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 이재운 역사소설
이재운 지음 / 시그널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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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조선의 과학을 열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장영실

굉장히 재밌다.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다.

고려조 명문가의 자재였다가 정몽주 사후 정몽주의 사람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이 풍비박산하여 아비는 역도로 몰려 죽고, 어미와 어린 영실이 노비가 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가도 영실이 관노로 뭇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마침내는 세종의 부름을 받아 노비에서 면천되는 장면에서는 뭉클하면서 뭔가 짠하고 찡한 감동이 몰려왔다.

 

전하, 경상도 동래현 백성 중에 손재주가 몹시 뛰어난 이가 있다고 하온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헌데, 그 자의 신분이 동래현의 관노라 하옵니다.”

조당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국법에 걸린다.

세종은 신하들을 둘러 보더니 곧 침착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경들도 알다시피 이번 일은 이 나라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일이오. 비록 천민이라 할지라도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불러다 써야 하지 않겠소? 지금 당장 영을 내려 장영실을 불러오도록 하시오.”

세종의 결정에 조정 대신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아무리 솜씨가 뛰어나다 한들 한낱 노비를 궁에 들여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되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세종은 신하들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 뒤 동래현 관아가 술렁거렸다. 영실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세종은 그 즈음에 중대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영실의 실력을 인정하여 마침내 그를 종의 신분에서 풀어주고 집과 재산을 내려 편안히 살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관노의 신분을 유지한 채 명나라에 들여보내기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대국을 상대하는 사대외교에 결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영실을 불러

너와 같은 인재를 얻으니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을 얻은 것보다 더욱 기쁘구나. 그런 까닭에 너를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고 상을 내리깔 하노라. 그대에게 정5품직을 내리겠다.”

장영실은 타고난 재주로 인해 노비에서 일약 정5품직의 벼슬에 제수되었다.

5품이면 자신을 천거해 준 동래현의 현령보다는 1단계나 더 높은 품계이고, 과거공부를 10여년 하고도 말직에서 시작하여 또 10여년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그런 자리였던 것이다. 영실은 세종의 총애에 힘입어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고, 이는 조선시대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이다.

과학자 장영실의 일대기를 다룬 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영화 천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영상으로 다시 한 번 조선의 과학을 연 두 인물 세종과 장영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려말선초 역성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노가 된 장영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재주로 인해 군왕인 세종에게 발탁되어 마침내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선을 과학 선진국으로 우뚝 세우게 되는데,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삶과 인생,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소설 장영실의 일독을 권한다. 소설 속에 장영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들어있어 굉장히 재밌고, 감동적이다.

어머니의 면천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면 언제인가는 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노비에서 양반이라, 그것도 신분적 제도가 엄격한 조선에서, 장영실이 처음으로 그 길을 연 것이다.

지극히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임금과

지극히 낮은 천한 위치에 있었던 노비

같은 자리에서 감히 함께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천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보게!! 영실이 자네 눈에는 뭐가 보이는가?”

전하의 나라가 보이옵니다.”

장영실은

나라의 지존인 임금과 나란히 앉아 같은 하늘을 보았던 노비 출신의 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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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 시대의 知性들이 답한다
시사저널 편집부 엮음 / 시사저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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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책 제목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수도권, 충청권, 경상권, 전라권, 강원권, 제주권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여기에 니편 내편이 웬 말인가?

