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든 세계지도로 세계여행 계획하기 - 전세계 여행/문화, 역사이야기를 담은 세계지도, 2024-2025 개정2판 에이든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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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세계지도를 거실 벽에 붙여 두고 세계 여러 나라들을 둘러보고 구경하면서 멋진 세계 여행 계획를 세워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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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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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강렬한 한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어제였나 보다.

 

꽤 오래 전이다. 10여 전 쯤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인이란 제목으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분량이 두껍지 않은 얇은 책이었는데, 읽는 시간이 더디었다.

내용도 어렵고, 읽으면서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냥 시작했으니까 끝내야 한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읽었던 것 같다.

읽고 나서도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작품은 읽고 나서 읽은 후에 한 번씩 생각이 났다. 분명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고, 가독성 또한 엄청 떨어진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속에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작품이 이방인이었다.

서양 문학 작품은 사고와 정서의 차이 때문인지, 동양 문학 작품과 다르게 술술 잘 읽히지 않는다. 물론 이건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작품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유독 심했던 것 같다.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작가이다. 하지만 <이방인>은 생각만큼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 아니었다. 읽을 때마다 유명한 고전 작품 치고는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어려우며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느껴졌었는데,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원작은 원서로 읽어야 그 멋과 재미,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데, 서양 문학 작품들을 원서로 줄줄 읽을 정도로 수준이 되지 못하니, 우리는 번역가의 도움을 받아, 번역된 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번역자의 스타일과 문체, 문장력에 따라 동일 원서라도 번역본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카뮈의 <이방인>10년 전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어렵고 내용이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서양과 다른 우리 동양의 사고와 정서, 환경의 문제에 있었던 듯도 하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가 쓴 최초의 소설로, 출간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사건으로 언급된 호평작이라고 한다. 카뮈를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고,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태양이 때문이었다. 태양이 시켰다.

불로 지지는 듯한 태양의 열기가 내 뺨에 닿았고 땀방울이 눈썹 위에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를 묻던 날에 본 태양과 똑같았다. 그때처럼 이마가 아팠고, 피부 밑으로 온 혈관들이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듯한 뜨거움 때문에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한 발짝 움직인다고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딱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되었다. 그것은 마치 내 이마에 닿는 기다랗고 번쩍이는 칼날 같았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며 실존주의 철학자인 작가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는 <이방인>.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생각나는 묘한 작품이다. 코너스톤에서 출간된 초판본을 모티브하여 만든 책으로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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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임진왜란 7년의 기록 빛나는 유네스코 우리 유산 17
김기정 지음, 오승민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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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난중일기

 

사이즈가 큰 책이 배송되어 오면 제일 궁금해 하는 이가 초등학생 둘째 아들이다.

사이즈가 큰 책은 으레 자기 책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빠, 그거 뭐예요?” 택배가 책을 놓고 가자마자 묻는다.

글쎄, 누나껀가?”, 옆에 와서 호기심 어른 눈빛으로 자기 선물이기를 바라는 눈치다.

무슨 책이지?” 하면서 조심스레 비닐을 벗겨내고 보니, 이순신의 난중일기 책이다.

보자마자

아빠, 이 책은 내가 보는 책이네!”하고 좋아한다.

가치 읽자!! 아빠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

선조가 24년째 조선의 임금이던 1591. 당시 우의정이던 유성룡은 3년 동안 임금에게 같은 말을 수백 번 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에게 남쪽 바다를 지키게 하소서.”

이순신은 전라 좌수라로 삼아야 합니다.”

마침내 이순신은 전라 좌수사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592년 새해 첫날부터 장군은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412

맑다. 거북선에서 지자포, 현자포를 쏘는 것을 보았다.

동헌에 나가 활 50발을 쏘았다.

 

415

해 질 무렵 경상 우수사와 경상 좌수가가 전갈을 보내왔다.

왜선 90척은 부산 앞 섬에 정박하고

왜선 350척은 부산포 앞바다에 이르렀다고 한다.

 

529

나는 장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화살을 비 오듯 퍼붓고 대포를 수없이 쏘아 대니, 적들이 무서워 도망쳤다.

