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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천년의 화가 단원
단원 김홍도!!
붓으로 조선천지를 뒤흔든 화가!!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다. 영조 때 태어나 정조를 거쳐 순조 때까지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4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세 번이나 임금의 모습을 그린 어용화사였고, 궁중기록화, 신선도와 같은 도석화, 시의도, 풍속화, 실경산수화, 호랑이 그림 등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당시의 그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그림으로 만나는 조선시대, 조선최고의 화원이었던 단원의 그림으로 조선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박신양과 문근영이 출연하여 단원과 혜원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주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두 화원이 그린 시정의 풍속 그림을 통해 관리의 부정부패를 발견하여 죄를 지은 관리를 엄하게 문책하던 내용이 있었다. 그때 화원들의 그림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특정 그림은 죄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금으로 치면 사진 증거자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단원은 정조의 또 다른 눈이었다. 정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단원이 대신보고 그림으로 정조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조가 김홍도를 특별히 총애하지 않았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 8폭 병풍을 그리는 작업에도 김홍도는 참여하지 못했다.
“전하께서 이 벽에 바다 위를 건너가는 신선들을 그리라 명하셨소. 화사는 전하의 어명을 받드시오.”
김홍도는 깜짝 놀랐다. 해상군선도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정조가 왔다. 김홍도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화사는 일어나라”
정조의 명에 김홍도는 바닥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잘 그렸다.”(300면)
조선시대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결코 단원을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그는 명실공이 조선시대 최고의 화원이자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대기에 대해 조명해 볼 수 있는 전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홍도가 남긴 기록은 편지 몇 통 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 자신이 글보다 그림을 가까이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기록에 충실했던 스승 강세황이 있었다.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인해 사대부들과 교유했고, 그들 중 일부가 김홍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어용화사였고 도화서 화원을 한 덕분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은 조선시대 국가기록물에도 행적이 꽤 많이 기록되어 있다. 김홍도는 국가 기록과 양반을 통해 자신의 삶이 기록된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중인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끌어 모아 떨어진 부분을 꿰매어 잇고 구멍 난 곳은 기워서 구멍을 메웠다. 그리하여 그동안 논쟁과 추정에만 기대어온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홍도의 전기 내지 평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에게 아호를 단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혹시나 스승이 노적봉 박달나무 숲에서 열던 아회를 떠올리며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폈다. “좋은 이름이다.”, “스승님, 감히 스승님께 제 아호에 대해 기문을 한 편 청해도 될는지요?” 강세황은 김홍도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겠다는 듯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297면)
단원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많은 이들이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상 최고의 예인정치를 펼쳤던 정조의 화원으로, 군왕 정조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이런 인식을 거부한다. 저자는 정조의 후광을 걷어낸 인간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였음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천지를 뒤흔들었던 단원의 화폭과 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