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전서를 독함 창해 최익한의 다산 3부작 교주본 1
최익한 지음, 류현석 엮음 / 21세기문화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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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창해 최익한 선생이 1938129일부터 193964일까지 동아일보 지면에 64회에 걸쳐 연재한, 다산 선생과 다산 학문에 관한 고전 비평이다.

 

조선 공산당 사건으로 약 8년간 징역을 살고 1936년 출옥한 창해는 [여유당전서]를 발간하고 있던 신조선사의 요청으로 다산의 일사와 일화, 저서 총목을 작성하였는데, 이후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완성하기 전까지 근 3년 동안 얼개를 구성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던 듯하다. 1938129<다산 선생의 애걸>을 시작으로 <연보>, <명호名號 소고>, <거주지 소고>, <저서 총목> 22편에 달하는 글을 193964일까지 동아일보에 나누어 게재하였다.(~69)

 

근 보름에 걸쳐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이 책을 정독하였다. 때론 이미 읽었던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뒷부분을 읽다가 내용이 와 닿지 않을 때에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 단락의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하였다.

 

18년 기나긴 유배동안, 조선에서 가장 궁벽한 오지로 알려진 땅끝 해남과 접한 강진에 거하며 [여유당전서]를 집필한 다산 정약용 선생도 대단하지만,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일제 치하에 언론의 탄압과 핍박 속에서 신문에 연재한 창해 최익한 선생도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두 분 학자 못지않게 이 책을 교주한 류현석 선생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과 창해에 두 학인에 대한 뜨거운 마음,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러한 책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이 책을 교주하고 연구 분석하기 위해 편자가 창해 최익한의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무려 3번씩이나 베껴 쓰고 30번 가까이 읽었으며, 관련 논문 자료들도 죄다 찾아 읽었다고 한 점이다. 전문을 옮겨 쓴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나 글귀를 만나면 노트에 옮겨 적어 본 적은 있지만, 이제까지 어떤 책의 전문을 베껴 본 적은 없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베껴 쓰지는 못할망정 정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쓴 창해 최익한은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영남학파의 거유 곽종석의 문하에서 3년간 성리학을 익히고 지리산 산방에서 독서에 열중하였으며, 중동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영어를 배우고 나서는 일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을 하였으며, 그 와중에 민족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모금 사건,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10년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는 호구지책 마련을 위해 언론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 잡문을 기고하며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연재하였다. 해방 후 1948년 월북하였고 김일성종합대학 조선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실학파와 정다산], [정다산선집]까지 집필하여 최초로 다산 3부작을 완성하였다. () 한학을 공부하고도 신학문에뜻을 두어 1919년 경성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19199월에는 중동학교 야학부에 입학하여 단발하고 변복을 하였다. (~37)

 

[여유당전서를 독함][실학파와 정다산]에 거의 다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창해 최익한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와 다산학 연구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창해는 19세기 격변하는 동아시아 세계와 조선의 미래 모습을 어느 정도 통찰하고 있었던 듯하며, 구한말의 지식인답게 구학문과 신학문을 동시에 배웠으며, 영어와 일본어에도 상당한 실력을 구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내용을 만났다.

 

