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또롱 아래 선그믓 -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읽다
권도영.송영림 지음, 권봉교 그림 / 유씨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배또롱 아래 선그믓

제목이 낯설다.

배또롱’, ‘선그믓’, 우리말에 이런 단어, 어휘들이 있나 싶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배또롱은 제주도 방언으로 배꼽이란 뜻이고, ‘선그믓이나 을 뜻하는 말이었다. ‘배또롱 아래 선그믓을 풀이하면, ‘배꼽 아래 선이란 뜻이 된다.

책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다. 어른들을 위한 전래동화의 성격이 짙어서 가독성 또한 상당히 좋다.

옛 이야기는 사실상 아이들이 즐겨 보는 전래동화로 인식되어 있고, 교훈이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기도 하나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엉뚱한 경우가 많다. 이는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들의 흥미를 우선하기 위해서 허구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문학적 형상화라고 정의하였다.

옛 이야기는 아이 책이나 어른 책이나 구별없이 다 재밌는 것 같다. 태평한화 골계전에 들어 있는 해학적인 이야기들이 그러하고, 고금소총이나 금계필담, 청구야담과 같은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도 재밌는 내용이 많다.

이 책은 수 많은 옛 이야기들 중에서 여성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었는데, 이 책을 통해 옛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잘난 여자는 남자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보다 뛰어난 딸

이몽학의 이야기나 김덕령의 이야기나 누나는 남동생보다 지략과 힘을 훨씬 더 잘 갖추고 있었기에 힘을 잘못 쓰게 될 동생을 염려하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동생을 살리고 자신을 죽이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비극적인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몽학이나 김덕령은 의병장으로서 이름을 남긴 역사 속 실제 인물이지만 이들에게 그런 누나들이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영웅의 실패를 초래하는 데에 누나라는 존재 자체는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형제 갈등이 아닌 젠더 갈등, 이야기의 초반에서부터 누나의 관심은 남동생의 힘에 있었다. 누나가 경계하는 이유는, 남동생이 함부로 힘자랑하며 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필경 일을 벌이고야 말 것인데, 그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향이라기보다 파괴적인 힘을 가진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씨름판에 나타나 남동생을 쓰러뜨림으로써 남동생의 힘이 빈약한 것임을 직접 느끼게 해주었다.(~47)

아기장수이야기, 남편 찾아 삼십 년, 못생겨서 버림받은 신부, 효부와 호랑이, 열녀곽씨부인 이야기들도 굉장히 재밌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하나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의 원출전이 어디인지 주석이나 각주로 처리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년의 화가 단원

 

단원 김홍도!!

붓으로 조선천지를 뒤흔든 화가!!

단원 김홍도는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다. 영조 때 태어나 정조를 거쳐 순조 때까지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4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세 번이나 임금의 모습을 그린 어용화사였고, 궁중기록화, 신선도와 같은 도석화, 시의도, 풍속화, 실경산수화, 호랑이 그림 등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당시의 그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그림으로 만나는 조선시대, 조선최고의 화원이었던 단원의 그림으로 조선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박신양과 문근영이 출연하여 단원과 혜원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주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두 화원이 그린 시정의 풍속 그림을 통해 관리의 부정부패를 발견하여 죄를 지은 관리를 엄하게 문책하던 내용이 있었다. 그때 화원들의 그림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특정 그림은 죄인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금으로 치면 사진 증거자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단원은 정조의 또 다른 눈이었다. 정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단원이 대신보고 그림으로 정조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조가 김홍도를 특별히 총애하지 않았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 8폭 병풍을 그리는 작업에도 김홍도는 참여하지 못했다.

 

전하께서 이 벽에 바다 위를 건너가는 신선들을 그리라 명하셨소. 화사는 전하의 어명을 받드시오.”

김홍도는 깜짝 놀랐다. 해상군선도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정조가 왔다. 김홍도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화사는 일어나라

정조의 명에 김홍도는 바닥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잘 그렸다.”(300)

조선시대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결코 단원을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그는 명실공이 조선시대 최고의 화원이자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대기에 대해 조명해 볼 수 있는 전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홍도가 남긴 기록은 편지 몇 통 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 자신이 글보다 그림을 가까이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기록에 충실했던 스승 강세황이 있었다.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인해 사대부들과 교유했고, 들 중 일부가 김홍도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어용화사였고 도화서 화원을 한 덕분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은 조선시대 국가기록물에도 행적이 꽤 많이 기록되어 있다. 김홍도는 국가 기록과 양반을 통해 자신의 삶이 기록된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중인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끌어 모아 떨어진 부분을 꿰매어 잇고 구멍 난 곳은 기워서 구멍을 메웠다. 그리하여 그동안 논쟁과 추정에만 기대어온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홍도의 전기 내지 평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에게 아호를 단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혹시나 스승이 노적봉 박달나무 숲에서 열던 아회를 떠올리며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폈다. “좋은 이름이다.”, “스승님, 감히 스승님께 제 아호에 대해 기문을 한 편 청해도 될는지요?” 강세황은 김홍도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겠다는 듯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297)

 

단원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많은 이들이 조선왕조 오백 년 역사상 최고의 예인정치를 펼쳤던 정조의 화원으로, 군왕 정조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이런 인식을 거부한다. 저자는 정조의 후광을 걷어낸 인간 김홍도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였음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선 천지를 뒤흔들었던 단원의 화폭과 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깊은 산 골자기 이름 모를 산모퉁이

비경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산사(山寺)가 자리해 있다.