설사, 국민들이 지역감정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편이 나뉘어졌다고 해도 국가가 나서서 이를 말리고 수습해야 하거늘 오히려 국민 분열을 부추기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가, 정치하는 이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국민들을 양 편으로 갈라 놓았다. 조국 장관 청문회에서의 여야 공방, 임명 강행 후 여권 지지층의 서초동 집회와 야권 지지층의 광화문 집회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정치가 너무 분열이 심하고 극단적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나랏 일에, 국민들을 위하는 일에 내편 니 편이 웬 말인가? 우리나라 여야 정치와 국민 분열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통탄할 일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식민지 시대 발전,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손숙 전 문화부장관이 요즘 여성 정치인들 모습 절망스럽다고 하였는데, 여성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의 모습이 다 절망스럽다. 전에 KBS 다큐 프로 중에 덴마크의 정치인들이 나오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절반 크기에 인구도 600만이 안 되는 나라인 덴마크. 그런데 이 덴마크란 나라의 국민들 행복지수가 세계 1, 공직자들의 청렴지수도 세계 1. 국민들 행복지수가 높고, 공직자들의 청렴지수가 높으니, 당연히 기업이 가장 일하기 좋은 나라에서도 당당히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덴마크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자전거를 타고 덴마크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었다. 마틴 르고오드라고 하는 한 덴마크의 3선 의원에게 한국 국회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하는 말이 차들이 굉장히 멋있네요.”라는 답변과 함께 하지만, 저는 자전거가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답변이었다.

한 국회의원은 이른 아침에 회의가 있을 때도 있고, 늦게 퇴근할 때도 있는데, 어제는 밤 12시에 집에 갔다고 한다. 또 다른 국회의원은 일이 너무 많아서 10년 전 정치를 그만두고 국회를 떠났다고 한다. 덴마크 국회의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지만, 특권 같은 건 없다고 한다. 의원 두 명당 비서 1명이 지원될 뿐이고, 사무실 가구도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업무로 출장을 가게 되면, 출장비 내역을 모두 공개하게 돼 있단다.

투명해도 너무 투명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가 아니고, 이게 바로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국회와 국회의원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대한민국을 위해, 국민을 위해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자신의 당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현 시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라가 연일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주말 공휴일만 되고, 사람들은 시위 현장으로 나서기 바쁘다. 대한민국의 주말은 국민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날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심하다. 나라 경기가 좋을 리 없다. 자영업자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나라가 평안해야 국민들이 평안하고 덩달아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도 그런 모습과 분위기를 찾아 볼 수 없다. 경제와 경기는 더욱 악화되고, 청년들은 취업 준비를 해도해도 안되니, 이젠 아예 취업을 포기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들은 양 편으로 나뉘어져 연일 일촉즉발의 위험천만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나라 경제가 이 모양이고, 국민들 분열이 이렇게 심한데,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과 야당의 정치하는 이들은 이런 혼란과 분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양쪽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마련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도대체 뭣이 중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덴마크의 경우, 국회의원이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안을 발의하면 지속적으로 장관들과 협상하고 타협점을 찾아나간다고 한다. 덴마크에서는 13개의 정당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지만 과반을 넘는 정당이 없단다. 그래서 균형을 이루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 진보당과 보수당이 연합하기도 하고, 다수당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일단 우리당의 발의가 아닌 상대방이 발의한 법안이라면, 국민들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반대부터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시서저널에서 나온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과연 이대로 좋은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었고, 현 시국, 현 정부, 현 상태에서 과연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70년간 쌓여온 적폐, 대한민국의 고질병.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에게는 70년간 계속된 적폐정산을 빠르게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문재인정권의 사회적, 국가적 책임이고 국민들은 그걸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현정부는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가?

오늘도 서울의 도심 곳곳에서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많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결코 아닐 것이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사태를 직시하고 더 이상 분열이 아닌,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말이다.

 

어느 편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마라.

우린 모두가 다 같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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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또롱 아래 선그믓 -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읽다
권도영.송영림 지음, 권봉교 그림 / 유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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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또롱 아래 선그믓

제목이 낯설다.

배또롱’, ‘선그믓’, 우리말에 이런 단어, 어휘들이 있나 싶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배또롱은 제주도 방언으로 배꼽이란 뜻이고, ‘선그믓이나 을 뜻하는 말이었다. ‘배또롱 아래 선그믓을 풀이하면, ‘배꼽 아래 선이란 뜻이 된다.

책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다. 어른들을 위한 전래동화의 성격이 짙어서 가독성 또한 상당히 좋다.

옛 이야기는 사실상 아이들이 즐겨 보는 전래동화로 인식되어 있고, 교훈이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기도 하나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엉뚱한 경우가 많다. 이는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들의 흥미를 우선하기 위해서 허구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문학적 형상화라고 정의하였다.