때는 1925년 을축 홍수 때이다. 한강이 전에 없이 불어 넘쳐 마현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선생의 사현손 규영씨의 결사적 작업으로 겨우 건져 내게 된 선생의 전서 외에는 여유당 옛집과 유물 전부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규영씨가 책을 구한 미담은 문화 보존사 차원에서 대서특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난 을축 홍수 때 한강이 불어 넘쳐 여유당의 구들방에 물이 달려든지라 씨는 생명같이 대대로 지켜 내려온 선생의 전서 서궤를 벽장에서 끄집어내 안방 다락에다가 옮겨 두었는데 () 때는 깊은 밤이고 집안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탈출하느라 겨를이 없었지만, 씨는 홀로 황급히 다락에 뛰어올라가서 서궤를 끄집어내려고 하였다. () 급보를 들은 마을의 구조선이 달려와서 어서 나오라고 외쳤으나, ‘나는 다산 전집을 건져 내지 못하면 죽어도 못 나가겠다!’고 외쳤다. () 다음 날 강물이 빠지면서 선생의 옛집은 배가 되어 떠내려가 버렸고 오직 선생의 전서만이 사손의 매운 손에 잡혀 있다가 오늘날 세인의 눈앞에 활자로서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되었다.”(~400)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여유당전서]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다산 선생의 18년 기록유산이 홍수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하였다가 그야말로 구사일생한 게 아닌가. 홍수 속에서 목숨을 걸고 구한 [여유당전서]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산 선생의 삶과 정신, 학문 세계에 대해 공부하며 연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정조시대 대학자로 정조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던 천재 학자 다산 선생의 학문과 실학 세계 등을 좋아하여 관련 책들을 보면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공부하면서 다산 선생을 논외로 하고는 그 시대의 학문은 물론, 정치·경제·문화 사상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때 다산 선생의 시문집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한문 실력이 얕아 이런저런 어려운 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10여 년 전쯤에 한문 원문으로 된 [영인본 여유당전서]를 구입하려고 하다가 전문 연구자도 아닌데다 방대한 원서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 결국 집에는 들이지 못했다. 대신 다산 선생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텍스트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들을 곁에 두고 지금도 꾸준히 애독하고 있다.

다산 선생 학문의 근간과 뿌리가 되는 18년 유배 생활의 결정체 [여유당전서], 그리고 그 책의 최초 풀이 해설서 격인 창해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 이 책은 다산 선생 학문 연구의 출발을 알린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최익한 선생의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선생의 또 다른 저작인 [실학파와 정다산]과 함께 다산학 연구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텍스트이다.

[여유당전서를 독함 교주본] 이 책은 교주 류현석 선생의 노력과 공이 들어간 저작이다.

이 책을 지은 <창해 최익한의 생애와 저술>에서는 그의 삶과 학문 세계, 다산 3부작 시리즈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여유당전서를 독함 해제>, <1장 다산 선생의 애걸에서부터 마지막 22장 다산 사상에 대한 개평>, <원문 교주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유당전서를 독함] 시리즈는 [실학파와 정다산], [정다산선집]과 함께 3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이 세 책은 서로 자매와도 같은 책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어 같이 보면 창해 선생의 다산 학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산학 연구의 개척자 창해 최익한, 창해(滄海)란 그의 호에서 암울한 시대 넓고 큰 푸른 바다로 나아가려는 뜻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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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바다 괴물들 PNSO 어린이 백과사전
양양 지음, 자오촹 그림, 이승헌 옮김, 마크 A. 노렐 감수 / 바수데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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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 속에는 무시무시한 상어, 귀여운 돌고래,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북, 셀 수 없이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갈 수 없는 바다 속 저 깊은 곳, 심해에는 심해동물이라는 이름의 미지의 생명체들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오래 전 멸종된 바다 파충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해의 수영도사 아스케프토사우르스

거대한 바다거북 같은 플라코겔리스

거대한 도마뱀 플라코두스

 

이름이 매우 생소하지만 디테일한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이 있어 재밌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림 사진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굉장히 디테일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 세상에, 이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고대 생명체들이 존재했을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사우르스란 이름에서 고대의 생명체들이 바다 공룡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토사우르스는 가장 먼저 바다에 살기 시작한 바다 파충류 중 하나이다.

노토사우르스과 최대의 동물 노토사우르스 기간테우스!!

엄청난 크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 뒤에 기간테우스라는 이름이 더 붙게 되었다.

 

케레시오사우르스는 머리에서 등, 꼬리까지 호피 무늬 때문에 마치 바다의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사냥 솜씨 또한 아주 뛰어난 동물이었던 것 같다.