군관 나대용이 다쳤고, 탄환이 내 어깨를 뚫고 들어왔다.

 

이 책은 최근에 일기 쓰기를 힘들어 하는 아이를 위해 고른 책이다. 일기란 어떻게 쓰고,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며, 또 전란 중에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 속 내용을 통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여러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는 사실 쉽지 않다.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빼고는 일기를 쓴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혹자는 일기를 쓰면, 필체와 문장력이 좋아지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 상식들을 축적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부지런해야만 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인 것 같다.

 

이순신의 장군의 난중일기를 받고 한 가지 놀란 사실이 있다.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은 역사 기록들을 선정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는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여기에 선정이 되었다고 일러 주었다. 이순신 장군은 최근에 영화 한산을 보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전란의 와중에 일기를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 중 쓴 기록이다. 일기에는 당시 전쟁 상황은 물론 전쟁을 준비하며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 군중에서의 생활상, 날씨까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의 와중에도 특별히 바쁜 공무가 아닌 날에는 일기를 거르지 않고 썼었다.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 주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길고 참혹했던 임진왜란을 겪으며 이순신 장군이 나라의 운명을 걸머진 장군으로서 겪어야 했던 시련과 당시의 정세,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 등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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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11
권오단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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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슨트 안동

 

초목에 둘러싸인 누각

그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눈 앞에 펼쳐진 낙동강 줄기와 도심

 

안동시내 낙동강 변에 자리한 영호루映湖樓라는 누각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누각이라고 한다.

 

고려 때 공민왕은 피난 중에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아래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했으며, 활쏘기를 했다고 한다. 안동 영호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불렸던 곳이다.(38)

 

안동을 수차례 다녔지만, 이곳 영호루에 올라 본 건 이번에 처음이다.

사방이 탁 틔여 있어 시원하고, 풍광 또한 아주 그만이다. 안동에 가면 이곳은 꼭 방문을 해 봐야 할 필수 코스로 강력 추천한다.

 

안동은 시가지를 벗어나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명소들이 많은 고장이다.

그러하기에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에 안동이 들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21세기 대한민국 명품 대표 인문지리지. 도슨트 시리즈 11번째 도시 이야기 안동 편. 책을 받고 표지를 보는 순간, 표지의 이미지와 사진부터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참 안동스럽다.

유학의 본고장, 안동 하회마을과 청량산, 안동댐과 월영루 등 다양한 명소로 이름난 고장

퇴계선생의 학문적 자취와 숨결이 담겨 있는 도산서원, 그리고 안동역!!

 

경주하면 가수 현인 선생이 부른 신라의 달밤을 빼 놓을 수 없듯이

안동하면 가수 진성이 부른 안동역에서란 노래 가사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리아 트롯의 파워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아마도 이 노래의 가사를 모르는 이들은 많아도 노래 제목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드물 것이다.

전후 복구 작업을 통해 안동역은 19608월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됐다. 안동역을 중심으로 안동의 경제도 성장하게 된다...구부러졌던 철로를 일직선화하면서 2020년 안동역은 송현으로 이전했고, ktx가 운행되고 있다. 현재 구 안동역은 옛 모습 그대로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안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동만의 고유한 전통 음슥(음식)이다. 안동에 가면 반드시 꼭 맛을 봐야 한다는 구시장의 안동찜닭과 안동의 맛이자 특산품인 안동 간고등어는 짭조름한 상상만으로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일 정도이고 여기에 더하여 헛제사밥과 안동 식혜는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이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안동은 꼭 가 봐야 할 것 분명한 이유가 있는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동만큼 서원이 많은 도시가 있을까? 안동에 가면 서원, 즉 옛날 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서원이 바로 퇴계 선생의 도산서원이다. 퇴계는 57세이던 1667년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해 1661년에 완공했다. 서당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건너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도산서원에 관해서는 도산잡영이라는 글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나는 첫 문장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늘 고질병을 달고 다녀 괴로웠기 때문에, 비록 산에서 살더라도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한다...좋은 경치 만나면 흥취가 절로 일어 한껏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방 안에 쌓인 책이 가득하다”(~12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반변천과 낙강이 합쳐진 물길이 안동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구불구불 흘러오다가 풍산에서 넓은 들을 만든 후에 우뚝 솟은 화산에 부딪쳐 남쪽으로 크게 구부러져 동쪽으로 흐르다가 단애를 만나 태극의형태를 만들었으니, 화산의 끝자락, 강가에 형성된 넓은 평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낙동강이 휘돌아 치듯 구부러졌기에 하회라는 지명이 붙여졌다.(226)