옛 이야기는 아이 책이나 어른 책이나 구별없이 다 재밌는 것 같다. 태평한화 골계전에 들어 있는 해학적인 이야기들이 그러하고, 고금소총이나 금계필담, 청구야담과 같은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도 재밌는 내용이 많다.

이 책은 수 많은 옛 이야기들 중에서 여성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었는데, 이 책을 통해 옛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잘난 여자는 남자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보다 뛰어난 딸

이몽학의 이야기나 김덕령의 이야기나 누나는 남동생보다 지략과 힘을 훨씬 더 잘 갖추고 있었기에 힘을 잘못 쓰게 될 동생을 염려하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동생을 살리고 자신을 죽이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비극적인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몽학이나 김덕령은 의병장으로서 이름을 남긴 역사 속 실제 인물이지만 이들에게 그런 누나들이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영웅의 실패를 초래하는 데에 누나라는 존재 자체는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형제 갈등이 아닌 젠더 갈등, 이야기의 초반에서부터 누나의 관심은 남동생의 힘에 있었다. 누나가 경계하는 이유는, 남동생이 함부로 힘자랑하며 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필경 일을 벌이고야 말 것인데, 그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향이라기보다 파괴적인 힘을 가진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씨름판에 나타나 남동생을 쓰러뜨림으로써 남동생의 힘이 빈약한 것임을 직접 느끼게 해주었다.(~47)

아기장수이야기, 남편 찾아 삼십 년, 못생겨서 버림받은 신부, 효부와 호랑이, 열녀곽씨부인 이야기들도 굉장히 재밌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하나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의 원출전이 어디인지 주석이나 각주로 처리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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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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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단원

 

단원 김홍도!!

붓으로 조선천지를 뒤흔든 화가!!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다. 영조 때 태어나 정조를 거쳐 순조 때까지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4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세 번이나 임금의 모습을 그린 어용화사였고, 궁중기록화, 신선도와 같은 도석화, 시의도, 풍속화, 실경산수화, 호랑이 그림 등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당시의 그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그림으로 만나는 조선시대, 조선최고의 화원이었던 단원의 그림으로 조선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박신양과 문근영이 출연하여 단원과 혜원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주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두 화원이 그린 시정의 풍속 그림을 통해 관리의 부정부패를 발견하여 죄를 지은 관리를 엄하게 문책하던 내용이 있었다. 그때 화원들의 그림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특정 그림은 죄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금으로 치면 사진 증거자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단원은 정조의 또 다른 눈이었다. 정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단원이 대신보고 그림으로 정조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조가 김홍도를 특별히 총애하지 않았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 8폭 병풍을 그리는 작업에도 김홍도는 참여하지 못했다.

 

전하께서 이 벽에 바다 위를 건너가는 신선들을 그리라 명하셨소. 화사는 전하의 어명을 받드시오.”

김홍도는 깜짝 놀랐다. 해상군선도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정조가 왔다. 김홍도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화사는 일어나라

정조의 명에 김홍도는 바닥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잘 그렸다.”(300)

조선시대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결코 단원을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그는 명실공이 조선시대 최고의 화원이자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대기에 대해 조명해 볼 수 있는 전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홍도가 남긴 기록은 편지 몇 통 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 자신이 글보다 그림을 가까이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기록에 충실했던 스승 강세황이 있었다.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인해 사대부들과 교유했고, 들 중 일부가 김홍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어용화사였고 도화서 화원을 한 덕분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은 조선시대 국가기록물에도 행적이 꽤 많이 기록되어 있다. 김홍도는 국가 기록과 양반을 통해 자신의 삶이 기록된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중인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끌어 모아 떨어진 부분을 꿰매어 잇고 구멍 난 곳은 기워서 구멍을 메웠다. 그리하여 그동안 논쟁과 추정에만 기대어온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홍도의 전기 내지 평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에게 아호를 단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혹시나 스승이 노적봉 박달나무 숲에서 열던 아회를 떠올리며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폈다. “좋은 이름이다.”, “스승님, 감히 스승님께 제 아호에 대해 기문을 한 편 청해도 될는지요?” 강세황은 김홍도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겠다는 듯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297)

 

단원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많은 이들이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상 최고의 예인정치를 펼쳤던 정조의 화원으로, 군왕 정조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이런 인식을 거부한다. 저자는 정조의 후광을 걷어낸 인간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였음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천지를 뒤흔들었던 단원의 화폭과 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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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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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깊은 산 골자기 이름 모를 산모퉁이

비경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산사(山寺)가 자리해 있다.