 

바닷 속의 진공청소기

디노케팔로사우르스는 험악한 생김새의 바다 파충류입니다.

그 긴 목 때문에 꼭 진공청소기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배가 고플 땐 커다란 입을 벌려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을 모조리 먹어치웠을 겁니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를 쉽게 잘을 수 있었지요. 디노케팔로사우르스는 주로 얕은 바다에 살았고, 수중 생활에 잘 적응한 동물이었습니다.

학명 : 디노케팔로사우르스, 길이 : 2.7미터, 먹이 : 물고기, 시기 : 트라이아스기, 지역 : 중국(아시아)

 

선사시대의 바다 괴물들속에는 대략 70여 종의 바다 파충류들이 나오는데, 각 파충류마다 그 특징과 디테일한 모습이 수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대단히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집필진이 자라나는 꿈나무 아이들을 위해 이 책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10살 아들이 공룡과 이런 바다 동물, 파충류 관련 책들을 좋아한다.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어린아이 때부터 어렵고 낯선 공룡 책들을 보며, 이름을 좔좔좔 읊어 대는 기억이 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동물 관련 과학자나 수의사가 되려는지 지금도 여전히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동물들을 좋아하며 이런 류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즐겨 본다.

 

무더운 여름 아이와 함께 책을 보는데, 아이 보다 내가 더 재밌는 것 같다. 책은 곧잘 읽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선사시대의 바다 괴물들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한글 공부도 하고 바다 파충류에 대한 지식들을 넓힐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23500만 년 전 지구, 역사상 가장 경이로웠던 생명체들이 지배하는 행성 속 동물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어제 저녁에는 만화를 보다가 만화가 끝나니깐, 혹시 지금 <쥬라기월드> 하는데 없나? 하고 물어봐서, 오늘은 하는 채널이 없는 것 같은데 라고 했더니, 갑자기 영화 <쥬라기 월드>가 보고 싶단다. 공룡과 같은 괴물들이 나오는 책을 보고 나니까, 다시 <쥬라기월드>가 보고 싶어졌나 보다. <쥬라기 월드>는 나중에 보고, <선사시대 바다 괴물들>책이나 한 번 더 볼까 했더니, 좋다고 한다. 이 책의 다른 시리즈 책도 대단히 기대가 된다.

 

퀄리티 높은 선사시대 바다 괴물 이야기책,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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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하면 어때? - 본격 일본 직장인 라이프 에세이
모모 외 지음 / 세나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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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하면 어때

 

회사원은 되지 않겠어!”

동갑내기 친구들이 취직 준비에 사활을 걸던 24살 겨울, 나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 일본 도쿄로 갔다. 회사원이 될 자신이 없다면 개인 사업을 하던 프리랜서가 되던, 오롯이 혼자서 견뎌내는 법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작정 시작한 도쿄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일본에서 무슨 일 해?”

회사원은 되지 않겠다던 모모씨는 딱딱하기로 유명한 일본 회사의 관리직이 되었고, 또 자신의 꿈 중 하나였던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일본에서!!

일본 직장인의 특징, 한국 회사원들의 점심 풍경은 친한 사람끼리, 혹은 같은 부서 직원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직장인들은 점심 때 주로 혼자 식사를 한다고 한다. 책을 보거나 모니터를 보며 먹기도 하고, 혼자 벤치에 앉아 도시락이나 빵을 먹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혼밥 하면 흔히 외톨이 취급당하기 쉬운데, 일본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하다 보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매정하고 차갑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건 순전히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짧은 점심 시간이지만,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본에서 일하면 어때?

일본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이 책은 일본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만족해 하는 5명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모씨는 직장인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본 기업의 10년 차 중견 사원이 되었고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쓰는 작가가 되었다.

고나현 작가는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 떠나서 그 곳에 눌러 앉아 일번어 번역가가 되었다.