 

하회마을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부용대, 만송정, 전통가옥들로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나는 30년 전 대학 시절 답사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하회마을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10여년 전에 다시 하회마을을 찾았을 땐, 또 조금 달라져 있었는데, 가장 아쉬웠던 것이 과거 마을의 흙길이 모두 시멘트길로 바뀌어져 있었던 점이다. 옛 정취가 사라져 가장 아쉬움이 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은 충분히 가볼만한 매력이 가득한 도시임에 분명하다.

 

흔히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첫 인상이다. 이 책의 첫 인상, 첫 느낌이 특히 좋았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내용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흥미로웠다.

비유가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안동에 놀러 갔는데, 안동에 대해 잘 아는 친한 형이 안내자가 되어 안동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구석구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한 그런 느낌이다. 오랜만에 정감 가는, 정감이 가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그런 책을 만난 기분이다.

사실 안동에 대해 이렇게 책을 통해 여행해 보기는 처음이다.

이 책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도시 안동이 어떤 곳인지 세세하게 알게 되었고 안동이란 도시가 더욱 가깝게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 듯 하다.

이 책의 컨셉과 구성이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목과 내용이 아주 잘 부합되는 것 같다. 도슨트 시리즈의 다른 도시 이야기도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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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를 독함 창해 최익한의 다산 3부작 교주본 1
최익한 지음, 류현석 엮음 / 21세기문화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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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창해 최익한 선생이 1938129일부터 193964일까지 동아일보 지면에 64회에 걸쳐 연재한, 다산 선생과 다산 학문에 관한 고전 비평이다.

 

조선 공산당 사건으로 약 8년간 징역을 살고 1936년 출옥한 창해는 [여유당전서]를 발간하고 있던 신조선사의 요청으로 다산의 일사와 일화, 저서 총목을 작성하였는데, 이후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완성하기 전까지 근 3년 동안 얼개를 구성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던 듯하다. 1938129<다산 선생의 애걸>을 시작으로 <연보>, <명호名號 소고>, <거주지 소고>, <저서 총목> 22편에 달하는 글을 193964일까지 동아일보에 나누어 게재하였다.(~69)

 

근 보름에 걸쳐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이 책을 정독하였다. 때론 이미 읽었던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뒷부분을 읽다가 내용이 와 닿지 않을 때에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 단락의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하였다.

 

18년 기나긴 유배동안, 조선에서 가장 궁벽한 오지로 알려진 땅끝 해남과 접한 강진에 거하며 [여유당전서]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 선생도 대단하지만,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일제 치하에 언론의 탄압과 핍박 속에서 신문에 연재한 창해 최익한 선생도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두 분 학자 못지않게 이 책을 교주한 류현석 선생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과 창해에 두 학인에 대한 뜨거운 마음,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러한 책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이 책을 교주하고 연구 분석하기 위해 편자가 창해 최익한의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무려 3번씩이나 베껴 쓰고 30번 가까이 읽었으며, 관련 논문 자료들도 죄다 찾아 읽었다고 한 점이다. 전문을 옮겨 쓴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나 글귀를 만나면 노트에 옮겨 적어 본 적은 있지만, 이제까지 어떤 책의 전문을 베껴 본 적은 없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베껴 쓰지는 못할망정 정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쓴 창해 최익한은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영남학파의 거유 곽종석의 문하에서 3년간 성리학을 익히고 지리산 산방에서 독서에 열중하였으며, 중동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영어를 배우고 나서는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을 하였으며, 그 와중에 민족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모금 사건,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10년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는 호구지책 마련을 위해 언론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 잡문을 기고하며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연재하였다. 해방 후 1948년 월북하였고 김일성종합대학 조선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실학파와 정다산], [정다산선집]까지 집필하여 최초로 다산 3부작을 완성하였다. () 한학을 공부하고도 신학문에뜻을 두어 1919년 경성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19199월에는 중동학교 야학부에 입학하여 단발하고 변복을 하였다. (~37)