깊은 산 속에 들어앉은 고찰

, 나무, 깊숙한 곳의 선방

모든 시끄러움, 이 곳에서는 모두 사라지네.(5)

 

소가 멈춘 곳에 절을 지으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미황사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뒤로 보는 달마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도 인연이 닿으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85~98)

대저 사람이 산에 오르면 먼저 그 높은 것을 배우려고 할 줄 알아야 하고

물을 만나면 그 맑음을 배울 것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돌에 앉으면 그 굳음을 배울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소나무를 보게 되면 그 푸름을 배울 것을 생각하고...(134~5)

, (바위), 소나무 등은 산에 가면 흔하게 다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은 이러한 산과 돌, 물과 소나무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였다.

 

언제부턴가 잔기침이 심해져서 약을 먹어도 쉬지 낫지 않아, 산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신기하게도 도심에 있을 때는 계속 기침이 나는데, 산 속으로 들어가면 기침이 나지 않았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를 때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이 드는데도 기침이 나지 않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주중에 도심에 회사에 있을 때는 억지로 기침을 참으려고 해도 계속 기침이 나왔는데, 산에 있을 때만큼은 기침이 나지 않았다. 분명 효과를 보고 나서 시간이 날 때 마다 산을 찾았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앞산을 주로 다녔고, 주말에는 인근의 비슬산이나 팔공산, 가야산 등의 명산을 찾아 오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산을 다니고 나서 어느 순간 기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산을 오르내리면서 숲의 맑은 공기를 들이 마쉬는 과정에서 몸 속에 노폐물들이 땀과 함께 다 배출되어 버린 듯 하다.

산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산마다 꼭 절이 있었다. 앞산에는 은일사라는 절이 산을 오르는 중턱에 만날 수 있었고, 비슬산 천왕봉 가는 길에도 등산로 입구에 유가사라는 절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팔공산도 동화사라는 절을 경유해서 동봉과 비로봉으로 오를 수가 있고, 가야산에도 해인사와 청량사라는 절이 각각 다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기한 건 절에서 산 정상을 바라보아도 정상이 바로 보이는 정 중앙에 위치해 있고,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절이 있는 위치가 아주 명당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금년의 마지막 단풍 산행으로 고창에 있는 선운산을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 도착하고 나서 입장료가 있는 것을 알았다. 매표소에서 나는 절에는 안 들어가고 바로 선운산을 오를 거라고 했더니, 절에 가든 안 가든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온 거 3,000냥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등산로 입구 갈림길에서 절로 가지 않고 절 담을 끼고 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생각할수록 황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절에는 가지도 않는데, 등산 입장료를 3,000원 내는게 계속 부당하게 느껴졌다. 매표소 입구를 등산로와 절 입구가 갈리는 곳에 설치해서 받던지,

아무튼 그렇게 선운산 정상에 오른 다음, 점심을 먹고, 올라온 곳과 반대되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다시 절이 나왔다. 낸 입장료가 있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나는 3,000원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합천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해인사는 가 보았는데, 합천 청량사는 금시초문이다. 더구나 해인사가 아닌 청량사가 통일신라시대 대표 영남 사찰이었다니, 이 또한 의외였다.

이 외에도 창녕의 관룡사, 청양의 장곡사, 동해 삼화사, 화순의 운주사, 상주의 남장사, 북장사, 전남 영암의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절이란 뜻의 무위사(無爲寺) 등등 정말 보기 드문 명소 아닌 곳이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되고 인연이 닿는다면, <사찰 답사기>와 함께 꼭 한번 씩 답사를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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