어른이 되어 느꼈습니다. 어릴 때 그런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 저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요.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더 단단해 제 마음 에 차는 어른이 되었을까요.
아저씨는 제 죄책감을 나누어 가진 첫 어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