깊은 산 속에 들어앉은 고찰

, 나무, 깊숙한 곳의 선방

모든 시끄러움, 이 곳에서는 모두 사라지네.(5)

 

소가 멈춘 곳에 절을 지으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미황사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뒤로 보는 달마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도 인연이 닿으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85~98)

대저 사람이 산에 오르면 먼저 그 높은 것을 배우려고 할 줄 알아야 하고

물을 만나면 그 맑음을 배울 것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돌에 앉으면 그 굳음을 배울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소나무를 보게 되면 그 푸름을 배울 것을 생각하고...(134~5)

, (바위), 소나무 등은 산에 가면 흔하게 다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은 이러한 산과 돌, 물과 소나무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였다.

 

언제부턴가 잔기침이 심해져서 약을 먹어도 쉬지 낫지 않아, 산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신기하게도 도심에 있을 때는 계속 기침이 나는데, 산 속으로 들어가면 기침이 나지 않았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를 때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이 드는데도 기침이 나지 않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주중에 도심에 회사에 있을 때는 억지로 기침을 참으려고 해도 계속 기침이 나왔는데, 산에 있을 때만큼은 기침이 나지 않았다. 분명 효과를 보고 나서 시간이 날 때 마다 산을 찾았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앞산을 주로 다녔고, 주말에는 인근의 비슬산이나 팔공산, 가야산 등의 명산을 찾아 오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산을 다니고 나서 어느 순간 기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산을 오르내리면서 숲의 맑은 공기를 들이 마쉬는 과정에서 몸 속에 노폐물들이 땀과 함께 다 배출되어 버린 듯 하다.

산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산마다 꼭 절이 있었다. 앞산에는 은일사라는 절이 산을 오르는 중턱에 만날 수 있었고, 비슬산 천왕봉 가는 길에도 등산로 입구에 유가사라는 절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팔공산도 동화사라는 절을 경유해서 동봉과 비로봉으로 오를 수가 있고, 가야산에도 해인사와 청량사라는 절이 각각 다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기한 건 절에서 산 정상을 바라보아도 정상이 바로 보이는 정 중앙에 위치해 있고,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절이 있는 위치가 아주 명당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금년의 마지막 단풍 산행으로 고창에 있는 선운산을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 도착하고 나서 입장료가 있는 것을 알았다. 매표소에서 나는 절에는 안 들어가고 바로 선운산을 오를 거라고 했더니, 절에 가든 안 가든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온 거 3,000냥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등산로 입구 갈림길에서 절로 가지 않고 절 담을 끼고 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생각할수록 황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절에는 가지도 않는데, 등산 입장료를 3,000원 내는게 계속 부당하게 느껴졌다. 매표소 입구를 등산로와 절 입구가 갈리는 곳에 설치해서 받던지,

아무튼 그렇게 선운산 정상에 오른 다음, 점심을 먹고, 올라온 곳과 반대되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다시 절이 나왔다. 낸 입장료가 있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나는 3,000원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합천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해인사는 가 보았는데, 합천 청량사는 금시초문이다. 더구나 해인사가 아닌 청량사가 통일신라시대 대표 영남 사찰이었다니, 이 또한 의외였다.

이 외에도 창녕의 관룡사, 청양의 장곡사, 동해 삼화사, 화순의 운주사, 상주의 남장사, 북장사, 전남 영암의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절이란 뜻의 무위사(無爲寺) 등등 정말 보기 드문 명소 아닌 곳이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되고 인연이 닿는다면, <사찰 답사기>와 함께 꼭 한번 씩 답사를 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약으로 부()를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소. 나의 발견으로 인해 연약한 인간을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고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지켜 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영예일까?……자연철학에서 가지를 뻗은 화학이란 학문은 엄청난 진보를 이뤄 왔고……그날이 바로 내 운명을 결정지은 날이오.아름답던 사람의 몸이 어떤 식으로 변질도며 썩어 가는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단 말이오. 그러다 문득 하던 일을 멈춘 나는 인과관계의 모든 세부 사항을 검토하고 분석했소.생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내가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면 썩어 가고 있는 시체도 부활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소.조립된 인체에 생명을 불어넣겠단 일념으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에 매진내가 만들어 낸 피조물의 모습을 도저히 참고 바라볼 수 없었던 나는 그만 연구실을 박차고 나왔소.아 그 흉측한 얼굴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절대 없소. 산송장도 그놈보다 흉물스럽지 않을 테니까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어렸을 적 본 만화를 통해 익숙하긴 한데, 대개가 외적인 괴물의 모습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만화 제목이 <두치와 뿌꾸>였었나? 이 만화에 보면, 드라큘라와 무당, 늑대인간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등장했었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 몬스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흡사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와 닮았다. 이마에 땜빵과 의사가 야매로 제멋대로 꿰맨 듯한 봉합 상처, 큰 덩치. 물론 <두치와 뿌꾸> 만화에서는 뭔가 많이 부족하고 어설픈 모습의 우스쾅스러운 프랑켄슈타인이 이미지였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뭔가 내가 생각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고 내용도 도무지 황당한 그런 영화였다.