스하루씨는 유학을 왔다가 일본 생활이 너무 좋아서 눌러 앉았고, 일본인 남편과 만나 스이, 하쿠, 루이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허니비씨도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석, 박사과정을 밟고 일본의 모 제조업 회사 연구원으로 6년째 근무하는 중이다.

순두부씨는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로 가서 지금은 외국계 IT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다수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일본어학과에 들어갔거나 일문학을 공부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식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최근에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본다. 뿐만 아니라 소설도 즐겨 보고 있다. <이 사랑 데워 드릴까요?>는 너무 재밌어서 재방송까지 보았다. 원래는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그렇고 그래서... 하지만 10여 년 전 일본을 처음으로 다녀오고 나서 일본에 대한 사고와 이미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퇴사에 도전!!

회사라는 곳은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나오는 것 또한 왜 그리 힘든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가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의 삶과 생활이 더 부럽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아니 일본어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번역!!

일본어를 잘 한다는 전제 하에 할 수 있는 일이 번역이다. 사실 번역은 고도의 지식 노동으로 불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된 작업이고, 매우 높은 수준의 한국어와 일본어 실력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 퇴사와 일본어 그리고 여행, 번역 작가의 삶과 생활을 말이다.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해외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 안내서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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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자장율사를 품은 깨달음의 순례처
손진익 지음, 한용욱 그림 / 북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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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자장율사를 품은 깨달음의 순례처

깨달음의 순례처

산을 좋아하다 보니, 산을 자주 다닌다.

강원도는 정선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내가 사는 곳과의 거리 때문인지 많이 가보지 못했다. 정선에 가리왕산이라는 명산이 있는지도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산 이름에서 불교의 향이 짙게 배어나는 것 같이 느껴졌는데, 자장율사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읍 회동리와 북평면 속암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수목이 울창하고 깊은 계곡이 많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가리왕산이란 이름 또한 인도의 왕이었던 가리왕과 석가모니불의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음 속에는 두려움도 분노도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 탐욕도 없습니다. 이 모든 감정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허상일 뿐입니다.”

 

자장율사는 590년 신라 진평왕 12년에 태어났다. 자장의 부친은 무림공이었고,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의 친족으로 진골 출신이었다. 자장이 태어날 당시 삼국은 솥의 발처럼 서로 대치하여 치열하게 맞서던 시기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합종연횡을 하며 국경을 침범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자장은 신라의 왕족으로서 벼슬에 나아가 부귀영화를 누리며 평생 편안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항상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자는 부귀영화에 집착하고 현명한 자는 자신을 갈고 닦는 데 열중한다.”라는 말을 들려주며 하며, 자신 또한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영광사로 출가한 자장은 오직 부처의 진리를 깨닫고자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하였고,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자칫 세상에 귀를 열다 보면 마음이 시끄러워지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정신을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문득 법정 스님이 생각났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던 우리 시대의 큰 스님!!

이 책은 강원도 가리왕산과 자장율사에 얽힌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 놓았다. 어려운 내용들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좋을 내용이며, 또한 책 속에 있는 삽화, 그림들이 몸과 마음 즉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사실, 사찰을 좋아하여, 주말이나 가끔 쉬는 날이면 종종 찾아가는 편이다. 절 집 마루에 앉아 풍경 소리 듣는 것도 좋고, 기둥에 기대여 책을 읽는 것도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절이 있는 곳들이 대개 깊은 산 속 골자기이고, 주변이 초목으로 둘러 싸여 있어 공기나 풍경이 더없이 빼어나고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그 곳에 가면, 일단 세상의 잡다한 번뇌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좋아하는 절이 두 곳 정도 있는데, 영주에 있는 부석사란 절과 청도에 있는 운문사라는 절이다. 두 절 모두 비가 올 때면 생각이 나는 절인데, 이유는 구름에 둘러 쌓인 절의 운치 때문이다. 아마도 두 절 또한 굉장히 오래된 사찰이라, 가리왕산 못지 않은 흥미로운 전설이나 설화들이 있을 것 같다. 강원도 명산 가리왕산과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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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명량·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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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16일 영화 한산 리덕스, 감독확장판을 보았다. 재관람인 택이다. 7월에 개봉하자마자 한산을 본 터였다. 7월에 개봉한 영화 한산을 보면서 뭔가 연결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한산 리덕스를 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알았다.