 

[여유당전서를 독함][실학파와 정다산]에 거의 다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창해 최익한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와 다산학 연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창해는 19세기 격변하는 동아시아 세계와 조선의 미래 모습을 어느 정도 통찰하고 있었던 듯하며, 구한말의 지식인답게 구학문과 신학문을 동시에 배웠으며, 영어와 일본어에도 상당한 실력을 구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내용을 만났다.

 

때는 1925년 을축 홍수 때이다. 한강이 전에 없이 불어 넘쳐 마현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선생의 사현손 규영씨의 결사적 작업으로 겨우 건져 내게 된 선생의 전서 외에는 여유당 옛집과 유물 전부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규영씨가 책을 구한 미담은 문화 보존사 차원에서 대서특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난 을축 홍수 때 한강이 불어 넘쳐 여유당의 구들방에 물이 달려든지라 씨는 생명같이 대대로 지켜 내려온 선생의 전서 서궤를 벽장에서 끄집어내 안방 다락에다가 옮겨 두었는데 () 때는 깊은 밤이고 집안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탈출하느라 겨를이 없었지만, 씨는 홀로 황급히 다락에 뛰어올라가서 서궤를 끄집어내려고 하였다. () 급보를 들은 마을의 구조선이 달려와서 어서 나오라고 외쳤으나, ‘나는 다산 전집을 건져 내지 못하면 죽어도 못 나가겠다!’고 외쳤다. () 다음 날 강물이 빠지면서 선생의 옛집은 배가 되어 떠내려가 버렸고 오직 선생의 전서만이 사손의 매운 손에 잡혀 있다가 오늘날 세인의 눈앞에 활자로서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되었다.”(~400)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여유당전서]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다산 선생의 18년 기록유산이 홍수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하였다가 그야말로 구사일생한 게 아닌가. 홍수 속에서 목숨을 걸고 구한 [여유당전서]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산 선생의 삶과 정신, 학문 세계에 대해 공부하며 연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정조시대 대학자로 정조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던 천재 학자 다산 선생의 학문과 실학 세계 등을 좋아하여 관련 책들을 보면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공부하면서 다산 선생을 논외로 하고는 그 시대의 학문은 물론, 정치·경제·문화 사상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때 다산 선생의 시문집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한문 실력이 얕아 이런저런 어려운 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10여 년 전쯤에 한문 원문으로 된 [영인본 여유당전서]를 구입하려고 하다가 전문 연구자도 아닌데다 방대한 원서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 결국 집에는 들이지 못했다. 대신 다산 선생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텍스트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들을 곁에 두고 지금도 꾸준히 애독하고 있다.

다산 선생 학문의 근간과 뿌리가 되는 18년 유배 생활의 결정체 [여유당전서], 그리고 그 책의 최초 풀이 해설서 격인 창해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 이 책은 다산 선생 학문 연구의 출발을 알린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선생의 또 다른 저작인 [실학파와 정다산]과 함께 다산학 연구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텍스트이다.

[여유당전서를 독함 교주본] 이 책은 교주 류현석 선생의 노력과 공이 들어간 저작이다.

이 책을 지은 <창해 최익한의 생애와 저술>에서는 그의 삶과 학문 세계, 다산 3부작 시리즈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여유당전서를 독함 해제>, <1장 다산 선생의 애걸에서부터 마지막 22장 다산 사상에 대한 개평>, <원문 교주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유당전서를 독함] 시리즈는 [실학파와 정다산], [정다산선집]과 함께 3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세 책은 서로 자매와도 같은 책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어 같이 보면 창해 선생의 다산 학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산학 연구의 개척자 창해 최익한, 창해(滄海)란 그의 호에서 암울한 시대 넓고 큰 푸른 바다로 나아가려는 뜻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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