허밍버드 클래식 M시리즈에서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을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온전한 기승전결의 내용을 갖춘 프랑켄슈타인을 만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서양고전문학 장르에 포함되어 있고, 출간된 지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었음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영국의 작가인 메리 셸리가 1818년에 쓴 작품인데, 1818년이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조 임금 사후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유배를 갔다가 드디어 해배(解配)(유배가 풀린)가 된 해였다.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산 선생이 유배가 풀리던 해인 1818년 메리셸리는 19살의 나이로 아주 독특하면서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프랑켄슈타인>이란 걸작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남편과 시인 바이런에게서 힌트를 얻어 인간과 똑같은 능력을 갖춘 기괴한 형상의 거대한 인조인간을 창조함으로써 과학 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메리 셸리 작가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은 지 20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식이라든지, 오래되었다든지 하는 그런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며, 담고 있는 내용 또는 소설의 기발한 상상력을 뛰어 넘으며,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까지도 아울러 다루어서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 동안 고전으로 불리우며 다양한 버전의 번역본은 물론이고, 영화, 연극, 만화, 뮤지컬,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재탄생되는 것은 꾸준한 인기와 관심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메리셸리는 1818년에 이미 산업화 및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서서히 인류가 파괴와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음을 예측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즉 지나친 지적 욕구와 오만함으로 인류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경고는 프랑켄슈타인이 발표된 지 무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가리키며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걸까?

이 소설은 다윈 박사와 독일 생리학자들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예측한 가설에 기초해 구성되었다.(1818년판 작가 서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 마오쩌둥이 밥은 안 먹어도 열 번은 읽었다는 삼국지 속에 숨은
나단 지음 / 비즈니스인사이트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회서

 

제갈량은 천하에 기재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이다. 유비 세력의 인적, 자본적 한계점을 파악 한 후에 조조의 강력한 세력과 손권의 신흥 세력 사이를 잘 조정하여 유비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갈량은 왜 위나라와 오나라라는 대기업을 놔두고 고생길이 훤히 열려 있는 아직 체 창업도 되지 않은 유비에게 갔던 것일까? 위와 오나라는 제갈공명에 고액연봉과 정년보장은 물론 직위(지위) 또한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제안이라면, 그 누구도 쉽사리 뿌리치기 어렵다. 하지만 제갈량은 위나라와 오나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공명은 순수하게 자신의 손으로 창업. 즉 새로운 기업을 일구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설계하고 계획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결과는 일단 성공이었다.

초 단기간에 위나라와 오나라라는 대기업에 견줄만한 촉나라라는 신생 기업을 창업하였으니 말이다.

촉나라의 창업과 함께 삼국지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합병과 분리의 살벌한 경쟁화가 가속화되었다.

싸움을 하기 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싸우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상대방의 전략, 경쟁사의 전술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무리하게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싸우기 전에는 우선은 싸울 상대, 라이벌을 정하고 타게팅을 해야 한다.

유비와의 첫 대면에서 제갈공명은 두 명의 라이벌로 조조와 손권을 지목하였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북쪽은 조조가 하늘이 준 때를 누리게 놓아두시고 남쪽은 손권이 땅의 이()를 차지하게 놓아두십시오. 장군의 몫은 사람의 화()입니다.서천을 얻어 대업의 기반을 삼으신다면 조조, 손권과 더불어 천하의 세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원을 엿보는 일은 그런 다음에 라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23)”

유비는 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듣고 가슴이 벌렁벌렁 심장이 콩딱콩딱 뛰었을 것이다.

<적벽대전, 이길 수 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는 독특한 내용의 책이다.

내용은 삼국지인데,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업 경영에 관한 것이다.

고전 삼국지의 이야기를 현대에 접목하여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이 책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21세기 지구촌을 둘러싸고 새로운 글로벌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였다. 과거와 다르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창과 칼이라는 무기 대신, 스마트 폰, pc 등 온라인 무기가 등장하여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고,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이 전쟁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바야흐로 난세다 보니,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고, 어제의 패자가 극적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살아남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적벽대전((赤壁大戰)과 같은 거대한 경제 전쟁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이다. 그런데 적벽의 무대가 과거 삼국지에서 오나라와 위나라가 자웅을 겨루었던 그 중국의 장강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일본의 경제 전쟁터인 적벽이 된 셈이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촉나라의 명재상이자 군사전략가로 명성이 높았던 제갈공명 같은 인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던 내용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플랜 B는 항상 필요하다.”라는 말이 깊이 와 닿았다.

플랜 B, 플랜 B 업무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는 항상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대비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세상이란 큰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지, 작은 은혜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공명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소설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