영화 한산은 처음부터 감독확장판으로 개봉을 했어야 할 영화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20여분의 분량이 편집된 채 상영이 되었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이순신이 얼마나 힘겹게 전쟁을 준비했고, 싸움에 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순신 장군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전란의 와중에 쓴 개인의 기록이다.

개인의 날을 기록한 일기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될 수 있다.

난중일기는 다른 일기 책들과는 달리 매우 특별한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이순신 장군의 시선으로 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참상은 물론, 공문에 기록된 다른 지역 전쟁터 상황, 조선 수군의 훈련 상황, 왜군들과 해전 등등 그 어떤 자료 보다 생생한 기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활약을 읽는 일 또한 <난중일기(亂中日記)>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료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상황을 이순신의 붓 끝으로 감지할 수 있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일본의 기습 침략으로 발발한 이 전란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엄청난 재앙과 비극을 그리고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조선의 전 국토가 일본에 유린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전쟁고아가 되거나 가족 중에 누군가를 잃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뜻하지 않게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귀가 없거나 코가 없는 이들, , 다리가 잘리거나 몸에 상해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온 나라가 일본군에 짓밟혀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가 존망의 위기라는 큰 어려움에 봉착했고, 1592년 임진년에 발발한 전쟁은 7년이나 지속되었다.

 

壬辰(임진) 4

12일 맑음.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았다. 정오에 동헌으로 옮겨 앉아 활 10순을 쏘았다. 관아에 올라 노대석을 보았다.

13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15순을 쏘았다.

14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10순을 쏘았다.

15일 맑음. 해질 무렵에 영남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90여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부산 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또 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16일 밤 10시경에 영남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의 지휘 군영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분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즉시 장계를 올리고 또 삼도에 공문을 보냈다.

 

선조 251592년 이순신 48, 임진년 사월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전쟁 발발 일 년 전에 전라좌수사가 되어가서 조선 수군을 정비하고 훈련시켰으며, 전선을 수리하고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돌격선인 거북선 또한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게 근 일 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옥포, 당포, 한산, 부산 해전의 대승이 모두 이 해에 있었다.

그때 만약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놀라운 게 전란의 와중에 어떻게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책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란 책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한산를 보면서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적군에서 막강한 피해를 주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심초사 끊임없이 고뇌하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와중에 원균 같은 이들은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작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을 내며 고집을 부리고, 무모하고 무리한 판단을 하며 이순신 장군을 힘들게 하였다.

<난중일기> 속에는 한산도대첩에 관한 내용도, 한산도 대첩이 있었던 임진년 7월의 일기 전체가 빠져있다. 아마도 싸움이 매우 긴박하고 위급한 상황이다 보니, 일기를 쓸 여력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한산도대첩을 전후로 이순신의 심경이 어떠했는지 보고 싶었는데,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싸움을 대승으로 이끌었으니, 속으로 굉장히 기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유년 717일 원균의 패전을 듣고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정유년 916

초요기를 세우니, 김응함의 배가 점차 내 배로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도 왔다. 나는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감히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도망간들 살 것 같으냐?”라고 했다. 이에 안위가 황급히 적과 교전하는 사이에 곧장 들어가니, 안위의 배 위에 있는 군사들은 결사적으로 난격하고...

 

<난중일기>는 성웅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1월부터 그가 전사하기 전 달인 1598107일까지의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대비를 위해 붓을 잡고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 영화 한산을 보았더라면,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 보다 더 가 닿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를 통해 영화에서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던 이순신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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